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권사(금천대교구) -

“이번 특새 통해 목발을 던져버렸어요”

15개월간 목발 생활, 고통의 괴로움 커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 응답 주셔
 

 추수감사절을 맞아 지난 2주간 진행된 특별새벽기도회 기간, 17일 새벽이었다. 이영훈 목사님의 말씀이 끝난 후 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TV화면 아래 자막이 흐르듯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는 환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나가려는데 함께 기도회에 왔던 둘째 아들이 나더러 “이번에는 아예 나을 것을 작정하자”며 10분만 더 기도하자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 ‘아픈 다리를 고쳐주세요.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고 목발을 짚지 않도록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성전을 나와 차를 세워 둔 교회 길 건너까지 목발을 짚고 오는데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목발을 짚지 않았는데도 신기하게 걸음이 떼졌다. ‘목발 없이 걷다니…. 하나님이 고쳐주셨다’ 두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입에서는 감사 고백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서둘러 김금화 지역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대로 걷기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중보하며 시간이 되면 차로 데려다주던 고마운 분이었다. “지역장님, 나 목발을 던져버렸어요. 이제 걸을 수 있어요” 수화기 너머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 감사’라는 말이 들려왔다.

 유전적 평발로 오른쪽 발이 바깥쪽으로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50세가 넘어서였다. 불편한 정도였지, 증상이 그리 심각하지 않아 그냥 뒀더니 그만 수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복숭아 뼈의 통증이 심해 지난해 8월 병원을 찾았더니 뼈 주변 살이 손상됐다는 것이었다. 썩어버린 살을 제거하고 발바닥에 고정 핀을 박아놨는데 거기서 염증이 생겨났다. 핀을 제거하고 다시 핀을 박는 수술 등 4번의 수술이 진행됐지만 그 과정에서 복숭아 뼈에 손상이 오고 말았다. 이후 나는 지금까지 15개월을 목발이 있어야만 다닐 수 있었다. 목발을 짚고 몇 걸음을 떼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두 다리로 걷는다는 것이 큰 축복임을 그 때 알았다. 힘겹게 목발을 짚고 걷다보면 두 발로 걷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더 답답한 것은 마음대로 예배를 드리러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건물 3층에 있는 기도처를 올라가는 일도, 새벽예배를 드리러 교회 오는 것도 나에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예배 중간 성전에 도착해도, 헌금만 드리고 성전을 일찍 나서야 했어도, 나는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간구하며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예배를 다녔다. 걷기 힘들 때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기도원 성령대망회도 참석했다.

 이번에 2주간 열린 특별새벽기도회도 첫 주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둘째 주는 다행히 둘째 아들이 나를 교회까지 데려다 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아들은 나에게 “이번에는 정말 하나님께 아픈 발을 고쳐달라고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해요. 그래서 응답 받아요”라며 함께 기도했다. 금천대교구 목회자님들과 교구장 김현동 목사님 그리고 지역식구들도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의 이런 기도가 한 마음이 돼 이번 새벽기도회 때 하늘에 상달됐고, ‘기적이라는 응답’으로 내게 임한 것이었다. 던져버린 목발은 집 한쪽 구석에 놓여있다. 담당 목사님은 하나님이 우리 지역을 축복하시고 더 많은 일을 하시기 위해 이런 기적을 베풀어주셨다고 했다. 그래, 이제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많다. 전도도 해야 하고, 기도도 전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게 다니고 싶던 새벽예배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올 것이다. 3층에 있는 기도처도 당당하게 올라갈 것이다. 내게 주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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