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수 성도(마포2대교구)

-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 부부 될 것


암으로 어머니 잃고 아버지도 말기암으로 위기
새벽기도하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새 소명 얻어

 우리 부부는 매주일이 기다려진다. 남선교회 외국인 안내실에서 봉사하는 우리 부부는 이른 새벽에 교회에 나오는 것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봉사가 주는 기쁨이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지 2년 정도될 무렵 아내(사진 왼쪽·이미선 성도)는 우리 집에 걸어놓은 칠판에 ‘함께 봉사하고 싶다’라는 글귀와 함께 이를 위해 매일 기도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나의 ‘귀차니즘’이 항복하고 말았다. 아내와 함께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정착한 곳이 남선교회 외국인 안내실이었다. 중국어를 좋아하는 나와 영어를 좋아하는 아내는 각각 자신들이 좋아하는 언어로 외국인들의 예배안내와 교회소개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말에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걱정도 많았지만 봉사하면서 누리는 기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기 힘들었다.

 모태신앙인 나는 3형제의 막내로 늘 사랑만 받고 살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어머니가 췌장암에 걸리셨다. 사실 그 때만해도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막연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기에 하나님이 당연히 어머니를 치료해주실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암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위해 의사가 되겠다는 꿈도 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암을 이기지 못하고 천국으로 가셨다. 그리고 나는 원하던 대학입시도 실패하면서 또 한 번 좌절하고 말았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줄 어머니도 안계셨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위로와 격려의 말도 내게는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었다. 의대의 꿈을 접고 재수를 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마음을 다독이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버지가 위암에 걸리셨다.

 ‘내게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생기는 걸까’ 억울하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다. 형들도 군복무 중이던 시절이라 내가 아버지를 간호해야 하는데 내 마음조차 추스르기 어려웠다. 왜 우리 집을 이렇게 큰 병으로 쑥대밭을 만드시는지, 하나님의 생각은 대체 무엇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 원망 속에서 내가 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매일 같이 새벽기도로 매달렸다.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의지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모태신앙이었던 나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기도하는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내게 새 꿈을 주셨다. 아버지의 완쾌는 주님께 맡기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기로 작정했다. 그러자 위암 말기로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버지는 위절제술을 받았고 몇 년 후에는 완쾌를 받을 수 있었다. 할렐루야!

 아버지는 수술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하게 매주일 교회를 출석하고 계신다. 한편 내게 주신 꿈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수 있는 의료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돕는 의료재단 설립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나를 대학원과 직장으로 이끌어 주시고, 함께 꿈을 이루어갈 수 있는 지금의 아내도 만날 수 있게 해주셨다. 이 은혜에 감사해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돌이켜보면 남선교회 외국인 안내실에서의 봉사도 하나님께서 내게 꼭 필요한 일이기에 시키셨음을 인정하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려고 한다.

 특히 올해는 우리 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많은 외국인들이 교회를 방문한다고 한다. 부족하지만 우리 부부가 봉사할 수 있어 감사하고, 함께 할 봉사자들이 더 많이 필요로 해서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정리=정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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