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 나무 파다나온 뱀과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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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호남선 -손인호               

  


비내리는 호남선 -손인호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 눈물을 흘러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다시 못올 그 남자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내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잘있거라 부산항/백야성               

 

 

      귀여운 판다 

 


  


                                                .                               .... 해운대  동백섬 ...



잘있거라 부산항/충쇠

    


  

 





 

 

 

 

 


햇살 좋은날~그대와함께           

 

 

 

 



견원지간?..고아 원숭이 키우며 어미 노릇하는 개의 사연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애틋한 개와 원숭이가 포착됐다.

18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얼마 전 인도의 한 산림부 직원은 개 한 마리에게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 새끼 원숭이를 목격했다.

동물과 친숙한 산림부 직원에게도 새끼 원숭이가 개의 젖을 더듬는 광경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지난해에도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의 한 마을에서 새끼 원숭이를 애지중지 기르는 개 한 마리가 주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애틋한 개와 원숭이가 포착됐다. 18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얼마 전 인도의 한 산림부 직원은 개 한 마리에게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 새끼 원숭이를 목격했다.

산림부 직원 프라카시 바달은 “북서부 히마찰프라데시주의 한 마을로 출사를 나갔다가 우연히 개와 원숭이를 보게 됐다”라고 밝혔다. 동물과 친숙한 산림부 직원에게도 새끼 원숭이가 개의 젖을 더듬는 광경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새끼 원숭이는 한시도 개 옆을 떠나지 않고 맴돌며 몸을 비비거나 등에 올라타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주변을 둘러봐도 어미 원숭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미는 어디로 간 걸까.

알고 보니 어미 원숭이는 독이 든 먹이를 삼켰다가 변을 당한 상태였다. 산림부 직원은 원숭이들이 농작물을 해치자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이 독을 뿌려 원숭이들을 몰살시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새끼 원숭이가 태어난 지 채 10일이 안 된 때였다.

어미 젖을 떼기도 전에 졸지에 고아가 된 새끼는 어미 대신 개 옆에 붙어 애정을 갈구했다. 그런 새끼 원숭이가 귀찮을 법도 했지만 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원숭이의 칭얼거림을 받아주며 어미 노릇을 대신했다.

바달은 아마도 임신 중인 개가 어미를 잃은 원숭이를 보고 모성애가 발동해 제 새끼처럼 키우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種)을 뛰어넘은 개의 모성애는 인종갈등과 종교갈등으로 죽고 죽이는 인간사에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라고 전했다.

인도에서는 새끼 원숭이를 보살피는 개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에도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의 한 마을에서 새끼 원숭이를 애지중지 기르는 개 한 마리가 주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 개는 들개떼에 둘러싸인 새끼 원숭이를 구출한 뒤, 마치 제 새끼처럼 젖을 먹이며 등에 태우고 다녔다. 개 주인은 새끼를 잃은 자신의 개가 어미가 없는 원숭이를 보고 모성애를 느낀 것 같다면서, 원숭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경계심을 드러낸다고 웃어 보였다.


100여년 전 우리나라 조상들의 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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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1894)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을 이끌고
봉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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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기차(1910) 기차를 타보기 위해 승객들이
객차에 오르느라 소란을 빚고 있다.
기차를 처음타본 승객들은 기차가 정지하기
전 뛰어내려 사고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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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 발족(1920) 왼쪽 높은 망루에 서울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긴급을 알리는 종이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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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중기 도구(1900) 무거운 물체를 끌어올리기
위한 도구로 성벽을 쌓는 돌 운반 역시 이런
방식으로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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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가리개(1900) 여인이 왕골로 짠
가리개를 쓰고 나들이하다가 양손으로
가리개를 받쳐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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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길(1890년) 방금 시집으로 가려는 가마를
잡고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무엇인가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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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장승(1900) 장승은 2개 세우는 법인데
마을 입구에 장승하나가 외로이 서있고
마을로 통과하는 전신주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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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일어학교(1894) 한국인 교사와 도포입은
학생중앙에 일본인 교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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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소릿꾼(1900년) 지금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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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 나들이 (1903년) 전속 가마꾼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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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들의 야외학습(1904) 서당밖에 나와
야외학습을 하고 있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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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매(1900) 연자매는 맷돌을 소가 끌어
돌리게 하는 정미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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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1904) 콩이나 메밀등을 넣어 갈아주는
수동식 믹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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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짜는 노인(1900) 돗자리 짜기란 많은
고르랫돌을 매달아 한 가닥씩 엮어 나가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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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위문(1905) 노일전쟁 당시 기녀들이
일본군 막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뒤쪽 천막에 일장기와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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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담쌓기(1905) 나무틀에 돌과 진흙을 혼합해서
쌓고, 사진촬영을 위해 잠시 휴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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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개화기의 졸업식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두 훈장(선생님)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서있다
언더우드가 설립한 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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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여객선(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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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풍경(1909) 훈장이 회초리를 들고 청마루에서 붓글씨를 감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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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전차 대기소(1919) 서울에 전차가 들어오
면서 단발령 시행에 실패한 일본은 전차회사 직
원들에게 상투를 자르게 했다
서양식 모자를 쓰게 하므로서 전차가 몰고 온 개
혁 바람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꾸어 놓고,
운전수는 강제로 일본식 제복을 입혔다. 백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순헌(엄비)왕비 국상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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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궁도대회(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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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서당(1905) 어두운 방에서 플레쉬 없이
촬영한 것이 신기하고
모두 한결같이 눈을 크게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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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의 상면(1903) 신랑의 가족들이 호기심
으로 신부를 보고 있으나
신부의 가족들은 근심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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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으로 가는 신부(1903) 가마를 탄 신부가 신랑
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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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차(1903)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워크의
한성전기회사에 의해
1898년 12월 전기궤도 부설공사가 완공되었다.
준공 직후 소아 사고로 전차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지만
각지로부터 전차를 타보기위해 서울로 몰려왔다.
정원은 40명이고, 중앙에는 양반이 이용하던
특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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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기(1920) 한말 때 여자가 바깥구경을 할
때에는 널을 뛰어 담장밖 세상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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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1903년) 장승은 마을 어귀에 세워놓고
수호신으로 삼았으며
동시에 이정표 역할을 했다.
또한 장승 앞에서 병의 치유를 빌던 풍습이
있었다.
장승이 7개 사람도 7명으로 각자 기원하고 있다.
간절한 소망과 소원을 얻기 위해선 굽어진
소나무로 된 것이 효험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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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결혼식(1903) 떠구지머리를 얹고 큰머리
를 튼 후,
떠구지 댕기를 드리우고 큰 비녀를 꽂은 다음,
원삼을 받쳐 입고 혼례를 올리고 있다.
이 부부는 자식을 낳은 후 미국 선교사에 의해
결혼식을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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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나들이(1907) 가마꾼이 마님을 태우고
포목점 거리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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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1890) 어린 소년처럼 보이나 초립을 쓴
것으로 보아 이미 장가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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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질(1900) 다리미질하는 이 여인은
의도적으로 젖가슴을 내놓고 있다.
이는 아들을 낳은 것을 자랑하기 위한 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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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이질 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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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나루터(1910) 많은 새우젖 장수가 있고
상권이 모여있는 선착장 주변이다.
서울도성까지 얼마 안떨어져 항상 많은
물량이 거래되고 인천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용산-인천 배삯은 상등은 2원 하등은 70전이며
증기선이 운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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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학당(1910) 이화학당을 설립한 '서클랜드
부인'은 오른쪽에서 가사실습을 감독하고 있다.
앞줄에 신발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이 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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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질과 체질(1890) 우리여인들의 생활은
노동에 시달렸으며
곡식을 찧고 키로 까부리며 체질하여 밥과
죽을 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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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 실습(1910) 대구동산언덕에 있는
선교사 저택에서 실습 나온 신명여학생들이
소년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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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운동부(1930) 대구 덕산초등학교
학생들이 일본식 씨름대회에서 우승한 뒤 기념 촬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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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풍경(1900) 장죽(긴 담뱃대)을 문 근엄한
훈장이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 공부를 못해 광에 갇힌 한 학생을
친구가 돌아앉아 위로하고 있다.

오렌지색 다알리아                          

 

                 


    

정말 얼큰이다.
손바닥 보다 더크다.
생각치도 않았는데 멋진 아이가
피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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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우리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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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청초한 새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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