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순 집사(전국교육자선교회) -

아흔 된 시어머니 매일 주를 위해 헌신

성경 가르침 따라 시부모 섬길 때 구원 역사
고령에도 뜨개질로 선교 사역 동참, 늘 주께 감사

 나는 41년 9개월간의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마치고 3년 전 퇴직한 교사다. 그동안 결근 없이 교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38년 동안 한 집에서 살았던, 올해 아흔이신 어머니의 도움이 전적으로 컸다. 내가 오늘 나누고 싶은 간증은 성경의 가르침 따라 부모를 공경할 때 어떤 변화와 감사가 펼쳐지는지 말하고 싶어서다. 나는 29세에 크리스천 남편을 만나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했다. 그때까지 만해도 시어머니가 타종교를 믿는, 그것도 동네 대표직을 맡을 정도로 열정 있는 분임을 전혀 몰랐다. 한 집에서 생활하시던 부모님은 나와 남편이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셨다.
 나도 신앙생활 외에는 시어머니께 전적으로 순종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지셨던 친정어머니의 가르침이 컸다. 어머니는 결혼하면 항상 입을 조심하고 부모를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성경적 가르침에 순종하며 오로지 시부모를 섬겼고 구원을 위해 기도만 했다.

 시집온 지 1년 후 시어머니가 남편과 나를 불렀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고, 나중에 천국에서 너희를 만나야겠다” 그리고는 바로 동네 교회에 등록하셨다. 시어머니의 변화는 시아버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고집이 세셨던 아버님은 제사를 중시하시는 분이셨다. 그런 아버님이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셨다. 시부모님의 구원을 위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그렇게 응답됐다. 아버님은 교회를 다니신 후 제사를 추모예배로 바꿔주셨다. 할렐루야!

 교직생활을 마친 3년 전 시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불편한 몸 때문에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셨다. 그러니 ‘누워계셨다, TV 보셨다, TV를 보다 주무셨다’를 반복하셨다. 신앙생활도 전 같지 않으셨다. ‘어머니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시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성경 구절 암송을 시작했다. 몇 주 지나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 하셨다. 이번엔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색칠공부를 권해드렸다. 단순한 색칠부터 점차 난이도를 높여 어려운 그림 색칠까지 진행했다. 우울해하셨던 어머니 얼굴에 생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칠한 컬러링북은 십여 권으로 불어났다. 어머니는 삶의 즐거움이 회복 되자 건강도 되찾으셨다.

 그 때 마침 국민일보 토요일판에 ‘그림이 있는 말씀’ 코너가 생겨 어머니가 색칠하시기 좋게 확대 출력해 1년 넘게 드렸다. 지난해 구정에는 어머니의 그림과 사연이 신문에 실려 가족 모두 어머니를 격려해드린 일도 있다. 어머니가 즐거워하실 만한 일을 또 찾았다. 이번에는 뜨개질이었다. 수세미를 만드는 뜨개질은 생각보다 어머니 적성에 맞았다. 어머니는 하루에 5∼6개씩 만들며 자신이 뭔가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과 행복감에 젖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만드셨던 수세미를 모아 지난해 대만 선교 때 전도 용품으로 사용했다. 올해 여름에는 일본 선교에 200개, 국내 무주 전도 때 80개를 전도용품으로 활용했다. 어머니는 ‘내 나이에 이렇게 선교 사역에 동참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하나님의 일꾼 되심을 감격해 하셨다.

 부모와 자녀가 분리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는 부모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서로 행복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어머니와 이야기가 있는 삶을 찾아 살고자 노력했다.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전혀 깨닫지 못했을 일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돌봐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공유하도록,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해지는 삼중축복을 누리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리=오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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