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마음가짐(눅 17:12-16)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눅 17:12-16)

일년 중 가장 축복되고 즐겁고 고마워야 할 추수감사절입니다만 감사절이 오는 때는 겨울 준비에 우리들의 고민이 하나 더 늘어가는 시기와 맞물려 감사와 감격이 없이 맞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부담스러운 연례 행사가 되어 버리는 서글픈 감이 듭니다.
금년은 더더욱 제 2의 IMF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 속에서 맞이하는 감사절을 과연 어떻게 지키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봅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와 그 은혜를 감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는 하나님을 알고 기념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고백하는 감사입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의 정신과 감사하는 생활의 비결을 성경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교회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구원의 은혜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

추수감사절에 관한 것으로 구약 성경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기록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기를 그 토지 소산의 만물을 거두어들인 후 처음 익은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 그것을 여호와의 성소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렇게 아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킴으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신 26:5-9).

이 고백적인 감사 노래의 도식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는 조상이 겪은 역경과 여호와께 부르짖음, 그리고 구원과 가나안 땅으로 정착하도록 인도하심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얻은 열매로 추수감사절을 노래하면서도 추수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여호와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는 고백을 하였을까요. 이는 시편 136편 10-25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추수감사절에 추수한 기쁨에 도취되어 감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구원 역사를 기념하고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하는 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였을 때 추수 시기를 따라 지킨 추수감사절의 이름은 추수와 관계가 없는 유월절, 무교절, 장막절, 혹은 초막절로 불려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신 행사를 기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추수감사절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추수 감사 축제를 즐기고 기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전체의 표현이었습니다.
최근의 감사절은 영국에서 1621년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상륙하여 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어 처음 익은 열매들을 제단에 놓고 눈물의 감사를 드린 것이 그 효시가 된 것입니다.

2.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마음의 감사

추운 초겨울 12월에 플리머스 항구에 102명이 상륙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과 병으로 인하여 절반 이상이 생명을 잃어 버리고, 그 이듬해 봄에 원주민 추장에게 감자와 옥수수 종자를 얻어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들은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답니다. 그것은 물이 가장 필요한 때에 3개월 동안 가뭄이 들어 수확할 수 없는 폐농 직전에 놓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으로 성별한 기도의 날을 정하고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열심히 기도했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사 갈멜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던 기적이 그들에게서도 나타나서 가물었던 땅에 10일간 비가 내려 위기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생명적인 감사]였습니다.

청교도는 본래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형식적이고도 관료적인 신앙에 항거하여 보다더 생명적이고 내면적인 경건한 신앙생활을 살기 위한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12년 동안 본국에서 박해에 견디다 못해 암흑의 대륙이라고 불리던 아메리카 신대륙에 생명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며 대서양을 건넜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앙 제일주의가 그들의 생활 모습이었습니다.

1621년 11월 11일에 체결된 메이플라워 계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할지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신앙의 증진을 위하여 항해를 계속하였노라] 고 선언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든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신대륙에 와서 죽음과 투쟁하며 결실을 얻었으므로 실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는 감사해야 할 일들보다는 슬퍼해야 할 일이 많고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신앙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감사하는 신앙의 정신인 것이며 이러한 정신이 우리들에게 되살아나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감사절은 진정 기쁘고 감사하여 지키는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 헌금은 우리 신앙의 내면적인 은혜를 물질로써 바치는 것이기에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함께 바쳐야 하며, 과부의 엽전 두 개와 같은 헌금이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함께 깨끗해진 열 명의 나환자 중 한 명처럼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것을 본받아 진정한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음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음이 곧 타락이요, 병입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제일 먼저 교회당 건축하고, 다음에 학교 건축하고 물질 이전에 정신적인 내면적인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특별히 일년에 한번씩 한 주일을 정해 감사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은 우리 교회에 주신 은혜, 하나님께서 내 개인과 가정에 주신 은혜를 감사 드립시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평소의 생활이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문안 후에 감사하라 권면이 어떻게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뤼라], [범사에 감사하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 생활 자체가 감사의 생활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감격으로 사무쳤고 그의 하루 생활은, 아니 일생의 생활은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러한 감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모든 것이 다 평안하고 환경이 좋으면 누가 감사하지 않겠는가?]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로 인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3. 가난했던 지난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하반부를 읽어보면 바울의 일생을 간단히 기록한 몇 마디 내용이 있습니다.
몇 번이나 매를 맞고 몇 번이나 감옥에 갔고 몇 번이나 파선을 당하고, 에베소, 고린도, 로마에 가서도 대부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핍박과 환난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언뜻 생각할 때 몸이 건강하거나 가정이 화평하면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몸의 건강이나 가정의 평안에서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독신생활을 하였으며 쉴 만한 집도 없이 살아온 사람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바울 사도는 일생토록 나그네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사는 삶 속에서 평안이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감사하는 생각과 생활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그 깊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을 심령속 깊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사탄에게서 해방을 받은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같이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는 신앙이 있으면 우리도 순경이나 역경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언제든지 감사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닌 줄 압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되니 자연히 그의 생활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선 마음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6:22). 바울이 가는 곳마다 죽은 생명을 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도 주를 위해서 무슨 열매든지 맺는 사람일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으면 열매 맺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이 더 많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우리 매일 매일의 생활과 일생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과 역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같이 우리도 과거 가난하던 때를 기억하며 가진 것이 많은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에 더욱 감사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추수 감사주일 이미지

 

 

 

 

 

 

 

 

 

 

 

 

 

 

 

 

 

 

 

 

 

 

 

 

  

 

 

 

 

 

 

   

 

 

 

 

 

 

 

 

 

 

 

 

 

 

 

 

 

 

 


추수감사절 일러스트 바탕화면 배경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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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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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감사고백


★ 김현서 어린이(유치부)
성경 읽고 병도 낫고 전도 했어요

 저는 여섯 살 김현서입니다. 저는 헌금기도를 할 때마다 봉투에 감사기도를 썼어요. “저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와 우리 가족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를 따라 수요예배와 금요철야예배에 갈 때마다 감사기도를 했어요.
 올해는 이영훈 목사님께서 성경을 읽으라고 하셔서 두살 많은 형과 함께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읽었어요. 원래는 한글을 잘 몰랐는데 성경을 읽다보니 지금은 한글을 잘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난 10월에 아데노바이러스 때문에 눈, 귀, 코, 머리, 배까지 아파서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체온이 40도가 넘어서 입원했는데 많이 힘들 거란 의사선생님 말씀에 겁이 났지만 저는 성경을 읽을 정도로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의사선생님도 저를 보며 신기해 하셨어요.
 입원을 할 때도 제가 읽는 성경을 가지고 가서 읽었어요. 요한계시록을 두 장 쯤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요, 잠자는 내내 땀을 뻘뻘 흘렸대요. 그런데 일어나보니 열이 뚝 떨어졌어요.
 참, 저는 성경을 읽을 때 소리를 내서 읽는데 제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저에게 찾아왔어요.
 저는 그렇게 전도도 하고 성경을 일독하는 동안 병도 나았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 장준호 학생(고3·예제모 큐티스쿨)
예제모 만나 ‘말씀의 축복’ 받았어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 말씀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말씀이다. 수험생인 나는 어려운 고비가 오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문제만 바라보고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올 한 해 제일 감사한 일은 ‘예제모’를 알게 되고 멘티와 동역자들을 얻게 된 사실이다. 예제모 큐티스쿨은 지혜의 보석함이자 꿀 송이 보다 단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나누는 교회학교 동아리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는 나에게 예제모는 말씀의 끈이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었다. 처음 예제모를 알게 된 것은 고3 하계수련회 때이다. 홍보 차 온 예제모 선생님들과 오리엔테이션을 가지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돌이켜보면 하계수련회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변화 받고 싶다’는 기도가 예제모와의 만남으로 응답받은 것 같다.
 말씀 묵상을 하며 사회복지사라는 나의 비전도 확고해졌다. 노인 아동 등 다양한 분야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새롭게 배워가고 도전하는 것이 좋았고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는 사람으로 이웃을 돕고 싶어 기도하면서 얻은 비전이다.
 나는 앞으로 비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물론 예제모에서 교사로서 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 한다.


★ 박정현 · 이세련 성도(카리스선교회)
결혼 준비하며 하나님 은혜 만끽

 

우리는 올해 11월 3일 결혼한 신혼부부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돼 감사하다.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좋으신 하나님을 체험했다. 우리 부부는 공부하는 학생이라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는데 주님께서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예비해주셨다. 내년 겨울에 결혼할 계획을 세우고 지난 9월에 예식장을 알아보러 갔는데 마침 11월 3일에 누군가 취소한 자리가 있어 그날 예식장 사용이 가능했다. 심지어 예식장 무료 대여와 식사 할인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예비하셨음에 감사했다. 주례도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집도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지금까지 살아온 집 중 가장 좋은 집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을 준비하며 다투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진행됐고 과정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평신도 선교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 되기 위해 더욱 기도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살겠다.


★ 이복희 집사(마포2대교구)
주 의지한 아들 공무원시험 ‘합격’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려운 시대, 나 또한 자녀들의 취업을 위해 기도하는 이 땅의 어머니들 중 하나다. 그런데 군 제대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한 아들이 올 가을에 5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으며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올려드린다. 아들은 지난해 처음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2차 시험에서 떨어진 아들은 올해 재도전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길을 인도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릴 때부터 순복음에서 자란 아들은 공무원시험에서 1차 합격 후 2차 시험을 위해 3월에 고시원에 입소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주일예배를 철저히 지켰다. 나는 아들이 고 3때부터 지금까지 빌립보서 4장 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왔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좋은 사람을 보내주셨고 훌륭한 주의 종들의 가르침 속에 신앙이 예쁘게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는 내후년에 임용지가 결정되는데 어디를 가든 하나님이 아들의 길을 인도하시리라 확신한다. 그곳이 주의 진리를 전하는 곳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감사의 은총 /역대상 29:10-17 요한복음 11:39-44 

???내가 만민 중에 오 주께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리 열방중에서 주의 인자는 커서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넓은 궁창에 이르나니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내가 만민 중에 오 주께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리 열방중에서 주의 인자는 커서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넓은 궁창에 이르나니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주의 영광은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10대 학창시절에 똑똑한 친구를 당할 수 없더라. 20대 똑똑한 사람은 예쁜 사람을 당할 수 없더라. 30대-40대 예쁜 사람은 시집 잘 간 사람을 당할 수 없더라. 50대 시집 잘 간 사람도 자식 잘 둔 사람을 당할 수 없더라.
60대-70대 자식 잘 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을 당할 수 없더라. 80대 건강한 사람도 세월을 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당할 수 없더라 감사

겨울에 눈이 오면 어떤 곳은 하루 만에 금방 녹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겨울 내도록 안 녹고 쌓여서 봄이 되어야 녹는 곳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햇볕입니다.
똑 같은 설교  은혜받고  못 받는다. 이유는  마음의  상태다.
눈이  왔다. 눈이  녹은 쪽은 남쪽 눈이  남은 곳은 북쪽이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성공하는 사람들과 실패하는 사람, 갈수록 잘되는 사람과 갈수록 안 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가 뭘까요? 알고 보면 한 가지 해석의 차이라고 합니다.

① 두 사람의 선교사 지망생이 아프리카로 출발하기 위하여 항구로 갔다가 큰 낭패를 당합니다.

자신들이 타고 갈 배가 돌풍에 흔들리다가 화재가 나서 타버려 출발이 불가능해져 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두 사람은 돌아갑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교사 가는 걸 원치 않는가 보다하고 그길로 직장을 구하여 선교사의 꿈을 포기하였습니다.
또 한사람은 달랐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준비하라는 모양이라고 생각 한 것입니다.

② 똑 같은 사건을 만났습니다. 해석의 차이로 갈라집니다.
열두명의 정탐꾼 똑 같은 장소를 봤습니다. 어디서 차이가 나는가? 해석의 차이입니다.

③ 왜 하나님은 12 아들 중에 요셉을 크게 들어 썼을까요?
해석을 잘합니다.
[창세기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1. 다윗의 감사 이유  
역대상 29: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 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다윗은 유다 땅 베들레헴 산골 동네 양치는 목동에 불과한 흙 수저 출신에 불과했습니다.
블레셋 골리앗을 죽이고 사울왕의 사위가 됩니다. 이 때에 승리 이유도 해석의 차이입니다. 보는 시각이 다른 것입니다. 모든 군사들은 두려워서 아무도 항거를 못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내 죽고 나서 승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다윗의 해석을 달랐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더럽히는 자를 내가 가만 둘 수 없다. 너는 칼과 단창을 의지하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 하노라

사울왕이 다윗의 도전을 두려워하여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난 다윗을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습니다.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 때 그의 해석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라면 하나님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하면서 죽이지 않습니다.

왕으로 등극하여 40년을 통치합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감람산을 맨발로 울면서 도망갈 때 시므이가 욕을 합니다. 죽여버립시다.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잘못한 것을 알고 저사람을 시켜서 나를 욕하게 하는 것이라면 받아서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재기할 때 아둘람굴에 4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정예부대도 아니고 군사 훈련도 제대로 안된 사람들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입니다.
[사무엘상 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이들을 어떻게 훈련해서 최고의 정예부대로 만듭니다. 그들과 함께 통일천하를 이루고 최고의 번성국가를 만들어 나갑니다.
다윗이 바쳤던 헌물이 소개 됩니다.
역대상 29: 3-5 5톤 추럭하나다

역대상 마지막 29장은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1. 나같은 죄인을 들어 쓰신 주님께 감사한다.
2. 사람들은 다 나를 버리고 떠나지만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
3. 내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나에게 가장 알맞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심을 감사

실지 다윗은 감사의 조건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손양원 목사님은 1948년 10월21일에 자기의 사랑하는 두 아들이 예수를 끝까지 믿겠다고 함으로써 공산 반란군에 의하여 무참히 총살 당 하여 순교하자, 동년 10월27일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어버이로서 감사한 마음의 답사를 다음과 같이 하셨다.
(그 후 두 아들의 살해범인 ‘안재선’을 양 아들로 삼았으나 후일 손목사님은 6.25 당시 여수를 점령 했던 공산군에 의하여 끌려 가서 순교 당 하셨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가 나왔으니 하나님께 감사.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 어쩌면 이렇게 귀한 보배 사역을 나에게 맡겨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
셋째. 3남 3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자와 차자(次子)를 바치게 하신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
넷째. 두 아들이나 순교 하였으니 하나님께 감사.
다섯째. 누워서 죽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복인데 끝까지 전도하다가 총살로 순교 당했으니 하나님께 감사.
여섯째. 미국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던 두 아들을 미국 보다 더 좋은 천국에 보내주셔서 내 마음을 안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
일곱째. 내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시킨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여덟째.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맺어 질 듯이 믿어지니 하나님께 감사.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속에서도 이상(理想)의 진리(眞理)와 사랑과 신애(信愛)를 찾는 기쁜 마음과 여유 있는 믿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열 번째 나같은 죄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심을 감사 
<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은 중학교 기독학생회 간부로 활동 중 끌려나가 총살 직전 나무에 묶인 채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찬송을 힘차게 부르고 순교 했습니다> 

2. 감사의 방법
역대상 16:7.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8.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9.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10.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11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12. -13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

네 가지입니다.
① 알 릴지어다
② 전 할지어다
③ 자랑하라
④ 즐거워하라

앞에 있는 16장은 감사를 어떻게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해드리는 것일까?
마음 옛날 애인 잘 사는거 같으면 배가아파고, 못살면 가슴 아프고 같이 사는 사람이 힘들면 머리가 아프다
상어는 부래가 없다 그냥 가만히 뜨 있을수가 없다 밤낮 헤엄쳐야 한다. 자는동안에도 지느러미후들어야 뜬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야한다 가장 빠르고 멀리 간다 부래가 없는것 원망하지 마라 힘있게하는거 감사 하라

김동길 선생님 글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8년 동안 흉년이 와서 다 굶어 죽을 것이다.”하니 노비 하나가 “나는 관계없습니다. 8년 흉년이 아니라 10년 흉년이 와도 끄떡없습니다.”라며 돌아다니더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는데 그 사람만 문제없다고 자신하고 다니더랍니다. 그래서 왕이 불러다가 “앞으로 8년 동안 흉년이 온다는데 무엇을 믿고 그렇게 자신하고 다니는가?”하문하니 “폐하, 걱정할 일 하나 없습니다. 저는 흉년 첫 해 굶어 죽을 것이니 8년이든 10년이 계속되든 무슨 상관있습니까? 100년 흉년이 와도 아무 상관없습니다.”라는 대꾸에 “너같이 배장 있는 자가 내 밑에 있어야 되는 건데.”라며 끄덕였답니다.

슈바이처 가 아프리카 선교사 간 이유
박관태 선교사 몽골 아가페기독병원
군대 복무 중 성령강림주일 휴가를 집에서 보낼 때에 "나는 이렇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휴가를 보내는데, 이러한 행복을 나만 누려도 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나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라는 인식으로 성숙한 것이었다.
슈바이처의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에 따르면, 그는 21세 때 '30세까지는 학문과 예술 속에서 살고, 그 후부터는 인류에의 직접 봉사 활동으로 들어가자'는 결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의학을 공부하여, 30세 되던 해인 1905년 의학과정에 진학했다.
1913년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흑인을 위한 의료 사업에 평생을 바치기 위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현재 가봉 공화국)의 랑바레네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통역은 백인 선교사들과 동역하여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흑인 간호조무사 누쳉이 해주었으며, 병원 건물은 선교사가 사용했던 닭장을 수리하여 사용했다. 그는 저술과 강연, 연주, 레코드 등에 의한 수입으로 병원을 자력으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자금이 부족하여 병원 운영이 어렵게 되자, 병원의 기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돌아왔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알자스 지방은 당시 프랑스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1917년 프랑스 포로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상처는 어머니가 1916년 프랑스 군인들의 군마(軍馬)에 치여 죽은 사건이었다.[10]
그 후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자 슈바이처의 고향은 프랑스 영토가 되었고, 이에 따라 그는 프랑스 국적을 선택할 수 있었다. 슈바이처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가봉에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국적을 독일에서 프랑스로 바꿨다. 그 후 6년간 유럽 각지로 돌아다니며 강연과 파이프오르간 연주로써 모금을 한 다음 다시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갔으나, 병원은 부서져 뼈대만 남아 있었다. 다행히 여러 곳에서 후원금이 들어와 병원은 곧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당시 유럽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복구를 하던 때였기 때문에, 후원자들의 처지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민중들을 위해 기꺼이 후원한 것이었다.(의료선교 이야기인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참조) 그를 돕기 위하여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곳으로 자원하여 왔다. 그는 한센병 환자 거주지도 추가로 세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의료시설도 만들었다. 그의 이러한 활발한 활동은 36명의 백인 의사, 간호사 그리고 다수의 원주민 직원들의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병원운영에 필요한 돈은 3년에 한 번 꼴로 유럽으로 돌아와 연주회를 열어 번 돈과 저서의 인세, 강연으로 받은 돈과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 1957년 라디오 강연과 신문 기고를 통해 핵무기에 반대하는 반핵운동을 하였으며, 1965년 랑바레네에서 그가 사랑하는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9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짐승만도 못한 나를 건져주시고 세워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추수감사절 대표기도문                

                     

      추수감사절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과 존귀와 찬송드립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빛과 광명을 두시고 때에 따라 단비를 내리시는 하나님 ! 이땅을 만드신 후, 황무지로 두지 아니하시고 각종 곡식과 채소를 있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영원무궁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올해에도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하늘과 땅의 만나로 영육을 살찌우게 하신 하나님 ! 감사로 예배드리는 이 시간, 몸과 마음과 물질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도우시고 지켜 주신 하나님 아버지 ! 목마른 자들을 불러모아 값도 없이 물을 주시고, 먹을 것이 없는 자들도 불러모아 돈 없이 양식을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구원의 소식을 만방에 전할 주님의 제자가 되기 원하오니 크나큰 평화를 이 땅에 심게 하옵소서. 마지막 때에 추수할 일군을 부르시는 하나님! 곡식 단만 추수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택하신 알곡 신자들을 추수해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일꾼으로 우리들을 세워 주옵소서. 세상 광풍에 시달려 고생하다가도 주님의 위로하심으로 믿음의 길을 힘겹게 걸어가는 우리들이오니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아멘으로 화답하는 심령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영원한 사랑으로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 주의 전을 사모하면서도 병석에 누워 있는 자들을 기억하시사, 치료의 광선을 비춰주옵소서. 속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영광된 삶으로 변화시켜 주옵시고 마음의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흑암의 세력을 끊을 수 있는 믿음주시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기쁨이 넘치는 가정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나가 수고하는 젊은이들을 지키시고, 대학입시 준비로 인하여 지쳐 있는 학생들에게 용기와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고 수능시험에도 함께하셔서 공부한 모든 것들이 기억나고 생각나게 하시고 좋은 결과 있기를 기를 기도하며 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 허락하신 풍요로움으로 가난한 이웃들과 모든 것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허락 하옵소서. 예배후의 교회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행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들의 이웃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인도 하시고 처음나온이 들에게도 축복하시고 은혜 베풀어주셔서 기도하는 중에 계획하게 하시고 기도하는 중에 진행하게 하시고 기도하는 중에 오늘처음 새로나온 형제자매의 마음을 열여주시며 새 생명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전도의 열매를 주셔서 주님께서 자녀로 삼아 주시옵소서. 이 예배가 성삼위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참예한 우리들에게는 은혜의 시간이 됨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홀로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추수감사절/ 감사하신 하나님 /신명기 16:13-17



구약시대에 지켰던 절기가 많은데 그 중에 3대 절기가 있습니다.
먼저는 유월절입니다.
무교절이라고도 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무교절 안에 유월절이 하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은 히브리 민족의 절기 중에서 가장 큰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참자유와 구원을 얻은 날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통해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은 신앙인들의
구원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유월절에는 어린양을 잡았는데 그 어린양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고전 5:7에 보면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의 3대 절기 중 두 번째 절기는 칠칠절입니다.
오순절 혹은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은 보리추수를 하고 첫 수확에 대해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들은 7월 첫 주일을 맥추감사절로 지킵니다.
전반기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3대 절기 중 마지막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장막절 혹은 수전절이라고도 합니다.
초막절은 추수한 곡식과 포도주에 대해 감사드리는 절기였습니다.
한 해의 추수를 모두 끝내고 드리는 감사절기로 여기서 추수감사절이
유래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교회사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청교도들이 지킨
감사절기와 관련이 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럽이 들끓던 16세기 중반, 영국에서도 헨리 8세라는 강력한 군주가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이끌고 갈 목적으로 수장령을 발표하고 영국 국교회를 창시하게 됩니다. 이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성경 말씀대로 경건하게 생활하려는 입장을 취하였으니 이들이 청교도들입니다.
청교도들은 박해를 견디다 못해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갔습니다. 11년간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했으나 무척 고된 생활이었고 그곳에서도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7년 동안 힘들여 일을 해서 스피드웰(speed well)이란 이름을 가진 그 배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배는 장기간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다른 배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배가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호입니다.
102명의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80톤의 작은 목선인 메이풀라워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때가 1620년 9월 16일입니다. 
  

 

 

그들이 그때 항해한 거리는 대략 3,400킬로미터였고, 항해 기간은 65일이었습니다. 너무나 힘든 여행이었기에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죽었습니다.
힘들게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그곳 생활도 생각처럼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1620년 11월 9일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그들은 플리머드라는 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거기서 1년을 개척하며 보냈던 시간은 악몽과도 같이 힘들고 어려웠던 세월이었습니다.
낮에는 원주민인 인디언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고, 밤에는 사나운 맹수 때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추위와도 계속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 년 후에는 처음 출발했던 102명 중에서 53명이 죽고 겨우 49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나무를 베어 교회부터 지었습니다. 그간 약 반수가 사망하였는데도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른 때가 많았습니다. 만약 인디언에게 사람 수가 적어지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인디언과 화친을 맺고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옥수수와 호박 등을 처음 수확하였을 때에 그 고마움을 기념하기 위하여 1621년 10월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바치며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친절한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 고기 등을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 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추수감사절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미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1941년에 미국 의회는 대통령과의 합의 아래 11월 네 번째 토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이날을 휴일로 공포하였습니다. 그 후 루스벨트에 의해 11월 셋째 목요일이 추수감사절로 공포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처음 들어오던 때를 기념해서 11월 셋 째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그런데 요즘은 11월 셋 째 주일은 추수와 시기가 맞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시기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 교회는 추석이 낀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1월 첫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니 우리들에게는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절이 되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 중에 몇 가지만 감동을 따라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필요를 채워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 동안 필요를 채워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많은 돈이든 적은 돈이든 하나님이 주셔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한 푼의 돈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욥의 고백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어떤 사람은 ‘내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돈을 번 것이지 하나님이 주시긴 뭘 주셨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청지기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2. 감사한 일로 감사합시다.
사람들은 감사에 인색합니다. 어느 마을 입구에 큰 호두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두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 끝에, 몇 년 후 많은 호두알을 주렁주렁 맺게 되었습니다. 호두나무는 속으로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드디어 열매가 무르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돌멩이를 집어 호두나무를 향하여 마구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호두열매가 와르르 떨어져 내렸습니다. 어느 날은 꼬마들이 긴 장대를 가지고 왔고, 또 어떤 때는 어른들이 몰려와 나무가 상하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고 돌멩이를 던져댔습니다. 몇 날 며칠을 이렇게 지낸 호두나무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가지도 여기저기 부러져 나갔습니다. 돌에 맞은 자리가 몹시도 아팠습니다. 나무는 자기의 찢긴 상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아! 나는 사람들에게 열매를 주려고 오랜 세월을 애쓰며 기다렸는데, 사람들은 정말 은혜를 모르는구나.”
여러분! 감사한 일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당연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3. 신앙생활로 인하여 감사합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 되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복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서 받는 복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큰 복은 뭐니 뭐니 해도 죄사함의 복 즉 구원의 복입니다.
중국 사천성 지진의 최대 피해지 북천시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을 때 일이라고 합니다.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 더미 속에서 한 여성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이 여성은 엎드려 있었는데 포대기에 100일된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급하게 아이를 꺼내 보니까 다행히 아이는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죽어가는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온 몸으로 아이를 지켜낸 것입니다. 서둘러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던 의료진이 포대기 안에서 핸드폰을 발견했습니다. 그 핸드폰 화면에 한 줄의 문자 메시지가 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보배야 만약 네가 살아남으면 꼭 기억해 다오. 내가 널 사랑했다고...” 이 메시지가 매스컴을 통해 중국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습니다. 모두가 감동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식을 지켜낸 모정이 그들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한 여인의 자녀를 위한 희생 보다 더 큰 희생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 없으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원 받은 신자들은 이 땅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롬 8:14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우리들의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가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부인과 가족을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존 번연은 고마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가다가 되돌아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옥사장에게 “호의는 고맙지만 성령이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에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이 갇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후 간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제가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셔도 좋습니다.” 만약 존 번연 목사님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다면 옥사장과 목사님은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순간순간 어려움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이 영원한 천국에 갈 때까지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맬 때에도 성령님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너무나 잘 아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어느 큰 부자가 먼 곳에서 며느리를 데려오기 위하여 많은 선물을 준비하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서 사막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길을 찾아보았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사막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미 물은 떨어졌고 사람들은 목이 말라서 아우성을 칩니다. 그 때 나이 많은 종이 부자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사슴을 풀어주세요. 그러면 사슴이 물이 있는 곳을 찾아갈 것입니다.” 부자는 나이 많은 종의 말대로 선물로 가져온 사슴을 풀어주었습니다. 풀려난 사슴은 쏜살 같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이 있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사람들은 달리는 사슴의 뒤를 따라가서 물을 찾게 되어서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사슴이 사람들을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 것처럼 성령님은 믿는 자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4. 문제와 고난도 감사합시다.
영국의 ‘매튜 핸리’라고 하는 목사님이 하루는 돈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는데, 그 날 그는 자기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한 번도 소매치기 당한 적이 없었기에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 소매치기는 내 지갑을 훔쳐 갔지만 내 생명은 훔쳐가지 못했으니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 설령 내게 모든 것을 털어 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니 감사하다. 또한 내가 도둑질한 것이 아니라 내가 도둑을 맞은 것이 감사하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나고 고난 속에 들어가도 감사한다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문제와 고난에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문제와 고난은 기도응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도 수많은 문제를 만나고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당했던 문제와 고난은 그들을 망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문제와 고난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기도 응답을 체험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위협했습니다. 산헤립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인 것처럼 말을 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히스기야를 조롱했습니다. 산헤립의 군대는 강하고 히스기야의 군대는 약하기에 히스기야가 패하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산헤립의 군대를 이길 수 없는 히스기야는 문제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에게 기도부탁을 하고 자기는 성전으로 올라가서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펼쳐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천사로 하여금 앗수르 군대를 치게 하셨습니다. 천사는 앗수르 군대를 쳐서 하룻 밤 사이에 18만 5천이나 되는 군대를 멸망시켰습니다. 히스기야가 당했던 문제와 고난은 오히려 기도응답을 누리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2) 문제와 고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롬 8:28 말씀을 좋아하고 그 말씀으로 신앙고백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났던 문제와 고난이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룬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 예 중에 하나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사탄은 주님을 죽인다고 죽였지만 주님은 부활하셔서 사망권세를 깨드리셨고 또 마귀 권세를 박살내셨습니다. 마귀는 죽이려고 했으나 그 사건이 오히려 인류구원의 단초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요셉의 고난입니다.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갑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종살이와 옥살이를 13년 동안 했습니다. 우리가 짧은 시각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면 요셉의 그 모습은 저주입니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그 어려움이 총리의 자리로 올라가는 과정이고, 많은 사람들을 흉년에서 구원해내는 과정이고, 축복의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옥살이와 종살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미국의 신시내티에 있는 포록터 갬블 비누회사를 설립한 할레이 프록터라는 사람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한번은 직원이 비누 만드는 기계를 규정된 시간보다 더 오래 가동시키는 바람에 비누가 잘못 만들어졌습니다. 물에 비누가 둥둥 뜨는 것입니다. 수 천 개의 비누가 버려지게 생겼습니다. 프록터는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묵상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언뜻 머릿속에 목욕탕에서 물에 뜨는 비누가 훨씬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났습니다. 그래서 이 엉뚱하게 만들어진 비누에 ‘아이보리’라는 이름을 붙여서 시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비누는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프록터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프록터에게 문제와 고난은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문제와 고난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3) 문제와 고난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작은 예수로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신앙생활은 이 과정인 것입니다. 내가 어떤 축복을 받느냐 어떤 큰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느냐입니다.
엡 4:13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닮아서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을 닮아서 전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문제와 고난은 우리를 주님 닮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마치 정과 망치를 들고 바위를 깨서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야곱은 많은 문제와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남보다 더 많은 문제와 고난을 당한 이유는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데도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인생 중에 급격하게 변화를 경험한 사건이 창 32장에 나옵니다. 외삼촌의 집에서 20년간 종살이를 하던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20년 전에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 에서가 이번에도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야곱은 큰 문제를 만난 것입니다. 두려운 야곱은 얍복강에서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천사를 만나고 천사와 씨름하듯이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창 32장에서 야곱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야곱이 그 사건을 통해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고난이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문제와 고난은 우리에게 저주라기보다는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문제와 고난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와 고난 중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에 대해서 말합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절기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즐겁게 지켜야 합니다. 14절과 15절에 보면 즐겁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즐겁게 추수감사절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지켜야 합니다. 16절을 보니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라고 말씀합니다. 신약적인 적용으로는 절기는 본교회에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비전교회 지체로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비전교회에서 지키기를 바랍니다. 이상하게 절기 때면 예배에 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절기 때는 다른 때보다 더욱 본 교회에서 지켜야 합니다.
셋째, 빈손으로 지키면 안 됩니다. 16절에 보니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감사의 제물이 필요합니다. 17절에 보면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풍속에 의하면 왕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예물을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갖고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가 가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고마워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말로만...”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상대를 음식점으로 데리고 가서 식사 대접을 하거나 아니면 정성스런 선물을 주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정성스러운 예물이 필요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제물이 동반되었습니다. 부자는 소를, 보통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를 드렸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추수감사절은 1년에 1번 있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많은 재물을 드릴 수는 없어도 소나 양과 염소 그리고 비둘기 정도의 예물은 드려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몇 가지 감사한 일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필요를 채워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감사한 일로 감사합시다. 신앙생활 하게 된 것으로 인하여 감사합시다. 구원 받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니 감사합니다. 문제와 고난도 감사합시다. 왜냐하면 문제와 고난은 기도응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문제와 고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며, 문제와 고난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추수 감사절 스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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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 감사절 스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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