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세종로공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들이 모여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있다. 민주노총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들이 작년 최저임금에서 1,060원이
오른 최저임금 7,530원을 빌미로 상여금과 수당을 기본급화 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등의
편법을 쓰고있다며 이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가 평소보다 일찍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올해 최저임금이 적용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뿐더러 2019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기까지는 아직 반년 가까이 남았다. 하지만 경영계와 보수 언론의 ‘최저임금 때리기’가 거센 데다 정부 인사들도 ‘속도조절론’을 이야기하면서 위기의식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까지 1만원’ 공약도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30일 오후 민주노총은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규탄·최저임금제도 개악 저지’ 결의대회를 열었다. 조합원과 시민 7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2018년도 최저임금 결정 이후 자본과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왜곡된 주장과 악의적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라고 했다. 아울러 “이날 결의대회는 2019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라며 행사의 성격을 밝혔다. “2019년도 적용 최저임금 인상을 사전봉쇄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되는 시도들을 규탄한다”고 했다.

■노동계의 때이른 신발끈 조이기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 캠페인은 보통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의 스케줄에 박자를 맞춰 왔다. 최임위 노·사·공익위원들이 1차 회의를 하는 4월쯤 시작한다. 최임위에서 본격적으로 인상률을 놓고 열띤 논의를 벌이는 5~6월에는 전국 각지에서 관련 집회와 결의대회 등이 봇물을 이룬다.

하지만 올해에는 노동계가 평소보다 3개월 정도 일찍 신발끈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위기감이 깊어진 탓이다. 아직 통계청이나 노동부에서 객관적인 고용지표 등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최저임금이 예년보다 많이 오른 탓에 고용과 물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든 이슈가 최저임금으로 좁혀지는 탓에 ‘기승전 최저임금’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프레임이 올 6월까지 이어질 경우 여론의 부담을 느낀 최임위가 두자릿수대 인상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 공약대로라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15% 이상 올라야 한다.

정부 인사들의 입에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걱정을 부채질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대해 “여러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중소기업, 영세상공인의 상황을 감안해 큰 틀에서 신축적으로 보겠다”고 말했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도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려야 된다는 데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라며 “하지만 꼭 2020년까지 만원이어야 한다기보다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사업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필요하면)2022년까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뇌관으로 떠오른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둘러싼 논쟁도 노동계의 때이른 투쟁과 맥이 닿아 있다. 최임위 노·사위원들은 지난달 전문가 태스크포스(TF)가 낸 ‘최저임금 제도개선안’을 놓고 지난 25일부터 전원회의를 열어 토론하고 있다. 개선안은 기본급과 일부 수당만 들어가는 최저임금 기준선을 더 넓게 잡아 ‘매달 주는 정기상여금’까지 넣는 게 골자다. 다음달 20일 3차 전원회의가 끝나면 정부로 공이 넘어간다.

현재로서는 개선안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서는 산입범위 확대를 최저임금 인상의 전제조건이자, 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들이 받을 충격을 완화할 ‘쿠션’으로 보는 분위기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이 안되면 인상 속도를 완화해야 한다”며 “2020년까지 시급 1만원 인상은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산입범위가 넓어지면 최저임금을 올려도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다”라며, 최임위가 관련 논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의 최저임금 대응 수법도 점차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바꾸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무료로 주던 점심값을 기본급에서 떼거나 경비원 등의 휴게시간을 대폭 늘려 근무시간을 줄여버리는 방법도 자주 쓰인다. 일자리의 질을 낮추기도 한다. 최근 사립대학들은 청소·경비원들이 정년퇴직한 자리를 단시간 아르바이트로 채워 논란을 빚었다. 30일 민주노총 결의대회에는 연세대·홍익대 청소노동자 400여명이 참석해 “대학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핑계로 3시간짜리 저질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대응 때문에 현장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전혀 맥을 못 추고 있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상여금 기본급화 등은 이전까지는 기업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쓰이고 있던 것”이라며 “올해는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면서 특히 대기업 협력업체 등 이름만 대면 널리 알 만한 회사도 이런 편법을 노골적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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