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햇던 그때 그시절                             

            


초가집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있네요.




한겨울 강아지를 않고 따라로운 햇볕을 쬐고있습니다..

강아지 안으면 온몸이 따듯했지요..
돌아가면서 않고,순서를 기다리는 두어린이 표정이...*^^*




엄마가 세수시켜 줄때면 제인먼저 코풀어! 하시고 ..
따듯하게 물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머큐롬)을 비취해두고

발라주시 곤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갑게 보입니다




이발관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네 한두곳 이발기계 있는 집에가서 머리를 깍고 했지요,
부실한 기게로 머리털 뽑혀서 눈물은 줄줄.....




간혹 사회 복지가들이 학교 찾아오시어 사탕이나 먹을것을 전해주시고...




아이를 등에 업고 갯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곤 밤이면 아고고 허리야!
고통으로 잠못 이루시던 우리 어머님들 이셨습니다.




수안보 어는 산골마을 학교입니다.




부모님들 일손이 모자라 등교길 이린이들은 스스로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도강하는 모습입니다. 안전 사고도 많았었지요.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걸상 무척 정겹습니다 특별 활동시간 주산부 (수판) 어린이들 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음악 시간이지요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양말도 신지 않은 어린이, 무척 진지해 보입니다..




비가 조금만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 달렸지요.
물이 불으면 건너지 못했고,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것이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다 집안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신발에 짚을 넣고 신었었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면 어린이 애향단(동호회)이 골목도 쓸고 마을 어귀에

꽃길도 만들고
자기 마을 가꾸기를 했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싸리나무로만든 빗자루입니다




학교주변 수목원도 만들고...참으로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기적으로 고적지를 찾아 대청소 및 관리도 하곤 했지요



널뛰기하는 여자 아이들 모습입니다.가운데 한 아이가 올라가 앉아 중심을 잡고
누가 누가 높이뒤어 상대를 떨어트리나 껑충 껑충~ 요즘 보기 힘든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처서힘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 하기 무릅이 벗겨저서 피가 줄줄 흐르고...



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뛰나 훨훨.....
역시 화송123 초등땐 달리기,멀리뛰기 선수 ㅋㅋㅋ



청군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것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목이쉬어,ㅎㅎㅎ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 시간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제가 초등때 운동회땐 릴레이선수 마지막 주자 였지요. 아 옛날이여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화송123 중학교때  배구선수였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차범근,이회택과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탄생 하셨습니다




한창 태권도 붐이 일어 학교마다 가르키는 모습입니다..기마자세 태극1장이던가요
..?




무용연습 중인 여자 아이들입니다..특별 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책 걸상 뒤로 밀어 붙여놓고...




길거리 포장마차 비슷한곳에 아이들 간식 많이 팔았지요.불량

식품이 너무많아 늘 배앓이하고.....

당시 1원부터 제일 큰돈 500원까지 입니다.+



5.18 광주 민주항쟁 기록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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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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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5.18 북한특수군(1)

 

1980년 5월 21일, 북한특수군 300명은 광주 톨게이트에 한국 최정예 정규군인 20사단 사령부가 08시 정각에 통과한다는 극비 중의 극비 정보를 입수하고, 톨게이트 근방에 매복을 하고 기다렸습니다. 08시 정각에 20사단 사령부 차량부대가 톨게이트에 접근하자 이들 20대의 북한특수군 300명은 이동하는 부대의 앞과 뒤를 막고 몽둥이 등으로 기습 공격하였습니다, 병사들과 장교들이 혼비백산하였습니다, 300명은 사단장 지프차를 위시하여 14대의 지휘부 지프차들을 탈취하여 이들을 몰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직행하였습니다,  

광주에서 북한시위대에 부화뇌동한 사람들은 구두닦이, 껌팔이, 식당보아, 넝마주이, 트럭운전수, 자개공, 구두공, 용접공, 석공, 목공, 철공 등 양아치 계급이었습니다. 지각 있는 교수, 지식인, 대학생, 교수 등은 모두 곡꼭 숨어 있었습니다. 이들 양아치 계급이 이런 엄청난 작전, 세계 최정상의 작전을 수행할 리도 없었지만, 서로 낯설어 하는 양아치들이 300명씩이나 부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무식한 계급의 20대들이 이런 고급 군사정보를 입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광주에 내려온 북한 특수부대는 몽둥이 전문가와 정치공작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몽둥이 전문가들은 몽둥이를 총보다 더 유용하게 다루었습니다, 몽둥이는 주로 광주시민을 타박상으로 죽여 놓고 이를 공수부대가 철심이 박힌 특수살인용 곤봉으로 때려 죽인 것으로 모략-선동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북한특수군이 이동 중인 최 정예부대를 가지고 놀았다는 것은 세계 군사역사상 길이 남을 일입니다. 

 

이들 300명이 사단장 지프차와 주요 에하 지휘관 차량 그리고 사단 참모들의 지프차들을 탈취한 데에는 매우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군용차 납품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가져가면, 아시아 자동차공장 간부들이 무조건 두 손을 들고 북한군의 명령을 자동으로 들어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인 20사단 사단장이 그가 타고 있을 지프차를 광주시민군에 빼앗겼다는 가장 강력한 증표인 시단장 1호차, 이 차를 보고 광주시민군의 존재에 얼지 않을 방위산업 간부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차들을 보자마자 아시아자동차공장 간부들은 그들이 꽂으라는 대로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에 키를 꽂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키를 꽂은 장갑차 4대가 동시에 시내로 출동합니다.그리고 374대라는 군용트럭이 아시이 자동차를 떠나 전남 17개 시군에 비밀로 곡꼭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예행연습을 했던 그대로 돌진하였습니다, 그리고 21일 낮 12시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려 2개연대분의 무기를 탈취하였습니다. 아레에 그 사진들의 대표적인 것들만 보시겠습니다.

폭도들이 탈취한 20사 지프차

 

몽둥이를 들고 20사단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북한특수군 300명, 차를 몰고 아시아자동자공장으로 행군하고 있다, 여기에서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북한군의 몸매를 음미해 보십시오. 저런 몸매 고단위 무공 유단자에서나 나올 수 있습니다. 




















머리에는 비밀표시인 흰색 머리 띠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자동차로 달려가는 20사단 지휘부 지프타들, 이를 몰고가는 사람들은 북한특수군입니다.

시민군 장갑차

 

북한 특수군이 장갑차를 몰고가는 북한특수군 운전자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자동차 공장의 정문 밖인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군

 

북한 탈북자들은 이 사람을 광수라고 합니다, 이런 흉내는 공수특전단도 내지 못합니다.   몸매가 다릅니다. 끼고 있는 장갑은 석면으로 제작된 특수장갑이며, 이는 붉게 가열된 기관총 총열을 교환할 때 착용하는 특수 석면 장갑입니다,



람의 몸매와 손가락을 보십시오. 광주의 그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합니다,  옆에 있는 시민과 비교해 보십시오.



이 북한군의 모습을 보십시오. 소형 박격포를 혼자 메고 가슴과 배에 탄약을 자신 있게 메고 있습니다, 아레 미군의 덩치 큰 특수 병사가 M203의 유탄발사기를 간신히 두 손으로 파지하고 있는 모습과 비교해 보십시오. 유탄발사기는 소형 박격포입니다. 사정거리 400m에 소형 박격포탄을 날리는 당시의 첨단 고성능 무기입니다. 이 사람이 광주 시민인가요? 북한군은 남한의 기차, 전차, 탱크, 각종 무기를 콩가루 다루듯이 숙달하였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사용된 m203 유탄발사기>




미군 체격에도 버거운 소형 박격포 유탄발사기




<M433 40x46mm 유탄>




김대중 선생 즉각 석방하라, 탱크와 일반 차량으루 몰고 있는 북한특수군의 모습



이것은 광주시민군을 자처한 양아치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북한 특수군의 몸매입니다. 우리 예비군들 이렇게 못합니다. 


★우리나라 옛날 옛적 풍경 사진들★


1920년대 남대문통의 모습.


1935년 청량리역 앞의 모습.


1910년 용산역의 모습.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현 서울) 그래도 제법 높은 건물이 많이 보인다.


남대문로와 종로가 만나는 1905년 무렵의 보신각 주변.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현재의 을지로 입구에서 광교 쪽을 조망한 경관. 콜로니엄 양식의 건물들이 제법 고색창연하다. 길 오른쪽 붉은색 벽돌 건물은 지금의 우리은행이다.


[THE QUEEN OF KOREA] 1894. 11. Frank G. Carpenter에 ‘서울의 중심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남대문로의 모습. 거리 양쪽에 한옥 상가 앞쪽으로 초가로 조성된 가가(假家)가 늘어서 있어 상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에 찍은 광화문 거리.


헤르만 잔더가 1907년 9월 무악재를 넘다가 찍은 사진.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북한산이다.


경성부청(지금의 서울시청) 건물.


1925년의 서울역.


일제강점기 사진엽서의 하나.
당시 경성과 부산을 오가던 특급
[아카즈키(あかづき=붉은 달)] 일등전망차의
호화스러운 모습으로 일본 고관 및 친일 상류인사들이
주로 이용했다.

아이스크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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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한국전쟁 장면

        한국전쟁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 

 


추억의 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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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거리 .....

 

 

 

 

 

 

 

 

 

 

 

 

 

 

 

 

 

 

 

 

 

 

 

 

 

 

 

 

 

 

 

 

 

 

 

 

 

 

 

 

 

 

 

 

 

 

 

 

 

 

 

 

 

 

 

 

 

 

 

 

 

 

 

 

 

 

 

 

 

 

 

 

 

 

 

 

 

 

 

 

 

 

 

 

 

 

 

 

 

 

 

 

 

 

 

 

 

 

 

 

 

 

 

 

 

 

 

 

 

 

 

 

 

 

 

 


상하이 트위스트 / 설운도



          

   

6.25 한국전쟁이 남긴 귀한 사진들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필자 주>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2. 북한군 포로.ⓒ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그동안 성원해 주시고 애독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께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NARA에 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권중희 선생님, 그리고 사진 자료를 입수하는데 도와주신 재미동포 자원봉사자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곁에서 원문을 번역해 주신 박유종 선생님, 길잡이가 되신 이도영 박사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캐너를 빌려준 동포 주태상씨 그리고 이선옥씨, 권헌열씨, 정희수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에 이 자료를 독자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입수한 사진 자료는 모두 480여 매이나 그중에서 중복되거나 비슷한 것, 그리고 사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제외한

자료를 30회에 걸쳐 모두 공개하였습니다.

박도 기자는 서울에서 33년간의 교단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강원도 산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 회원으로 작품집에는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와 산문집 <샘물 같은 사람> <아버지의 목소리>  <일본기행> 항일유적답사기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한국전쟁 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이 있다.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2. 금강철교ⓒ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2004 미국국립문서보관기록소



1950. 12. 18. 흥남에서 묵호(동해)로 후퇴한 후 수송선에서 내리는 병사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텅 빈 흥남부두ⓒ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2004 박도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1. 1. 5. 1.4 후퇴 피난민 행렬ⓒ2004 박도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2004 박도


 
1951. 1.4. 한강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2004 박도



1951. 1. 4. 한강 임시 부교ⓒ2004 박도



1950. 12. 29. 양평 , 생포된 포로들ⓒ2004 박도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2004 박도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2004 박도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미제ⓒ2004 박도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

ⓒ2004 박도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2004 박도



1950. 12. 1.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등록하려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PRI(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2004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2004 NARA



1950. 8. 18.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

ⓒ2004 NARA



1950. 8. 18. 포로수용소 전경ⓒ2004 NARA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2004 NARA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2004 NARA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필자도 이런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2004 NARA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을 하고 있다

ⓒ2004 NARA



1950. 8. 13. 박격포 사격 훈련ⓒ2004 NARA



1950. 8. 15. 피난민 행렬ⓒ2004 NARA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2004 NARA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2004 NARA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

ⓒ2004 NARA


1950. 8. 18. 낙동강 전선에서 쌕쌕들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2004 NARA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2004 NARA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2004 NARA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2004 NARA



1950. 8. 22. 불을 뿜는 전함ⓒ2004 NARA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2004 NARA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2004 NARA



1950. 8. 포항 부근의 한 마을이 포화에 불타고 있다ⓒ2004 NARA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2004 NARA


1950. 9. 15. 인천 월미도로 상륙하는 함정들ⓒ2004 박도


1950. 9. 16. 인천에 상륙한 후 시가지를 활보하는 유엔군들ⓒ2004 NARA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2004 NARA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2004 NARA


1950. 9. 16. 월미도에 나뒹구는 북한군 시신들ⓒ2004 NARA



1950. 9. 15. 인천에서 생포한 포로들ⓒ2004 NARA



1950. 9. 17. 서울 진격 작전ⓒ2004 NARA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2004 NARA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2004 NARA



1950. 9. 29.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2004 NARA



▲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2004 NARA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2004 NARA



1950. 10. 1. 소공동 일대ⓒ2004 NARA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2004 NARA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2004 NARA



1950. 10. 1. 반도호텔에서 바라본 을지로ⓒ2004 NARA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2004 NARA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2004 NARA



1950. 9. 29. 유엔 깃발로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2004 NARA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2004 NARA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2004 NARA



1945. 9. 9. 조선총독이 총독부 홀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2004 NARA



1945. 10. 12. 부산항 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군들에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하고 있다ⓒ2004 NARA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2004 NARA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조망은 없었다

ⓒ2004 NARA


1948. 5. 8. 다가올 5. 10 총선거를 앞두고 경찰들이 선거 방해를 염려하여

죽창을 거둬들이고 있다ⓒ2004 NARA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2004 NARA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2004 NARA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2004 NARA

 

여기 귀한 자료인 6.25 한국전쟁이 남긴 귀한 사진들 작품은 울님들을 

위해서 스크랩 해와서 약간의 편집을 했습니다만 펌해가는 것은 자유이나

수고 하신 분들을 위해 원본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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