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버지와 아들

82세의 노인이 52세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있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말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아버지는 그런데 조금 후 다시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시,
“까마귀라니까요.”
노인은 조금 뒤 또 물었다. 세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이 났다. 
“글쎄 까마귀라구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다. 

네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까마귀, 까마귀라구요. 그 말도 이해가 안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 하세요?”

조금 뒤였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왔다. 
그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주며 읽어보라고 말했다. 

아들은 일기장을 읽었다.
거기엔 자기가 세 살짜리 애기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까마귀 한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 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똑같은 대답을 23 번을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있다는 거에 대해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즐거웠다. ㅡ

아들은...................?


옮겨온글

A Better Day - Multicyde

 


사과 좀 깎아 주세요                           

 

  

 

사과 좀 깎아 주세요

 
암 병동 간호사로 야간 근무할 때였다.
새벽 다섯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 입원 중인 환자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놀란 마음에 커튼을 열자
환자가 태연하게 사과를 내밀며 말했다.


"간호사님, 나 이것 좀 깎아 주세요."


헬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 달라니,맥이 풀렸다.
옆에선 그의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그냥 좀 깎아 줘요."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실랑이를 벌일 수도 없어 사과를 깎았다.
그는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번에는 먹기 좋게 잘라 달라고 했다.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반으로 뚝 잘랐다.


그러자 예쁘게 잘라 달란다
할일도 많은데 별난 요구하는 환자가 못마땅해
못들은 척 사과를 대충 잘라 주었다.


나는 사과 모양새를 여전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그를 뒤로하고 서둘러 병실을 나왔다.


며칠뒤, 그는 상태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삼일장을 치른 그의 아내가 수척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사실 새벽에 사과깎아 주셨을때 저 깨어 있었어요.
그 날 아침, 남편이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면서
깎은 사과를 내밀더라고요.


제가 사과를 참 좋아하는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 깎아 줄수가 없었어요.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마음을 지켜 주고 싶어서요.


그래서 간호사님이 바쁜 거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정말 고마워요."


차마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그 새벽, 가슴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환자와 보호자.
그들의 고된 삶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녀가 눈물 흘리는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며 말했다.


남편이 마직막 선물을 하고 떠나게 해 줘서 고마웠다고,
그것으로 충분했노라고...


- 이현승 / 인터넷에서 옮김 -

 

 

영어로 Present는 지금,
그리고 선물이라는 뜻 입니다.
지금 곁에 있는 분께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해보세요.


-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잡아보세요, 바로 지금! -

 



                         



출처 : '워낭소리' 에서

 


아버지께 드린 마지막 선물
 
사람은 누구나 숙명과 운명을
동시에 부여받고 태어난다고 한다.
숙명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 보니 첩첩산골이었고
가난한 늙은 아버지의 막내 아들이었다.
6.25의 포성이 막 가셨지만 보릿고개의
긴 장막이 내 유년 시절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버지의 막내 사랑은 끔찍하셔서
들로 산으로 다니시면서 온갖
먹거리로 내 배를 채워 주셨다. 

봄에는 찔레와 오디를 따서 주셨고
여름에는 산딸기를 따다 주셨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도
늙은 아버지가 먹거리를 들고 나타나시면
까닭없이 자리를 피하곤 하였다.

먹거리의 달콤함 보다도 허리굽고 늙은
아버지가 더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가난의 세월을 뛰어 넘지 못한 아버지는
나를 진학 시키지 못했다. 

논으로 밭으로 데리고 다니시면서
농삿일을 가르치셨다.
나의 마음속에는 책만 어른거렸다.
서울로 가면 책을 실컷 읽고
지긋 지긋한 농삿일도 면할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서울행 야간 열차를 타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까맣게 잊고
서울시민이 되어 열심히 일을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했고
밤에는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내 어깨가 넓어지고 철이 조금 들 무렵이었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처음으로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는 평화 시장으로 가서
아버지의 내의 한벌을 샀다.
정성껏 포장을 하여 소포로 보냈다.

항상 핫바지만 입고 살으셨던
아버지가 몹씨도 측은한 생각이 났던 것이다.
늦 여름이었지만 겨울이 빨리 돌아오는
지리산 기슭의 고향과 아버지가
문득 생각 났기 때문이었다.

초 겨울이 닥쳤다. 
공장의 전화벨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시골의 이장님이었다. 
지금 아버지께서 위독하신데
급히 내려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야간 열차에 올라 아버지를 생각 했다.
전쟁에 큰 아들을 잃고
삶에 의욕을 잃고 사시다가
늦둥이인 내가 태어나자
심봉사마냥 핏덩이인 나를 안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는 아버지,

열이나 되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지문이 닳도록 일을 하신 나의 아버지, !.....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둘러모여 있었고
막 염을 시작 할 찰라였다.
"아이고 이놈아 조금만 일찍 오지 않고
너만 찾다가 임종을 하셨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통곡을 하셨다.

아버지는 굵게 패인 주름살 위로
평화가 가득한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보내준
하얀 내의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예뻐하셨던 막내가 사준 내의를
날마다 꺼내놓고 기뻐 하셨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수의 속에 내가 보내 준
내의를 입혀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멀고 추운 황천을 가시는 길에
막내가 사준 따뜻한 내의를 입으면
한가지 한은 풀릴것 이라고
모두 찬성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굳어버린 아버지의 손을 비비며
꺼이 꺼이 뜨거운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언젠가 도민증을 주민등록증으로 교체 할 때다.
아버지는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지문이 닳아 없어져 버렸다.
몇 차례나 면소재지 지서를 찾았으나
번번히 실패 하였다. 

나는 손마디를 한참 동안이나 어루만지며
회한을 쏟아 놓고 있었다.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가족의 무거운 짐도 벗고
손도 고히 간직 하시구요,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께
겨우 내의 한 벌만 사드린
이 불효 막내를 용서하시고 편히 가세요.

아버지!......."

- 좋은 글 중에서 -
음악 : The Evening Bells (저녁 종소리) - Sheila Ryan  

 

네티즌들이 선정한 감동리얼리즘 모음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이글을 보면 살아 있는 자체가 행복이라는걸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영국에서 두 아이의 엄마 키우리가 지난 달 세상을 떠났다. 향년 36세, 대장암 4기 진단 후, 간과 폐로 전이되어 25회 방사선 치료와 39번의 화학 요법 치료도 견뎌냈지만, 끝내 사랑하는 가족 및 친지들과 이별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블로그 내용이 긴 여운을 주기에 공유합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주고 뽀뽀해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아이 머리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 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그건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을 더 보너스로 얻은 덕에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중년의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Live to the point of tears.'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받은메일에서 옮김.>




       

황혼 인생 칠십 대라           

 


 

황혼 인생  칠십 대라

        
  

이몸은 구석 구석 성한데 하나도 없고 

가까웠던 지인들은 하나 둘

귀천의 길로 떠나가고.

 

이마음 또한 희미 해져가는 정신 황혼길의 하루하루

파란만장 했던 힘든세월 이겨내며

자식들 굶길세라 먹이고 가르켜 짝지어 보냈으니.

 

홀가분한 마음

힘겨운 발거름 여기까지 왔노라

이 모두가 인생사라 하지 않턴가.   

지금부터 라도 얽매였던 삶들

훌훌 다 내던지고 

남은 세월 후회없이 살아 보련다.

 

황혼 인생 칠십대면 이성마저 다 허물어지는삶

가는세월 가는순서 못가리니

남녀 구분말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산천 초목이 부르면 자연으로 발걸음 옮기고

바다가 부르면 파도와 함께 친구하며

남은 여생 후회란 단어는 생각말고  즐겁게 살아보자.

 

어느날 갑자기 떠난다면 동행 해줄 그리움도 미움도

사랑도 돈도 명예도 가져갈길 없으니 빈손이요

움켜진 돈 있으면 남은 여생에 쏟아 부어라.

 

자연이준 고마움 누렸으니

자연이 부르면

미련없이 자연으로 가자,,,


 

=김병기(펜더)옮겨온 좋은글= 



먼길 돌아온 아름다운 인생의 노을

 ^^^^^^^^^^^^^^^^^^^^^^^^^^^

인생은 먼길을 돌면서

중년 이후 외모는 변해갑니다

삼단복부 이중턱 구부정해지는 허리등

그리고 흰머리 빛나는 대머리

또 늘어진 피부

자꾸 자꾸 처지는 눈꺼풀 등

그래도 말년을 앞에 둔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德이 있기 때문입니다

덕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쌓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인간을 구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움과 절망이 인간을

구제할 수도 있습니다

노년의 연륜은 미움과 절망까지도

품을 수 있습니다

성실하게 살면 이해도 지식도

사리 분별력도 자신의 나이만큼 쌓입니다

그런 것들이 쌓여

후덕한 인품이 완성됩니다

이 세상에 신도 악마도 없는 단지 인간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젊은 날의 만용조차

둥글 둥글해지고

인간을 보는 눈은 따스해 집니다

이러한 덕목을 갖추려면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견고한 자갈을 물리고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시간은 인간에게

성실할 것을 요구합니다

잉여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노력 없이는

시간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은

두렵고 잔혹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비우고

미완성에 감사합시다

노년 이후에는 '진격'보다는

'철수'를 준비해야 합니다

물러설 때를 늘 염두에 두며

살아야 합니다

오래 살게 되면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습니다

따라서'잃어버림'을 준비합시다

그것은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잃어버림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주변의 사람도 재물도

그리고 의욕도 자신을 떠나갑니다

이것이 노년 이후의 숙명입니다

추한 것 비참한 것에서도 가치 있는

인생을 발견해 내는 것이 중년입니다

여자든 남자든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외양이 아닌 그 사람의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는 정신 혹은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때가 좋습니다

만일 내가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비참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그 누가 없어도 잘 돌아가게 되므로

우리는 안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조금씩 비우다 결국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

세상을 뜨는게 하늘의 뜻입니다

세월 따라 기력이 쇠퇴해지는 만큼

마음도 따라 너그러워지는

노년이길 바랍니다
봄 여름 가을동안 들녘의 흐름처럼

다 비워내고 침묵으로 가는

들판의 고요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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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3살 먹은 주부에요..

 

♣33세 주부의 감동글♣

 


안녕하세요. 저는 33살 먹은 주부에요.. 
32살때 시집와서 남편이랑 분가해서 살았구요.
남편이 어머님 돌아가시고 혼자계신 아버님 
모시자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느 누가 좋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 일로 남편이랑 많이 싸웠어요.. 
위에 형님도 있으신데 왜 우리가 모시냐고..
아주버님이 대기업 다니셔서 형편이 정말 좋아요...

그일로 남편과 싸우고 볶고 거의 매일을 싸웠어요..
하루는 남편이 술먹고 울면서 말을 하더군요...
뭐든 다른거는 하자는 대로 다 할테니까
제발 이번만은 부탁 좀 들어 달라구..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남편이 어릴 적에 엄청 개구쟁이였데요..
매일 사고 치고 다니고 해서 아버님께서 매번 
뒷수습하러 다니셨다고 하더라구요..

남편이 어릴 때 골목에서 놀고 있었는데, 
지나 가던 트럭에 (큰트럭 말고 중간 크기트럭) 
받힐 뻔 한걸 아버님이 보시고 남편 대신 부딪히셨는데 
그것 때문에 지금도 오른쪽 어깨를 잘못 쓰신데요..

그리고 아버님 하시던 일이 노가다 (막노동) 였는데 
남편이 군 제대 하고도 26살때 쯤 까지 놀고

먹었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남편을 늦게 낳으셔서 지금 아버님 연세가 
68세가 되세요.. 남편은 33살이구요..
60세 넘으셨을 때도 노가다 (막노동) 하시면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 고생만 하셨다네요...

노가다를 오래 하면 시멘트 독이라고 하나... 
하여튼 그거 때문에 손도 쩍쩍 갈라 지셔서
겨울만 되면 많이 아파서 괴로워하신다고 하더라구요..

평생 모아 오신 재산으로 마련하셨던 조그만한 집도 
아주버님이랑 남편 결혼 할때 집 장만 해 주신다고 
파시고 지금 전세 사신다고 하구요...

그런데 어머님까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신거 보니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자주 난다고 하더라구요... 
저희요.. 전 살림하고 남편 혼자서 버는데
한달에 150만원 정도 벌어 와요..

근데 그걸로 아버님 오시면
아무래도 반찬도 신경써야 하고
여러가지로 힘들거 같더라구요.

그때 임신도 해서 애가 3개월인데... 
형님은 절대 못 모신다고 못 박으셨고
아주버님도 그럴 생각이 없다라고 남편이 
말을 하더라구요..

어떡합니까... 저렇게 까지 남편이 말 하는데... 
그래서 넉달 전 부터 모시기로 하고
아버님을 모셔 왔습니다..

첨에 아버님은 오지 않으시려고
자꾸 거절 하시더라구요..
늙은이가 가 봐야 짐만 되고
눈치 보인다면서요..

남편이 우겨서 모셔 왔습니다..
모셔온 첫 날부터 여러 모로 정말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아버님...매번 반찬 신경써서 정성껏 
차려 드리면... 그걸 드시면서도 엄청 미안해 
하십니다... 가끔씩 고기 반찬이나 맛있는 거 해서 
드리면 안 먹고 두셨다가 남편 오면 먹이더라구요...
그리고 저 먹으라고 일부로 드시지도 않구요..

거기다가 하루는 장보고 집에 왔는데, 걸레질을 하고 
있으신거 보고 놀라서 걸레를 뺐으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시면서, 끝까지 다 청소를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식사 하시면 바로 들고 가셔서 설겆이도 
하십니다...
아버님께 하지 마시라고 몇번 말씀 드리고 뺏어도 
보지만 그게 편하시답니다..아버님은.

제가 왜 모르겠어요...이 못난 며느리 눈치 보이시니 
그렇게 행동하시는거 압니다..저도...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남편이 몰래 아버님 용돈을 드려도, 그거 안 쓰고 모아 
두었다가 제 용돈하라고 주십니다...

어제는 정말 슬퍼서 펑펑 울었어요... 
아버님께 죄인이라도 된듯해서 눈물이 왈칵

나오는데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한달전 쯤 부터 아버님께서
아침에 나가시면 저녁때 쯤 들어 오시더라구요.. 
어디 놀러라도 가시는 거 같아서 용돈을 드려도

받으시지도 않고 나가시면서 다녀 올게

하시면서 매일 나가셨습니다..

어제 아래층 주인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구요.. "오다가 이집 할아버지

봤는데 유모차에 박스 실어서 가던데... 
이말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네.. 그래요..아버님 아들집에 살면서 돈 한푼 
못버시는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불편한 몸 이끌고 
하루 하루 그렇게 박스 주우시면서 돈 버셨더라구요..

그 이야기 듣고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아버님 찾으려고 이리저리 돌아 다녀도 
안 보이시더라구요...
너무 죄송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남편한테 전화해서 상황 말하니 남편도

아무 말이없더군요..
저녁 5시 조금 넘어서 남편이 평소보다

일찍 들어 왔어요..

남편도 마음이 정말 안 좋은지
아버님 찾으러 나간다고 하곤 바로 나갔어요...

제가 바보였어요..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며칠 전 부터 아버님께서 저 먹으라고
봉지에 들려 주시던 과일과 과자들이 아버님께서 
어떻게 일해서 사 오신 것인지를...

못난 며느리 눈치 안 보셔도 되는데 그게 불편 
하셨던지 아들집 오셔서도 편하게 못 지내시고, 
눈치만 보시다가 불편하신 몸 이끌고 그렇게 
일하고 있으셨다니...

친정에 우리 아빠도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아빠 생각도 나고 해서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우리 아빠도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 가셨는데... 
그날 따라 아버님 웃으실 때 얼굴에 많은 주름과 
손목에서 갈라진 피부가 자꾸 생각나면서 너무 
죄송해서 남편이 아버님이랑 들어올 때까지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 나가고 한시간 좀 넘어서
남편이 아버님이랑 들어 오더라구요...

아버님 오시면서도 제 눈치 보시면서, 
뒤에 끌고 오던 유모차를 숨기시는 모습이
왜 그리 마음이 아플까요...
오히려 죄송해야 할 건 저인데요...

왜 그렇게 아버님의 그런 모습이 가슴에 남아서 
지금도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요
...
달려가서 아버님께 죄송 하다며
손 꼭잡고 또 엉엉 울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매일 나 때문에
내가 미안 하다면서 제 얼굴을 보면서 말씀 
하시는 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아버님 손을 첨 만져 봤지만요...
심하게 갈라지신 손등과 굳은살 박힌
손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방 안에 모시고 가서도 죄송하다며 그렇게 펑펑 
울었습니다...

아버님 식사 챙겨 드리려고 부엌에 와서도

눈물이 왜그리 그치지 않던지... 
남편이 아버님께 그런일 하지 말라고..
제가 더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니까 그런 일

하지말라고 아버님께 확답을 받아 낸 후

세 명이 모여서 조촐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는 데도 아버님 손을 보면서

자꾸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오늘 남편이 노는 날이라 아버님 모시고 시내

나가서 날이 좀 쌀쌀해져서 아버님 잠바 하나랑

신발을 샀습니다..

한사코 괜찮다고 하시던 아버님께 제가 말씀 드렸어요..
"자꾸 그러시면 제가 아버님 눈치 보여서 힘 들어요!!"
이렇게 말씀 드렸더니 고맙다고 하시며서 받으시
더라구요..

그리고 집에 아버님 심심 하실 까봐

케이블 TV도 신청했구요 ...

아버님께서 스포츠를 좋아 하시는 데 
오늘 야구방송이랑 낚시 방송 보시면서

너무 즐거워 하시더라구요...

조용히 다가가서 아버님
어깨를 만져 드리는데...

보기 보다 정말 왜소 하시더라구요...
제가 꽉 잡아도 부서 질것만 같은 그런 아버님의

어깨...지금까지 고생만 하시고..

자식들 뒷 바라지 하시느라 평생 헌신 하시며서

살아오셨던 아버님의 그런 자취들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또 아팠네요..

남편한테 말했어요.. 저 평생 아버님을 정말

친아버지 처럼 생각하고 모신 다구요...

비록 지금은 아버님께서불편해 하시지만..

언젠가는 친딸 처럼 생각 하시면서

대해 주실 때까지 정말 잘 할거라구요..

마지막으로 아버님...제 눈치 안 보셔도 돼요...
제가 그렇게 나쁜 며느리 아니 잖아요

아버님의 힘드신 희생이 없으셨다면 지금의 남편도 
없잖아요.. 그랬다면 지금의 저와 뱃속의

사랑스러운 손자도 없을거에요..

저 아버님 싫어 하지 않고 정말 사랑해요 아버님...
그러니 항상 건강 하시고 오래 오래 사셔야 되요.. 
그리고 두번 다시 그렇게 일 안 하셔도 되요...
저 허리띠 쫄라 매고 알뜰하게 살께요...

 

 

사랑해요 아버님! 
★★★★★★



잘난자식, 못난자식                             

            


 

 


저녁 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님이 물었다.


"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거유..? "
" 가긴 어딜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아버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그래, 내일은 무얼 할 꺼유? "
" 하긴 무얼해? 고추모나 심어야지! "


" 내일이 무슨 날인지나 아시우? "
" 날은 무신 날 !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 "


"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창식이, 창길이는 벌써 왔습디다 ... "


" ............... "


아버님은 아무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다른 집 자식들은 철 되고 때 되면 다들 찾아 오는데 우리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 "


어머님은 긴 한숨을 몰아쉬며 푸념을 하셨다.

"오지도 않는 자식놈들 얘긴 왜해"
"왜 하긴? 하도 서운해서 그러지요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 "

 

"어험 ~ "

아버님는 할말이 없으니 헛기침만 하셨다.

" 세상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 ...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 자식 잘못기른 내죄지 내죄야 ! "
어머님은 밥상을 치우시며 푸념아닌 푸념을 하였다.

"어험, 안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 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 "
아버님은 어머님의 푸념이 듣기 싫으신지 휭하니 밖으로 나가셨다.

다음날 어버이날이 밝았다.


조용하던 마을에 아침부터 
이집저집 승용차가 들락 거렸다.

" 아니 이 양반이 아침밥도 안 드시고 어딜가셨나? 고추모를 심겠다더니 비닐하우스에 고추모도 안뽑고 ..."

어머님은 이곳 저곳 아버님을 찾아봐도 간곳이 없었다.

혹시 광에서 무얼하고 계신가? 광문을 열고 들어 가셨다.

거기엔 바리바리 싸놓은 낯설은 봇다리가 2개 있었다.

봇다리를 풀어보니 참기름 한병에 고추가루 한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큰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걸 알고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또 다른 봇다리를 풀자 거기에도 참기름 한병에 고추가루 1봉지 민들레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작은 아들이 늘 간이 안좋아 고생하는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셨다. 

어머님은 그걸 보시고 눈시울이 붉어 졌다.
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는지 ...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 산엘 가야 하는데 언제 높은산을 다녀 왔는지 ... 
요즘엔 민들레도 구하기 힘들어 며칠을 캐야 저 만치 되는데 ..


어젠 하루종일 안 보이시더니 
읍내에 나가 참기름을 짜오셨던 것이다.

자식놈들이 이 마음을 알려는지 ...
어머님은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동네어귀 장승백이에 아버님이 홀로 앉아 계셨다.

구부러진 허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저 멀리 동네 입구만 바라보고 계셨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침이를 뚝 떼고
" 아니 여기서 뭘 하시우? 고추모는 안 뽑구? 청승 떨지말구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오던 자식놈들이 금년이라구 오겠수?"

어머님이 손을 잡고 이끌자 그제서야 아버님은 못이기는 척 일어 나셨다.

"오늘 날씨 왜 이리 좋은기여? 어서 가서 아침먹고 고추모나 심읍시다 "


" ........... "


아버님은 아무 말없이 따라 오면서도 자꾸 동네어귀만 처다 보셨다.


" 없는 자식복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다우? 
그냥 없는듯 잊고 삽시다 "


" 험험 ... "
헛기침을 하며 따라오는 아버님이 애처로워 보였다.

집에 돌아와 아들오면 잡아주려고 애지중지 길러왔던 씨암닭을 보고


" 오늘은 어버이날이니 우리둘이 씨 암닭이나 잡아 먹읍시다.

꺼짖거 아끼면 무얼하겠수? 자식복두 없는데 .... "


" ............ "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오늘은 고추모고 뭐고 그냥 하루 편히 쉽시다 괜히 마음도 안좋은데 억지로 일하다 병나면 큰일 아니우?

다른 집들은 아들 딸들이 와서 좋은 음식점에 외식이다 뭐다 하는데 우린 씨암닭 잡아 술이나 한잔 합시다 "

" 험험 ... "


그때였다. 아침상을 마주하고 한술 뜨려 하는데


" 아브이 어므이~ " 하면서 재넘어 
막내 딸과 사위가 들이 닥쳤다.

어렸을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저는 딸이라 늘 구박만 주었던 딸인데

사위랑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들어 왔다.

깜짝 놀라며

"아니 니가 어떻게 ... " 제 몸하나 잘 가누지 못하는 니가 어떻게 왔니? "


" 어므이 아브이! 오늘 어브이날 이라 왔어 아브이 좋아하는 쑥 버므리 떡 해가지고 왔어 "
그러면서 아직 따끈따끈한 쑥버므리떡을 내 놓는것이 아닌가.

"아니 이 아침에 어떻게 이 떡을 만들었니? "
" 저이하고 나하구 오늘 새벽부터 만들었어 
맛이 있을런지 몰라 히히 " 

" 이보게! 박서방 !! 어떻게 된 건가? "
" 네 ! 장모님 저사람이 어제부터 난리를 첬어요 장인 어른께서 쑥버므리떡 좋아하신다고

쑥 뜯으러 가자고 난리를 치고 또 밤새 울거내고 새벽부터 만들었어요 "

" 그랬구나 !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왔어? 천천히 오지..? "
" 저 사람이 쑥 버므리떡은 따끈할때 먹어야 맛있다고 식기 전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고 뛰다시피해서 가지고 왔어유.. "

" 에이구 몸도 성치않은 자식인데 ... "
소아마비로 인해 딸이 몸이 성치 않아 몇 년 전 한쪽 다리가 불구인 사위를 얻어 시집을 보냈던 딸이었다.

언제나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자리했던 딸이었기에 그저 두 내외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느사이 어머님의 눈가엔 눈물이 배어 나왔다.

" 참! 아브이 어므이 이거!! "하면서 카네이션 두송이를 꺼내어 내미는 거였다.


"저이가 어제 장터에 가서 사왔어! 이쁘지? 히히"
" 내가 달아 드릴께 ! "
하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었다

"아브이 어므이 오래오래 살아야돼 ! 알았지? 히히 "
" 그래 알았다 오래 살으마 !!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박서방 정말 고맙네 ! "


" 아니에요 장모님 !! 두분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유 "

" 그려 그려 정말 고맙네 !! "
" 아브이 어므이 어서 이 쑥떡 먹어봐 
맛이 어떨런지 몰라 히히 "

" 그래 알았다 "
아버님과 어머님은 쑥 버므리떡을 입에 넣으며 목젖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눈가엔 눈시울이 붉어 졌지만 애써 참으며 " 그래 참 맛있구나 !
이렇게 맛있는 쑥떡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


" 흠흠 으응 .... "

아버님은 목이메어 더이상 말을 하지 못하셨다.


" 참! 술 술 ... "
사위가 잊었다는듯 보따리에서 술병을 꺼냈다.

" 이거 아브이 어므이 드린다구 박서방이 산에서 캔 산삼주야.

작년에 산에갔다 캤는데 팔자구 해두 장인어른 드린다고 안팔구 술 담은 거야 "

" 박서방이 귀한 산삼을 캤구먼 "
" 네! 작년에 매봉산에서 한뿌리 캤시유 "
" 에구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 "


산삼주를 받아든 아버님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평생 홀아비로 늙어갈 몸인데 저렇게 이쁜 색시를 주셔서 넘 고마워유"

" 무슨 소린가? 몸도 성치않는 자식을 받아준 자네가 고맙지!! "
" 아녀유, 저한테는 과분한 색시구먼유 "
" 그려 그려 앞으로도 못난 자식 잘 부탁하네.. "

" 장인장모님오래오래 사세유 "
아버님은 눈시울이 뜨거워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 나가셨다.

병신 자식이라 불쌍하게만 여겼지 아들처럼 공부도 안시키고 결혼식도 안올리고

그냥 시집을 보낸 딸자식이었는데 ...


그저 시집보냈으니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안쓰던 그 자식이 어버이날이라고

이렇게 불쑥 찾아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을 밤을 새워가며 해가지고 올 줄이야.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떡을 먹어 본 적이 있었던가?

무엇이든 아들 형제만 주려고 생각했지. 병신 딸은 언제나 안중에 없었다.


행여 병신 자식이라고 업신 여겼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불구의 몸이지만 딸의 마음이 저렇게 속 깊은 줄 이제서야 알았다.


아들들 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이 딸로 인해 풀어졌다.

먼 아들보다 가까운 딸자식이 소중한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그러면서 가슴 저 깊은곳이 아려 왔다.

정말 딸자식이 고마웠다.

아니 많이 미안했다.

한참 뒤 밖에서 씨 암닭 잡는 소리가 들렸다.
잘난 자식들 줄려고 키웠는데 못난 딸자식이 효자구나!...


 

 

어린왕자의들꽃사랑마을

  



걸인과 창녀와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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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과 창녀와 천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30여 년을 길에서
구걸하며 살아온 걸인 총각은
어린 시절 집에서
내쫓긴 선천성 뇌성마비 환자이다.

그는 정확히 듣고
 생각하기는 해도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걸 이외에는
 어떤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번화가 길목에 앉아서
하루 구걸한 돈이 4-5만 원은 되지만
그의 허기진 배는 채울 길이 없다.

음식점 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쫓겨나기 때문이다.
구걸이 아니라
당당한 손님으로 돈을 내겠다 해도
모든 식당들은 그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온 몸이 떨리고
뒤틀려 수저로 음식을 먹어도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밥이 더 많아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어
영업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토록 문전박대를 당해
 서럽고 배고픈 그는
예수의 기적을 염원하면서
성경 한 권을 다 외우기도 했다.

그는 30년 간 성당 주변을
떠나본 적이 없는
진실한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두터운 신앙심도
육체의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한 평생 처음 듣는
이 아름다운 말에 창녀는 감격했다.
그 감격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
눈물을 흘리며
 창녀는 걸인에게 말했다.
"창녀를 천사라고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천사입니다.."
 
둘은 서로 고백했다.
"나의 천사..."

드디어 두 사람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많은 축하객들의 감동과
눈물과 축복 속에서...
그들은 지금 아담한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고 있다.
걸인은 이제는
 문전박대를 당하지도 않고
게다가 매일 밥을
먹여주는 아내가 있기에
" 이 세상은 에덴동산이"라고 찬양한다.

창녀였던 아내도
 이제는 갖은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살 수 있고
남성들을 저주하지 안고
 진심으로 한 남성을
 사랑할 수 있어서
매일 매일을 "축복으로 살아간다"고 기뻐했다.


친절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 언제나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친절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
 
명문 존스 홉킨스의대 창설멤버인
하워드 켈리(1858-1943년)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청년시절 방문판매를 하며 배 고퍼 던 때
어린 소녀로부터 우유 한 잔을 받아먹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소녀에게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까 물었습니다
소녀는 대답하기를 엄마는 친절은 베풀면서 돈을 받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후 우유를 준 소녀는 중병을 얻게 되었고
마침 그 유명한 의사인 하워드 켈리가 치료를 했다
막대한 청구 비에는 한 잔의 우유로 모두 지불되었음
(Paid in full with one glass of milk)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무심코 아주 작은 일에 고마움을 표시 한 것이
의외로 큰 보답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마트에서 산 물건을 배달 받곤 합니다
그런 때 마다 집사람은 택배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 한 후
야구루트를 건 내곤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는 감사한 마음의 전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던 간 자선을 베풀 기회가 찾아오지만
이를 행하기에 익숙지 않습니다

한 편 거리의 노숙자에게 잔돈을 탈탈 털어준
사라(Sarah Darling)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사라는 거리에서 구걸하던 노숙자
빌리(Billy Ray Harris)를 보고 그에게 적선을 했습니다
동전 지갑을 열어 그 안에 있던 동전을
그의 앞에 놓인 겁 아래 모두 쏟아 주었습니다
몇 시간 뒤 집에 돌아온 사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습니다
동전지갑에 넣어둔 약혼반지까지
빌리에게 모두 털어준 것입니다
당황한 그녀는 급히 차를 몰고 빌리에게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습니다
노숙자 빌리에게는 2013년을 잊지 못합니다
비록 누추한 차림의 노숙자였지만
누구보다 선한 마음을 가진 빌리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반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빌리는 보석 가게에 갔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컵에 들어온 반지를 보고는
진짜인지 궁금한 마음에서였죠
보석가게 주인의 말을 들은 그는 깜짝 놀랍니다
그가 받은 반지가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 엇다
그리고 가게 주인을 그 자리에서
4,000달러(약 480만 원)을 줄 테니 반지를 팔라고 말 했습니다
빌리는 순간 갈등했습니다
그 돈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한 거리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던 그는
결국 반지를 돌려받고 가게를 떠났습니다
다음 날 사라는 조급한 마음으로 다시 빌리를 찾았습니다
빌리는 그곳에 있었죠
사라는 초조하게 그에게 다가가 자신을 기억하는지 물었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빌리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사라에게 주었습니다
사라와 그녀의 남자 친구는
정직한 빌리에게 크게 감동을 받았고
곧 빌리를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마다하고
반지를 돌려준 한 노숙자의 사연은
금세 화제가 되어
잔잔하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모금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무려 2억 3천만 원 이라는 큰돈이 모였고
빌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언론의 도움으로 빌리는
16년 동안 연락이 끊긴 형제들과도 재회 했습니다
이같이 아름다운 선행은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아내리게 합니다
비록 거리를 전전하던 노숙자였지만
빌리는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매우 멋진 분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것에서 산교육을 얻곤 합니다
그래, 이런 것들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더라도
마음만이라도 선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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