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사업 부도로 절망에 빠진 삶
주님 건져주시고 새로운 인생 살도록 이끄셔
얼마 전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미용선교회 주최로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분들을 위한 제19회 연합결혼식이 열렸다. 이영훈 목사님의 주례로 아름다운 남녀가 서로를 평생 아끼며 살아가겠노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처음 출석할 때부터 지금까지 미용선교회에서 봉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최근에는 총무까지 맡아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어도 기쁨과 감사로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지만 한 가지,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만 가득하다.
30대 무렵의 어느 날 나는 청량리역에서 전도지를 돌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교회에 출석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전도하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어머니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마주한 것에 당황하신 듯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내게도 교회에 갈 것을 종용하셨다.
그때는 자꾸 집으로 성도들이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힘들고 귀찮기만 했다. 당시 사업을 하던 나는 세상 문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기에 사사건건 어머니랑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수시로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내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 그때 나는 무역업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이 일로 가족들에게도 큰 아픔을 남기고 말았다. 승승장구하다 갑자기 추락해버린 나는 현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치 늪에 빠진 듯 점점 더 절망의 깊은 바다로 빠져만 들어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친구와 친구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방 곳곳에 다니며 돌을 모으는 ‘수석’에 빠져 있었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친구부부가 야외로 놀러가자며 불러낸 것이다.
그런데 친구부부 차에 동승했더니 “출발하기 전에 교회에 가서 예배만 드리고 가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알았다고 하고 따라나섰는데 그 곳이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오래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크고 많은 사람들이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친구부부를 따라 얼떨결에 대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는데 찬양 한 소절을 듣는 순간 눈물 콧물할 거 없이 깊은 마음속에 있던 울분들이 터져 나왔다. 그 후부터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통곡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신앙생활이 시작됐다. 친구부부가 데리러 오지 않아도 내가 먼저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친구의 조언에 따라 성경학교, 성경대학도 수료했다.
신학 공부도 하고 싶어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어머니가 그때 치매초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해 어머니를 제대로 간호해야겠다 싶어 사회복지사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어머니를 잘 모시기도 전에 어머니는 먼저 천국에 가셨다. 내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어머니께 말씀은 드렸지만 이미 어머니는 내가 하는 말씀을 이해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진작 어머니 말을 들었더라면 어머니를 더 편안하게 잘 모셨을텐데 하는 후회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다.
비록 넘치는 삶은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기쁨과 감사로 봉사하며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어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그 은혜에 힘입어 나는 친구부부와 함께 미용선교회에서 지금까지 봉사하고 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미용기술을 배워 지방 곳곳에 다니며 개척교회를 지원하는 등 선교회의 사역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겠다. 그리고 이 지면을 빌어 일찍이 어머니께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