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숙 지역장(구로대교구) -

딸의 사법시험 합격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역경 이겨내는 신앙 알려주고파
이영훈 목사 기도받고 응답 확신

 딸 은비가 2년 반을 준비한 사법시험에 3등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부터 드렸다.  올해 시험은 사법시험 폐지 전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사법시험은 1, 2차로 나뉘는데 나는 2차 시험 전 이영훈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으며 은비가 합격하면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이라면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실 시험을 앞둔 딸에게 내가 해줄수 있는 거라곤 오직 확신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뿐이였다. 나에게 신림동은 두 가지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하나는 은비에 대한 좋은 기억이다. 시험준비 기간 신림동 고시원에서 지낸 딸은 공부 시작 전 꼭 기도하고 주일 시간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공부도 믿음 생활도 알아서 잘하는 대견한 딸의 모습이 생각난다. 또 다른 하나는 가난했던 중·고등학생 시절 내 모습이다.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허리 부상으로 군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 부유했던 우리집은 가세가 기울었다.  거기에 아버지가 친구에게 보증까지 서주며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불우한 가정, 그런 중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구역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긴 어머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 역시 교회 지·구역장으로 섬긴지 벌써 19년이 흘렀다.

 젊은 시절에 나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니 사업장을 맡을 기회가 생겼고 26살 젊은 나이에 차도 생겼다. 그런데 차를 타고 일을 하러 가다가 앞 차와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겪게 됐고 너무 놀란 나머지 몇 초도 안 되는 그 순간에 ‘하나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하나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드렸다. 어머니로부터 보고 배운 신앙이 나에게도 있었기에 그때부터 돈을 좇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열심히 봉사했다.

 그동안 말도 못할 고난들이 많았지만 그 중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내 가난이 시작됐다는 생각에 가슴에 응어리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으셨다. 또 다시 아버지로 인해 내 자신은 물론 아이들까지 돌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 내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5년 넘도록 아버지를 간호했고 병실에서 집에 오면 밤 12시가 넘어 육체와 정신적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친한 언니에게 사기를 당하며 빚까지 떠안게 됐다. 여러 고난으로 상처투성인 나는 교회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고 낙심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을 때 처음으로 나는 하나님께 너무 힘들다고 호소에 가까운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그때 내 마음에 찬송가 429장이 떠올랐다.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엄마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고자 학원을 보내달라는 말도 안하고 묵묵히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아이들. 착한 자녀들이 내 복임을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늘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이해로 바뀌었다. 내가 믿는 사람의 처지가 딱해 돈을 빌려주었듯 아버지 또한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난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지웠고 감사함을 깨우칠 수 있었다. 내가 자녀들을 위해 많은 것은 못해주어도 세상 풍파에 고통당할 때도 감사할 수 있는 이러한 ‘신앙’만큼은 꼭 물려주고 싶다. “얘들아 어떠한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일생을 기도하며 감사로 살아라”   

 
정리=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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