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성도의 소망. 벧 전1:3~7
우리 모두는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살아야할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오늘 나의 삶이 조금은 고달프고 역경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내일은 나아지리라는 꿈, 바로
잘되리라는 소망을 갖을수 있기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일을 바라보고 살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내일에 대한 소망이란 가진 자나 적게 가진 자나 빈 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란 차원에서 볼 때 명예나 지위 부와 권세 학식과 같은 세상적인 인간의 욕망이나
욕심은 모든 것이 헛된 것 이라고 성경의 전1:2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참소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39:7다윗은 말하기를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역시 본문의 3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산 소망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도의 소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1.이 세상에는 참된 소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명예나 지위 부와 권세를 통해서만이 행복해지기를 추구하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받기를 원하며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가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최고의 권위와 지위에 군림해있던 사람도 어느 날 필부만도 못한 자리에서 수많은 지탄과
원망을 듣는가 하면 평생을 먹고 써도 다 쓸 수 없는 부를 누리면서도 더 만이 갖기를 원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건강도 재산도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뜻하지 않던 사고로 가족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해여 날수 없는 재앙으로 해서 아무리 고뇌한들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 주저 않는 것을 많이도 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롬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릴 찌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이미 얻었는데 눈에 보이는 소망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망을 기다릴 줄 알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상 것에 소망을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의 주어진 세월이 다 마쳐질 때쯤에 가서야 자신의 소망이 헛된 것이 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소망이 인생의 삶에 대한 용기와 가치를 불어넣어준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무가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애서 추구하는 탐욕적인 것들은 그자체가 헛된 것 이므로 이 헛된 것을 바라는 소망 또한
헛된 것 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사람이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라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추구하는 모든 욕망들이 해가 지는 시점에 가서보면 가지고
갈 것 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일생의 온갖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솔로몬왕은 전12:1에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이 늙어 세상 것에 흥미를 잃기 전에 젊었을 때 하나님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것만 추구하다보면 인생의 삶은 조금 윤택해질지 몰라도 영혼은 피 패해 지고
천국의 소망은 점점 멀어져서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2.성도의 참된 소망은 하나님 입니다.
롬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41-2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력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채워주시는 소망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세뿐만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을 주시므로 우리에게 평강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보십시오. 세상이 달라 보이고, 보이는 것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고, 늘 평강과 기쁨이 삶을 채워지게 됩니다.
내세의 약속뿐 아니라 현세의 참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욥의 삶을 보십시오. 소유한 것들이 풍족했던 그의 삶에 사단의역사로해서 모든 것을 일어버리고
몸까지도 병들었음에도‘주신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둔신이도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에 찬 고백을
통해서 지난날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16:11에서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까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우리 죄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복을 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기업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은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 길에 불과한 것 입니다.
짧은 이 세상의 삶에 연연해서 영원한천국의 소망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성도의 소망은 산 소망이다.
사람이 병이 들면 약으로 병을 고치기도 하지만 환자가 나는 나을 수 있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투병생활을 함으로 해서 병을 물리 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병 이란 말이”있듯이 만일 환자가 병으로 인해 자포 자기한다면 그 환자에게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할 찌라도 그의 병은 쉽게 치료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소망은 삶을 지탱케 하고 촉진케 해주는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본문 3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성도의 산 소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산 소망이란 결코 죽거나 희미해지거나 위태로워지는 일이 없이 우리에게 언제나 신선하고 맑게
울려나는 평화와 기쁨과 안위를 가져다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4절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 하늘의 유업은 첫째로 썩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 중 썩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유업만은 썩지 않고 성도의 영원한 산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늘의 유업은 더러워 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낡아지고
더러워지며 인간의 사고까지도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셋째로 하늘의 유업은 쇠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만물은 세월이 흐르면 모두가 쇠하여지지
않는 것이 없는데 아무리 호화찬란한 집도 견고한 성벽도 우리의 인생까지도 시간이 흐르면 쇠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원 여러분!! 이세상의 소망은 결국엔 썩고 더러워지고 쇠하여지는 것들뿐인 것입니다.
다만 하늘의 유업만이 결코 썩거나 더러워지거나 쇠하지 않는 영원한 산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산 소망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하늘의 유업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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