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집 며느리의 고백       

신랑이 늦둥이라,저와 나이차가 50 년 넘게 나시는 어머님..
저 시집오고 5 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혼자 4 년간 똥오줌 받아내고,잘 씻지도 못하고,
딸래미 얼굴도 못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 년간 남편품에 단 한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누실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힘들다고,평생 이짓 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때 집나가서 소식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 하던 오빠..
그밑에서 매일 맞고..울며 자란 저를 무슨 공주님인줄 착각하는 신랑과
신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 글썽이며 한시라도
빨리 데려오고 싶다고 2천만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어디 나라에서는 남의집 귀한딸 데리고 올때 소팔고 집팔아
지참금 주고 데려 온다는데 부족하지만 받으라고...

그돈으로 하고싶은 혼수,사고싶은거 사서 시집오라 하셨던 어머님...
부모 정 모르고 큰 저는 그런 어머님께 반해,
신랑이 독립해 살고있던 아파트 일부러 처분하고
어머님댁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었습니다.

신랑 10살도 되기 전에 과부 되어,자식 다섯을 키우시면서도 평생을
자식들에게조차 언성 한번 높이신 적이 없다는 어머님...
50 넘은 아주버님께서 평생 어머니 화내시는걸 본적이 없다 하시네요.

바쁜 명절날 돕진 못할망정 튀김 위에 설탕병을 깨트려 튀김도
다 망치고 병도 깬 저에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아무소리 말고 있거라" 하시고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당신이 손에 힘이 없어 놓쳤다고 하시던 어머님...

단거 몸에 안좋다고 초콜렛 쩝쩝 먹고있는 제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나갔다 들어오실땐 군것질거리 꼭 사들고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신랑과 저. 셋이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
셋다 술이 과했는지 안하던 속마음 얘기 하다가,
자라온 서러움이 너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을 했는데,,,

그런 황당한 며느리를 혼내긴 커녕 제 손을 잡으며,
저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얼마나 서러웠노,, 얼마나 무서웠노..
처음부터 니가 내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나,,
내가 더 잘해줄테니 이제 잊어라..잊어라..하시던 어머님...

명절이나 손님 맞을때 상차린거 치우려면
"아직 다 안먹었다 방에 가있어라"하시곤 소리 안나게
살금 살금 그릇 치우고 설겆이 하시려다 저에게 들켜 서로
니가 왜 하니,어머님이 왜 하세요 실랑이 하게 됐었죠...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그저 아까우셔서 벌벌 떠시던 어머님.
치매에 걸려 본인 이름도 나이도 모르시면서도
험한 말씨 한번 안쓰시고
그저 곱고 귀여운 어린 아이가 되신 어머님...

어느날  저에게 " 아이고 이쁘네,뉘집 딸이고" 하시더이다.
그래서 저 웃으면서
"나는 정순X여사님(시어머님 함자십니다)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 했더니 "있지~~
서미X(제이름)이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서이도 있다~"
그때서야 펑펑 울며 깨달았습니다.

이분 마음속엔 제가,딸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막내시누 다음으로 또 하나 낳은 딸이었다는걸...
저에게!!"니가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하시던 말씀이 진짜였다는걸...

정신 있으실때, 어머님께 저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하려 노력은 했지만
제가 정말 이분을 진짜 엄마로 여기고 대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왜 사랑하고 고맙단 말을
매일 매일 해드리진 못했는지.형편 어렵고 애가 셋이라
병원에 얼굴도 안비치던 형님.형님이 돌보신다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당연한 일인데,왜 엄한 형님을 미워했는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고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밤 11시쯤,,
소변보셨나 확인 하려고 이불속에 손 넣는데
갑자기 제 손에 만원짜리 한장을 쥐어 주시더군요.
"이게 뭐에요?" 했더니 소근소근 귓속말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밑에 있드라~
아무도 몰래 니 맛있는거 사묵어래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점심때쯤 큰아주버님도 왔다 가셨고,
첫째, 둘째 시누도 다녀갔고 남편도 퇴근해서
"할머니~ 잘 있으셨어요~?"
(자식들 몰라보셔서 언젠가부터 그리 부릅니다)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 7시에 퇴원한 할머니가 떨어트린 돈을 주으시곤
당신 자식들에겐 안주시고 갖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신거였어요.
그리곤 그날 새벽 화장실 다녀왔다 느낌이 이상해
어머님 코에 손을 대보니 돌아가셨더군요....

장례 치르는 동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제가
울다 울다 졸도를 세번 하고 누워있느라
어머님 가시는 길에도 게으름을 피웠네요...

어머님을 닮아 시집살이가 뭔지 구경도 안시킨 시아주버님과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과 저.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하며,
어머님 안슬퍼하시게 우리 우애좋게 잘살자 약속하며
그렇게 어머님 보내드렸어요..

오늘이 꼭 시어머님 가신지 150일 째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 저 좋아하는 초콜렛,사탕을 사들고 오시던
까만 비닐봉지.주변에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만원짜리를 배게 밑에 넣어두고..
매일 어머님 꿈에 나오시면 사랑한다고.감사하다고
말해드리려 준비하며 잠듭니다.

다시 태어나면 처음부터 어머님 딸로 태어나길 바라는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부디 저희 어머님 좋은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평생 고생 안하고 평생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살으시길 기도 해주세요.




 

//


 


 

 

늙은 아버지와 아들

82세의 노인이 52세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있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말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아버지는 그런데 조금 후 다시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시,
“까마귀라니까요.”
노인은 조금 뒤 또 물었다. 세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이 났다. 
“글쎄 까마귀라구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다. 

네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까마귀, 까마귀라구요. 그 말도 이해가 안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 하세요?”

조금 뒤였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왔다. 
그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주며 읽어보라고 말했다. 

아들은 일기장을 읽었다.
거기엔 자기가 세 살짜리 애기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까마귀 한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 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똑같은 대답을 23 번을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있다는 거에 대해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즐거웠다. ㅡ


옮겨온글

A Better Day - Multicyde

 


황혼 인생 칠십 대라                           

 

 

황혼 인생  칠십 대라

        
  

이몸은 구석 구석 성한데 하나도 없고 

가까웠던 지인들은 하나 둘

귀천의 길로 떠나가고.

 

이마음 또한 희미 해져가는 정신 황혼길의 하루하루

파란만장 했던 힘든세월 이겨내며

자식들 굶길세라 먹이고 가르켜 짝지어 보냈으니.

 

홀가분한 마음

힘겨운 발거름 여기까지 왔노라

이 모두가 인생사라 하지 않턴가.   

지금부터 라도 얽매였던 삶들

훌훌 다 내던지고 

남은 세월 후회없이 살아 보련다.

 

황혼 인생 칠십대면 이성마저 다 허물어지는삶

가는세월 가는순서 못가리니

남녀 구분말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산천 초목이 부르면 자연으로 발걸음 옮기고

바다가 부르면 파도와 함께 친구하며

남은 여생 후회란 단어는 생각말고  즐겁게 살아보자.

 

어느날 갑자기 떠난다면 동행 해줄 그리움도 미움도

사랑도 돈도 명예도 가져갈길 없으니 빈손이요

움켜진 돈 있으면 남은 여생에 쏟아 부어라.

 

자연이준 고마움 누렸으니

자연이 부르면

미련없이 자연으로 가자,,,


 

=옮겨온 좋은글= 

음악 : Time To Say Goodbye - Andrea Bocelli & Sarah Brigh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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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합니다 나의 부모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첨부이미지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절대 아프지 않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늦게 주무시고 새벽에 일어 나셔서 처음부터 잠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좋아 하시는 음식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짧은 파마머리만 좋아하신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관리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것을 좋아 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웃는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시고 마냥 기뻐만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배가 불러와 비싼음식 앞에서 빨리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양복입고 넥타이 매는것을 싫어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안주머니에 늘 돈이 넉넉히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좋아 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길을 걸어가도 두려워 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 생활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나, 당신의 자식이었을때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이 그랬듯, 나도 이제 당신처럼 내 자식의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이제서야 알아차린 당신의 가슴과 그 눈물을 가슴에 담고 당신의 사랑이 무척 그리운 이 시간에 멀리서 지켜보시는 고마운 두분께 소리쳐 외쳐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

    ◈◈

     

     

       


    ▒▒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

    요즘 지하철을 타면 젊은이 못지않게 노인이 많은 것같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수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인에 관한 언론 보도도 자주 등장하는데

    노년의 어려움을 담은 내용이 많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지만 이에 최대한
    저항할 수 있는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
    젊어서부터 마음에 두어야 할 몇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나이가 들수록 마음 속을 정화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마음을 깨끗이 하거나 비우는 일은 명확한 방법도 없고
    분명 쉽지도 않은 일이다
    과거에 집착하고 그로인한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생각할 때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젊었을 때의 환상에서 벗어나려는 사고의 혁명이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영양분을 섭취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신앙의 도움이 있어면 마음을 정화하는데 도움이 될수있을것이다
    둘째, 항상 용모를 단정히 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추한 노구를 가려줄 깨끗한 옷과
    화려해 보이는 변화가 필수적이다
    옷뿐만 아니라 안경,구두 모자 등도 건강한 느낌을
    돋움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힘썼으면 한다
    노인의 장광설(長廣舌)과 훈수 내지는 잔소리는
    모임의 분위기를 망치고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말 대신 박수를 많이 쳐주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상대방을 높여 준다면 환영받는 노인이 될 것이다
    넷째, 회의나 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하라
    동창회 향우회 옛 직장 동료 모임 등 익숙한 모임보다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이색 모임이 더 좋다 집에
    칩거하며 대외 활동을 기피하면 세상에서 멀어지고 점차
    고립감과 우울증이 커져 쉽게 정신과 육체가 노쇠하게 된다
    다섯째, 언제나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지혜롭고 활기찬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활력을 제공한다
    짧으면서도 곰삭은 지혜의 말에다 독창적인 유머까지
    곁들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평소에 낙천적인
    대인관계를 즐기는 이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돈이든 일이든 자기 몫을 다해야 한다
    지갑은 열수록
    입은 닫을수록 머리는 수그릴수록 대접을 받는다
    타인을 섬길수록
    마음은 풍성해지며 존경과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일곱째,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라
    이제껏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세상만사와 가족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변모할 리 있겠는가
    되지도 않을 일로 속을 끓이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심신과 여생을 편안하게 한다
    특별히 헛된 욕망을 포기하는
    일이야말로 마음을 깨끗이 하는 첫걸음이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문제는 삶의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노년의 삶은 원기 왕성할 때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과 경쟁하기가 버겁고
    더구나 무모한 경쟁은 삶을 더 추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서는 가능하면 더불어 상생하며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명한 이는 은퇴 후 자연을 벗삼아 이웃을 섬기며
    겸손하고 검소하게 살기에 힘쓰는 것이리라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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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속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아내는 아무 말이 없다가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만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내일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반복하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저녁에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빈 말이라도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화창한 가을 햇살이 가득히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당장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그러나 아내는 기척이 없다.

    여보! 여보! 여보!!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생전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그말 "사랑한다고...... "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

    불러도 대답없는 아내를향해 이미 늦어버린 후회를하며

    나 홀로 중얼거린다....... 

     


    나는 과연 몇째 아들 일까요?


     

     

     

     

    나는 과연 몇째 아들 일까요?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어머니

    어느 날 잠깐 밖에 나간 사이에,

    집에 불이 났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집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 생각에 망설틈도 없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 두 아이들을

    이불에 싸서 나왔습니다..

     

    다행이 이불에 싸인 아이들은 무사했지만

    어머니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다리를 다쳐 절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거지가되어 구걸을 하면서

    두 아들을 키웠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희생 덕분에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일류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

    졸업하는 아들이 보고싶은 어머니 는  

    먼저 큰 아들이 있는 대학을 찾아갔습니다.
     

    수석 졸업을 하게된 아들은 졸업과 동시에

    큰 회사에 들어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큰아들의 눈에 수위실에서 자신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수많은 귀빈들이 오는 자리에 거지 차림의

    어머니가 오는 것이 부끄러웠던 아들은 못본척 돌아섰고

    수위실에서 연락이 오자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

    어머니는 절망어린 얼굴로 돌아섰고, 

    큰 아들에게 버림받은 서러움에

    자살을 결심한 어머니 는 죽기전에 

    둘째 아들 얼굴을 보고 싶어

    둘째 아들이 졸업하는 대학을 찾아 갑습니다. 


    하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교문 밖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마침 이러한 모습을 발견한 둘째 아들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 나와

    어머니를 업고 학교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어머니가"사람을 잘못 보았소" 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졸업식장의 귀빈석 한가운데에 앉혔습니다. 

    값비싼
    액세서리 몸을 치장한 귀부인들이 수군거리자

    어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작은아들은 답사를 하면서

    귀빈석에 초라한 몰골로 앉아 계시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자신을 불 속에서 구해 내고 구걸을해서 공부를 시킨

    어머니의 희생을 설명했고

    그제야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감동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소식은 곧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고,

    둘째 아들은 큰 회사 대표의 사위가 되었지만

    어머니를 부끄러워한 큰 아들은

    입사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몸이 상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불 속에서 건져내고

    구걸을 하면서까지 아들을 공부시킨,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과 바꾸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 입니다.  

    - 옮겨온 글 -

     

    어머니...세상의 모든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父에 억대 유학비 지급소송낸 아들                            

    ※ 언제나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父에 억대 유학비 지급소송낸 아들 ¶¶


    성인이 된 자녀에게 부모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성인 자녀와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각각 다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 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미국 명문 사립대생인 A씨(22)가 아버지를 상대로 낸
    2년치 등록금과 생활비 등 총 1억4464만원 상당의
    부양료 지급 소송을 11일 원심과 마찬가지로 기각했다
    A씨는 15살이던 201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는 그의 유학을 극구 만류했다
    A씨 형이 이미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상태에서
    둘째까지 유학을 보내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뜻을 거스르고 유학을 떠나버린 A씨에게 아버지는
    학비와 생활비를 일절 지원하지 않았다
    이 문제로 갈등을 빚은 A씨 부모가
    별거에 들어가면서 가정이 깨졌다
    그후 A씨는 2014년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사립대에 입학했다
    곧바로 막대한 등록금 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고민하다 지난해 부모님이 이혼 소송에 들어가자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자신의 양육자인 어머니 측 변호사를 통해 2016~2017년
    봄 가을학기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 등
    총 1억4464만원를 부양비로 달라고 요청했다
    A씨 측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성인 자녀가 대폭 늘어난 현실을 고려해
    아버지가 부양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대학생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료 지급 의무를 인정한다”는 논리도 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법원은 A씨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그의 아버지가
    부양비를 대지 않아도 된다고 본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A씨가 요구하는 억대 유학비는 부모가 지원할
    의무가 있는 통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넘어선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판례상 성인이 된 자녀가 객관적으로
    생활비를 자력 충당할 수 없는 곤궁한 상태이고
    부모가 사회적 지위에 맞는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여력이 있을 때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미성년
    자녀에 대한 의무와 다르다는 판단이었다

    * 정말 감사합니다 ~^@^^~~

    언제나 함께하는 페밀리 모빌랜드



    나는 과연 몇째 아들 일까요?


     

     

     

     

    나는 과연 몇째 아들 일까요?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어머니

    어느 날 잠깐 밖에 나간 사이에,

    집에 불이 났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집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 생각에 망설틈도 없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 두 아이들을

    이불에 싸서 나왔습니다..

     

    다행이 이불에 싸인 아이들은 무사했지만

    어머니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다리를 다쳐 절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거지가되어 구걸을 하면서

    두 아들을 키웠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희생 덕분에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일류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

    졸업하는 아들이 보고싶은 어머니 는  

    먼저 큰 아들이 있는 대학을 찾아갔습니다.
     

    수석 졸업을 하게된 아들은 졸업과 동시에

    큰 회사에 들어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큰아들의 눈에 수위실에서 자신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수많은 귀빈들이 오는 자리에 거지 차림의

    어머니가 오는 것이 부끄러웠던 아들은 못본척 돌아섰고

    수위실에서 연락이 오자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

    어머니는 절망어린 얼굴로 돌아섰고, 

    큰 아들에게 버림받은 서러움에

    자살을 결심한 어머니 는 죽기전에 

    둘째 아들 얼굴을 보고 싶어

    둘째 아들이 졸업하는 대학을 찾아 갑습니다. 


    하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교문 밖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마침 이러한 모습을 발견한 둘째 아들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 나와

    어머니를 업고 학교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어머니가"사람을 잘못 보았소" 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졸업식장의 귀빈석 한가운데에 앉혔습니다. 

    값비싼
    액세서리 몸을 치장한 귀부인들이 수군거리자

    어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작은아들은 답사를 하면서

    귀빈석에 초라한 몰골로 앉아 계시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자신을 불 속에서 구해 내고 구걸을해서 공부를 시킨

    어머니의 희생을 설명했고

    그제야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감동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소식은 곧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고,

    둘째 아들은 큰 회사 대표의 사위가 되었지만

    어머니를 부끄러워한 큰 아들은

    입사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몸이 상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불 속에서 건져내고

    구걸을 하면서까지 아들을 공부시킨,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과 바꾸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 입니다.  

    - 옮겨온 글 -

     

    어머니...세상의 모든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아들의 마지막 전화

     

     

    미국의 한 부부가 겪은

    가슴 아픈 실재 이야기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월남전이 끝나가던 어느 해 휴가철이었습니다.

    사교계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부부가 어느 파티에  

    참석하려고 막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들의 전화이었습니다.

     

    "엄마, 저예요. 베트남에서  

    군복무가 끝나서 돌아가려고요." "정말 잘 되었구나.  

    그럼 집에는 언제 오니?" 엄마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을 집에 데려가고 싶어요."

    "물론 괜찮다. 며칠 간 함께 지내렴."

     

    "엄마, 그런데 그 친구에 대해  

    미리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어요.

    다리는 모두 잘렸고 한쪽 팔이 없어요.

    얼굴도 심하게 손상되었고 눈과 귀도 한쪽씩 잃었어요.

    별 볼 일 없긴 하지만 쉴 곳이 꼭 필요한 친구예요."

     

    그의 어머니는 머뭇거렸습니다.

    "쉴 곳이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며칠 같이 지내어라."

    "제 말을 이해 못하시는군요.

    전 그 친구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이에요."

    "얘야, 그 친구와 함께 산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어서 와서  

    휴가를 함께 보내자

    그리고 네 친구 말인데  

    사정은 안됐지만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니? 또 뭐라고 설명할 거니?  

    네 아빠에게나 친척들한테도……." 이야기를 미처  

    끝내기도 전에 아들은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날 밤 부부가 파티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캘리포니아 한 마을의 경찰서에서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가 남겨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경찰서장을 찾았습니다.

    경찰서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길에서 한 젊은이를  

    발견 했습니다.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고  

    얼굴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죠.

    눈과 귀도 한쪽씩 없었는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더군요.

    신원을 확인해보니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어려움을 당한  

    젊은이가 자신의 아들이었음을 알았다면

    아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눈물로, 사랑으로, 인내로, 아들의 상처를 싸매며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워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다른 젊은이의 

    일이라 생각되었기에 매정하게 거절해야 하고  

    멀리해야 하고 그냥 지나가는

    불행한 젊은이의 이야기로

    해 버렸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결국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이웃  

    사랑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무릅쓰고 온 몸을 찢겨 돌아온  

    젊은이들을 품을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사랑의  

    폭이 좁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깊이와 너비 그리고 높이와 길이를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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