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남수 집사(동작대교구)

-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따르니 복 받아

술,담배 중독 시아버지 극진히 모셔 전도해
좋으신 하나님 전하니 마음에 기쁨 넘쳐  
   
 

나를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구원의 열매를 맺고 있다. 나 또한 다른 분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 번 나가겠다는 말을 어길 수 없어 나오게 된 교회에서 성령침례를 받고 그때부터는 교회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됐다.   20여 년 농산물가게를 하며 내가 받은 기적과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다. 나에게는 두 가지 사업 원칙이 있었다. 매달 첫 주 사업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주일은 가게를 쉬는 것이다. 대목이어도 주일은 장사를 하지 않았다. 야채가 시들면 팔 수 없기에 주일을 쉬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걱정보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내 삶에서 작은 부분까지도 보살펴 주셨다. 기도하면 토요일에 뜻밖에 손님이 찾아와 물건을 전부 구입해 갔다. 만약 물건이 다 팔리지 않았더라도 남은 물건으로 불우한 이웃들을 돕고 전도용으로 사용하면 되기에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3년 전 남편이 농산물가게를 내놓을 때 역시 기도하니 40도가 되는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계약이 되는 응답을 받았다.    

 내가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십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따라 시아버지를 잘 봉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0여 년 전 “아버지가 몸이 정상이 아니다. 올해가 마지막 생신일 것 같다”는 시누의 전화를 받게 됐다. 가보니 시아버지의 얼굴이 술 중독으로 벌겋게 올라있었다. 술을 쉬지 않고 마시고 담배를 하루에 6갑씩 피우는 시아버지를 모실 사람이 없어 둘째 아들인 남편이 맡게 됐다. 시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셔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 거동하기 힘들었고 담뱃재로 옷은 물론 집안 곳곳에 구멍을 내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기가 막혀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교회를 가야하니 어쩔 수 없이 모시고 가는데 십자가탑 앞에서 술을 한 병 마셔야 따라오셨다. 내가 명색이 집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는데 시아버지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 부끄러워 힘들었다. 그렇지만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 내 마음에 시아버지를 먼저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님 내 가족 구원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전도 하겠어요. 부모부터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내 부모님도 나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게 되셨고 다른 사람들도 전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아버지 구원도 들어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고집을 부리는 시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맛있는 걸 사드리겠다고 모셔오고 평소에는 좋아하는 곳을 함께 다녔다. 부은 다리를 매일 주물러 드리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시아버지가 변화된 건 한 순간이었다. 몇 년 동안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배 때면 대성전에서 목사님을 향해 삿대질하고 고함을 지르던 시아버지가 어느 날부터는 교회에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시아버지는 그 후로도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시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89세에 소천 했다. 기독교를 멸시하던 시동생도 아버지의 변화에 감동해 하나님이 참 좋으신 분인 것 같다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 나는 곧 시댁 가족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저 나는 좋으신 하나님을 전할 뿐이다. 앞으로도 전도에 힘쓰며 사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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