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11> - 역사신학 ② - 중세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6회), ⑤실천신학(5회) 순이다. <편집자 주>

 지난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신학(교회사)이란 기독교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오늘은 역사신학 연구를 위한 시대구분 가운데 중세에 대해 알아보고 이 시기에 기독교는 어떠한 특징을 갖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살펴보아야 할 주제들은 무엇인지 소개하고자 한다.


 1. 중세의 개념

 중세란 중간 시대를 뜻하는 라틴어(매디움 애붐)를 번역한 말로서 서로마제국의 멸망(476)으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1517) 직전까지를 가리킨다. 특별히 ‘중세’라는 단어는 15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문예부흥)와 연관되어있다.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인문주의자들의 목표는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을 본받아 인간 중심의 사회, 즉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로 돌아가는 데 있었다. 그들은 ‘근원(고전)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당대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던 고전 시대 사이에 놓인 ‘흉물스러운 시대’를 극복하려 했다. 그것이 바로 중간기(중세)였다. 그들은 그 ‘중간기’를 가리켜 ‘배워야 할 가치 있는 문화가 전혀 없는 암흑기’라고 폄하했다.


 2. 중세의 시작

 학자들 대부분은 이러한 중세의 끝을 종교개혁의 시작 무렵(15세기 말∼16세기 초)으로 보는 것에 큰 이견이 없는 반면, 그 시작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내고 있다. 독일 할레 대학에서 문헌학 역사학 지질학을 가르치던 켈라리우스(C. Cellarius, 1638∼1707)는 중세의 시작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313)으로 주장했다. 이와 달리 일부 학자들은 게르만족의 용병 대장이었던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을 중세의 시작으로 여기며, 또 다른 일부는 교황 그레고리 1세가 교황 자리에 오른 590년을 내세운다. 이러한 차이는 저마다 중세를 규정하려는 시각이 달라서 나타난 현상이다.
 다만 이러한 다양한 기준들 가운데 게르만족에 의한 서로마제국의 멸망(476)을 중세의 시작으로 삼는 것이 유익하게 보인다. 그 사건을 기준으로 교회뿐만 아니라 문화 및 사회 모든 영역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3. 중세의 특징

 고대와 구별되는 중세의 경제적 특징은 반(半)자유 농민들이 사회적 기반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문화적 특징으로는 14∼16세기에 걸쳐 전 유럽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와 ‘인문주의’(휴머니즘)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인 특징으로는 로마제국의 쇠퇴와 함께 게르만 민족이 서유럽의 정치적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흔히들 게르만족을 독일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게르만족 가운데 한 부류가 독일인이지 독일인이 곧 게르만족 전체는 아니다). 이러한 게르만 민족의 확장은 중세의 종교적인 특징의 근원이었다. 북동부 유럽으로부터 남하하여 서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던 게르만족이 기독교화되면서, 교황을 중심으로 한 로마가톨릭이 서유럽 전역에 걸쳐 세속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세란 기독교를 몰랐던 게르만족이 서유럽 지역으로 이주해 와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인 기독교를 근거로 새로운 문화, 교황이나 교회의 세속 지배, 또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독특한 기독교 시대를 만들어 간 기나긴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중세는 종교의 절대성을 앞세워 인간 위에 군림하는 등 여러 가지 잘못된 일이 자행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독교 역사상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많은 단면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4. 중세 기독교의 형성

 서유럽에 정착한 후 처음 기독교를 접하게 된 게르만 민족은 처음엔(5∼6세기경) 로마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예식이나 신학을 모방하고 답습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8세기경에 이르러서는 기독교 문화는 물론 고전 문화와 완전히 융합되는 데 이르렀다. 게르만 민족의 후예로서 프랑크왕국을 세운 칼 대제(샤를마뉴, 768∼814)는 유럽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고 그곳 거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의 부흥에 힘썼는데 각지에 수도원 학교를 세우고 궁정 학교를 설립하여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를 가리켜 ‘카롤루스(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라고 일컫는다. 이 기간에 기독교 문화와 게르만 민족의 정신 그리고 고전 문화가 비로소 융합되었으며 중세 유럽 문화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10세기 초에 단절된 카롤루스 왕조는 약 40년이 지난 AD 800년, 오토 1세(카롤루스 1세)가 황제에 오르면서 명맥을 잇게 되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를 신성로마제국(800∼1806)의 시작으로 여긴다. 신성로마제국이 형성되면서 소위 유럽의 기독교라는 틀도 완성되어갔다.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 학문은 ‘스콜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의 경건과 금욕운동은 ‘수도원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교권과 제도권은 ‘교황제도’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신앙부흥운동은 ‘종교개혁’과 ‘평신도 경건운동’ 또는 ‘신비주의’나 ‘금욕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서유럽 특유의 기독교 문화를 이루어갔다.

 중세가 서유럽 특유의 기독교를 형성해내었다는 사실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와 같은 탁월한 수도사가 중세의 영성운동을 주도했다거나, 성 프란시스가 가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을 올바로 구현했다거나,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중세의 신학을 정리했다거나 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이들이 있기에 중세는 수많은 부정적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중세라는 고유의 틀과 문화 속에서 길러진 인물들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5. 중세교회사 연구를 위한 주제들

 중세교회사를 이루는 요소들은 중세 특유의 기독교를 만들어 낸 요소들이다. 이것은 교회 내적으로는 교황제, 수도원주의, 평신도 경건운동 등이며 외적으로는 프랑크왕국이나 황제제도, 신성로마제국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중세교회사 구성 요소 중에 동방교회사는 독립된 장으로 다루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다. 중세교회사 연구를 위한 그 밖의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① 로마제국의 해체와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한 서유럽의 재편과 기독교화 ② 수도원운동과 교황제도의 확립 ③ 프랑크왕국의 발전과 로마가톨릭교회 ④ 프랑크왕국의 확장과 카롤루스(카롤링거)왕조의 르네상스 ⑤ 유럽 질서의 개편과 동·서방교회의 분열 ⑥ 교회의 개혁운동과 성직 서임권 논쟁 ⑦ 11∼12세기 십자군 전쟁과 그 영향 ⑧ 중세의 경건운동 ⑨ 중세 스콜라 신학 ⑩ 중세 후기(교황권의 쇠퇴와 신학적 정황).
 다음 시간에는 ‘종교개혁’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국제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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