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희 집사(서대문대교구) -

“나는 비전을 품은 간호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통해 봉사하니 감사·행복 넘쳐

 나는 500g, 600g의 초미숙아들을 돌보는 신생아실 간호사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미숙아들에게는 극소량의 약물이 투여되는데 자칫 소수점 하나만 바뀌어 넣어도 치명적일 수 있다. 몸에 붙은 테이프 하나를 잘못 떼면 진피까지 떨어져 나가는 미숙아들을 돌보니 나는 극도로 예민해져 후배들의 작은 실수에도 지적하고 야단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후배들은 내 뒤에서 나를 마녀라고 부르곤 했다.

 병원은 3교대 근무로 오후 근무가 있는 날은 밤 12시가 넘어야 집에 올 수 있었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현관에서 쓰러져 잘 때도 많았다. 직장과 더불어 가정의 일도 만만치 않았다. 옆 동에 사는 시어머니는 내가 남편에게 작은 가사일이라도 부탁하려고 하면 무조건 막아섰다. 남편은 어머니라는 든든한 백을 두고 밖에서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오곤 했다. 결국 내가 없는 날이면 연로한 시어머니가 손주 둘을 돌볼 수밖에 없었고 육아로 지친 시어머니는 나에게 그 화를 푸셨다. 머릿속으로 이혼을 수십 번 생각하다가도 어렸을 적 할머니가 나에게 “현희야 너는 잘될거야. 잘될 수밖에 없어 할머니가 너를 위해 매일 기도해” 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를 때면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대학생 때만해도 나는 CCC(대학생 선교회)에 속해 예배드리고 봉사하며 신실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며 점점 교회에 나가기 어려워졌고 무교인 남편이 내가 교회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기 때문에 2∼3년이 넘도록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고충으로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등록하고 다시 교회에 나갈 것을 결심했고 지역장님의 권유로 의료센터에서 봉사하게 됐다. 봉사를 하며 난 분노와 우울했던 지난날 나의 모습을 회개했다. 간호사로서의 일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늘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임을 깨닫게 되니 내 일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예전 대학생 때 봉사했던 일이 떠올랐다. 다리가 없어 구더기가 끓는 텐트에서 살던 남성을 업고 나와 전도하고 그가 교회와 사회에 잘 적응해 나가도록 도왔던 그때의 감동이 내 마음에 다시 스며드는 듯했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을 의료센터 봉사를 통해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의료센터에서 나는 찾아온 사람들의 차트를 찾는 일과 한 달에 한 번 외부로 봉사를 간다. 200∼300명이 되는 사람들에게 주사를 놓다 보면 대화를 나눌 틈도 없다. 그러나 감사하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까지 행복해 진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며 내 마음이 감사와 행복으로 젖어들자 예전의 나처럼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후배 간호사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런 후배들을 위로하고 기도를 해주니 이제는 후배들이 나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며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닮아 가고 싶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교회를 못 가게 했던 남편이 지금은 잘 다녀오라며 인사도 하고 교회도 데려다 준다. 아직은 교회를 안 나오지만 우리 교회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면 확실히 변화됐음을 느끼고 감사하다. 나는 앞으로도 봉사로 환자들의 육체는 물론 마음을 치유하는 전인간호를 하기 위해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저에게 주신 간호사의 달란트 감사합니다!”                 

정리=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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