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법' 1년 끌다 처리한 국회..법안시행 준비도 안된 소방청장

재작년 11월 발의된 후 방치..잇단 참사에 부랴부랴 처리 "서둘렀다면 참사 막았는데"
법사위에 출석한 소방청장, 법안내용 제대로 파악 못해..우물쭈물 답변에 의원 호통

2월 임시국회 돌입…"잘해봅시다"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의장실에서 회동하기 전에 손을 잡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세균 국회의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국회가 1년 이상을 묵혔던 소방 관련 법안을 제천과 밀양 참사를 겪고서야 겨우 법사위를 통과시켰다. 이렇게 통과된 법안이지만 소방청은 이를 받을 준비도 안 됐다. 아침 일찍 국회에 출석한 조종묵 소방청장은 30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소방법 개정안에 대해 답변다운 답변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제천과 밀양 화재로 68명이 숨진 뒤에야 열린 국회 소방법 개정안 논의 현장은 촌극에 가까웠다. 조 소방청장은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를 연발했고 여론에 손가락질을 받았던 야당 의원은 도리어 호통을 쳤다.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일정 규모 이상 공동주택에 소방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는 내용 등이 담긴 소방안전 관련 법률안 3건을 통과시켰다.

이날 통과된 법안에는 전용구역에 일반 차를 주차하거나 진입을 가로막을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소방청장이 방염처리업자의 처리능력을 평가해 공시하는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도 포함됐다.

모두 1년3개월 전인 2016년 11월 발의된 법안들이다. 이 법안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잠들어 있었다. 안행위 소속 여당 관계자는 "지진에 밀려 화재까지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제천 화재 이후 성난 여론에 떠밀린 행안위가 10일 관련 법안을 뒤늦게 통과시켰고 밀양 화재가 발생한 이후에야 2월 임시 국회 첫날인 30일 법사위와 본회의를 거쳐 법안이 됐다.

제천 화재는 소방차의 진입을 막은 불법 주정차 차량이 참사를 키웠다. 밀양 화재는 방염 처리가 미비한 병원 시설이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회가 서둘렀다면 사람을 살리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이날 누군가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국회의원의 몫이었다. 하지만 국회에서 도리어 호통을 들은 것은 조 소방청장이었다. 통과가 예정된 법안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고 법안 공포 시기에 대해 계속 말을 바꿔 법사위 전문 수석위원이 뒷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법사위 소속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이날 법안 통과에 앞서 조 소방청장에게 "법안에는 공포 뒤 6개월 후 시행이라 되어 있는데 즉각 시행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6개월간의 예비 기간 중 추가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때늦은 우려였다.

이에 조 소방청장은 "바로 시행해도 관계없습니다"고 답했다. 주 의원이 "정말 지장 없어요?"라고 물었고 다시 "네"라고 짧게 답했다. 납득을 하지 못한 주 의원이 재차 "법안 통과 후 대통령령 등을 개정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자 보좌진의 귓속말을 들은 조 소방청장은 "죄송합니다. 6개월의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고 말을 바꿨다.

이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끼어들어 "소방청장의 말은 법 시행에 앞서 여러 절차가 필요한 것 같다는 뜻인데 제가 법제처장과 상의해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다"고 하자 박수철 법사위 전문 수석위원이 갑자기 연단에 나서 "법안 공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3~6개월이 필요합니다. 협의할 시간을 달라"고 해명에 나섰다.

조 소방청장은 이후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2016년 11월 해당 법안이 발의된 후 "행안위에서 1년여간 심의가 안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다시 보좌진의 조언을 듣고 "처리할 법안이 소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회의가 끝난 뒤 조 소방청장은 법사위 의원들을 찾아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의원님이 갑작스레 물어봐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회 복도에서는 조 소방청장과 소방청 관계자가 박 수석위원과 긴급 회의를 가지는 모습도 연출됐다. 결국 수석위원의 조언에 따라 '6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법안은 원안 통과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준비하지 않은 게 아니다. 어젯밤을 새워 국회 출석 자료를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 소방청장의 모습을 지켜본 지방 지역 소방관들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한 소방관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현장에서는 피가 마른다. 법안이 조금 서둘러 통과됐다면 살릴 수 있는 생명이 여럿이었다"며 "법안 통과를 위해 뛰어주지는 못할망정 국회에서 망신만 당하고 오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