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실화 글 ,,,

내 삶......

가도 가도 상처뿐인 삶이었다.
여러 번 남자의 무력에 무참히 몸을 빼앗겼고
여러 번 사랑으로 심하게 다쳐
죽을 고비를 넘겼기에
더 이상은 무엇도 바라지 말자고
행복을 꿈꿀 수조차 없도록
술을 따르고 몸을 팔며
극한의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 삶이었다.

그런 내 삶 속에 들어와
눈부신 곳으로 끌어내 준 그 사람
내 상처뿐인 과거까지도
사랑하고 보듬어준 그 사람
마음이 아름다운 그는
과거 또한 어찌 그리 아름다울 수있는지...

그는 한 여자와 사랑하다가
떠나는 그녀를 보내주고 난 후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다렸다 했다.
하지만 나를 만났으니
이젠 그녀를 잊을거라 했다.

그렇게...
과거에 묻혀 살던 서로의 삶을 위로하며
그와 나......

정말 많이 사랑했다
그와 나......

정말 많이 행복했다
다시없을 사랑이었고

다시없을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랑도 행복도
그를 붙잡기엔 한없이 부족했음을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만난 지 한 해가 지나

우린 결혼을 약속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 주겠다며
그는 좀 무리해서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맞춰 주었고
매일 밤 난 그 드레스를 입고 거울에 비춰보며
그의 신부가 된다는 떨리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불과 한 달 전...

난 우리 사랑,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로 만들어진 우리 아기가
내 뱃속에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너무 나도
벅찬 기쁨을 느끼며
단숨에 그의 회사 앞으로 달려갔다
정작 그에게 말하려고 하니 부끄러워
수줍은 웃음으로 망설이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귓가에서 맴돌고 있다

한 순간에 우리의 운명을 바꿔 놓은
그의 핸드폰 벨소리...
그리고 전화하는 동안 심하게 떨리던
그의 목소리...
마지막으로......
나를 혼자 놔두고 급히 달려나갔던
그의 발자국 소리까지...

영원히 잊지 못할 그 소리들만으로도
나는 그녀가......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 묻혀 있던 그녀가
그에게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며칠 후 그가 전화했다
미안하다...

널 정말 사랑했고,
그래서 옛사랑 다 지워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그 애 목소리를 듣는 순간 넌 보이지 않았어

우리 다시 만나기로 했다...
결혼은...

없었던 걸로 해야할 거 같다......
.....

보내줄께요...

이해해요...
사람은 누구나 더 행복해지길 원하니까...
그 행복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거니! 까...
그러니 제게 미안해할 건 없어요

근데 우리 운명은 신기하도록 닮아 있나봐요

저에게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거든요...
우리 아기, 우리 아기가 있거든요...

결혼식 날...

우리가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던 그 날
그와 나는 함께 결혼식장에 서 있었다
꿈에 그려왔던 멋지고 듬직한 신랑
그 옆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신부
그리고...

그 사람이 보면 당황할까봐
멀리 사람들 틈에 숨어 축복해주는 나...

그를 보낸 후 쉴새없이 울기만 해서
눈물대신 핏방울이 흐를 듯 쓰라린 눈에
환한 그의 웃음이 보였다
내가 신부였음...
그이 저보다 훨씬 밝게 웃었을 거라고
애써 날 위로하며 눈물을 참았다

잠시 감았던 눈을 뜨니
자신의 자리였다는 듯 자연스럽게
신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나의 그를 빼앗은 나쁜 여자인데
미워하고 싶은 만큼 미워해도 될텐데
하나도 밉지 않고 예쁘기만 했다

내가 신부였음...
저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웠을 거라고
또 한번 날 위로하며 눈물을 참았다...
결혼식에서 마지막 그의 모습을 본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어제......
그는 존재조차 모르는 불쌍한 우리 아기가...
그이가 그토록 바랬던 예쁜 딸아이가...
연약한 몸으로 태어나 몇달도 채 못살고
인큐베이터 안에서 싸늘히 식어버렸다...

우리가 같이 사랑해서 얻은 생명을
우리가 같이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그는 내 가슴속에서 날 아프게 했고
난 엄마인 나도 견딜 수 없던 그 아픔이
우리 아기까지 희생시키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그래서 건강한 울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사랑하는 아가...
엄마한테 대신 울어달라고 울지 않았던 거였구나
잘했어, 아가야...

얼마든지 울어주마
건강히 살아있다면 평생 흘렸을 니 눈물 모아
한 방울 남김없이 엄마가 다 흘려주마...
그러니 우리 아가...
제발...

엄마 없는 하늘에서도 울지 말고
환히 웃어주렴...
무서워도! 심심해도 조금만 기다려주렴...
엄마도 곧 따라가서 우리 예쁜아가 돌봐줄 테니까...

사랑하는 당신...
이 글을 쓰고 나서 저는 세상을 떠나려해요
당신의 신부로서 입지 못해 슬픈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훨훨...

하늘로 날아 오르려 해요
이렇게 죽는 저를 바보 같다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불쌍하다고 저를 동정하며 슬퍼하지도 말아주세요
제겐 목숨보다 소중했던 당신과의 사랑...
그 사랑을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너무나도 행복한 죽음인걸요

세상에서는 너무 멀리로 잃어져버린 당신이라
다가갈 수도 없는 사랑이지만
하늘에서는 우리의 사랑이
천사 같은 미소로 엄마를 반겨 주겠지요...
살면서 잃어버리기만 했던 사랑,
죽은 후엔 영원한 사랑으로 지켜낼께요
당신도...

언젠간 하늘에 오르게 되겠지요

혹시라도......
어리석은 부탁인거 알지만...
그땐 저와 우리 아기 곁에 머물러 주실 수 없을까요...
아니,우리 아기 한 번만이라도 안아주실 수 없을까요...
사랑하는 당신...!

모르시겠죠...?
지금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께서 주셨던 행복의 여운으로
아직까지 저는 이토록 행복하기만 해요
죽음도 두려움 없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으니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안녕히..
부디 당신도 행복하시길...



어느 며느리의 심경 고백

신랑이 늦둥이라
저와 나이차가 50 년 넘게 나시는 어머님..
저 시집오고 5 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혼자 4 년간 똥오줌 받아내고,잘 씻지도 못하고,
딸내미 얼굴도 못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 년간 남편품에 단 한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누실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힘들다고,
평생 이짓 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때 집나가서 소식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 하던 오빠..
그밑에서 매일 맞고..울며 자란 저를
무슨 공주님인줄 착각하는 신랑과
신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 글썽이며 한시라도 빨리 데려오고 싶다고
2천만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어디 나라에서는 남의집 귀한딸 데리고 올때
소팔고 집팔아 지참금 주고 데려 온다는데
부족하지만 받으라고...


 
그돈으로 하고싶은 혼수,
사고싶은거 사서 시집오라 하셨던 어머님...
부모 정 모르고 큰 저는 그런 어머님께 반해,
신랑이 독립해 살고있던 아파트 일부러 처분하고
어머님댁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었습니다.

신랑 10살도 되기 전에 과부 되어,
자식 다섯을 키우시면서도 평생을 자식들에게조차
언성 한번 높이신 적이 없다는 어머님...
50 넘은 아주버님께서
평생 어머니 화내시는걸 본적이 없다 하시네요.



바쁜 명절날 돕진 못할망정
튀김 위에 설탕병을 깨트려 튀김도 다 망치고
병도 깬 저에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아무소리 말고 있거라" 하시고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당신이 손에 힘이 없어 놓쳤다고 하시던 어머님...

단거 몸에 안좋다고 초콜렛 쩝쩝 먹고있는
제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나갔다 들어오실땐
군것질거리 꼭 사들고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신랑과 저. 셋이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
셋다 술이 과했는지 안하던 속마음 얘기 하다가,
자라온 서러움이 너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을 했는데,,,

그런 황당한 며느리를 혼내긴 커녕
제 손을 잡으며, 저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얼마나 서러웠노,, 얼마나 무서웠노..
처음부터 니가 내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나,,
내가 더 잘해줄테니 이제 잊어라..잊어라...
하시던 어머님...



명절이나 손님 맞을때 상차린거 치우려면
"아직 다 안먹었다 방에 가있어라"하시곤
소리 안나게 살금 살금 그릇 치우고
설겆이 하시려다 저에게 들켜 서로 니가 왜 하니,
어머님이 왜 하세요 실랑이 하게 됐었죠...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그저 아까우셔서 벌벌 떠시던 어머님.
치매에 걸려 본인 이름도 나이도 모르시면서도
험한 말씨 한번 안쓰시고
그저 곱고 귀여운 어린 아이가 되신 어머님...




어느날 저에게 " 아이고 이쁘네~
뉘집 딸이고~~" 하시더이다.
그래서 저 웃으면서
"나는 정순X여사님(시어머님 함자십니다)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 했더니 "있지~~
서미X(제이름)이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서이도 있다~"
그때서야 펑펑 울며 깨달았습니다.

이분 마음속엔 제가,
딸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막내시누 다음으로 또 하나 낳은 딸이었다는걸...
저에게... "니가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하시던 말씀이 진짜였다는걸...

 

 
정신 있으실때, 어머님께 저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하려 노력은 했지만
제가 정말 이분을 진짜 엄마로 여기고 대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사랑하고 고맙단 말을
매일 매일 해드리진 못했는지..
형편 어렵고 애가 셋이라
병원에 얼굴도 안비치던 형님..
형님이 돌보신다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당연한 일인데,
왜 엄한 형님을 미워했는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고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밤 11시쯤,,
소변보셨나 확인 하려고 이불속에 손 넣는데
갑자기 제 손에 만원짜리 한장을 쥐어 주시더군요.
"이게 뭐에요?" 했더니 소근소근 귓속말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밑에 있드라~
아무도 몰래 니 맛있는거 사묵어래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점심때쯤 큰아주버님도 왔다 가셨고,
첫째, 둘째 시누도 다녀갔고 남편도 퇴근해서
"할머니~ 잘 있으셨어요~?"
(자식들 몰라보셔서 언젠가부터 그리 부릅니다)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 7시에
퇴원한 할머니가 떨어트린 돈을 주으시곤
당신 자식들에겐 안주시고
갖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신거였어요.
그리곤 그날 새벽
화장실 다녀왔다 느낌이 이상해
어머님 코에 손을 대보니 돌아가셨더군요....

장례 치르는 동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제가
울다 울다 졸도를 세번 하고 누워있느라
어머님 가시는 길에도 게으름을 피웠네요...

어머님을 닮아 시집살이가 뭔지
구경도 안시킨 시아주버님과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과 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하며,
어머님 안슬퍼하시게
우리 우애좋게 잘살자 약속하며
그렇게 어머님 보내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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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꼭 시어머님 가신지 150일 째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 저 좋아하는 초콜렛,
사탕을 사들고 오시던 까만 비닐봉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만원짜리를
배게 밑에 넣어두고..
매일 어머님 꿈에 나오시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해드리려 준비하며 잠듭니다.

다시 태어나면
처음부터 어머님 딸로 태어나길 바라는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부디 저희 어머님 좋은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평생 고생 안하고
평생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살으시길 기도 해주세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글 입니다
어느 노부부의 처절한 인생



오늘하루도 행복하세요

*어느 노부부의 처절한 인생*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만두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는 겁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 곤 합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


부부가 뭐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헤어졌다.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 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습니다.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 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습니다.

</p>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낡은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겁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습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 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답니다.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

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

가셨답니다.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감동에 글

 

우리 어머님들은 자식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만 했는지요???? 

 

우리 어머니는 한쪽 눈이 없다

난 그런 어머니가 싫었다.

너무 밉고 쪽팔리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시장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하셨다.

그냥 나물이나 초나 여러 가지 닥치는 대로 캐서 파셨다.

난 그런 어머니가 너무 창피했다.

초등학교 어느 날이었다.

운동회때 엄마가 학교로 오셨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네에 엄마는 한쪽 눈이 없는 병신이냐고 놀림을 받았다.

놀림거리였던 엄마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엄마는 왜 한쪽 눈이 없어?

진짜 창피해 죽겠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서인지 속은 후련했다.

엄마가 나를 혼내지 않으셔서 그런지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날 밤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숨을 죽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고개를 돌렸다.

아까한그말 때문에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한쪽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

 

나는 커서 성공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쪽 눈 없는 엄마도 싫고 이렇게 가난한 게 너무도 싫었기 때문에

나는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엄마 곁을 떠나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공부를 해서 당당히 서울대를 합격했다.

 결혼도 했다. 내 집도 생겼다. 아이도 생겼다.

이제 나는 가정을 꾸며 행복하게 산다.

 여기서는 엄마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좋았다.

이 행복이 깊어 갈 때쯤 이었다.

 누구야; 이런 그건 우리 엄마였다.

여전히 한쪽 눈이 없는 채로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어린 딸아이는 무서워서 도망갔다

그리고 아내는 누구냐고 물었다.

결혼하기전 부인에게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누군데 우리 집에 와서 우리아이를 울리냐고 소리를 쳤다.

 

당장 나가요! 꺼지라고요!그러자 엄마는 죄송합니다.

제가 집을 잘못 찾아 왔나봐요

이 말을 하곤 묵묵히 눈앞에서 사라졌다.

역시 날 몰라보시는 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신경 쓰지 말고 살려고 생각했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 젓다.

어느날 동창회 한다는 안내문이 집으로 날아왔다.

그 때문에 회사에 출장을 간다다는 핑계를 대고

부인한테는 거짖말을 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동창회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려는데 궁금한 마음에 집에 가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저 계셨다 그러나 나는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다

엄마의 손에는 꼬깃꼬깃한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건 나에게 주려던 편지였다.

 

사랑하는 내 아들 보아라! 엄마는 이제 살만큼 산것 같구나

그리고 이제 다시는 서울에 가지 않을게

그러니 네가 가끔씩 찾아와 주면 안되겠니?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구나

엄마는 동창회 때문에 니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기뻤단다.

 하지만 학교에찾아 가지 않기로 했어 너를 생각해서

그리고 한쪽 눈이 없어서 정말로 너에겐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렸을 때 네가 교통사고가 나서 한쪽눈을 잃엇단다

 나는 너를 그냥 볼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눈을 주었단다.

그 눈으로 엄마대신 세상을 하나더...봐주는 거가 너무 기특 했단다

 난 너를 한번도 미워한 적이 없단다.

 

니가 나에게 가끔씩 짜증 냈던건 날 사랑해서 그런 기라 엄마는 생각 했단다

 아들아 내 아들아 어미가 먼저 갔다고 울면 안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갑자기 할수 없는게 내마음 한쪽을 조여 왔다

 어머니가 주신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엄마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해드리고

 좋은 음식 못 사 드리고 좋은 옷 입혀 드리지 못했는데

 어머니께선 날 !! 죄송합니다!

엄마가 눈 병신이 아닌 제 눈이

이제야 모른 사실을 안 이 못난놈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껏 한 번도 들려 드리지 못한 말...........



         어느 노인의 유언장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었다.
그런데도 장성한 두아들은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실한 자물쇠를 채웠다.
그 후 아들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의침상 밑에 못 보던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이 그것이 무어냐고물으면 노인은 별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그것을 조사해보려 하였지만,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는것이었다.
아들들은 생각하였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평생 모아 놓은 금은보화일거야.'
아들들은 그때부터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노인은 죽었고, 아들들은 드디어 그 궤짝을 열어 보았다.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 아들은 화를 내었다.
".. 당했군!" 
그리고궤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 쳤다.
"왜? 궤짝이 탐나냐?  그럼, 네가 가져라!" 
막내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적막한 시간이 흘렀다.
1분, 2분, 3분.
 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막내아들은 그 궤짝을 집으로 옮겨왔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옛글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짜증을 냈다.
그는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있기로..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지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막내아들은 그것을 읽다가  꺼억꺼억 소리내어 울기시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아들딸도 달려왔다. 그글은 이러하였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웃게 하였다.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그들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같았던 기억.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기억.
지금은 사금파리 유리 조각 같은 기억.
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그들의 늘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딸도 그 글을 읽었다.
"아버지!"하고 소리치며 아들딸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도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한다.
 

밝은 웃음소리와 사랑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 행복한 가정...

소중하게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시길요~ 사랑합니다~^&^



심금을 울리는 가슴아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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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자만 있는 소록도 촌장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찾아와서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촌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노인은 " 저는 모두 열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40년전11살때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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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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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아들에게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하고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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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들이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아들의 간곡한 호소에
소록도로 아들만 떠나보내고


저는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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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함께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펴 주면 드러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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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려 둘째, 세째, 네째--…를 찾아갔죠. 그런데 사정은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아홉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한번만이라도 보고 용서를 빌고 죽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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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먼길을 떠나 오늘 그 아이를 찾아 만나보니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이제 저와 함께 살아요 " 합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고 내다 버린 채
한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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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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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촌장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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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키운 아홉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촌장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




- 모셔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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