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진성 선교사 (러시아 하바롭스크)

“스노븜 고오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의 첫 시작인 1월 7일 성탄절로 보내  
구제사역 힘쓰며 러시아인들에게 복음 전파  


 각종 캐럴과 성탄 장식들 그리고 연인들의 사랑스런 모습과 화목한 가정의 나들이를 기대하는 연말연시! 내가 사역하는 러시아 역시 연말연시는 커다란 축제이자 간만에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운 날이다.

 처음 러시아에 도착해 맞이한 성탄절에 그러한 습관적 기대를 가지고 성탄절을 준비했다. 성탄 트리도 만들고, 길거리에 넘치는 음악과 인파도 기대했지만 정작 12월 25일이 다 되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질 않았다. 음악도, 넘치는 인파도, 웃음도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고 봤더니 러시아의 성탄절은 1월 7일이란다. 뭐 거기에는 율리우스 달력이네 그레고리 달력이네 하는 식의 설명이 따라오지만 예수님 오신 날이라는데 커다란 차이가 있을까 싶어 그 이후로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고 있다.

 12월 30일경이면 러시아는 연휴에 들어간다. 학교나 관공서가 방학이나 휴일에 들어가고 그 끝은 성탄절인 1월 7일이다. 한 해의 시작을 성탄절로 기념하는 러시아식 성탄절이 나는 왠지 마음에 든다. 들뜬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야 하는 기존의 성탄절보다 차분하게 한 해를 계획하고 시작하는 러시아식 성탄절이 더 뜻 깊다 하겠다.

 ‘러시아’란 말은 ‘러시아인들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하얀 피부에 파란 눈동자들을 가진 북유럽 계통의 백인들이 사는 땅이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1010여 년이 지난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간혹 교회일로 종교부 담당자를 만나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기독교율이 95%에 이르고 너희는 고작 25% 밖에 되지 않은가! 그런데 왜 여기에 와서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 네 민족에게 전하라”는 말이다. 실은 기독교의 문화와 내용 속에 있는 나라와 민족인지라 마치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면이 없지 않다. 어디를 가나 예수 그리스도가 그려진 정교회 성당을 볼 수 있고, 서점에는 기독교 관련 책자들이 버젓이 전시되어 찾는 이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인공위성을 통해 전해지는 2개 채널의 기독교 방송은 24시간 온 세계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와 각종 세미나를 전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어찌 생각하면 ‘선교’라고 하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러시아는 복음화, 선교화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내가 그 속에 자리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저 하늘의 별 빛일까? 아니면 인간적 생각에서 나오는 세상의 불빛과 화려함일까? 오늘도 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 가시도록 의지하고 기도하며 담대히 나아갈 뿐이다.

 하바로프스크 순복음교회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말씀을 그러한가 상고하며(행 17:11), 모여 기도하기에 힘쓰고(행 2:1∼5), 나아가 전도하고(행 1:8) 구제(신 15:10)하기에 온 힘을 다하는 교회이다. 주님의 일이라고 하며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우리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난 행복한 목회자임을 자부한다. 작은 물고기라도 부족한 떡이라도 나누고자 전부를 드리는 모습. 그것이 내가 섬기는 교회와 동고동락하는 러시아 성도들의 모습인 것이다.

 특히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여성 재소자들을 위한 구제사역에 힘을 쏟고 있다. 언젠가부터 교도소에 대한 접근과 전도가 제한되어 사역에 지장을 겪고 있을 때, 우리들은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줄기차게 기도했고(골 4:3), 2년의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은 그 문을 열어주셨다. 100여 명의 재소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어린 자녀를 동반한 재소자들인데 이들을 위해 러시아 여성 교도소는 이러한 여성 재소자의 자녀들을 위한 탁아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보통 5세까지의 아이들을 위주로 출소 시까지 교도소에서 맡아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여성 재소자들을 위해서는 복음과 함께 출소 후 사회 적응과 생업을 위한 작은 도움과 함께, 어린 자녀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해 교도소 방문 시 마다 지원하고 있다. 교도소에 대한 접근과 물품 지원에 대해 상당한 제약을 받긴 하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도에 힘쓰는 성도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이 땅에 있는 존재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한번은 주일 예배를 마쳤는데, 갑자기 교회 뒷동네로 전도를 가자는 것이다. 기타만 가지고 가겠다고 하더니 이것 저것 주워담은 것이 마이크, 신디사이저, 소형앰프 등 제법 구색을 갖췄다. ‘이 정도 장비라면 신고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했다. 주섬 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서는 성도들을 따라 장비를 차에 싣고 함께 뒷동네를 향해 갔다. 다행히도 성도들이 사는 아파트라 1층에 사는 이웃이 전기를 사용하도록 자신의 집 창문을 열고 전기코드에 콘센트를 연결해 주었다 살며시 창문을 닫으며 집 주인이 나에게 “우다치 밤!(행운이 있길 빌어요)”이라는 짧은 위로와 격려를 해 주었다.

 멘트와 함께 찬양이 시작되었다. 손이 시리고 등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아랑곳 하지 않던 건반을 두드리던 레나 집사의 손이 벌겋게 얼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을 부르던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얼마 후 5층에 살던 한 남자가 내려와서는 시끄럽다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경찰이 왔다. 그 남자가 사라진 지 5분도 되지 않던 짧은 순간이었다. 내 뒤에 경찰차는 정차했고, 한 여성 경관이 차에서 내렸다.

“이제 집회허가와 관련된 서류를 보자고 하겠지?”라며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 경관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아마도 우리가 부르던 찬양이 그치길 기다렸던 것 같다. 찬양이 끝나자 조용히 다가와 예상대로 서류를 보여달라고 했다. 우리에겐 당연히 아무런 서류도 없었다. 준비된 집회도 허가를 받은 모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속으로 “성령님 도와주세요”만 반복하며 경관의 질문에 “무엇을 말할 지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다”는 믿음에 답변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우린 아무런 제재도 불이익도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고했던 그 남성을 향해 경관이 나무라더니만 경찰차를 타고 돌아가 버렸다.

 사실 이 상황이 나쁘게 꼬이면 우리 교회는 벌금을 물게 되고 선교사인 나는 심한 경우 경고나 추방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기도 가운데 담대함으로 나가 믿음을 행한 우리들은 성령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교’가 무엇일까? 1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선한 교제’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첫째로는 하나님과의 ‘선한 교제’요, 둘째로는 이웃과의 ‘선한 교제’를 일컫는 말이었음을 알게 됐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것이 선교사와 선교지 교회, 그리고 그곳에서 부르신 주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소명이요 사명인 것이다.

 ‘익숙함’과 ‘별미’라는 신앙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라고 나 개인에게 던지셨던 2011년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지나갔다. 2012년 새해에 주신 새로운 말씀을 향해 또다시 한 발 한 발 내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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