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완 선교사(인도네시아)지붕에 확성기 달고 방언 기도하며 영적 승리에 힘써 

인도네시아를 성령의 땅으로!   
20년 만에 열린 조용기 목사님 성회는 올해 최대의 은혜
지붕에 확성기 달고 방언 기도하며 영적 승리에 힘써 


 “빨리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라”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주신 주님의 음성이었다. 교육연구소에서 여름휴가를 앞당겨 겨울에 받아 인도네시아를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밤에 비행기가 김포 공항에 착륙하려고 할 때 창문으로 김포 지역에 있는 많은 교회들의 십자가 빨간 불빛이 비취면서 형언 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주신 음성이었다. 주님의 음성에 따라 우리 가족(아내와 3년 반, 6개월 된 두 아들)은 한 달 만에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과 사역을 정리하고 1990년 3월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는 현대와 고대가 섞여 있는 나라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문화와 풍습을 지닌 나라이다. 자카르타는 현대적인 빌딩들이 즐비하고 파푸아의 와메나 섬은 세계에서 제일 뒤떨어진 오지가 있다. 그래서 루스터커는 한국에서 ‘선교사 열전’이라고 번역된 책의 원 제목을 ‘from Jerusalem to Irianjaya’라고 하여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일 오지인 이리안자야까지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리안자야를 지금은 파푸아로 부르고 있다. 지구상에서 아직 식인종이 살고 있는 곳이 있다면 와메나의 발견되지 않은 숨겨진 부족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므로 인도네시아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부족마다 문화와 풍습들이 다 다른 것이다.

 반둥에서 1년 간 언어 공부를 마친 뒤 우리 가족은 점벌 신학교가 있는 자바섬 동부의 점벌시로 옮겨 오게 됐다. 그 곳에서 신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오후엔 병원 전도를 했다.
 1992년 1월 자카르타 스나얀 경기장에서 조용기 목사님 초청 대부흥 성회가 열렸다. 3일간 연인원 45만 명이 참석하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3만 여 명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결신했으며 수많은 신유의 기적이 나타났다. 마지막 날 조용기 목사님은 모든 성회 참석자들과 함께 여리고 성을 돌았다. 스나얀 경기장을 돌며 인도네시아의 모든 흑암의 세력들이 무너져 내림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성회 기간 중 짬을 내어 목사님께 “앞으로 자카르타에서 사역을 할까요, 말랑에서 사역을 할까요?” 여쭈었더니 조 목사님께서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고 하셔서 기도하는 가운데 말랑으로 오게 됐다. 1992년 말랑으로 와서 점벌을 오고 가며 신학교 강의를 하고 말랑 병원 전도를 했다. 그러던 중 성령님께서 “수꾼 지역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라. ‘수꾼’이 선교 지역, 빛의 지역, 파수꾼의 지역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1993년 4월 수꾼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까지 말랑 수꾼에서 사역하고 있다. 수꾼에 신학교를 세우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기술 고등학교를 열게 됐다. 신학교를 통해서는 주의 종 선교사들을 배출하고 교육 기관을 통해서는 평신도 선교사들을 배출하고자 한다.

 1994년 11월에는 인도네시아 제2 도시인 수라바야에서 조용기 목사님 초청 대성회가 열렸다. 연인원 15만 여 명의 성도가 참석했고 교역자 세미나에는 1만 여 명이 참석했다. 수라바야 성회에서 기억되는 놀라운 일은 성회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성회 장소는 마치 하늘이 뻥 뚤려 열린 것처럼 화창하게 한 방울의 비도 없고 성회장소 스타디움 바깥쪽에서는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는 기적의 현장이었다. 주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사건이었다.

 그 다음 해인 1995년 조용기 목사님을 초청 이리안자야 성회는 그야말로 인도네시아 성회 중 최고의 성회이었다. 도지사 부부가 중심이 되어 성회를 위해 기도하며 힘썼는데 도지사 부인은 새벽 1시에 성회 장소에 나와서 악의 영을 묶는 기도를 했다. 성회 시간에는 이리안자야 섬의 수도격인 자야뿌라 도시가 텅텅 비었다. 자야뿌라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성회 장소에 참석한 것이다. 성회 장소를 꽉 메운 성도들로 성회 장소는 은혜의 도가니였다. 조 목사님께서 도지사를 위해 안수기도 해 주실 때 우람한 체구의 도지사는 감격의 눈물을 철철 흘렸다.

 말랑 사역지에 조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갖는 소원이 있었다. 그 소원이 2002년 7월 15일 이뤄지게 됐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말랑 수꾼 사역지에 오신 것이다. 10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한량없는 감사를 드린다. 목사님께서 오신 후로 변화된 것은 설교를 매주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에 근거하여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10년간을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에 입각하여 설교하니 복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주님 주시는 귀한 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올해 자카르타 스나얀 경기장에서 20년 만에 조 목사님께서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20년 전 여리고 성을 돌았던 그 장소였다. 여리고 성을 돈 후 20년 간 어떤 일이 벌어졌나? 인도네시아가 기도로 뭉치게 됐다. 20년 후에 열린 이번 성회는 인도네시아 350개 도시에서 동시에 기도 성회로 가지고 350개 도시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흑암의 세력이 무너지고 승리의 함성이 기도로 울려 퍼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조용기 목사님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2024년까지 말랑의 수꾼에서 계속 사역할 것을 말씀하신다. 내년에는 교회 설립 20주년이 되어 4월에 당회장 이영훈 목사님을 모시고 아세안순복음총회 선교사님들과 함께 세미나와 교회 설립 2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게 된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새벽을 깨우는 종교가 그 나라를 좌우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사원에 확성기를 달아놓고 새벽 3시 경에 코란경을 읽는다. 우리 교회의 지붕에도 확성기를 달았다. 우리는 새벽 2시에 30초 간 방언 기도로 새벽을 먼저 깨우고 있다. 주님께서 이 믿음의 행동을 받으실 줄 믿는다. 기독교가 인도네시아를 좌우할 줄 믿는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믿음과 사역의 동역자로 주심에 감사드린다. 아내는 세상에 또 태어나도 선교를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신바람이 나서 선교를 계획하고 생각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앞으로의 비전은 유치원부터 기술 고등학교까지 있으니 기독 대학이 세워지기를 기도하고 꿈꾸고 있다.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와 세계를 복음으로 살리는 평신도 선교사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복지 타운이 세워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하고 꿈꾸고 있다. 복지 타운을 통해 봉사 요원들이 인도네시아 어느 지역이건 복음과 함께 의료와 기술을 가지고 달려가기를 바란다.
 주님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주님 재림을 준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 오시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더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겠다. 엘리사의 시대에 7000인을 남겨두신 주님께서 그 시대에 그들을 사용한 것처럼 주님 재림이 가까운 이 시대에 7000인과 같은 주의 사역자들을 우후죽순처럼 일으켜 세계 선교와 복음화에 귀히 쓰시기를 바란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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