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대학에서 만난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자취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누군가는 학창 시절 이 문구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원대한 미래를 꿈꾸며 학업에 정진했을 것이다. 이 말은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 삿포로 농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박사(1826∼1886년)가 남긴 말로 유명하다. 그가 말한 ‘야망’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기반 한 비전이다.
 140년이 지난 지금도 홋카이도 대학 곳곳에서는 윌리엄 클라크의 뜻과 발자취를 기리는 기념물들을 볼 수 있다.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흉상 뒤로 ‘클라크 회관’이라는 학생회관이 자리잡고 있고, 교내 이정표마다 클라크 박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정문 옆에 위치한 정보센터 ‘엘름의 숲’에서는 클라크 박사를 캐릭터로 만든 기념품과 서적들을 판매한다.
 클라크 박사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학자이자 농학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기독교 신앙으로 인생을 산 크리스천이었다. 1876년 초대 교장으로 부임할 당시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일행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유난히 큰 짐을 본 장학관이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성경요? 여기선 성경을 가르칠 수 없는데….”
 과거 일본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불허하였으므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클라크 박사는 “그러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당황한 장학관은 강의 시간 이후에 가르치도록 허락했고, 클라크 박사는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에 인생의 꿈이 있다고 가르쳤고 1년이 채 안 되는 사역을 마치고 1877년 귀국했다.
 이 때 고별사에서 클라크 박사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가르침과 헌신에 힘입어 이 학교의 1기 학생들 모두가 크리스천이 됐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의 서약’이라는 각서를 작성한 삿포로 농학교 1기생과 2기생을 중심으로 삿포로밴드라는 신앙 공동체가 탄생했다. 우치무라 간조(2기)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여기서 배출됐다.
 농업학교에서 시작된 홋카이도 대학교는 일본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학으로 성장했으며 현재까지도 농업과 낙농업 분야에서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다. 윌리엄 클라크 박사가 학생들에게 열정을 다해 심어준 신앙과 개척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명언과 함께 남아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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