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선교사(코트디부와르)

코트디부와르에 순복음의 희망 전해


내전 속에 하나님 의지하며 교회개척 앞장
현지인들, 조용기 목사 성회 기억하며 희망 가져

 할렐루야! 저를 보내신 이의 사랑에 힘입어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가 인사를 드립니다. 코트디부와르(아이보리코스트)는 비가 많이 와서 대체로 땅이 비옥하여 주변 서아프리카에 비하여 환경이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전체인구 2200만명 중에 26%가 거의 주변나라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입니다.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서 주일은 당연히 교회에 가지만 종교가 많이 혼합되어 있으며 형식과 서류에 얽매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4년 전부터 이 나라 무슬림들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내와서 초청 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모스크로 향하는 부녀자와 어린이까지 부쩍 늘어난 상태입니다. 복음화율은 개신교가 15%, 가톨릭이 20%, 무슬림이 35%, 토속신앙이 20%, 타종교 10% 순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님의성회 소속 교회들이 열심히 사역하며 부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곳에서는 항상 인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길을 물어볼 때도 꼭 인사부터 해야 합니다. 인상이 고약한 사람에게도 ‘봉∼주르’(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하면 완전히 순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합니다. 또 처음 가는 빌리지에 도착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추장집부터 가서 신고를 해야 합니다. 시골은 아직도 주술행위가 심해서 한번씩 빌리지에 갔다오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과 중보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이 곳은 1999년도에 내전이 시작되었고, 2001년도에 조용기 목사님께서 성회를 하셨습니다. 이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목사님이 성회를 하셨고, 갈급했던 성도들이 목사님 말씀을 통하여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용기 목사님을 알고 있으며, 그 당시 옆에서 성회일을 도왔던 현지인 목사님과 함께 협력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성회 때 조용기 목사님께서 코트디부와르가 나라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코트디부와르 교회와 성도들은 본인들이 순종을 하지 않아서 이 나라에 내전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기도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교회들에 약간의 타격이 있었으나 지금은 환난 후에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 다시 내전이 일어났고, 지난해에 참으로 어려운 내전을 또다시 겪으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강하고 담대한 믿음 주신 것을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터진 내전 중에 피난을 못갔는데 교회주변지역에 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 몇 명과 아기, 학생들과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숨죽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나 우리의 기도소리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에 갑자기 계속 대포와 총을 쏘아대는데 아파트 전체가 다 흔들렸습니다. 총을 들고 문앞까지 온 것 같아서 성도들에게 “우리는 이 순간 죽어도 천국에 갈 것이니 담대하게 마음을 먹자”고 했습니다. 모두가 “아멘”으로 대답을 했는데 그 순간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총을 쏘던 반군들이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그 이튿날 아침에 확인하니 벽에 탄피가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지하벙커에 숨어있던 대통령을 향해 밤새도록 폭격을 가하더니 이튿날 잡히고 내전이 끝이 났으나, 지금도 산발적으로 불씨가 일어나면서 군인들이 여러 명씩 죽고 치안이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기도하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내전을 치르고 나서 참석한 지난해 선교대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도 특별했습니다. 선교대회 끝나고 돌아와 교회수리를 하면서 감사가 넘쳐났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갑자기 교회주변 동네와 교회를 강제철거 했습니다. 2주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도시빈민들이 돈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보상도 없이 도로변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 도둑도 설치면서 교회에서 부설로 하던 학교(교실 3칸과 유치원)도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당장 교회가 짐도 옮길 곳도 없어 긴 장의자만 근처 초등학교에 보관하였다가 빌리지 교회로 가져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철거된 빈민 교회는 처음 뵙는 장로님의 관심과 선교의 열정으로 세워진 귀한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무너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고 떨리기만 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 주님은 저를 빌리지(방기에)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그 곳에서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진흙탕길이 깊게 파여서 대중교통 차량이 없고, 영업용 오토바이 뒤에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도, 하나님이 기뻐하셨는지 감사의 눈물이 넘쳐났습니다. 건축자재는 중간도시에서 사서 싣고 들어가며, 물건을 사가지고 갈 때는 트럭에 함께 타고 가면서, 차가 웅덩이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마음을 졸이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차가 서버리면 도둑과 강도들에게 물건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셨고 건축할 때는 자동차가 없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주님께서 선교개척국을 통해 튼튼한 자동차를 주셔서 감사하고,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도 어느 권사님의 손길을 통해 건축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손길로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으로 넘치도록 다시 채워 주신 줄 믿습니다. 앞으로 멋쟁이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저와 빌리지 주민들을 또 놀라게 하실지 기대됩니다.

 며칠 전에 아그보빌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신 곳인데 중간에 사탄의 방해로 이제야 들어가게 되어서, 10월부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미 세워진 두 빌리지 교회를 연결시켜주는 길목이고, 빌리지로 들어가는 숲 속 군데군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서 전도를 해야하는 사명 때문에 지금 새로 개척된 교회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그 교회에 홍해를 갈라지게 하셨으니 길도 내실 것이며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가기를 바랄뿐입니다.

 1992년도에 남편 장태식 선교사와 저와 아들은 알지도 못하던 서부아프리카 모리타니아로 파송되었습니다. 남편은 불같이 타오르는 선교열정을 갖고 온 서부아프리카의 교회개척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 당시 서부아프리카는 선교가 열악해 이곳을 찾는 선교사가 적었습니다. 남편은 10년정도 서부아프리카를 위해 기도하더니 복음을 활발하게 전할 수 있도록 순복음교회를 하나 더 개척해보겠다며 2002년도에 코트디부와르로 왔습니다. 하지만 10년된 나무를 뽑아서 다른 곳에 옮겨 심어 자라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프게 되면 선교지를 들어갈 수 없으니 건강검진도 스스로 안받고 하나님께만 맡겼었고, 2008년 선교대회를 마치고 현지로 돌아오기 3일전 남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뿌려놓은 기도로 인하여 아내 된 제가 사역하고 있으며, 아들 영호도 지금 신학공부를 하며 선교사의 길을 준비하고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순수하게 선교하셨던 아빠를 존경한다는 고백을 아들의 입술을 통해 들었을 때, 자식걱정 안하고 이곳에서 홀가분하게 사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사랑과 관심과 배려로 기도해주시며 마음을 담은 물질까지 후원해주신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 모든 성도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곳에서 이 나라의 한 부분을 위해 성실히 사역하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두가 주 안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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