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종려주일밤설교> 고난주간의 묵상(2)               



(우)32429    충남 예산군 예산읍 역전로 150-13(서오Apt 201동 504호)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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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4.9.주일밤예배 설교문
   【사순절 여섯째주일, 종려주일】
본  문 : 마가복음 15 : 25 - 41
제  목 : 고난주간의 묵상(2)
찬  송 : 151, 290, 305, 439.
복음송 : 십자가의 길


        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도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저녁에는 오늘 낮 시간에 이어서 고난주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에 일어난 사건들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낮 시간에는 고난주간에 있었던 사건으로
        ① 예수님께 나귀를 제공해 드린 사람과
        ②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려서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한 여인과
        ③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을 잡수실 수 있도록 다락방을 예비하고 만찬을 준비한 여인과
        ④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5.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1)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하실 때 제자 여덟 명은 산 아래에 두시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명의 제자만을 대동하시고 올라가 돌 하나 던질 만큼 떨어져 기도하셨습니다. 
        (눅22:41-43)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의 자리를 지정해 주셨습니다. 가룟유다는 떠나가고 여덟 명의 제자는 동산 아래에 두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겟세마네 동산까지 데려 갔지만 주님과 거리를 띄웠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에게 맡기신 신분과 위치와 사명(使命)을 각기 깨달아 있는 자리에서 자기 책임에 대한 충성함이 마땅한 줄 믿습니다.<아 멘!>


(2)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이같이 명령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고전16:13-14). 그러나 제자들은 여기서 실패했습니다(사56:10참고). 제자들은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잠만 자는 성도가 있습니다. 사순절도 고난주간도 아랑곳없이 겟세마네 동산의 세 명의 제자들처럼 잠만 자느라고 새벽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든다는 말씀입니다.


(3) "이제는 자고 쉬라" 고 하셨습니다.


         마26:45-46절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제자들은 이 위기에서 주님을 따름에 그대로 실패했습니다. 자기의 직분을 못 지키고 깨어 기도하지 아니하던 제자들은 급히 일깨워 같이 가자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말고의 귀를 자르고 다 흩어져 달아났고 마침내 주님을 부인하는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오늘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을 바로 바라보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 제자들처럼 실패 없는 믿음의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6.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을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구레네 시몬은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의 그 뜻과 가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모릅니다.
        바울은 골1:24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며 육체적인 고통을 받을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과 바울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주님의 사업에 충성하며 주님 때문에 희생과 고통을 받으면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이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마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습니까?
        아마 그날 아침까지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북방, 구레네 에 거주한 유대인으로 이때 유월절을 지키러 올라온 순례자입니다. 그는 예수의 처형되는 광경을 구경하러 나온 수많은 시민들 사이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무 지쳐 십자가를 지시고 가지 못하는 것을 본 로마 병정이 길가에 서서 구경하고 있던 시몬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웠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재수 없는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시몬이 주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후에 그 자신도 신자가 되고 그의 아들들도 저명한 성도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억지로라도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기왕이면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지기 바랍니다. 기쁨과 감사로 십자가를 질 때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7.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려고 끝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는 700여 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사역을 예언하였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지친 몸으로 체포되어 새벽부터 끌려 다니면서 온갖 수모와 천대를 당하시고 대제사장의 군관들의 구둣발에 채이고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법정으로, 헤롯의 관저로,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면서 견딜 수 없는 곤욕을 치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었습니다. 눈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뺨을 치면서 조롱을 합니다. 발길로 찹니다. 갈대로 때립니다. 채찍으로 때립니다. 예수님의 온 몸이 부어오릅니다. 유혈이 낭자했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얼굴은 피투성이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 밖으로 가셨습니다. 힘에 겨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기진맥진해졌습니다. 십자가를 질질 끌고 올라가시다가 쓰러집니다. 무자비한 군인들은 가죽 채찍으로 때립니다. 매 맞은 자국은 터져서 퍼가 흐릅니다. 골고다 언덕길에서 예수님이 걸으신 자국 자국마다 피로 물들여졌습니다.
        골고다에 이르러서는 십자가 형틀에 눕히고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 처절한 광경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굵은 쇠못을 박는 망치 소리가 골고다 온 산야를 흔들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고통을 참으시면서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십자가의 길
        2. 한마디 또 한마디 용서의기도 드릴 때
           저들모두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네
           골고다 언덕위에 살을 찢는 망치소리
           쓰리고 아픈 고통 누굴 위해 참았나요.
           주님의 용서의기도 내가 어찌 알리요
           주님의 용서의 눈물 내가 어찌 알리요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제1말씀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제2말씀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3말씀 요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제4말씀 마27:46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제5말씀 요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제6말씀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제7말씀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어갔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십자가의 죽음을 당해야 합니까?
        바로 나와 여러분의 죄를 인하여 그 죄 값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골고다 언덕에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언덕 위에 우뚝 선 세 개의 십자가, 그리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예>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분을 둘러 서 있는 군중들을 화폭에 그렸습니다. 렘브란트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는 골고다의 광경을 그리면서 그 전체 그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 있는 한사람을 그려 넣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림 중에 있는 어울리지 않는 그 사람을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도 이 십자가 주변의 군중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렘브란트 화가처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8.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 와서 눈물 짖는 여인들을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넘어지며 쓰러지며 골고다를 향해 가실 때 여인들이 울며 울며 주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눅23:27-28)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는 데까지라도 따르겠다고 장담하던 제자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은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마27:55-56)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고 하셨지만 끝까지 주님을 따라간 사람은 연약한 여인들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제자들처럼 말로만 주님을 따른다고 하고 실제 행함은 없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까?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9.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를 묵상해야 합니다.


        (눅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간악한 유대인의 제사장들과 교권자들은 예수를 강도들과 함께 처형함으로 예수님을 흉악범으로 매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양편에 있는 강도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나와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은 왼편에 있는 강도와 같이 끝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불평과 원망만을 하다가 지옥의 멸망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오른편의 강도와 같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영원한 천국의 구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습은 지금 어느 강도의 모습입니까? 오른편입니까? 아니면 왼편입니까? 그도 저도 아니면?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찬송하며 예수님을 환영하던 입으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라고 아우성치던 무리들입니까



10.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장사한 아리마대 요셉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공회원이요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 위원이나 되는 듯 위협을 무릅쓰고 당돌히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정한 세마포로 싸서 예비 된 자기의 빈 무덤에 안장해 드렸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눅23:50-54)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은 감히 아무도 엄두도 못 내고 생각지도 못한 큰 일을 했습니다.
         (막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고 하였습니다.
        이 요셉은 마19:21절 이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의 길을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던 사람인데 그 후로 크게 후회하여 재산을 많이 들여서 마련한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도 진실로 예수를 믿는다면 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이 모든 사람이 외면하고 비굴해 질 때 요셉과 같은 용기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하신 후 30여년이 지난 후에 마태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일컬어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마27:57)고 기록하였습니다.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이면서도 예수님을 팔아먹은 배신자가 있는가 하면 비록 예수님의 제자의 수에 들지는 못했어도 제자들보다도 훨씬 훌륭한 일을 해낸 요셉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이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가슴에, 우리교회에, 여러분의 가정에, 이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내 가슴으로 뜨겁게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의미가 내게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마음속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흘리신 보혈은 바로 나와 여러분의 죗값으로 흘리신 것입니다. 이 보혈로 인하여 죽어야 할 몸이 살았고, 내가 죽어야 할 것을 주님이 대신해 주신, 그 은혜를 받고도 무감각 상태로 있어서야 어찌 하겠습니까?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이 주님의 은혜에 만 분의 1이라도 보답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고난당하신 것을 추상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내게 체험되어지는 이번 주간이 되어 더욱 은혜로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를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 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런 사례가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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