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겹고 고달팠던 지난 시절 ◈












































이 거리가 생각나십니까






실제는 아니고 재현된 풍경 입니다.

 

 

 

 

 

 

 

 

 

 

 

 

 

 

 

 

 

 

 

-가져와서 올린자료 -

6.25 한국전 당시 사진        

                 

 



서울 서대문을 아세요?

 

조선시대 한양의 서쪽 관문인 서대문

<돈의문>으로 알려진 서대문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한때는 전차도 다니는 한양의 관문 중의 하나였답니다.


서울 성곽의 4대문(四大門)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일서대문(西大門)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의 도시 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핑계로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원래 자리가 경희궁터에서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쯤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890년대 말쯤에 찍은 사진을 통해 대략적인 모습을 알 수 있다.

즉 견고하게 쌓은 돌축대 한 가운데에 위쪽을 반원형으로 두른 홍예문(虹霓門)을

큼지막하게 내어 도성의 출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의

초루(譙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하였다.

 

건물의 평면 규모나 구조상의 특징은 알 수 없다. 다만 지붕 위에 마루를 양성하고

취두(鷲頭 : 망새)·용두(龍頭)·잡상(雜像)·선인 등을 배열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처음 세워진 것은 1396년(태조 5)으로 도성(都城)의 제2차 공사가 끝나고 8문(門)이

완성되었던 때이다.

 

태조 때인 1413년에 폐쇄되어 사용되지 않고 대신 태종 때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도성의 출입문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세종 때 다시 서전문을 헐고

그 남쪽 마루에 새 성문을 쌓고 돈의문이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1711년(숙종 37) 9월에 고쳐 지으라는 왕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숙종 때 고쳐 지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서울 서북쪽의 관문(關門)으로

 사용된 중요한 사적인데, 일본인들에 의해 함부로 철거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가져온 자료-


사진속 6·25 참상` 국제적십자위 희귀사진 대거공개

                 

[단독] '사진속 6·25 참상' 국제적십자위 희귀사진 대거공개

울상 짓는 꼬마·중공군 치료하는 미군·이승만·개폐식 영도다리 등 담겨
베이징 소재 국제적십자위원회 동아시아대표처 소장 사진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김덕현 특파원

6·25전쟁(한국전쟁) 발발 65주년을 앞두고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고스란히 담은 희귀 사진들이 대거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23일 중국 베이징(北京) 소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아시아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에는 서울, 부산, 대구, 거제도, 평양, 판문점 등 전쟁의 비극을 겪은 한반도 곳곳의 모습이 담겨 있다.

우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누더기 옷을 걸친 채 울상을 짓는 꼬마의 사진이다.

다섯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이 꼬마는 자기 몸보다 더 큰 봇짐을 진 채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다.

1951년 2월 홍천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전쟁의 비극이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까지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50년 12월 대구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 속에는 기차 위에 어떻게든 올라타려고 안간힘을 쓰는 피란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라도' 살아보겠다는 우리네 소시민의 모습이 담겨 있다.

부산과 거제도 등에 설치돼 있던 포로수용소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도 공개됐다.

수용공간이 부족해 임시 천막을 대거 지어놓은 포로수용소의 전경과 이곳에서 주먹밥을 배급받는 포로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겼다.

포로수용소에서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장기자랑을 하고 권투·씨름 경기가 벌어지는 등 수용자들도 짬을 내 여가를 즐기기도 했다.

평양과 원산 등 북녘땅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도 상당수 공개됐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평양까지 진격한 유엔군과 국군이 운영하던 여성 포로수용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성들의 모습, 북한 측 포로들이 무릎을 꿇은 채 심문을 받는 장면 등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11월 원산에서 붙잡힌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이 이송되기 전의 순간도 카메라에 포착됐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미군 병사가 부상당한 중공군 병사에게 응급처치를 해주고 수용소에서 중공군 포로에게 담배를 나눠주는 등 인도주의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주요 인사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겼다.

이 전 대통령은 1950년 8월 훗날 국무총리와 외무부 장관을 지낸 변영태 당시 고려대 교수, 적십자사 단원 등과 기념촬영을 했고 1952년에는 한복 차림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파주 '자유의 마을'도 방문했다.

이기붕 당시 서울시장이 1950년 11월 미군 지휘관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역사적 현장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사진들도 적지 않았다.

정전협상이 열리고 있던 판문점, 서울의 옛 중앙청, 유일한 개폐식 다리였던 부산 영도다리, 유엔군 전사 장병을 안장한 부산의 유엔군 묘지(현 유엔기념공원) 등의 60여년 전 모습도 렌즈에 담겼다.

이밖에 공개된 사진 중에는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천진난만한 동심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도 있었다.

군종 목사에게 안겨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여자 어린이, 탱크에 올라 즐거워하고 있는 동네 아이들, 구호품으로 나온 옷을 받고 좋아하는 여자어린이 등의 표정도 엿볼 수 있다.

앞서 ICRC 동아시아대표처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던 2010년 6월에도 연합뉴스를 통해 전쟁 당시 촬영한 희귀사진 8장을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 사진들을 추가로 대거 공개했다.

대표처 관계자는 "이 사진들은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곳곳에서 구호활동을 하던 적십자 직원들과 참전 미군들이 전쟁의 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면서 "자료 차원에서 보관해 오다 한국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연합뉴스를 통해 공개했다"고 말했다.


 


지난 추억이 새록새록

 

 

 

 

 

 

 

 

 

 

 

 

 

 


 


그옛날 우리가살던 추억어린 사진

            

그옛날 우리가살던 추억어린 사진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4.4 거리에서 파는 냉차 행상. 한 어린이가 시원한 음료수 한병으로
목을 축이는 중학생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959년 1월16일 을지로2가에서 차량이 충돌해 길가 한가운데 나뒹굴고 있다.
 
 
1959년 1월6일 새해를 맞아 첫 출근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상경한 근로자들이 서울역사를 나서고 있다.
 

1959년 3.1절을 맞아 
공무원과 시민 학생들이 탑골 공원에 모여 기념식을 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학생들이 종로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3.1절을 맞아 기념식을 갖고 참가자들이
학생 밴드부를 선두로 종로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서울역앞.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자
행인들이 입을 막은채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고 있다.
 
 
1959년 3월1일 여자어린이들이 덕수궁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3.1운동 발상지. 서울 세브란스병원 부근. 남대문로 5가 15-75번지
 
 
1959년 3월1일 종로의 탑골공원과 낙원동 일대
 
 
1959년 3월 20일 명동성당이 보이는 명동 일대
 
 
1959년 3월 20일 명동성당이 보이는 명동일대 전경
 
 
1959년 4월8일 서울 종로2가 보신각
 
 
1959년 4월8일 서울 종로2가의 화신백화점 과 신신백화점

(왼쪽.지금의 제일은행 본점 건물자리)




 

 
1959년 4월8일 원구단 방향에서 바라본 조선호텔의 옛모습.
1970년에 헐리고 이 자리에 현대식 고층건물(롯데호텔)이 들어섰다
.
1959년 4월8일 조선호텔과 원구단.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조선호텔의 옛모습과 팔각정 형태의 원구단

 

1959년 3월 중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부모와
함께 교모와 교복 가방을구입하고 있다

.
 
1959년 3월1일 허니문 카를 본따서 만든
이동 어린이 놀이기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
 
1959년 3월2일 50년대 말 명동거리의 패션. 양장차림의
서양여인과 한복차림에 쪽진 머리의 한국여성이 대조적이다
.
1959년 3월3일 풍문여자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거행되고 있는
교문밖에는 꽃다발 행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59년 4월 4일 냉차, 아이스크림 등 거리의 노점상들이어린이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군것질을 팔고있다.


 

1959년 4월 6일 유치원생들과 학부모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


 

1959년 4월14일 비가 내리는 광화문의 한 가게 앞에

비닐우산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959년 4월14일 우량아선발대회에서 한 심사위원이

참가한 어린이들의 앉은키와 몸무게 등을 재고 있다.


 

1959년 4월18일 덕수궁에 놀러나온 여자 어린이들


 

1959년 4월15일 급수 리어커가 오면 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15일 수돗물 사정이 좋지않던 시절 급수 리어커가 오면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쪽바리의 만행 사진중국인을 학살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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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 서울284대한민국의 발자취 11월14일 아침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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