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유일한 이스람 국가 알바니아★

 

(걸어서 세계속으로 :KBS1:2010. 6.12방영)

 

 

(수도:티라나)

 

발칸 반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알바니아는 국민소득2.000불 발칸반도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나라로 손꼽힌다.

오스만 투르크 등 오랜기간 외세의 침략을 받았고, 제1차 세계대전때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동맹국에 점령당해 나라가 분단되기도 했다

1967년-1990년까지   공식적인 무신론국가로 종교행사가 금지되었다

1990년 종교  자유화되면서 70%가 이스람교  이다

1991년까지는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고립주의적인 국가였고

1992년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섰음에도 여전히 정세가 불안해 국가이다.


 고대 유적 도시 베라트와 지로카스트라
'천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라는 별칭을 지닌 베라트.

 2000년의 고도로서 
알바니아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로서

계단식으로 지어진 옛날 집들이 특징을 이루고 있고. 

 돌로 깔려진 길을 따라 성에 오르면 성 안에 유명한 오누프리 (Onufri )박물관과

중세의 모스크와 교회.이콘(聖畵像)  등이 남아있어 

고대도시 지로카스터와 같이 불가리아의 2대 박물관 도시라고도 불린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바니아의 대표 관광지이다

 

알바니아에 있는 중세 역사 유적지로, 중세의 모스크와 교회 등이 남아있다.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2008년 범위가 확장되었다

경사지 언덕의 전통 가옥들

 

 

 

고대도시  지로카스터(Gjirokaster)

산의 지형을 따라 계단식으로 조성된 도시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고도시와 신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고성(古城)에 오르면 도시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전쟁 박물관과, 민속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산 독재자 엔버 호자의 생가에

들르면 옛 시골의 가정문화를 접할 수 있음.

 

 

 

 

 

베라트성의 비밀출입구

 

 

 

호리트리니티성당(정교회)

 

 

 

  

신시가지에는 정교회건물과 모스크가 공존해있다

 

 

세계문화유산 부트린트의 고고유적 ( Butrinti )

 

 

선사시대 이래 인간거주지로 초기에 그리이스의 식민지였고. 이어 로마의 도시로 편입,

다시 비잔틴 정부 아래서 번영을 구가하다가. 베니스의 지배 이후 중세 말까지 방치된 도시였다.

현재 각 시대별 도시 발달을 나타내는 건축학적 유적의 잔흔이 남아 있다.

수호성인의 보호를 받으며, 병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 성수가 담긴 샘.

고대 로마인들은 이 샘 옆에 의약과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는 신전을 세웠다

  

1992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으로, 1999년에 위기에 처한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부트린트는 BC 6~3세기에 걸쳐 최고의 번영을 누린 것으로 여겨지며,

당시의 인구는 1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요새의 흔적, 아크로폴리스나 극장, 공중 목욕탕 등의 유적은  지난날의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유적

 

부트린트에는 5~6세기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왔으며,

이 시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은 성당과 세례당이다.

 길이 31m, 폭 22.5m의 우묵하게 팬 토대 위에 건설된 삼랑식 바실리카 성당은

 전형적인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의 좋은 예이다.

 

성당 세례당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세례식을 치르기 위해 로마 시대의 목욕을 개조해 세례당을 만들었다.

세례반을 중심으로 원주 16개가 늘어서고, 바닥은 동식물을 묘사한 모자이크화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은 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모래를 뿌려 보호하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수호성인의 보호를 받으며, 병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 성수가 담긴 샘.

고대 로마인들은 이 샘 옆에 의약과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는 신전을 세웠다

 

 

 

원형 극장 

대 로마의 기술자들은 그리스인이 건설한 극장을 손질해 더 웅장한 원형 극장을 완성했다

 

 

     신전의 서쪽 정면에는 법령이나 계율, 노예의 해방에 관한 글이 새겨진 석판이 복원되어

 

            원래의 자리에 붙어 있다. .

 

 

 

부트린트 고지대에는 불규칙한 오각형 토대 위에 망루를 갖춘 비바리트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요새 성문

  

BC 6세기에 건설되기 시작한 요새의 성문 위에는 사자와 소의 사투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방벽,  성벽, 그리고 평원이나 호수 같은 천연의 방벽이 부트린트를 지켜 왔다  

 군사박물관 안의 전차

 

 

 

 

 

 

 

수도 티라나는

 

 로마와 이스탄불의 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인구 27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알바니아의 수도이다.
이 곳에는 스칸더백(Skanderbeg) 광장, 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History),

문화 궁전(Place of Culture),

에뎀베이 모스크 (Mosque of Ethem Bey) 등이 있다.

 

알바니아 국경으로 입국하면서
 
 

 

멀리 보이는 산이 알바니아 엘바산에서 부터 험준한 고산 준령을 가로 질러 달린 길이 있습니다

 

마케도니아 국경 험준한산맥을 넘어서
알바니아 왜 독수리요새라고하는지 알것 같습니다.
험준한 산마루 중앙에 도로가 나있어 더욱 높이를 실감하며 스릴있게 주행중


 

중앙선도 없는 좁은 길을 덩치 큰 버스는 마구 달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버스를 추월하는 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루마니아 운전기사는 한 번도 추월하지 않았습니다.

 

 

 

 

높은 지대에서 내려다본 알바니아 근교
척박한 토양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한 고개 넘어 잠시 평지를 달리던 버스가 이번에는 아예 산맥을 타고 넘기 시작합니다.
구불구불한 길가에는 오래된 올리브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습니다.

 

.
알바니아 국경 능선에서 많이 본 냉전의 흔적인 토치카입니다.
토치카는 소련 말, 벙커는 독일 말입니다. 다 전쟁과 친한 나라입니다.
알바니아에는 이런 토치카가 40만 개나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만들고 있답니다

 

 

 

냉전의 산물 벙커가 곳곳에 산재 해있다

 

 

  전국 곳곳에 75만개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벙커가

그 민둥 머리를 내밀고 있다.

 40여 년간 폐쇄적 공산정권을 이끌었던 독재자 엔버 호자가

전쟁 공포로 만든 벙커들.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벙커를 깨부수어 얻는 철근을 팔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알바니아에서는 옛 소련과 중국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마을버스가 아직도 공산주의 색깔을 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밝은색을 좋아하는 국민인가봐요..
아파트가 초등학생 미술 작품 같네요..
 
 
 
 
 
 
중앙광장 맞은 편의 공산주의 냄새가 아직도 풍기는 문화회관 건물
  
 
 
  

 

 
알바니아 국립 티라니 대학교(적색표시가 마더데레사 동상)

 

 

 

국립대학교정에 있는 마더 데레사동상(부모님이 알바니아 출신임)

 

 

알바니아 전통복장 

 
 
민속 의상 
 
 
 
위로 오라갈수록 넓어지는 고층건물.  
 
 
 
 
   
 
 
시내에있는 유일한 카톨릭 성당 
 
 
 
길거리에는 중고 휴대폰 판매상들이 군데군네..... 이나라 경제사정이 짐작이갑니다.

광장 주변 노점에서 본 해바라기 씨

해바라기 씨는 이곳 사람들도 즐겨 먹는 주전부리(간식?) 감이랍니다.

교통경찰이 근무하면서 이걸 하도 까먹고 버리는 바람에 길이 지저분해져서

판매 금지했다는 재밌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공원에 있는 유명인 동상인데.  글쎄 누군지...
 
 
 
 
오페라 하우스도 있고
 
 
 
이슬람 국가답게 도심 한가운데 모스크가 자리했고
 하지만, 개방된 분위기에 히잡을 쓴 여인은 별루 보이지 않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의상들도 화려하고~!
국민소득 2천 불대 정도의  빈약한 나라라고 하기엔 너무한~
 
 
여인들의 의상색은 한결같이 밝고
    
 
카메라를 향해 손을 들어주는 여유~
 
로마 콜롯세움 앞 도로에 심어져 있던 소나무 가로수 같고.. 

 

 
 유도화 꽃도 화사하고~
 
  
밝은 색 히잡을 쓴 여인

 

 

 

엘바산 성

 

 결혼식을 할만큼 아름다운곳



스데반 기념교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스데반 =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이며 예루살렘 교회에서 최초로 세운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시작된 박해는 신자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복음이 이방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고대도시페트라

 

             

 

 

수멜라 수도원 (흑해지방 트라브존) 터키

 

수멜라 수도원(SUMELA MONASTERY)    

 

수멜라 수도원은 터키 흑해지방 트라브존의 해발 1,628m 지가나 산 위 절벽에 세워져있다. 이 산 위에 절벽을 파고 들어가 동굴을 만들고, 그 동굴 속에 수도원을 건설하였다. 수멜라 수도원은 트라브존 지역에 있는 가장 대표적인 수도원이며 트라브존시에서 자랑하는 역사적인 유적 중 하나이다. 이 수도원은 트라브존 도시의 중심지에서 남쪽 마취카 방향으로 약 54Km 쯤 떨어져 있다. 

수멜라 수도원       

멜라란 이름은 그리스어로 ‘검고 어둡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 지역 주변 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 주변에는 오랜 비바람 속에 지친 바위들의 모습이 약간 어둡고 침침해 보인다. 또한 경사진 절벽 틈새에는 검은 빛의 바위 버섯들로 덮여있다. 수도원의 입구에는 1360년에 세워진 하나의 비문이 보인다. 이 비문에는 수도원의 건립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다. ‘왕은 동부와 서부의 주권자이며. 그는 이 수도원의 건립자이다" 전해오는 설화에 의하면 이 수도원을 건립한 황제는 1361년에 바로 이곳에서 일식을 보았고 한다. 그래서 왕은 그의 동전 한 면에 태양을 찍어 넣었다고 한다.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은 아나톨리아 땅에 이슬람 종교가 지배할 당시에도 어느 정도 보호를 받았다. 수도원의 모든 권리는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가지고 있었다. 18세기에 이르러 건물이 재건되었고, 19세기까지 수도사들은 계속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현재의 터키 공화국이 설립되면서, 터키와 그리스의 인구 교환 협정에 따라 그리스인들이 트라브존을  떠나면서 수멜라 수도원은 주인없는 빈 건물로 남아 있게 되었다. 1972년에 이르러 트라브존시가 수멜라 수도원을 인수하고 박물관으로서 복구하려고 했지만, 이미 많은 귀중한 유적들이 파손되거나 도난을 당한 후였다.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 외부 계단  

 

수멜라 수도원 외부 계단

 

수멜라 수도원 외부 계단 

 

 수멜라 수도원 외부 계단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 

 

금지구역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 입구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 외벽 글자

 

수멜라 수도원 입구

 

외벽 프레스코화 

 

외벽 프레스코화 

 

수멜라 수도원 내부

 

수멜라 수도원 내부

 

내부 프레스코화

 

1360년에 지어진 수도원은 한때는 프레스코 벽화들로 가득했었고, 이 중 하나는 1340년 알렉시스2세의 대관식을 기념한 것이었다. 프레스코화는 9세기것도 있고 대부분 19세기 그림이다. 수도원 내부 바위 벽면에 그려진 성화들은 오랜 역사의 흐름을 증거하는 족적이다. 수도원 벽화는 그리스 정교회의 성화로서 다양한 성서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와 12사도, 천사와 성인을 묘사하고 있다. 벽화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단,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색채와 독특한 화법에도 불구하고 벽화의 모습은 온전하지 못하다. 벅면의 그림 조각들이 이러저리 떨어져나가거나 칼자국 등으로 여러 군데 흠집이 나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모습은 오랜 세월 동안 이 수도원이 수난과 질곡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음을 알려준다.

 

내부 프레스코화

 

내부 프레스코화

 

내부 프레스코화

 

 내부 프레스코화    (출처- http://blog.naver.com/largo80 )

 

  내부 프레스코화   

 

 내부 프레스코화    

 

수멜라 수도원  절벽

 

수멜라 수도원  절벽

 

수도원으로 생필품을 실어나르는 도루레



          

       

Via Dolorosa / 십자가의 길

  


1.십자가의 길 제1처소 /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은 곳

 

빌라도 법정이 있던 안토니오 요새를 1/50로 축소해서 만든 모형
예루살렘 홀리랜드 호텔

 
헤롯 시대 예루살렘의 북쪽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의 동북쪽에 요새를 건축하였는데
로마에 의하여 성전 북편을 감시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총독들이 명절 때가 되면 가이사랴로 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이곳에 있었는데
예수님을 심문할 때 빌라도도 이곳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당하셨던 장소이다.
지금은 아랍국민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란 '돌 판'이란 뜻으로
로마시대에 도로나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큰 돌 판을 말한다.
요한복음 19장 13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다고 했는데
이 박석이 곧 리토스 트로토스이다.
오늘날 빌라도 법정 자리에 위치해 있는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발굴된 돌판 바닥의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을 파놓은 것과
로마군인들이 장난으로 새겨놓은 장기판 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2.십자가의 길 제2처소 /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에케호모교회 (The Church fo Ecce Homo)

이 곳은 빌라도가 가시면류관과 자색옷을 입고 나오신
예수님을 군중들에게 보이며 "보라 이사람이로다"(요 19:5)고 외친 곳이다.
현재의 교회는 1868년에 건축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아치는 AD 2세기경의 로마 개선문이다.
교회 안쪽에 나머지 아치가 남아 있다.

 

이 곳에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사형을 선고받는다(눅 23:24-25).
이 교회는 1904년에 재건된 비잔틴식 교회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성화가 그려져 있다.
예수님 뒤로 자기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손을 씻고 있는 빌라도가 보인다.

 

3. 십자가의 길 제3처소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예수께서 첫번째로 쓰러지신곳

 

이 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첫번째로 쓰러지신 곳이다.
이 곳은 기념하여 1948년에 작은 예배처소를 지었다.
교회 입구 윗쪽에 십자가를 지시고 쓰러지신 조각이 있다.

 

제 3처소 기념 교회의 내부이다.
밤새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시고 쓰러지실 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의 성화가
교회 정면에 그려져 있다.
십자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우리들의 죄로 인한 무게였으리라.


4. 십자가의 길 제4처소 / 예수가 슬퍼하는 성모님을 만난 곳



 

이 곳은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81년에 교회를 만들었고
입구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을 조각해 놓았다.

5. 십자가의 길 제5처소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운 곳  

 

 

6지점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곳

(The Sixth Station) 제 6지점은 제 5지점에서 골고다를 향한 언덕으로

약 3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수녀원입니다.

이 곳은 열두해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 깃에 손을

대고 나은 여자 (막 5:25-34) 라고 전해지고 있는 베로니카가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피와 땀을 흘리시던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렸던

곳이라고 전해 지고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는 코스마스 수녀원이 있었으며 지금 있는 수녀원은

1895년에 지어진 것 입니다

 


 

7지범 두번째 쓰러지신 곳

(The Seventh Station) 6지점에서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남북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나게 되는데 그 세거리의 서쪽 건물이 제 7지점으로 문 위에 표가 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예수께서 골고다를 향해 가시다가 두번째 쓰러지신 곳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1875년 천주교에서 구입하여 학교 (School of the Arts and Crafts) 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8지점 마리아를 위로해 드린 곳

(The Eighth Station) 제 7지점의 바로 서쪽에 있는 희랍 정교회입니다.

이 지점의 표는 라틴 십자가에 희랍말(NIKA) 이 기록된 돌판입니다.

검게 그을리고 더렵혀져 있어서 주의깊게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 곳은 십자가의 뒤를 따르며 슬피울던 여인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라고 말씀하셨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9지점 세번째 쓰러지신 곳

(The Ninth Station) 이 지점은 예수님 무덤 교회의 지붕 위에 있는데,

골도다 정상과는 매우 가까운 거리입니다. 이곳에는 애굽 정교회인

콥틱 교회가 있습니다. 이 곳은 예수님께서 세번째로 쓰러지신 자리입니다.

이 교회 지하로 큰 지하 물 저장고가 있습니다.

 


 

10지점 예수님 옷을 벗긴 곳 

Kfont color=green>문 입구에서 돌 침상을 바라보며 오른쪽 옆으로 돌아서면

계단이 있고 , 몇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곳이 골고다 정상입니다. 

골고다는 예수님 당시 사용하던 아람어이고, 희랍어로는 "크라니온(Kranion),

라틴어로는 "칼바(Kalva)" 영어로는 "갈보리 (Calvary)" 이며 "해골언덕"이라는 입니다. 이 골고다 정상에는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의 10지점부터

13지점까지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만나는 제 10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옷을 벗긴 곳입니다.

그 옆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마 27:35) 인 11지점이며

천주교회 소속입니다. 제 11지점의 정면 벽화는 1938년에 새로된 것인데,

예수님이 못 박히시는 것을 어머니 마리아가 내려다 보고 있는 모자이크입니다. 


 

11지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문 입구에서 돌 침상을 바라보며 오른쪽 옆으로 돌아서면 계단이 있고 ,

몇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곳이 골고다 정상입니다. 골고다는 예수님 당시

사용하던 아람어이고, 희랍어로는 "크라니온(Kranion), 라틴어로는 "칼바(Kalva)" 영어로는 "갈보리 (Calvary)" 이며 "해골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이 골고다 정상에는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의 10지점부터 13지점까지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만나는 제 10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옷을 벗긴 곳입니다.

그 옆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마 27:35) 인 11지점이며

천주교회 소속입니다. 제 11지점의 정면 벽화는 1938년에 새로된 것인데,

예수님이 못 박히시는 것을 어머니 마리아가 내려다 보고 있는 모자이크입니다.

 


 

 12지점 예수님 운명하신 곳

제11지점보다 조금 안쪽(북쪽)은 제12지점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자리입니다 (마 27:45-53).

이 곳의 관리는 희랍 정교회에서 하고 있으며 정면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모습이 금속 조각으로 만들어 져 있고 천정에 등잔이 가득 달려

있습니다.

 


13지점 예수님 시체를 놓였던 곳

제13지점은 11지점과 12지점의 중간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십자가 상에서 딸에 내리신 곳 (눅23:53)입니다.

이 곳에 있는 제단은 천주교 소속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목상이 있습니다.

이 마리아 상은 포루투칼의 마리아 1세가 1778년에 기증한 것인데,

이 작품은 16-17세기 형이고 리스본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제단 밑에 있는 골고다 언덕의 자연석을 볼 수 있습니다.

 


 

14지점 예수님 묻히신 곳

제14지점인 예수님 무덤은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무덤 주위의 돌을 깎아

내리고 무덤과 골고다 언덕만 자연석으로 살리면서 그 둘레에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동산 무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무덤은 주후 335년에 봉헌되어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교회로 천주교와 희랍 정교회들이 공동으로 관리 하고 있으며,

개신교에서 말하는 골고다 언덕과 예수님 무덤은 천연적인 동산의 아름다움과 모형을 지니고 있는 예루살렘 성 북쪽에 있는 무덤 동산 (The Garden Tomb) 인데 그 무덤 동산의 역사는 약 100년 정도 되었습니다.

 


골고다언덕

 


성묘교회



               

 

예수님 세례터 (요르단 세례요한 기념교회)
 


베다니, 당시 지명은 베타바라 Bethabara, 현재 지명은 와디 카르나르)  

 

 

폐허가 된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     (글, 사진출처-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요 르단강의 전체 길이는 260km이며 헤르몬산(최고봉 2814m)산에서 흘러들어오는 물과 함께 4개의 수원지를 가지고 있다. 요르단이란 말은 ‘단에서 흐르다’, 즉 ‘단 지방에서 흘러 내리다’라는 뜻이다. 요르단강은 가장 낮은 계곡을 흐르는 강으로서 갈릴래아 호수에서 사해까지의 길이가 105km이다. 사해는 요르단강의 종착지가 되는 셈이다. 갈릴래아 호수의 수면이 해저 215m이고 사해의 수면은 396m이므로 사해는 갈릴래아 호수보다 180m 낮다. 오 늘날은 요르단강을 경계로 하여 동서로 이스라엘과 요르단 두 나라가 갈라져 있다. 특히 갈릴래아 호수와 사해 사이를 잇는 요르단 강변은 군사 지역으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1967년 6일 전쟁때 이스라엘군들이 점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예리고에서 8km 떨어진 엘렌비 다리가 예루살렘과 암만(요르단의 수도)을 잇는 교통로이다. 구약의 성지인 느보산을 갈려면 이 다리를 통해야 한다. 요르단강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과 예수님의 세례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겐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의 많은 사람들이 요르단강으로 요한을 찾아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마르 1,5; 마태 3,5-6; 루가 3,3).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한테 세례를 받기 위해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요르단강으로 오셨다(마르 1,9; 마태 3,13). 그러나 요르단 강 어느곳에서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는지에 대해서 공관복음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요한복음사가만이 이야기 하고 있는데, 한번은 ‘요르단강 건너편 베타니아(1,28; 3,26; 10,40, 공동번역에서는 베다니아)라고 이야기 하고 있고, 다른 한 번은 ’살림에서 가까운 애논‘(3,23)이라고 언급한다. 애논은 아라메아어로 샘터란 뜻을 의미하는’에나반‘의 희랍어식 발음이다. 애논은 오늘날의 벳산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곳이며, 이곳에는 다섯 개의 샘터가 있는데 그들 중의 하나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요한복음사가가 말하는 ‘요르단강 건너편’은 어느곳을 이야기 하는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더구나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사가는 유다 광야에서(마태 3,1; 마르 1,4), 루가 복음사가는 요르단강 주변에서(3,3)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쯤에 보이는 건물(요르단쪽에 있는 정교회 수도원)까지 행진

 

옆에 칼을 차고 지팡이를 든 사람은 공식 전례때 행렬을 인도하는 사람

 

1884 년에 발견된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오래된, 6세기경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사해 바로 위쪽 베타바라에 세례자 요한의 기념 경당이 표시되어 있다. 초세기의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의 세례 장소는 소중하게 여겼을 것이고, 기념 경당이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그 주변에서 비잔틴 시대의 건물 흔적들을 발견함으로써 추정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4세기에 씌여진 보르도(Bordeaux)의 순례기에 사해로부터 7-8km 떨어진 곳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장소가 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신빙성은 있어 보인다. 예리고로부터 8km 떨어진 요르단강 근처에 그리스 정교회 소속 세례자 요한의 수도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1967년 6월전쟁 이후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군사지역이 되었다. 세례자 요한 수도원이 있었던 곳은 이미 비잔틴 시대부터 기념 경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요르단강 가까이에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가 1933년에 세운 기념 경당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완전히 파괴되어 방치된채로 남아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요르단강의 성지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1985년 이래  매년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 단 하루만 들어가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므로 성지관구는 이날 예수님 세례 기념 대축일 미사를 신자들과 함께 봉헌한다.

 

순례자 행렬,  1985년 이래  매년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 단 하루만 들어가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순 례자들은 예루살렘 뉴게이트 앞에서 아침 7시 30분에 버스로 출발하였고, 예리고를 지나 요르단 강 근처에는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요르단강의 예수님 세례터는 현재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지대로 우리나라의 38선 철책 안과 비슷한 상황이다. 강을 사이로 요르단 군인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이곳은 6일전쟁 이전에는 카톨릭 수도원과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있었는데 전쟁때 파괴 되었고,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다. 9시에 행렬을 시작하여, 세례터 옆에는 9시 15분에 도착. 세례 갱신과 미사가 성지관구 수호자의 주례로 있었다.

도로 양 옆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다

도로 양 옆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다

 

지뢰밭 표지

 

경계 근무 서고 있는 이스라엘 병사들

 

강건너에 보이는 사람들은 요르단 병사들

세례터 물

세례터 물

 

<카톨릭 미사 처>

 

가톨릭 소유의 임시 미사 처, 임시 제대를 만들고 여기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아동 세례자

세례터 광장

세례터 광장

 

요르단 강 근처의 광야

 

<요르단 쪽 세례요한 기념교회- 그리스 정교회> 

 

세례터 안내석                    (이하사진출처- http://cafe.daum.net/bpguide/FbqL/5750)

 

 그리스 정교회               

 

예수님 세례터로 가는 길

 

예수님 세례터로 가는 길

 

예수님 세례터로 가는 길

 

예수님 세례터로 가는 길

 

그리스 정교회, 강건너 반대편은 카톨릭 성지

 

예수님 세례터 

 

세례요한 기념교회      (http://holyland.maru.net)

 

신 약성서에는 베다니라는 이름으로 두 개의 지명이 언급되고 있다. 하나는 감람산 기슭에 위치한 나사로를 살리신 마을 베다니(요 11장)이고 다른 하나는 요단 동편지역에 위치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베다니이다. 우리에게는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가 살았던 감람산의 베다니가 익숙하지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장소이며 현재는 요르단 지역에 속한 요단 동편 베다니도 매우 중요한 성지라 할 수 있다. 요한복음 1장 28절에는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던 장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이 일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또한 베다니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게 되자 잠시 예루살렘을 떠나 세례요한이 처음 세례를 주었던 이 장소에 오셔서 잠시 거하셨던 장소로 다시 성서에 등장하고 있다(요 10:40).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요단 동안지역(east bank)에서는 1899년 이래 베다니를 발견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이후 많은 발굴과 노력 끝에 교회, 수로, 세례터 등의 유적이 다량으로 발굴되어 이를 근거로 남 요단강 계곡지역에 속하는 여리고 맞은편에 위치한 현재의 분지를 학자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장소인 베다니로 부르고 있다. 학자들의 이러한 추정에 근거하였을 때 신약시대 베다니는 구약시대 많은 사건이 일어났던 여리고 맞은편 지역과 일치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이 지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의 고단한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던 장소가 바로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와 일치하고 있다(민 36:13). 또한 구약시대에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더욱 유명한 사건은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했던 사건이다. 열왕기 하에 의하면 엘리야는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과 벧엘 그리고 여리고에서 선지자의 생도를 만나고 요단강을 건너 그 곳에서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였는데 엘리야가 승천했던 언덕도 여리고 맞은편 지역에 위치한 이 곳 베다니가 아니었을까 하며 많은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현재 베다니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고 고고학 발굴 결과 이전 이곳에서 행하였던 세례터의 흔적과 기념 교회의 흔적들이 발굴이 진행 중인 가운데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베다니에는 요단강 주변에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서 한 때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들도 살았다고 전해지는 관목 숲과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갈대밭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요단강 주변의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단강 최 서쪽 지역까지 가볼 수 있고 비록 지형이 많이 변했지만 당시 세례 받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스 정교회,  세례요한 기념교회 (예수세례터교회)   (http://blog.naver.com/jjkkhh2232 )

 

예 수님이 세례를 받은 곳은 여리고 평지를 지나는 요단강이다. 여리고 평지에 애논이라는 곳이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으로 바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장소로 추정된다. 현재 예수님의 세례터에 교회적 전통의 성지로 기념장소와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곳은 현재 요르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일반 순례객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현재 이곳에서 백 수십키로 더 올라가 요단강 상류 갈릴리 호수에서 요단강이 시작되는 지점에 유대인들의 한 키브츠에서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여 만들어 놓은 관광장소 야데르닛 (Yadernit)이 있다. 현재 매년 10월 셋째주 목요일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날로 세례터 기념 예배가 열린다. 이날만큼은 국경에 일반 순례객의 방문이 허락된다. 로마카톨릭의 요구를 받아들여 요르단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틴 정부의 공동 협조로 방문이 이루어진다. 보통 2-3개월 전에 예루살렘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 방문자 접수를 받는다. 미리 국적 여권번호 등 보안에 관한 정보를 기재하여 제출하면 허락된다. 그리고 행사 당일 예루살렘에 모여 이름을 확인해 버스에 탑승해서 요단강으로 향한다. 물론 최근에는 그 절차가 점점 간소화 되어 카돌릭 교회를 통해 통과 버스만 미리 신고 하면 당일에라도 버스에 동승해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세례터 기념 교회 예배는 오전 10시 경 시작되므로 그 전에 도착해야 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jjkkhh2232) 

 

세례자 요한의 샘                     (출처- http://blog.paran.com/jhd112/14818027)

 

그리스 정교회, 세례요한 기념교회 (예수세례터교회)  

 

그리스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이하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정교회 내부

 

정교회 내부

 

정교회 내부

 

정교회 내부

 

세례요한 기념교회 내부       (http://holyland.mar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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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내부

 

정교회 내부 

 

정교회 내부

 

정교회 내부

 

정교회 내부

 

요르단 왕국쪽 예수님 세례터

 

요르단 왕국쪽 예수님 세례터

 

예수님 세례터  

 

예수님 세례터 

 

예수님 세례터

 

세례터 유적

 

세례터 유적

 

세례터 유적

 

예수님 세례터

 

예수님 세례터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으시는 성화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FbqL/5750)

 

교황 요한 바오로2세 방문 기념 모자이크

 

예수님 세례터

 

예수님 세례터

 

요르단 왕국쪽 예수님 세례터

 

작은 시냇물을 사이로 요르단 강 동편과 서편이 나뉘어져 있다. 건너편은 이스라엘 쪽

 

작은 시냇물을 사이로 요르단 강 동편과 서편이 나뉘어져 있다. 건너편은 이스라엘 쪽

 

강 건너 보이는 건물쪽에서 성지관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서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예수님 세례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요르단 강 건너편 예수님 세례터에 건축 중에 있는 가톨릭 성당. 이곳 성당이 완공되면 예수님 세례 기념 미사를 이곳에서 봉헌할 수 있을 것이다.

 

요르단 강 건너편 예수님 세례터에 건축 중에 있는 가톨릭 성당

 

요르단 강 건너편 예수님 세례터에 건축 중에 있는 가톨릭 성당

 



               



시리아의 팔미라 고대 도시와 교도소

팔미라를 2000 년 된 대도시의 IS가 탈취회다고 알려졌다

유네스코는 고대 도시의 파괴가 "인류에 엄청난 손실"이 될 것이라고 경고

다마스쿠스 근처 감옥에 수감자는 강력범들이 수천명 달한다고 한다

또IS가 민간인을 포함 17명을참수

 

아래사진은 시리아 와 IS가 전투전 사진임

 

 

 

 

 

 

 

 

 

 

 



성지순례/이집트2



































성지순례/이집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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