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남편·좋은아빠로 사는 길, 파더스드림 8년 봉사 결실
모든 가정들이 행복해질 때까지 돕는게 나의 목표
나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익숙한 유교 문화에 길들여지며 성장했지만 예수님을 잘 믿는 신실한 아내를 만나 새 삶을 살게 됐다. 아내가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한 덕분인지 2002년 어느날 나는 교회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노래 부르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어릴 때부터 힘든 것들에 대한 위로를 세상 노래로 풀었는데 교회에 와서 찬양을 드려보니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별천지가 있는듯 했다. 어찌나 그 찬양이 마음을 울리고 은혜가 되는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시간이 너무 귀하고 좋아서 성전을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또 우리 교구 지역장님이 나의 신앙생활을 많이 도와주셔서 빨리 적응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내가 지역장이 되었고 그 지역장님에게 받은 사랑을 되갚는 마음으로 지역원들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
나는 동대문에서 원단 사업을 했는데 잘나가던 회사에 어느날 어려움이 닥쳤다. 그럴수록 나는 하나님을 더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기도했다. 회사가 어려워도 아내와 나는 십일조에 충실했고 작정헌금을 드리면서 기도했는데 아내는 언제나 성숙한 믿음으로 나의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잠시 사업을 접고 다른 분야의 일을 했었지만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린 결과 하나님은 다시 내가 하던 사업을 일으켜 주셨다.
2009년 어느날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실시하는 ‘파더스드림’이라는 영성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됐다. 그 프로그램은 내 인생에 있어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됐다. 나는 파더스드림을 통해 좋은 아빠로 좋은 남편으로 좋은 가장으로 다시 태어나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고 파더스드림 6회 수료후 지금까지 파더스드림 스태프로 봉사하고 있다. 파더스드림은 우리 가정에서 따뜻한 난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사업을 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아내와 이런저런 다툼이 생겨 가정이 깨질뻔한때가 있었지만 파더스드림에서 배웠던 가정의 소중함과 남편의 역할이 그때마다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는 내가 파더스드림에서 배운대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큰딸의 영국 유학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고 동대문 사업장에서 만난 목사님이 멘토가 되어 주셨다. 하나님 은혜로 유학을 마친 큰딸은 홍콩 근무를 거쳐 지금은 한국주재 외국 회사에 다니며 열심있는 신실한 청년으로 살고 있다.
또 아내와 두 딸은 서대문에 있는 송죽원이라는 고아원에서 봉사하며 가정이 깨진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나님 사랑을 전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나는 연희교구 총무일을 4년째 하고 있으면서 지금은 파더스드림 회장직을 맡아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파더스드림이 나의 가정을 유지한 끈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요즘처럼 쉽게 깨지는 또다른 가정을 위해 열심을 더 내고 있다. 깨지려던 가정이 파더스드림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다시 화해하고 따뜻한 가정으로 바뀌는 모습들을 여러번 보았다. 그래서 나는 파더스드림은 단순히 교회 프로그램을 넘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하고 그 버팀목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길 바라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요즘에는 아내나 남편한테 막 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로 인해 깨지는 가정들도 너무 많다. 나는 파더스드림을 통해 이런 가정들을 돕고 싶다. 그래서 더 전문적으로 배워볼 욕심에 사회복지와 심리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다.
가정천국을 이루는 것이 나의 최종목표다. 이런 열망으로 매주 수요중보기도 후에는 파더스드림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한 시간 동안 기타를 가르치고 있다.
요즘에는 삶이 너무 외로워서 그 고독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 가족이 되줄 수 있는 곳이 교회이고 파더스드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파더스드림을 통해 가정이 회복되길 바란다. 교육이라기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고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파더스드림을 통해 내가 받은 은혜를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나누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