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위한 봉사는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 누리게 해
전국여선교회연합회 통해 봉사자들의 연합 꿈꿔
지금까지 지난날을 돌아보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데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에 놀란다. 하나님께 부끄럽고 또 감사할 뿐이다.
나는 신앙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던 할머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주의 종이 되기를 소원하셨고, 할머니의 기도는 응답 받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아버지는 신학교를 입학해 성결교회에서 사역을 하시며 천국가실 때까지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다.
오일쇼크 당시 어버지는 나를 데리고 성전이 지어지다가 중단됐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왔다. 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철골 교회 아래로 데리고 가시더니 “재신아! 이 교회가 세계 최대 교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나는 좀 의아했지만 그 말씀 때문에 나는 여의도교회라는 곳에 첫발을 내딛고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학창시절 사장의 딸에서 신학생 그리고 목사의 딸로 자랐다. 좋으신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형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순복음교회를 다니는 좋은 분을 만났다. 남편이 된 그는 당시 토요일마다 오산리에 있는 기도원으로 데리고 가서 통일로 주변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여의도성전이 다 지어지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교회라고 자랑을 하며 여의도로 자주 데리고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던 것 같다.
결혼 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면서 또 다른 분위기 안에서 신앙생활이 시작됐다. 성북동으로 이사하면서 성북성전으로 교적이 옮겨졌다. 교구장님은 부족한 나를 구역장 지역장으로 세워주셨다. 부족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사를 해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에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교구활동을 하던 중 우리 지역 탁방난 권사님이 성북성전 여선교회 회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권사님에게 도와드릴 것이 없냐고 물었다. 그래서 수요일 설거지 봉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자연스레 여선교회 봉사자가 되어 성찬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성북교회 성찬부장, 총무부장을 거쳐 여선교회 회장으로 임명을 받았을 때 진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내가 하고 싶어서 걸어온 길이 아니고 그냥 바람에 떠밀려 왔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나에게 힘이 되어준 건 남편이었다. 자신은 교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는 않지만 아내인 나는 교회에서 봉사를 활발하게 하길 바란다며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순복음총회 전국여선교회연합회 회장을 맡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더 큰 일이었다. 그래서 ‘하나님 저 부족한 거 아시잖아요. 이렇게 큰일 못해요’라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주님의 음성이 나의 마음 깊이 들려왔다. “나를 위해 헌신하라!”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했다.
회장직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순종하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동역자들을 붙여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선교회연합회가 다문화가정 훈련병 위로 등 다양한 사역이 활기차게 전개되어 갔다. 회원들은 선교에 힘을 다하고 있다. 지난달 여선교회연합회 총회를 마치고 임회원들은 보광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순복음실업인수련대회에 참석했다. 수련대회에서 우리는 꿈을 가졌다. 기하성 전국 여선교회연합회도 이런 수련대회를 열게 되는 아름다운 꿈을 마음에 그림으로 그려본다.
지금까지 봉사와 헌신을 하면서 나는 감사를 배웠다. 요나가 다시 하나님 앞에서 빚어지는 곳이 물고기 뱃속이었다면 나는 봉사를 통해 빚어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나를 위해 물고기를 예비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은 고난만 예비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살아야할 인생의 빛나는 내일의 새벽까지도 예비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오늘도 찬양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