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란 집사(영등포대교구) -

마더스드림 통해 믿음의 가정 이루었어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신앙으로 바로서니
남편, 자녀들 그리고 친정 부모까지 구원받


누구나 그렇듯이 내게도 고난은 예고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맞벌이를 하던 우리 부부를 위해 평일에는 시어머니가, 주말에는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그러던 두 어머니가 거의 동시에 크게 아프셨다. 친정어머니가 유방암과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시고, 시어머니가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셨다. 특히 시어머니는 수술 1년 후 회복을 기대하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패혈증으로 소천하시고 말았다. 어머니들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던 나는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다니던 직장도 관두었고 홀로 계신 시아버지도 모시게 된 것도 힘든 상황에서 남편의 화장품대리점에 세무조사를 받는 등 수많은 위기와 고난이 나와 우리 가정을 덮쳤다. 그 때 난 시어머니가 늘 가시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생각났다.

 나는 남편과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독실한 시부모님의 영향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부모님과 같이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또한 시부모님도 내게 강권적으로 교회출석을 강요하지 않았기에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내가 왜이러는지 물으면 ‘하나님이 널 너무 사랑하셔서 그런거란다’라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그 때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여행다니기 바빴었다. 하루는 교회서점에서 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혹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꼭 순복음교회를 다녀라. 전국 어디에나 있으니 교회를 가려면 순복음교회로 가라”

 그 말씀 때문이었는지, 힘들 때 생각난 곳이 순복음교회였다. 마침 이사간 집 앞에 기도처가 있었다. 기도처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순복음교회 간판만 보고 새벽에 그 곳을 찾았다.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모르면서 마냥 기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순복음교회를 스스로 찾아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어느 주일 ‘마더스드림’ 포스터를 보게 됐다. 포스터에 적혀 있는 ‘주님 내가 어머니입니다’라는 문구가 나를 이끌었다. 첫 세미나에서부터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지금까지의 내 자신이 깨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누구인지, 어머니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어떻게 자녀교육을 해야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편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남편은 나와 성격이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규정하고 남편을 나무라고 다그치고 내 감정을 쏟아내기만 했음을 깨닫고 반성하게 됐다. 마더스드림 이후로는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남편을 존경하고 높이는 ‘현숙한 아내’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남편과 함께 부부세미나도 참석하고, 먼저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자 남편도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버지학교를 다녀온 후로는 지금까지도 파더스드림에서 봉사하며 위기의 가정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변화되자 아이들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을 화평, 큰 아들은 믿음, 둘째 아들은 소망 그리고 나는 사랑이라 부르며 우리 가정이 믿음 안에서 하나되길 꿈꿨다. 자녀들 모두 신앙 안에서 자라 지금은 각각 바리스타와 대금연주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다. 부모임에도 특별히 아이들을 뒷바라지 못했지만 우리 가정이 믿음 안에서 바로 서니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고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꿈과 비전을 찾아 열심을 다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지난해에는 믿음의 가정이라는 꿈이 가장 큰 열매를 맺었다. 오랫동안 유교양식을 지켜온 고집센 친정 부모님께서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리던 제사도 접고 온전히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 할렐루야.
 요즘 사회를 바라볼 때 깨어지는 가정, 위기의 가정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교회 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파더스드림과 마더스드림을 통해 가정이 회복되길 바라며, 이를 위해 나는 마더스드림에서 남편은 파더스드림에서 더 열심히 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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