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깨끗하면 삶도 깨끗해 진다               

 

      말이 깨끗하면 삶도 깨끗해 진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저마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마음을 가다듬는 때 누가 다른 사람을 깍아내리는 말에 관심을 두겠는가? 험담은 가장 파괴적인 습관이다. 입을 다물어라 인간과 동물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의사 소통 능력이다. 오직 인간만이 복잡한 사고와 섬세한 감정, 철학적인 개념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귀한 선물을, 사랑을 전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불의를 바로 잡는데 써 왔는가? 아니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멀어지도록 했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좋은 말이 없거든 차라리 침묵을 지켜라. 화제를 돌려라 험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나쁜 마음을 먹고 말하는 쪽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는 쪽이다. 대화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스포츠, 날씨, 경제 등 안전하고 흥미로운 화제로 바꾸어라. 험담이 시작될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면 상대방은 험담을 해도 아무 소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의할 것이다. 믿지마라 법정에서 증인이 해서는 안될 말을 검사가 교묘하게 유도했을 때, 배심원들은 지금 들은 말을 무시하라는 판사의 요청에도 쉽게 그 말을 지우지 못 한다. 그 말은 이미 배심원들의 뇌리에 또렷하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들은 사실을 믿지 않기란 어렵다. 하지만 험담을 들었다면 믿지마라. 험담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용서하는 방법을 개발하라 링컨 대통령은 자기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장관들 때문에 좌절과 분노를 느끼면 그 사람들 앞으로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편지를 쓰곤 했다. 그리고는 편지를 부치기 직전에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 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노와 증오를 극복해라. 충동을 이겨내라 험담하고 싶은 욕망을 이겨 낼 때마다 자기를 칭찬하고 부정적인 말을 꺼내기 전에 자신을 다잡아라. 물론 험담하지 않는다고 박수를 쳐 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올바른 일을 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자, 한 번에 한 마디씩. - 좋은 글 중에서 -



세치 혀의 능력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은 이유도 모른 채
15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지만 나중에
가서야 그 원인이 세치 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고교 때 했던 한 마디 말이
결국 어떤 사람을 죽음에 이르도록 했는데,
주인공은 그 잘못을 알고서
스스로 혀를 잘라 용서를 구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잃어버린 기회(機會)와 시위를 떠난 화살
그리고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말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조상들이 말 한 마디 잘못하므로
후손들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어떤 민족보다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말은 단순하지만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 경험하면서도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부시는 잦은 말실수로 부시즘(Bushism)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난 것처럼,
우리나라 나라님도 취임 이후
사려 깊지 못한 발언으로 백성들은 이젠
그의 말에 노이로제에 걸려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말을 잘 하기에
검사와도 토론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서 정책 수행보다도 말로 정치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잘하는 말들을 조금만 아꼈더라면
권위도 되살리고 설득력도 있었을 텐데
그 세 치 혀가 언제나 화근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이 총리도 거들고주고,
한나라당 대변인도 생각 없이 말해 논란에 빠져있다.
분명 대학 안 나온 국민들은 그녀를
똑똑히 지켜 볼 것이다.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여 잡히곤 한다.
인간도 역시 입 때문에 매일 걸려든다.
그래서 입과 혀는 화와 근심을 불러들이는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와 같다고 명심보감에서
이미 경고한바가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것처럼,
말은 인류의 시작이요 과정이요 심판이 될 것이다.
그만큼 말은 인생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첫째로 말은 능력(能力)이다.

말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능력이 되고 있는 것은,
그것은 의사소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대중사회가 되면서
바르게 의사표시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든 싸움의 근본원인도
잘못된 의사전달에서 비롯되고 있듯이,
바른 의사소통을 통하여 인류의 문화는 더욱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또 의사소통에 따라 인간관계가 맺어지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올바르게 내세울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주적인 인간이 되어
비로소 진정한 인간관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관계,
사랑의 관계를 만들도록 하기 위해 언어를 주신 것이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란 서로간의 의사소통에
따라서 관계가 맺어지게 되는 법이다.


인간관계는 또 사람을 통치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는 수천 억 개의 신경조직이 있지만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언어중추신경이다.

마치 말하고 싶어서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말을 통해
자신을 움직이고 그렇게 세상을 통치하는 것이다.

 

 

둘째로 말은 인격(人格)이다.

‘말’을 늘려 발음하면 마알이 된다고 한다.
‘마알’이란 마음의 알갱이란 뜻인데,
결국 마음의 알갱이들이 나타나는 것이 말이므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지만,
하는 말을 통해서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것이다.

말과 글은 그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능력과 수준을 알 수가 있기에,
우리 조상들도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으로 기준을 삼았던 것이다.


한 샘에서 두 샘물이 나올 수 없듯이,
단물이니까 단물을 내고
쓴물이니까 쓴물을 내듯이
인격에 따라 사람들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잎이 무성할수록 열매가 적다는 말과
물은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는 속담은 일치된다.
잘난 사람일수록 함부로 말하지 않고
말을 아낀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일수록 허풍쟁이들이 많고,
수다를 잘 떠는 사람은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고,
또 험하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단순한 사람이 많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긴 혀로써 금방 알아 볼 수 있지만,
지혜 있는 자는
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여 주고 있다.

 

 

셋째로 말은 인생(人生)이 된다.

‘차 조심해라’는 말보다는
‘오늘도 말조심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이제는 고개가 더 끄덕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처럼
말 한 마디가 운명을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오래 전부터 아셨던 것이다.

바이블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고,
큰 배가 키에 따라 움직이듯이 인생도 말에 따라
방향이 달리한다고 말조심을 교훈하고 있다.


태초부터 말씀이 있었듯이,
사람은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로 사는 존재다.
그러므로 가슴속에 품고 있는 그 한마디 말이
그 사람의 실존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과 운명을 탓하기 전에
먼저 말부터 고쳐야 한다.

사람은 말하는 순간에 이미 자기최면에 빠져
신념화 되어 태도부터 달라지기 때문이다.
태도는 습관을 습관은
결국 인생을 바꾸어 놓게 된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혀의 권세 / 조용기목사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말은 그 배후에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말이 우리의 온몸과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늘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인생이 부정적인 힘에 잡혀버립니다. “나는 못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못산다. 나는 망한다”라고 말하면 그 말의 부정적인 힘에 사로잡혀서 지혜도 나오지 않고 재능도, 용기도 없어져서 그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면 지혜와 총명이 생겨나고 힘과 용기가 솟아나 그 말대로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입술의 말에 묶이고 입술의 말에 사로잡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고, 치료를 받고, 승리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괴적인 말, 부정적인 말, 실패하는 말을 입에 담지 말고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 생산적인 말, 창조적인 말, 축복과 승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악인의 말에는 사람을 해하지만 의인의 말은 사람을 구한다.

사람 몸안에 있는 혀는 세치도 안된다고 하는데 그 혀의 하는 일은 너무나도 크고 놀라운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이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자라고 할만큼 혀의 역할은 크고 신비하다.
혀는 곧 불이라고 했듯이 한번 혀를 통한 말에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람은 말속에 뼈가있다 라고 하시는 어른들의 말을 들을때면 무엇인지 모르는 뜻이 있는 것 같았는데
막상 잠언과 야고보서를 접하면서 사람의 말속에는 그 사람의 속셈이 있고 인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구약에서는 아무리 좋은 생수라도 한번 업질러진 물은 다시 쓸어 담아도 먹지 못하기에
그 물이 주위로 번지지 않도록 둑을 쌓아 밑으로 스며들에 하라는 말도 있는데 역시 말의 위력은 대단하다.

말중에도 검사의 말에는 형이 확정되지 않지만 판사의 말에는 사람이 사형과 형을 살게되는 것도 있다.
누구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말인가에 따라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예수님도 사람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아니하고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고 했다.

사람속에서 나오는 말에는 가시가 있고 속셈이 있어 그 말을 잘못 들으면 상처를 입게된다.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독이 있어 한번 그 독에 상처를 입으면 평생을 두고 한이 되는 말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신 것 같다.

급한 마음으로 쏫아놓는 말에는 가시와 독이 있지만 참아가면서 하는 말에는 독을 치료하는 능력이 된다.
사람의 속셈이 얼굴의 모형따라서도 나타나지만 말보다 더 쉽게 내어놓는 것은 없는 것같다.
우리가 어릴때는 참 부모님들도 고생에 너무 지쳐 자녀들에게도 한이 될만큼 무지한 말을 많이하셨다.

지금부터 나의 혀를 한번 빼놓고 내가 한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시험하고 입을 다스리는 자가 되자.
내속에 분이 있을때와 혈기가 있을때와 미움이 있을때는 말하기 보다 듣는 쪽이 유익하다.
그 말속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침이 있기에 맞으면 여지없이 상처를 입기때문이다.

나의 더러운 인간성이 나도 나를 다스리지 못하면 나의 혀를 통하여 입 박으로 나오면 문제가 시작된다.
입안에 있을때는 별로 큰 문제가 될수 없지만 한번 박에 나오면 바람보다 더 빠른 것이 말의 전달이다.
그래서 나를 다스리는 자의 속셈에는 들으면 마음에 기쁨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 내어놓으면 나의 수치다.

나의 입을 통하여 혀로 말한 것이 거짓말이되었을때 그 거짓말의 위력은 영혼을 죽이는 무서운 독이 있다는 것이다.
말을 만이 하다보면 자기의 인간성과 속셈이 그대로 나타나고 그것으로 내가 도리어 수치를 당한다는 것이다.
별로 좋은 것이 아닌 말에는 순간에 번지고 퍼져 많은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 수가 있다.

검사의 혀는 죄의 구형을 말하여 형벌로 죽이려 하지만 판사의 혀는 때로는 법에의한 살길이 있다.
하나님의 입에 말에는 불이요 검이요 칼이라 하셨다. 이것은 나를 형벌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나의 죄를
멸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할수 있다. 그래서 나의 죄성을 불에 태우고 인간성을 검으로 짜르고
나의 속셈을 칼로 수술하여 내가 나의 생명을 말씀으로 살리는 지혜를 받으라.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성경 말씀에는 독과 형벌과 사랑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말이 비수가 되어 한번 가슴에 박히면 이것은 치료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목사들이 함부로 목사 섬겨야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독을 품어내는 것과 같으니 하지 말자.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여 헌금으로 팔고 축복으로 파는 그 말이 독이되어 가슴에 박히면
그 양들은 독에 미혹되어 목사를 우상 만들고 하나님의 이름부르면서 죽어가는 무지한 자가 되고 만다.
목사의 설교는 성경을 이해시켜 성품에서 건지고 죄성과 인간성에서 건지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

목사가 설교하기전에 먼저 내가 이 적은 혀로 생각나는데로 감정이 있는데로 미움이 있는데로 전한다면
그 모든 성도들은 독화살에 화인 맞은 자의 마음과 양심이 되고 만다.
성도의 무기력함이나 성도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목사로 부터 독침을 맞은 증거다.

이제부터 목사는 성경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 무기력하고 나태하고 무능력한 영혼을 깨우는
광야의 소리가 되어 죄와 사망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건지는 일에 열심을 다 해야 할것이다.
하나님을 부르는 입술이나 예수님을 부르는 입술 그리고 성령의 사건을 말하는 자 들이여 조심합시다.

물은 집수장에서 라인을따라 여과기를 거쳐 가정으로 배달되는 물을 사람이 마시고 일용하게 쓰는데
사람의 말은 여과기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데로 흘러가다가 약한 자의 가슴에는 화가 되고
병든자의 가슴에는 죽음이 되어 평생을 속알이를 하다 죽어야 하는 무서운 독이다.

그 독을 그냥 사용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의 속에서 한번 두번 세번 생명을 살릴수있는 맑고 깨끗한
사랑이 되어 듣는 모든 자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수있는 목사에게 하나님은 양을 막겨주실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강단에서 전하고 선포하는 성경은 듣는자들의 가슴에 독을 죽이고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목사가 진실해야 그 진실한 말이 혀를 타고 심령속에 들어가 생명을 살리게 된다.
또 정직하여 말에 본이 되고 믿고 따라오며 그 말을 믿고 나를 버리는 그 속에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목사의 설교에는 성실함이 있어 무엇이든 지 오래 참고 인내하여 온유와 겸손으로 생명을 살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목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주의 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김종명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7

  선화성결교회 차승환 목사 심방을 다녀오다가 교회 앞에서 목욕탕에 가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보았습니다.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흔히 말하는 목욕 바구니에다 샴푸, 린스 같이 고만고만한 목욕제품 몇 가지와 우유랑 수건까지 담아 편하게 가는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저는 목욕에 관해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십여 년 전 대구에서 개척교회를 섬길 때 일입니다.

어느 모임이 끝난 후 함께 했던 분들과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저보다 연배가 위인 목사님과 장로님들이었습니다.

같이 목욕하는 것이 불편했던 저는 빨리 몸을 씻고 후다닥 탈의실로 나왔습니다. 제일 먼저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장로님 한분이 저보다 앞서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계시더군요.

순간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제 몸을 보시고는 “차목사! 백돼지 같데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결혼할 때는 29인치였던 허리가 아내의 음식 솜씨 덕분에 갈수록 차곡차곡 살이 붙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백돼지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제 몸이 부끄럽고 창피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가족을 제외한 어떤 사람과도 함께 목욕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구에서의 목회를 마감하고 안성에서 부목사로 8년여를 지내면서 효도관광이나 부흥회강사를 모시면서 수 십 번의 목욕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핑계를 삼아 밖에서 기다릴 뿐 함께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전에서도 동료 목회자들과 가끔 축구를 하고 2차로 목욕을 하러 가면 저는 약속을 핑계 삼아 도망쳐 와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목욕탕에서 혼자 목욕을 했습니다.

무심코 던진 장로님의 ‘백돼지’란 말이 내겐 큰 상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축구를 마치고 역시나 혼자 집으로 돌아와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보통은 집에서 좀 떨어진 목욕탕을 이용했었는데 그날은 귀찮기도 하고 월요일 낮이라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남탕 안을 들어가 살펴보니 다행히 모두 모르는 얼굴이었습니다. 안심하고 온탕에 들어가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아~ 좋다’하는 순간 옆에서 누군가 인사를 하는 게 아닙니까.

깜짝 놀라서 보니 부목사님이 목욕을 하러 온 것입니다.

그냥 집에서 씻을 걸!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서둘러 나오는데 부목사님이 “목사님, 꼭 백돼지 같으십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병입니다. 아주 심각한 정신병. 백돼지 같다는 말 한마디에 저는 10여 년째 목욕유목민이 되었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로 인해 목욕탕에 갈 때마다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집에서 먼 곳을 택하게 되었고 혼자서만 목욕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살을 빼면 되겠지만 붙어버린 살들은 그마저도 도무지 떨어지지가 않으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살을 먹으라”고 하셨는데 저도 우리 교인들에게 제 살을 떼어주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언제나 백돼지의 망령(?)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목욕할 수 있을지. 요즘 텔레비전이나 한국영화를 보면 왜 이리 나쁜 말과 욕들이 난무 하는지 아이들과 함께 볼 수가 없습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절반은 욕이 섞여 있습니다.

나쁜 말과 욕을 들으면서 자라는 청소년들이 걱정이 됩니다.

하긴 국민의 대표라는 분들도 국회에서 서로 막욕을 하는 시대이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납니다.

자기가 무심코 내 뱉은 말이 때론 다른 사람에게 비수가 되고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었던 나뭇가지마다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이제 막 피어나는 새싹과 꽃들처럼 우리 혀의 말들이 푸르고 예뻤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혀를 가지면 좋으련만

 

리로이쿠프만이라는 사람이 쓴 "혀를 아름답게 가꾸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분의 책에 보면 아름다운 혀는
 
1) 조용한 혀라고 했습니다.

건설적인 침묵을 지킬 줄 아는 혀라는 말입니다.
건설적인 침묵은 쓸데없는 잡담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더 좋은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주고,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큰 유익을 준다고 했습니다.
 
2) 감사하는 혀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혀는 참된 신앙인으로 만들어주고, 우리의 소원을 가능케 만들어주고,
더 행복하고 즐겁고 나은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했습니다.
 
3) 증거하는 혀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믿음을 open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언제나 예수님을

위하여 말할 준비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신뢰하며 훈련받을 수 있는 혀가 된다고 했습니다.
 
4) 깨끗한 혀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혀는 경외심을 보여주고 모든 거룩한 것, 인격적인 것, 개인적인 것,
중요한 것에 대하여 존경심을 갖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명하고 간결하면서도 다채로운 재능을 청지기로서

잘 관리하게 하며, 깨끗한 혀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증거된다고 했습니다.
 
5) 친절한 혀라고 했습니다.
집(house)을 가정(home)으로 만들어주고, 언어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화평을 도모해 주고, 예수님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증거하는 혀가 된다고 했습니다.



6) 험담하지 않는 혀라고 했습니다.
험담은 도로 주어 담을 수 없는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험담하는 이유는 건전한 자기 신뢰와 자존심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것들을 가지고 마음을 충분히 자극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한가하기 때문이고, 험담하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라 하면서
아름다운 혀는 험담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7) 진실한 혀라고 했습니다.
진실한 혀는 반쯤의 진실(반쯤의 거짓말)을 피하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줄 알고, 결정적인 말을 할 때는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에 대해서도 진실된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의의 거짓말을 주의한다고 했습니다.
 
8) 만족하는 혀라고 했습니다.
만족하는 혀는 아픈 것을 용기와 조용한 힘으로 다스리고, 명백한 불의 앞에

자신을 단련하고,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을 개선해 나간다고 했습니다.
 
9) 소박한 혀라고 했습니다.
소박한 혀는 단순히 "예, 아니요"라고 말하고, 아첨하는 말과 과장된

말을 피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바리새인처럼 장황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세리처럼

소박한 말을 한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혀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야고보 사도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새겨봅니다. (약3;1-10)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번 한 주간만이라도, 아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주신
혀를 가장 아름답게 써 보면 어떨까요?
 

 가장 아름다운 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혀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아름다운 혀가 될 수 있는가하면,
가장 볼품 없고 지저분한 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청지기로 맡겨주신 혀를 가장

아름다운 혀로 만들고, 우리들 자신과 가족들과 성도들과 이웃들에게

작은 행복이라도 선물로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번 도전해 봅시다.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름부어 주시면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잖아요.
그러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도전해 봅시다.


행복을 가꾸어 가는 혀

 

 

 


습관처럼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쿠프만은 남편이 가정에서 침묵하는 원인 중의 하나로
귀찮은 잔소리 바이러스(nag virus)를 꼽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남편이었으나
아내가 끝없이 그의 부족한 점을 나열하는 것을 비롯해서
입고 싶은 옷이나 먹고 싶은 음식에 관한 얘기,
어떤 가수가 어떻고, 탤런트 아무개가 어떻고..등등

도대체가 별로 유익하지 못한 얘기들을 계속하다보면
결국 원망이나 불평 섞인 얘기로 끝을 맺을 때가 대부분이어서
남편은 아내의 얘기보다 더 즐거운 다른 것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내는 볼멘소리로 더욱 불평하게 되겠지요.
남편이 자기의 말하는 것을 듣지 않는다고,
저녁신문만 읽고 스포츠 중계방송만 청취할 뿐
자기가 하는 이야기는 아예 듣지 않는 귀먹은 돌맹이 같다고..

이런 사람의 잔소리에서 아들과 딸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옷 입는 방법, 공부하는 태도, 친구에 관해, 청소하는 생활습관에 관하여
잔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황하게 이어집니다.


어느 십대 소녀는 “나는 백 가지를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듣는 것은 내가 잘못한 몇 가지 일에 관한 것 뿐이다”
라고 어머니의 잔소리에 대해 심한 불평을 털어 놓았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 25:24)

혹시 당신은 남편이나 자녀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잔소리꾼은 아닌지요?
잔소리하는 버릇을 치료하는 방법은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얘기하고 불평하는 대신에 남편의 수고를 칭찬해 주고
잘하는 것을 찾아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좋은 버릇을 먼저 칭찬해 주면
나쁜 버릇을 고쳐 나가도록 격려 하는 것이 됩니다.

늘 긍정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믿음의 아내가 되십시오.
남편의 반찬투정이나 자녀들의 학교생활,
예컨대 선생님이나 숙제에 대해서
상습적으로 불평하는 것도 결코 허용하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불평을 걷어내시고 그 자리에 칭찬과 격려를 두신다면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보금자리로 바뀌어 갈 줄 믿습니다.

-리로이 쿠프만의 “아름다운 혀”-

 


입과 혀의 재앙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은 대문이 닫히지 않는 짐과 같다."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은 대문이 닫히지 않는 집과 같다. 
[유태인 두 사람이 모이면 세 사 람 몫의 의견이 나온다]
는 속담이 있다. 유태인은 호기심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어떤 질문을 하면,
그것은 다시 질문이 되어 돌아오기기 십중 팔구이다.
아무튼 유태인처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 경구는 <탈무드>에 실려 있으며
유태인들의 강한 호기심으로 인해 혼자서는
평생을 걸려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성전이 되어 버렸다.
이 성전은 기원전 500년 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의

연 수만 명의 랍비들이 토의한 과정이나 결과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탈무드>에는 특히 입에 관한 경구가 많이 있다.
'말을 삼가하라',
'비밀은 누설하지 말라',
'상대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라'등등이다.

유럽의 어느 유태인 지역에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막힘없이 쉴새없이 떠들어 대어 상대방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루는 이 사나이가 이웃 마을의 랍비를 찾아갔다.

[우리 마을의 랍비가 당신 욕을 하던데요.]
[천만에! 그럴리가 없소!]
랍비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내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단 말이요.]
남자도 같이 언성을 높이며 말하였다.

[그럴리가 없소,
당신과 이야기를 할 때 그 랍비에게는

말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요.]
이것은 유태인의 유머이다.

 

 


혀로부터 안전지대                     

            

 세상에서 혀만큼 무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이 혀로써 벤허라는 영화에서 배가 불타서 바다에 가라앉듯이 자신이 타고 있는 인생이란 배를 태워 버릴 수도 있고 큰 산불이 울창한 수목을 마구 태우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일생을 태워 버릴 수도 있다(약3)  그래서 하나님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18:21)라고  말씀하신다.

 

 어쩜 우리의 현재의 모습은 자신의 혀 놀림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혀는 하나님의 신경조직과 직결되어 있어서 그 열매로 하나님의 칭찬도 받고 심판도 받게 된다(마12)  실제로 민수기14장에서 가나안을 정탐한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과 그 들의 말에 선동되어 하나님의 언약을 우습게 여기고 낙담하고 저주스런 말을 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조치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혀는 바로 구원의 척도이다.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그 경건은 헛것이라고(약1:26) 선언하시는데 그 이유는 심령이 변화된 사람은 혀도 바뀌게 된다는 이치를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오순절의 성령을 체험한 120문도들에게서 가장 확실한 외적 변화는 말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혀의 뿌리는 생각이기 때문에 생각이 바뀐 사람의 혀는 그 생각을 따라 바뀌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한 혀로 하나님을 찬송했다가 그 혀로 금방 남을 참소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 아니다. 이를 두고 어찌하여 한 샘에서 단물과 짠물이 번갈아 가며 나오겠느냐?(약3)라고 거짓된 경건을 성경은 추궁하는 것이다.  혀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연인의 조건에서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코끼리도 길들여 재주를 부리게 하고, 곰이나 돌고래도 훈련 시켜 사람들의 눈요기 감이 되게 하고, 심지어 악어까지도  길들일 수 있지만 세 치 밖에 안 되는 사람의 혀는 도저히 길들일 자가 없다고 성경은 규정해 버렸다(약3:7-8) 

 

 이 혀는 녹슬지도 않고 피곤하거나 몸살도 안 난다. 밤낮 쉬지도 않는다. 그것도 부족해서 어떤 사람은 잠꼬대를 통해서 자면서 까지 혀를 놀려댄다. 누가 이 혀를 이길 수 있는가?  특별히 거짓을 말하며 아첨하며 마음속에 마음을 숨겨두고 말하는 악인의 혀를 이길 장수는 이 세상에 없다. 이 시대의 물질 문명과 하나님 없는 정신문화에 찌들은 사람들의 혀는 장사의 날카로운 살 곧 영혼을 쿡쿡 찔러대는 독침과 같고 로뎀나무 숯불 곧 광야에 있는 향나무가 불탈 때 나는 소리처럼 톡톡하고 튀어 소란스럽게 하니 화평을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음에도(시120) 이를 말릴 수도 막을 수도 없이 속수 무책이다.
 

 이 혀의불길을 이길 이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아첨하는 혀와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는 혀를 끊고 말겠다(시12:4)고 선언하신다. 이세벨이  싸우기 싫어하는 엘리야에게 말로서 아합왕을 충동하여 끝까지 물고 늘어지더니 죽고 난 다음에는 개밥이 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개밥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지금 빌리지에 사느냐 콘도미니엄에서 사느냐 욕실이나 침대가 고급이냐 저질이냐 따 질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세상의 물결에 휩싸인 혀들의 공격으로 우리의 영혼이 가뭄에 지친 수목의 이파리처럼 누렇게 되어가면서 우리 또한 서로의 형제를 동일한 혀로 해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끼리 혀로 난투극을 벌이는 것을 보고 깔깔대고 있는 마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만약 여전히 거짓과 비방과 참소와 아첨하는 혀가 변하지 않은 신자들이 있다면 이는 둔갑한 광명한 천사와 다를 바 없다(고후11:14)  옛날 어느 괴기 영화에 여우가 여인으로 가장을 했으나 꼬리를 감추지 못해 발각이 나는 것을 보았는데 둔갑한 신자들은 언제나 지나간 뒤에 개운찮은 꼬리의 위력을 남긴다.
화평을 휘젓고 만다.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한다. 전면에서 하는 말은 미끄러질 듯하나 뒤의 꼬리로 사람의 영혼을 헝클어 놓는다.

 그러나 의인의 혀는 예수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시인이 있고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어 은 금 보다 귀하고 사람을 시원케 하는 능력과 치료하는 좋은 약이 된다.  문제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란 점이다(시12:8)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대의 혀들로부터 자신의 자녀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시120:2)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며 이 험악한 세대에서도 영원히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안전지대를 두셨다(시12:5)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진리를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안전지대에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혀를 놀려 댄다면 그 혀는 혀가 아니라 철 수세미일 것이다.



혀의 재갈을 물려라                    

    


나는 주님의 군대입니다.

내 적을 대항하여 최고의 무기는 나의 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총알입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활용하는 저격병입니다.

나는 결코 내 발등에 대고 총을 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의 이웃에게도 총을 쏘지 않겠습니다.

나는 명사수의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데 많은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원수는 결코 나를 비웃지 못할 것입니다.
원수는 훈련된 저격병처럼 나를 두려워합니다.
내가 말하면 귀신들은 숨으려고 달아납니다.
나는 의의 말씀을 다루는데 숙달되어 있습니다(히 5:13).

나는 험담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험담을 말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비방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비방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악한 말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떠나겠습니다.
그들은 내 발을 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총에 맞는 것보다는 ‘무례’하다는 소리를 듣겠습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나의 말은 생명이나 죽음을 가져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혀를 의도적으로 재갈 먹입니다!

나는 목표로 삼은 분야를 말씀으로‘훈련하기 위해서’시간을 투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함으로써 진리를 내 심령 속에 저장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 진리가 나의 심령을 채웁니다!

당신이 말하는 모든 말은 쏜 총알 같으므로 적을 향해 겨누십시오!


(잠4:24) 구부러진(왜곡된)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속이는)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잠5:1~2)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분별력을 간직하고)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잠8: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잠8:6)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나는 옳은 말만 하고, 내 입술로는 바른 말만 한다)
(잠8: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싫어한다).
(잠8: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의로운 것 뿐이며,
거기에는 비뚤어지거나 그릇된 것이 없다)
(잠8: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잠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잠8: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잠10: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잠10:20)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잠10:21)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먹여 살리지만),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미련한 사람은 생각 없이 살다가 죽는다)
(잠10: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주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유하게 되는 것인데, 절대로 근심을 곁들여 주지 않는다.)

(잠12: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악인은 입술을 잘못 놀려 덫에 걸리지만, 의인은 재난에서 벗어난다.)
(잠12:22)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13:3) 입을 지키는 자는(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입을 함부로 여는 사람은 자신을 파멸시킨다).

(잠14: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잠14: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잠16:13)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리라
(잠16:27)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

(잠 18:7) 미련한 사람의 입은 자기를 망하게 만들고, 그 입술은 올무가 되어 자신을 옭아맨다.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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