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 권사(은평대교구)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순종하며 주님 은혜 깨달아

 

34년 전 결혼할 때 남편은 “내가 맏아들이니 당신이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했었다. 남편의 제안을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망설임 없이 했던 그 약속이 내 삶을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나의 인생 시간표는 신체가 불편한 어머니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올해 83세이신 시어머니는 9년 전 중풍으로 쓰러진 후부터 왼쪽 팔 다리가 마비됐다. 지역장으로 섬기며 구역모임과 교회에 갈 때는 미리 식사를 챙겨놓거나 식사 시간에 맞춰 귀갓길을 재촉했다. 어머니는 올해 들어 부쩍 반찬이 싱겁다고 하신다. 심지어 젓갈도 싱겁다며 소금을 더 넣으라고 하신다. “어머니, 간을 더 넣지 않아도 무척 짜요” 청력이 안 좋으신 어머니께는 늘 큰 소리로 말씀 드린다. 그래도 잘 듣지 못하시니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된다.

 사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시집 와서는 어머니께 제발 나를 교회에 끌고 가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점차 마음의 문이 열리고 주님이 살아계심을 믿게 되었다.

 여동생이 모시고 있는 친정어머니마저 7년 전 치매 판정을 받으면서 나는 더 분주해졌다. 주일이면 동생을 대신해 어머니를 돌봐드리자 주변에서는 나를 ‘효부’라고 칭찬했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할 때마다 34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면서 힘들다고 불평하며 잘하지 못했던 일들만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원망, 불평의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나는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동서가 두 명이나 있는데 왜 나만 어머니를 모셔야 할까’ 하는 원망도 생겼다. 어느 날 ‘하나님, 너무 억울해요. 잘한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왔는데 언제까지 어머니를 수발하며 살아야 해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그럼 나는 안 억울하냐?”는 하나님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렸다.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넘치는데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 같았다. 연세 드신 어머니를 마음 깊이 공경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회개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평생의 사명임을 마음깊이 받아들이게 됐다. 점차 주님이 주시는 안식으로 마음이 평안해졌다. 감사기도가 나왔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내 주변을 섬기며 전도하는 사명도 기쁨으로 감당케 됐다.

 나를 내려놓고 주님께 순종하고자 노력했더니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풍성한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다. 주말이면 교회에 가기 보다는 낚시를 즐겼던 남편은 서리집사가 됐으며 자녀들은 믿음 안에 장성했다. 특히 남편은 지난해 전력기술 대통령상을 받았고 올해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설상 경기장 두 곳과 주변 시설의 전기 설계를 맡아 성공적으로 올림픽 경기를 치르는데 기여했다. 자녀에게는 대학 입학과 취업, 결혼과 출산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형통한 은혜가 임했다.
 주께 순종하며 어머니를 모셨을 뿐인데 십계명(신 5:16)의 말씀처럼 우리 가정에는 헤아릴 수 없는 축복으로 형통한 믿음의 가정이 되었다. 앞으로도 주께 대하듯 어머니를 모시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싶다.


정리=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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