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애 권사(마포2대교구) - 가족 전도의 열쇠는 ‘사랑’입니다

20년 간 소원한 남편의 구원 응답
경제적 시련 취업의 기쁨으로 변해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 남편과 나에게 1남 1녀 예쁜 아이들이 태어났다. 아이들은 내 생애 전부였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도 부족한 것만 같았다. 항상 내 아이가 정말 잘 되기를 바라고 바랐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그 꿈이 이뤄질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욕심이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게 했다. 마침 교회에 가고 싶어 하는 나를 이웃이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인도했다.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온 교회였는데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은 은혜로 기쁨이 내안에 충만해졌다. 이 기쁨을 남편도 함께 느꼈으면 해서 남편을 전도했다. 남편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나는 불교신자니까 나에게는 절대 강요하지 마라”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남편을 구원시켜야할 사명이 생겼다. 이토록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남편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하나님 섬기듯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도했다. 20년 간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전도를 받고 교회를 다니는데 남편의 완고함은 더욱 심해져갔다. 교회에 가자는 말을 할 때마다 조용했던 집안이 뒤집어지니 아이들도 힘들어했다.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 했지만 남편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며 비난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갑자기 남편이 실직을 하게 됐다.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며 가장의 역할을 해온 남편이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남편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그즈음 나는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었기에 기쁘게 받아들이려했다. 하지만 그 소식은 남편의 화를 돋궜다. 술을 잔뜩 먹고 온 남편은 나를 심하게 핍박하며 이혼을 강요했다. 주변사람들도 나와 남편을 위한다면서 이혼을 종용했다. 기가 막혔다. 내가 받은 모멸감과 고통보다도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눈물이 흘렀다.

 간밤의 소란을 뒤로하고 길에 나섰다가 남편 생각에 바닥에 주저앉아 한 두 시간씩 기도를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였다. 처음에는 남편의 손, 발목을 잡고 기도하다 온몸을 끌어안고 기도했다. 나는 권사 직분을 받고 기도로서 제2의 인생을 살 것을 서약했다. 그런 헌신과 기도 속에 남편에게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새해를 한달 앞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은 스스로 교회에 가겠노라 선언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며칠이 흐르자 자신도 자녀와 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가 되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위한 기도 중 한 가지 기적을 허락하셨다. 쉰이 넘은 나이에 내가 서울 시내 유명 대학병원 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결혼 전 복지관에서 근무했었지만 가정주부로서의 생활만 20년 넘게 했었는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내가 속해 있는 업무와 환경이 아동병동이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늘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기도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 것은 내 자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아이들과 청년들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누구보다 기도가 필요한 약하고 아픈 아이들을 섬기고 기도하라는 책임이 생겼음을 깊이 깨닫게 됐다. 새해가 밝았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많은 분들이 사랑과 기도의 힘으로 승리하길 기도한다. 밤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은 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정리=복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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