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60주년을 향하여-선교중심 교회로의 발전

선교통해 세계로 뻗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해외선교, 세계 기독교의 새 역사 쓰다 

 해외 선교 중심의 교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교회는 폭발적인 부흥과 함께 해외 선교에 주력했다. 교포들을 위한 선교 뿐 아니라 아프리카를 비롯해 제3세계 선교에도 중점을 두고 선교 사업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제3세계 지역 및 많은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한 선교의 일환으로 원주민 신학교를 설립하고 원주민들의 영성훈련과 교육을 통해 선교사로 파송하며 선교 활동을 활성화했다. 또한 원주민 선교를 위해 선교지에 의료시설과 교육기관을 개설해 지원을 확대했다.
 대공산권과 중국선교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신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홍콩에 선교전략본부를 두었다. 선교 후원을 위해 1986년 2월 순복음오세아니아연합회가 결성됐고 84년에는 북방선교회, 89년에는 아프리카선교회, 91년에는 유러시아선교회, 92년에는 중국남방선교회가 창립돼 전 세계 복음화에 적극 지원하게 됐다. 

모스크바 크렘린궁 성회 등 해외선교박차  

 조용기 목사는 해외성회를 통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전 세계에 알렸다. 성회마다 놀라운 은혜가 임했고 신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등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1983년 7월 12일부터 21일까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콘퍼런스 홀에서 열린 암스테르담 83국제순회전도자대회는 전 세계150여 개국의 5000여 명의 순회전도자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줬다.
 일본 1천만 구령 사업을 위한 전 일본 선교대회가 1983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후쿠오카의 시민회관과 동경의 무도관에서 조용기 목사와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를 주강사로 개최됐다. 일본의 기독교 여건상 300명 미만으로 모일 것으로 예상한 일본인 목사들의 예측과는 달리 후쿠오카에서 열린 성회에는 무려 3000여 명의 성도들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동경 무도관에서 개최된 이틀간의 성회는 일본지역을 강타한 태풍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6000여 명이 운집하는 대성황을 이뤘으며, 결신시간에는 약 1000여 명이 결신했다. 일본 교역자들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1987년 3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루나파크 스타디움에서 아르헨티나 최대의 개신교 집회가 조용기 목사를 강사로 개최됐다. 전통적으로 구교의 세력이 강한 남미지역에서 개최된 성회임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조용기 목사의 삼중축복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성회장소를 가득 메웠다. 3일간 개최된 성회는 약 6만여 명이 참석했으며 많은 신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러시아 역사상 최대의 개신교 집회였던 모스크바 대성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조용기 목사 초청 모스크바 대성회가 1992년 6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개최됐는데 연인원 4만여 명이 참석해 1만5000명 결신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했다. 특히 이 대회는 74년간의 공산주의를 청산하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지 2년만에 조용기 목사의 성회가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러시아 국교인 러시아 정교회의 극심한 반대로 성회 장소를 사용할 수 없게 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성령의 폭발적인 은혜를 체험했다. 

복음을 통한 민간외교, 한국 알리는데 큰 역할

 조용기 목사의 복음을 통한 민간외교는 1981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조용기 목사는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것을 비롯해 백악관에서 열린 만찬과 기도회에 참석하는 등 민간 외교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복음을 통한 민간 외교는 더욱 활발하게 실시됐다. 조용기 목사의 해외성회가 개최되는 국가에서는 언제나 조용기 목사를 국빈으로 대우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당사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성회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조용기 목사를 대통령 궁으로 초청해 환담하는 등 조용기 목사는 복음전파 뿐 아니라 민간사절로서 민간 외교에도 한 몫을 했다. 1992년의 과테말라 성회는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과테말라의 대통령은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였는데 그는 과테말라의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고 당선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었다. 조용기 목사의 안수기도를 받고 대통령이 된 세라노 대통령은 조용기 목사의 과테말라 대성회를 전국민 기도의 날로 선포하는 등 성회에 큰 관심을 가졌다. 1992년 8월 한국을 방문한 세라노 대통령은 우리 교회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해 20여 분간 말씀을 전했다. 이와 함께 조용기 목사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도미니카, 케냐, 피지 등지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해외성회를 통해 복음 뿐 아니라 민간사절로서 상대국의 국가원수들과 만나 복음을 나누고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등 민간외교사절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왔다. 

조용기 목사, 세계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 선출

 조용기 목사가 1992년 9월부터 13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제 16차 세계하나님의 성회 대회에서 세계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 연합회 초대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세계 하나님의 성회는 60개국 3000만 성도를 가진 거대 교단인데 그동안 세계적인 연합체를 구성하지 않고 국가별로 자치적으로 운영해왔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용기 목사가 총회장으로 선출됨에 따라 국가적인 관계를 통한 교단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됐다. 그동안 하나님의 성회는 그 시발지인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해 이끌어왔지만 조용기 목사로 인해 한국의 성령운동이 부각됐다. 

국내외 TV매체를 통한 선교  

 


1980년 


대전 MBC-TV를 필두로 18개 전국 MBC-TV를 통해 매주일 우리 교회의 예배실황 및 조용기 목사의 주일설교 말씀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TV선교방송 프로그램인 ‘행복으로의 초대’는 12년 동안 각 지방 성도들에게 큰 힘을 주었으며 복음 전도에도 큰 역할을 했다.  
 우리 교회의 방송선교는 미국에서도 활발했다. 우리 교회는 미국 PTL-TV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 전 지역에 조용기 목사의 설교방송을 위성으로 생중계했다. 1986년과 1987년 두 차례 실시한 위성방송을 통해 조용기 목사는 꿈과 비전을 통한 성공적인 삶에 대해 설교했다. 

세계 최대 성도 수로 기네스북 올라

 미국의 종교 전문잡지인 ‘크리스천월드’가 발표한 세계 50대교회에 우리 교회가 세계 1위로 선정됐다. 이와 함께 1993년에는 우리 교회가 세계 최대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로 선정돼 기네스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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