나운성 집사(마포1대교구) -

하나님 만나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나는 ‘두 얼굴’로 살았다. 밖에선 성실한 직장인이었지만 안에선 독재자나 다름없었다. 130여 명이 근무하는 인쇄회사에서 밤낮 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나는 회사에서 다른 동료들에 비해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위해 아내는 최선을 다했다. 늦은 시간에 귀가해도 아내는 갓 지은 밥으로 식탁을 차려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고마움보단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아이들에게도 늘 명령하고 지시했다. ‘내가 가장이니까’ ‘내가 돈을 버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허리디스크 수술이 내 삶을 일순간 바꿔놓았다. 수술 후 극심한 후유증 때문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계속되는 통증으로 7년여를 집에만 있었다. 나를 대신해 생계를 이어가던 아내는 경제적 압박감 등으로 예민해졌다. 경제력은 상실했지만 여전히 일방적이고 권위적이었던 나는 아내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표현하지 못했다. 전쟁을 치르듯 아내와 부부싸움을 했다. 매일 술을 마셨고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우리 가정은 위태로웠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던 아내는 마포대교구의 목사님과 구역식구들의 도움을 구했다. 그들은 우리 부부와 가정을 위해 기도해줬고 집에도 자주 심방을 왔다. 그때마다 나에게 교회에 함께 갈 것을 권면했다. 아내도 내가 교회만 다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며 제발 교회에 함께 나가자고 부탁했다. 더 이상 아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나는 억지로 교회를 따라 나섰다.

 젊은 시절 타종교를 믿던 나에게 예배시간은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것이었다. 설교와 찬송, 기도 모든 예식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맹목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어느 날 교구 장로님께서 영성훈련 프로그램 ‘파더스드림’을 추천해 주셨다. 등 떠밀려 등록한 프로그램이었기에 한 번만 나가고 안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참으로 놀라운 체험을 했다.

 프로그램의 시작과 함께 찬송을 부르는데 심장이 쿵쿵거리는 게 아닌가.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나인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안경 속이 눈물범벅이 되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 동안의 삶이 너무 힘들었던 것일까?,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를 알아야 했기에 계속 ‘파더스드림’에 참석하게 됐다. 그리고 그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권위적으로만 살아온 가장으로서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거였다. 하나님께는 회개기도를 드렸다. 오랫동안 기다려 주셨던 주님은 나를 그렇게 불러주셨고 나의 삶을 풍성하게 인도해 주셨다. 어느 날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아멘’을 외치면 신이 났고 감사가 넘쳤다. 허리의 통증도 차츰 회복되어 보안업체서 근무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에 ‘파더스드림’의 스태프로 봉사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교회가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아내가 나를 이끌어줬지만 아내가 힘들어 할 때는 내가 먼저 아내를 이끌고 교회에 가는 날도 생겼다. 뿐만 아니라 교구에서는 구역장 직분도 맡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두 얼굴로, 내 기준과 내 생각으로 세상의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쁘다.     정리=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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