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구 권사(마포1대교구) -

치유의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께 감사

내 삶에 축복을 주시니 소망이 넘치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니 두려움이 없어


 나는 중학교 때 미션스쿨에 입학하면서 처음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다 이웃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심방을 오는 순복음의 빨간 가방을 보고 그 모습이 너무도 좋아 보여 순복음교회를 다니게 됐다.

 나는 손과 발이 차갑고 혈압이 낮아 몸이 약한 편이었다. 어렵게 두 딸을 낳았지만 여전히 남편은 아들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천막뿐이었던 오산리최자실금식기도원에서 열심히 기도를 드리다 성령을 받았고 그 뒤 바라던 아들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25년만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듯 나에게도 그러한 축복을 주셨고 이전에 약했던 몸도 건강해졌다. 이것이 내가 첫 번째 겪은 기적이었다.

 두 번째로 기적은 첫째 딸이 일곱 살 때 그네를 타다가 넘어져 코뼈가 부러진 일이다. 당시 남편은 해외 출장 중이었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는 자책감이 너무 심하게 들었다. 병원에서는 코뼈가 물렁뼈라 잘 붙지도 않을뿐더러 16세까지는 성장기이기 때문에 수술로 붙이면 코가 자라지 않게 된다고 했다.

 딸의 코 옆이 푹 눌린 모습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 뼈를 맞추는 병원을 소개받아 검사를 기다리는데 그 순간 마음에 굉장한 불안감과 떨림이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으나 집에 와서 나는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간절히 기도한 후 재검진을 받으러 대학 병원에 가보니 코가 아물어 있었다. 그때의 기적에 대한 감사함과 기쁨은 정말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2009년 남편의 신장에 이상이 생겼다. 남편은 주기적으로 주 3회 병원 방문을 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남편은 지쳐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너무나도 아팠다. 앰뷸런스만 봐도 내 남편이 실려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내 신장을 기증해 주고 싶었지만 남편과 혈액형이 달라 할 수가 없었다.

 2014년 남편이 5년째 투석할 당시, 나는 우연한 기회로 해외 의료봉사를 가게 됐다. 미얀마로 해외봉사를 갔을 때 거기서 신장 전문의를 만나 의료기술의 발달로 혈액형이 달라도 신장 기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할렐루야!
 수술 후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나와 남편은 건강한 몸으로 잘 지내고 있다. 기도로 아이를 갖게 된 일과 첫째 딸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더 굳게 믿게 된 것과 교회를 다니며 해외 봉사를 가고, 거기에서 신장 전문의를 만나기까지 모든 과정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계획안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자신밖에는 모르던 남편은 나의 신앙생활 모습과 하나님의 치유 능력을 체험하고 변화됐다. 아침마다 남편을 안아주며 삼중축복의 말씀을 해주었더니 자녀들에게 억압적이고 불같은 모습이 인내하고 참는 성품으로 변화되어 가정이 더 행복해졌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삶, 건강한 것만으로도 내 삶이 축복 받은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삶에 평안함이 찾아왔다. 내게 기적을 베풀고 삶에 기쁨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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