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자 권사(강서대교구) -

교회 나왔더니 류마티스 관절염이 나았어요

기도할 때 목에 난 종양과 치질도 고쳐 주셔

 30대 초반이던 1982년 몸에 이상이 생겼다. 류마티스관절염이 생겼는데 얼마나 심했던지 우리 집에서는 내 비명 소리 밖에 나질 않았다. 8살 6살 4살된 어린 자녀들은 내가 아픈 까닭에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류마티스관절염은 점점 심해져 나중에는 내 손으로 밥도 못 짓고, 혼자 눕거나 일어서지도 못하는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남편이 무당을 집으로 불러다가 밤새 굿을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는 한 구역장이 우리 집에 와서는 “젊은 사람이 어디가 어떻게 아프길래 굿까지 하느냐”며 교회로 가자고 했다. 마침 다음날이 주일인지라 나는 구역장을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 1부 예배에 참석했다. 구역장은 4주 동안 주일 아침이면 우리 집 앞에 택시를 잡아두고 걷지도 못하는 나를 부축해 교회에 데리고 다녔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였지만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에 평안이 왔다. 그렇게 4주가 지난 뒤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몸에 힘이 느껴졌다.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아팠던 몸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부엌으로 걸어 나갔다.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던 내가 부엌까지 걸어갔다. 쌀을 씻어 보았다. 행주를 짜보았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전혀 몸이 아프지 않았다.

 신기하고 놀라워 그 길로 동네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동네 사람들, 나 좀 보세요. 어르신들, 나 이제 아프지 않아요”라고 소리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고함치는 소리에 이웃 아주머니들이 아침밥을 짓다말고 놀라 뛰쳐나왔다. 

 “아무개 엄마, 안 아파! 괜찮아? 웬일이야?” “네. 안 아파요.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교회에 나갔을 뿐인데 병이 나았어요!” 하나님은 교회에 처음 나온 나에게 참으로 큰 은혜를 주셨다. 그 후 기적은 또 일어났다. 셋째 아이를 임신 했을 때 생긴 치질로 몇 해 동안 혈변으로 고생했다. 누군가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하면 낫는다고 알려줬다. 정말로 3일간 금식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호식을 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이 주일이라 교회에서 3부 예배를 드리는데, 조용기 목사님이 신유기도 후 선포하셨다. “치질로 인해 하혈하는 분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데 나았다” 나는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할렐루야’를 외쳤다. 정말 깨끗하게 나았다.

 한 번은 또 구역장 사명을 받아 활동할 때였다. 목에 임파선 종양 3개가 났다. 나는 먼저 내 신앙을 돌아보고 회개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류마티스관절염과 치질을 고쳐주신 하나님께서 임파선 종양을 고쳐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다. 그 당시 나는 세 아이를 돌보느라 수술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무조건 하나님께 매달려 병을 치유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한달 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한 결과 혹 3개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내가 할 일은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환경을 돌아보면 남편을 도와 중·고등학생이 된 세 아이 등록금 마련을 위해 돈을 벌어야할 형편이었다. 나는 세 아이가 공부를 마치면 주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러자 마음속에 한 찬양이 울려퍼졌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그때를 시작으로 나는 담대히 주의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다. 복음전파에 힘을 쏟자 하나님은 내가 돈을 벌 때보다 더 많은 축복을 부어주셨다. 세 자녀는 교사 경제인 등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고, 장막을 선물로 주셨다. 주의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복을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2005년부터 호스피스 봉사를 통해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위로를 전하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에 집중하며 주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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