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보 역사유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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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낸사람:/이영기 2016.03.0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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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보 역사유적

 

(1) 북한국보 1호 평양성 (平壤城)

고구려는 427년 보다 조건이 유리한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고구려의 수도로서는 부족한 점이 있어

고구려는 지난 시기 수도방위의 교훈과 강력하여진 국력에 기초하여

도시 전부를 성벽으로 둘러막은 새 수도용 평양성을 건설하게 되었다

 평양성은 북쪽에 금수산이 솟고, 동, 서, 남 세면에 대동강과

보통강이 둘러막아 해자를 이룬 유리한 지대에 자리잡았다.

그 둘레는 약 16km이다.

평양성은 산성과 평지성의 잇점을 종합하여 고구려 사람들이

창안해낸 평산성형식의 새로운 수도성이었다

 

 

 

 

 

 

 

 

 

 

 

(2) 북한국보 3호 보통문 (普通門)

평양성의 보통문(普通門)은 고구려시대에

처음 세워진 후 조선시대에 와서 고쳐 세워진 성문으로

6세기중엽 고구려가 평양성을 쌓을 때 그 서문으로 처음 세웠다.

지금 있는 건물은1473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평양성 서북쪽 방향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고구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시되었다.

 

 

 

 

 

(3) 북한국보 4호  대동문 (大同門)

대동문은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처음 세워졌다.

947년 중건하였다가 1011년 화재로 파괴된 것을

그후 다시 세웠다가 병자호란 때 또다시 소실되었다.

지금의 문루는 1635년 재건하고 1852년과

그 이후에 보수를 거듭하여 완성한 것이다.

 

 

 

 

 

(4) 북한국보 18호  칠성문(七星門)

칠성문은 북한지정 국보 제18호로,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 위치한다.

6세기 중엽에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문에 처음 세웠다가

1712년 조선시대에 다시 세운 문이다.

이름은 하늘 북쪽에 위치한 북두칠성에서 따 북문이란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이 성문의 문루는 정면 3칸 7.38m, 측면 2칸 4.36m의 단층건물이다.

문루에는 사방 돌아가면서 흘림기둥을 세웠는데 정면 가운데는

무지개문길을 피하여 조금 넓게 잡았다

 

 

 

 

 

(5) 북한국보 8호 대성산성 (大城山城)

대성산성(大城山城)은  평양 대성산(大城山)에 있는

장수왕때의 고구려의 도읍지이다.

이 산성은 5세기초에 왕궁인 안악궁을 방어하기 위해 대동강북쪽에

쌓은 산성으로 성벽 총길이 9,284m, 면적은 2.723㎢로

고구려의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고구려는 427년(장수왕15년)에 국내성에서 이 곳으로 도읍을 옮겼고

586년(평원왕28년)에 장안성으로 천도하였다.

 

 

 

(6) 북한국보 10호 대성산성 남문 (大城山城 南門)

평양시 대성산 남부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성문.

문루는 중층건물로 대성산성을 쌓을 때 세운 문이다.

대성산성고구려의 중요한 군사시설로 이용되었으며

427년(장수왕 15)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부터는

정치적·군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남문의 총높이는 19.5m로,  사격에 이용하는 장벽을 마련하고

거기에 사혈(射穴 : 총구멍)을 만들어놓았다.

 

 

 

 

 

(7) 북한국보 18호  을밀대 (乙密臺)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의 을밀봉에 있는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시기에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로 처음 세워진 누정이다.

을밀대란 '윗미르터(윗밀이언덕)'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여기에 '을밀선인'이 자주 하늘에서 내려와 논데서,

또는 '을밀장군(을지문덕 장군의 아들)'이

이 곳을 지켜 싸운데서 온 이름이라는 전설도 있다.

지금의 누정은 1714년에 축대를 보수하면서 고쳐 지은 것이다

을밀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는 '을밀상춘(을밀대의 봄맞이)'으로

일찍부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아 평양8경의 하나로 일러왔다

 

 

 

 

 

 

 

 

 

 

 

 

 

 

(8) 북한국보 31호  백상루

백상루(百祥樓)는 평안남도안주에 있는고려시대의

건축물로서 관서팔경의 하나다.

 

 

 

 

 

(9) 북한국보 23호 평양종(平壤鐘)

대동문 평양종(大同門平壤鐘)은 조선시대에 제작해 대동문

누각에 달아놓았던 종을 말한다.

 이 종은 1890년대까지 평양시민들에게 비상경보와 시간을

알려 주었으며 현재의 종은 1726년 다시 만든 것으로

높이 3.1m, 직경 1.6m, 무게 13.5t이다.

 

 

 

(10) 북한국보 36호 동명왕릉 (東明王 陵)

제당(전실 높이 10m,제실높이 13m)

이 능은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 무덤을 5세기에 재축조된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1993년에 대대적으로 개건되었다.

부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동명왕(고주몽, 혹은 추모)은

어린 시절부터 무술에 능하고 지략이 출중하였는데,

뜻을 같이 했던 오이, 마리, 협부 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세웠다고 한다.

동명왕은 주변의 소국들을 통합하고 외적들을 물리치면서

1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하고 있다.

 

 

 

 

 

 

 

(11)북한국보 179호 고려태조 왕건릉 (王建陵)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역시 주변에 많은 왕릉들이 있다.

34명의 고려 왕 중 16명의 능(陵)이 개성에 있다.

이 중에서 왕건릉(현릉), 공민왕릉, 명릉군, 칠릉군 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나머지 왕릉들은 휴전선 근처 군사지역, 몽고의 침입을 피해 잠시

수도를 옮긴 강화도 등에 분포해 있다.

고려시대 왕릉은 고구려 능묘 전통을 이어받은 발해와 통일신라 능묘의

전통을 이어받아 계승 발전시켜, 조선시대 왕릉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신혜왕후 류씨가 함께 묻혀 있으며,

현재 국보문화유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다.

 

 

 

 

 

 

 

(12) 북한국보 123호 고려 공민왕릉

고려 31대 공민왕의 현릉과 동쪽에 안장된 공민왕의 왕비 노국공주의

정릉을 합쳐 현·정릉이라고 불린다.

 

 

 

(13)북한국보 18호 함흥 본궁 (咸興 本宮)

함흥본궁(咸興本宮)은 조선의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으로  뒤에 왕이 된 방과(정종)와 방원(芳遠:태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아들인 태조 방원이 보낸 사신들을 죽이거나

가두곤 했는데 '함흥차사'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한국전쟁때 일부 파괴되었으나 여러 차례 보수하여 대부분 복구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정전과 이성계 조상들의 위패를

모셨던 이안전, 누각인 풍패루 등이다.

 

 

 

 

 

풍패루

풍패루(豊沛樓)는 주위환경과 잘 조화된 2층 다락집이다.

풍패루 앞에는 넓은 연못이 있고 연못 속에는 작은 섬 하나를

만들어 놓았으며 주위에는 나무를 심어 그늘이 지게 하였다.

풍패루에서는 못 가운데 활짝 핀 연꽃을 보는 광경이 매우 훌륭하고,

잔잔한 연못 속에 풍패루의 2층 다락 그림자가 담긴 풍경이 아름답다.

 

 

 

 

 

(14) 북한국보 109호 선화당

함흥 선화당은 1416년의 조선시기 건물로 1764년에 재건한

함경도 관찰사(감사)가 행정사무를 보던

지방관청(감영)의 기본건물이다.

조선정부에서는 지방에 대한 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거점으로서

매 도에 관찰사의 행정기관인 감영을 설치하였다.

함흥은 국방상 중요한 고장이었던 까닭에

역대 왕조에서 중요시하였다.

 

 

 

 

 

(15) 북한국보 108호 함흥성 구천각 (咸興城九千閣)

구천각(九千閣)은  옛날 함흥읍성의 북장대(북쪽의 군사지휘소)로

고려시대인 1108뎐에 처음 세웠고 조선시대인 1713년에 고쳐 지었다.

함흥성은 고려 때 북관을 개척하고 설치한 9개의 성 중 하나이다.

구천각은 전시에는 전투지휘처로 평시에는

적을 감시하는 망루(초소)로 이용되었다

 

 

 

(16) 북한국보 124호 개성 남대문 (開城 南大門)

1391년에 착공하여 1394년(태조 3년)에 완공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보수를 했으며, 1900년(광무 4년)에 크게 개수했다.

1950년 한국전쟁때 파괴되어 1954년에 다시 복구하였다.

1393년(태조 2년)에 쌓은 석성(石城)의

정남문으로, 남대문이라고도 한다.

 

 

 

 

 

(17) 북한국보 159호 개성 산죽교 (開城 善竹橋)

선죽교는  개성시에 있는 돌다리이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 갔다가돌아올 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게 피살된 곳이다.

다리 위 돌에 붉은 반점이 정몽주의 피얼룩이라 전하며,

옆에 비각이 있는데 그의 사적을 새긴 비석 2기가 그 안에 있다.

1971년 재북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난간이 없는 다리로 알려졌으나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부가로 설치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본래 이 다리의 이름은 선지교(善地橋)라고 불리었는데

말 그대로 '착한 땅의 다리'라는 뜻. 후일 정몽주가

이 곳에서  살해당한 후 다리 옆에서 참대나무가지가 솟구쳐

나오게 되었다고 하여 선죽(善竹)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정몽주의 혈흔이 남아있다는 낭설이 많아 붉은빛을 띄는 돌로

재건해서 현재는 붉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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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오늘도 사랑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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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에서 선정한 한국 방문시
★꼭 가봐야 할 장소50
 

1위 성산일출봉 (Seongsan Sunrise Peak)

2위 꽃지 해수욕장 (Ggotji Beach)

3위 경남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Darangee Village)

4위 부산 광안대교 (Gwang-An Bridge)

5위 진해 경화역 (Kyeong-Wha Station, Jinhae)

6위 우포늪 (Upo Marsh)

7위 전남 신안 증도 염전 (Jeungdo Salt Farm)

8위 설악산 신선대 공룡능선 (Gongryong Ridge, Seorak Mountain)

9위 울릉도 해안도로 (Uleung Island Seaside Road)

10위 제주도 섭지코지 (Seopjikoji, Jeju Island)

11위 경주 보문정 (Bomun Pavilion, Gyeongju)

12위 우도 (Udo)

13위 합천 해인사 (Haeinsa Temple, Hapcheon)

14위 지리산 천왕봉 (Chunwang Peak, Jiri Mountain)

15위 담양 죽녹원 (Juknokwon, Damyang)

16위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Naganeupseong Folk Village, Suncheon)

17위 경남 진해 여좌천 벚꽃길 (Yeojwa Stream)

18위 보성 녹차밭 (Boseong Green Tea Field)

19위 경주 불국사 (Bulguksa Temple)

20위 대관령 양떼목장 (Daegwallyeong Ranch)

21위 청도 소싸움 축제 (Cheongdo Bull Fighting Festival)

22위 제주도 협재 해수욕장 (Hyeopjae Beach, Jeju Island)

23위 경주 안압지 (Anapji (Anap Pond))

24위 세량제 (Seryang-Je)

25위 광한루 (Kwanghan Pavilion)

26위 섬진강 기차마을 (Seomjin River Train Village)

27위 청산도 (Cheongsando)

28위 한라산 (Halla Mountain)

29위 함양 다락논 (Terraced Fields, Hamyang)

30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Nuri Peace Park)

31위 지리산 뱀사골 실비단폭포 (Silk Fall, Jiri Mountain)

32위 영산강 (Young-san River)

33위 파주 심학산 꽃밭 (Poppy Garden, Simhak Mountain, Paju)

34위 황매산 철쭉축제 (Royal Azalea Festival, Hwangmae Mountain)

35위 여주 신륵사 (Sin-Reuk Temple, Yeo Ju)

36위 대둔산 구름다리 (Daedun Mountain Suspension Bridge)

37위 해운대 해수욕장 (Haeundae Beach)

38위 옥천 용암사 (Yongam Temple)

39위 태백산 설경 (Snow in Taebaek Mountain)

40위 양동 한옥마을 (Yang Dong Traditional Village)

41위 남이섬 (Nami Island)

42위 순천만 (Suncheon Bay)

43위 인제 빙어축제 (Inje Smelts Festival)

44위 울산바위 (Ulsan Rock, Seorak Mountain)

45위 화성 방화수류정 (Bangwhasuryujeong, Suwon Hwa Seong)

46위 무주 남대천 섶다리 (Namdae Stream, Muju)

47위 고창 동림저수지 (Donglim Reservoir, Gochang)

48위 아침고요수목원 (The Garden of Morning Calm)

49위 촉석루 (Chok-suk Pavilion)

50위 삼광사 연등축제 (Samkwang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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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푸른숲과 독일마을 이야기

숲이 사람에게 이로운 점

피톤치드phytoncide

식물 병원균, 해충, 곰팡이 따위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물질
삼림욕 통해 피톤치드 마시면 스트레스 해소되고 장과
 심폐 기능 강화되며 살균 작용 이루어진다.

  










 

 

독일(그 당시 서독)에 파독한 근로자

1963-1977년 까지 7,963명의 광부들은 상당수가

 대학졸업자와 중퇴자 들이 독일에 파견 되었다. 당시 
 봉급은 650-950마르크(원화13-19만원) 국내직장의
 봉급에 비해 몇배에 달한 액수 였다. 광부들은
새벽4시에 일어나 종일 고된 노동일을 하면서
독일맥주 1병과 보리빵으로 한끼를 매우는
근면절약 속에서 독일어 공부와 첨단기술
습득에 힘을 썼다. 지하 1,200m 갱내는
 섭씨35도가 넘는 지열과 석탄가루를 견뎌
 내야하는 광부들의 노력이 대단 하였다.

-- 간호사 --
1963-1977년 까지 11,057명이 파견된 간호사의
 봉급은 평균 800마르크(원화 16만원) 정도 였다.
파독간호사의 언어가 서툴다 하여 처음에는
 시체딲기, 환자목욕, 침대싯트갈기, 화장실청소,
틀니세척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게 되었다.
 간호사들의 총명함과 성실 함이독일
사회에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 ​박정희 대통령 서독 함브른 광산방문 --
파독광부의 역사에서 잊을수없는 순간은 
 1964,12,10일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독일
함브른광산을 방문 하였을때 일어난 일이다.
 광산밴드가 연주하였다.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600여명의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은 이곳을 방문한 박정히 대통령
내외와 함께 깊은 감회에 젖어 눈시울을 적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으로
 시작한 애국가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목부터 목매인 소리로 바뀌 더니 마지막
구절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에 이르자, 아에 흐느낌으로 변해 버렸다.
박대통령 내외도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았다. 현제 독일에서 살고있는 우리동포들의
 주류는 파독한 광부와 간호사 이분들이 정착
하여신랑신부로 만나 살고있는 그분들, 지금은
  2-3세가 되어 아버지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가
 보고 싶어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되었다. 파독
근로자로 떠날 때 대한민국은 자원도 돈도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상태였다.
 UN에 등록된 대한민국은 120개국중 그당시
필립핀 국민소득은 170불, 태국 220불, 이때
우리나라는 76불 이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봉급을 담보삼아 경제개발 자금을 빌려올수
 있어 대한민국 경제개발에 큰힘이 되었다.


독일마을 및 원예예술촌 (경남 남해군)

독일마을의 아름다운 경치

 독일광장 입구의 모습

독일마을 파독 광부. 간호사 정착 1세대 안내문 

독일광장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파독 전시관

전시관 내부를 구경한다 

군대에 있던 동생이 독일 간호사로 간 누님에게 보낸 편지 

누님 먼 이국의 하늘은 무슨 빛을 하고 있습니까? ~~~

간호사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독일로 떠났다 

독일 남편과의 결혼식 사진  

 파독 광부 및 간호사의 영상물

 독일 소세지도 사먹어 본다

전망대에서 본 독일마을 

독일마을 안내도 

독일마을을 둘러 본다 - 앞쪽의 매화나무에 꽃이 한 둘 피기 시작한다  

베를린성 이란 집이다  

크란츠러에서 차나 맥주를 먹을수 있다  

원예예술촌

독일마을 구경을 하고 독일마을 옆에 있는 원예예술

촌을 구경 하였다 원예예술촌은 원예전문가를 중심으로

20여명 원예인(한국손바닥정원연구회 회원)들이 집과

 정원을 개인별 작품으로 조성하여 이룬 마을이다.

원예에술촌의 겨울은 약간 삭막하다. 봄이나 가을에는 아름다울것 같다  

카페 

 연예인 박원숙의 커피 & 스토리 

 연예인 박원숙의 커피 & 스토리 건물

하하바위 

작품 전시실 및 체험실 

온실 식물원 




산노을


유경환 작시

박판길 작곡

신영조 노래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너머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산울림이 외로이 산 넘고 

행여나 또 들릴 듯한 마음 
아아, 산울림이 내 마음 울리네

다가오던 봉우리 물러서고
산 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나무에 가만히 기대보면 

누군가 숨었네
언젠가 꿈속에 와서

내 마음에 던져진 그림잔가
돌아서며 수줍게 눈감고 

가지에 숨어버린 모습
아아, 산울림이 그 모습 더듬네

다가서던 그리움 바람되어
긴 가지만 어둠에 흔들리네


우리나라의 세계 문화유산과 사적

史跡 巡禮 (1)


史跡 1호  慶州 鮑石亭址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이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따서 만들었다.


 


 


 


 史跡 2호  水原 華城


정조 18년(1794)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과학기를 이용하여 실용적으로 쌓았다

효심에서 근본이 되어 당파정치 근절과 왕도정치의 실현,

그리고 국방의 요새로 활용하기 위해 쌓은 화성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史跡 14호  扶餘 陵山里 古墳群


부여 능산리산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 무덤들이다.

무덤은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뒤쪽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 전부터 왕릉으로 알려져 왔던 곳으로

일제시대에 1∼6호 무덤까지 조사되어 내부구조가 자세히 밝혀졌고,

7호 무덤은 1971년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史跡 18호  慶州 臨海殿址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史跡 20호  新羅 武烈王陵


신라 제29대 무열왕(재위 654∼661)의 무덤으로,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있는 5기의 큰 무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무열왕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661년 6월에 죽어,

죽은 왕에게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경사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史跡 21호  김유신 묘


 김유신(595∼673)은 삼국통일에 중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춘추(후에 태종무열왕)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 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660년에 귀족회의의 우두머리인 상대등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668년에는 신라군의 총사령관인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신라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史跡 41호  경주 황오리 고분군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7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10여 기의 무덤이 흩어져 남아 있다.

 


 史跡 73호  수로왕릉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재위 42∼199)의 무덤으로, 납릉이라고 부른다.



 


 



 


 



 


 




史跡 104호 황산 대첩비지


고려 말에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군을 무찌른 사실을 기록한

승전비가 있던 자리이다.

황산대첩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싸움으로,

당시의 승리 사실을 영원히 전하기 위하여

조선 선조 10년(1577)에 대첩비를 세우게 되었다.


 


 



 


史跡 105호  칠백 의총 (충남금산)


 임진왜란(1592)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700명의 병사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다.

조헌(1544∼1592)은 의병장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 예조좌랑, 감찰을 거쳐 보은현감으로 나갔으나,

여러 번 재등용되었는데 사직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1,7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와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였다.

이어 금산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남은 군사 700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그들이 전사한 후 조헌 선생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칠백의총이다.



 


 



 


 史跡 112호  이충무공 묘 (충남 아산시)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무덤이다

 아산군 금성산에 무덤를 만들었다가 16년 후인

광해 6년(161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무덤 앞에는 정조 18년(1794)에 세워진

어제비(御製碑)의 비각이 있다



 


 史跡 114호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완도)


정유재란 때 (1598년)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과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군사들이 힘을 합해 왜군을 물리쳤던 장소이다.


 


 史跡 116호  해미 읍성


해미는 태종 14년(1414)부터 효종 2년(1651)까지 군사의 중심지였는데,

이 성은 세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하여,

성종 22년(1491)에 완성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 1,000여 명을 처형시켰던 곳으로,

김대건 신부도 이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천주교인을 처형한 회화나무와

사형대 등이 남아 있는데,

이 회화나무에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서 고문을 하였으며,

그 흔적으로 지금도 철사줄이 박혀있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성지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유적이다.


 

 


 


 


 


 


 


 


 



 


 


 


史跡 118호  진주성


진주성(晉州城)은 진주시 남성동에서 본성동에 걸쳐 있는 석성으로,

1963년에 사적 제 118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성은 남강(南江)을 끼고, 외성의 둘레를 4km로 쌓고,

내성은 1.7km에 이른다.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지(居烈城址)였으며,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1379년 고려 우왕 5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7차례 중수되었고 주로 왜구를 방어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

 


 


 


 


 


 


 


 


 


 


 


 




관광공사 추천, 테마가 있는 휴가지 35곳

관광공사 추천, 테마가 있는 휴가지 35곳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으면서도 멋진 여름휴가를 즐길 곳이 어디 없나."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한국관광공사에서 그간 비교적 덜 알려진 국내 35곳의 바캉스 명소들과 그 주변지역을 소개하는 `여행 마니아가 추천하는 황금코스`라는 여행책자를 펴냈다.

수도권에서는 원효대사가 지었다는 신륵사가 위치한 여주와 원당, 이천 등지가 추천됐다. 여주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남한강 뱃놀이를 해도 좋고, 불교에 관심이 있다면 목아박물관을 찾아 다양한 불상들을 감상해 볼 수 있다.

강원권에서는 영월과 정선, 횡성이 가볼 만한 곳으로 꼽혔다. 강원도에서 나는 각종 산나물과 토속음식을 맛보려면 정선 5일장을 찾으면 된다. 달력 뒷자리가 2와 7로 끝나는 날 열리는 정선 5일장은 점차 시들어가는 타 지역 재래시장과 달리 활력이 넘친다.

충청권에는 단양과 충주, 청원, 부여, 예산 등지에 빼어난 자연 경관이 많다. 단양에서는 남한강변의 구담봉이 경치가 뛰어나고, 중부권 거석문화를 보여주는 석물군은 어린 학생들에게 산 역사 교육장이 되고 있다.

호남과 경남에서는 구례와 순천, 강진, 안동, 문경 등에 아기자기한 관광지가 산재해 있다. 전남 강진과 해남ㆍ완도는 3일 코스로 여행하기 적합하다.

경남 창녕에 있는 우포늪은 국내 최대 자연늪지로 손꼽힌다. 자연늪이어서 인공호수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한다.

물론 35곳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도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 자연강산이다. 당장 내가 사는 지역이나 고향 주변의 관광지부터 구석구석 찾아가보면 어떨까.



[특별취재팀 = 백순기 기자 / 배한철 기자 / 윤상환 기자 / 김인수 기자 / 신익수 기자 / 현경식 기자 / 서찬동 기자 / 김명수 기자 / 정승환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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