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옥 집사(양천대교구) - 나는 북한 지하교회 교인이었다

몰래 받은 남한 성경책 가족이 돌려가며 읽어
남한과 중국교회 원조로 주민돕고 복음화시켜


 “하늘의 신이 내려와서 축복을 주는 책이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남편 덕분에 추방을 면한 한 청년이 우리 집에 오더니 내게 말을 건넸다. 그런 책이 어디 있냐며 어이없어 웃던 나는 “점쟁이가 점을 쳐주는 책이 있다던데 그 책인가보네. 당장 가져와봐요”라고 말했다. 청년위원장 부인이었던 나의 말에 그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새벽 3시 그 책을 품에 안고 우리 집에 왔다.

 1997년 7월, 무더운 한 여름 새벽 우리 집으로 달려온 그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온 그는 당장 문을 걸어 잠그라고 했다. 그가 시키는대로 문을 잠그자 품고 있던 책을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북한 보위부에 걸리면 당장 끌려가니 남편도 몰래 조용히 읽으라고 당부했다.

 땅에 묻어둔 것을 꺼내왔다는 그 책은 악어가죽에 지퍼가 달려 있었다. 책을 펴자 앞부분은 썩어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뒷장은 물을 흥건히 먹어 질퍽거렸다. 부엌에 앉아 젖은 책을 불에 말려가며 읽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매일 밤 식구들이 자는 것을 확인하고는 몰래 부엌에 앉아 청년이 주고 간 그 책을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부엌에 들어온 남편에게 책을 들키고 말았다. 남편은 “남조선에서 들어온 책”이라며 어서 감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문을 걸어 잠그더니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남편의 행동이 이상했다. 남편은 나더러 “정치범 수용소에 가서 재판도 없이 총알 맞고 죽고 싶냐”며 나를 데리고 방으로 가더니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이 책은 이렇게 숨어서 읽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의 축복을 담고 있다며 청년이 건네 준 이 책은 바로 성경이었다. 

 김일성 사후 북한 주민들은 배고픔 속에 많이 죽어갔다. 고난의 행군이 가장 극심했던 1997년, 일대에서 가장 부자였던 우리 집도 예외 없이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나에게 성경책을 건네 준 청년은 성경책을 주기 몇 달 전 쌀과 암탉을 주고 갔다. 남편에게 진 빚을 갚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건네 준 식량은 중국 교회를 통해 북한 지하교인들에게 전달된 구호물자 일부였다. 

 북한의 지하교인은 두 부류로 나뉜다. 1950년 이전 생으로 외국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북한이 기독교를 말살하기 전까지 신앙생활을 했던 이들을 그루터기 지하교인이라고 일컫는다. 북한에서 1980,90년대는 기독교가 완전히 말살된 무종교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식량난이 남한과 서방세계에 알려지고 전세계 민간단체의 구호활동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다시 지하교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신지하교인들이다. 나는 신지하교인에 속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부정기적으로 모여 기도를 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는 딸 아이가 병에서 고침받는 기적도 경험했다.

 우리가 청년으로부터 받은 낡은 성경은 이후 친정식구들이 돌려가며 읽었다. 중국에 살고 있던 사촌 오빠의 가정이 기독교가정임을 알게 되면서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와 남편은 남한과 중국 교회로부터 받은 후원물자를 굶주린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하며 활발히 복음을 전했다. 위태함 속에 2년간 지속됐던 지하교인 생활은 결국 누군가의 밀고로 발각되고 말았다.

 비공개재판을 통한 나의 죄명은 북한노동당 역사 이래 유래 없는 최대 종교간첩단 사건, 반동사상 유포죄로 13년형이 구형됐다.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나는 함께 신앙생활했던 이들의 이름을 결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모진 고문과 배고픔 속에 3년 가까이 감옥생활 하던 중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당시 내 몸무게는 28㎏.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나는 2003년 아들과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 그리고 2005년 남한으로 왔고, 미국 의회에서 북한에 존재하는 지하교인들에 대해 증언했다. 북한복음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하교인들이 살아나야 한다. 이를 알리기 위해 올해 나는 북한순교자비전센터를 세웠다. 북한 복음화 확장 방안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하나님은 이미 평화 통일의 길을 제시해주셨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비전을 품고 그 길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목적은 바로 이를 알리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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