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춰서 잡는 직접파괴 방식 `패트리어트 PAC-3`
▲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발사 장면
현재 한반도를 탄도미사일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유일한 미사일 방어체계는 PAC-2와 PAC-3이다. 특히 PAC-3는 뛰어난 탄도탄 요격능력을 자랑하면서 저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중추로 활약하고 있다. PAC-2와 PAC-3는 어떻게 다를까?
PAC-1과 PAC-2로 개량된 패트리어트
걸프전에 앞서 미국이 내세운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패트리어트였다. MIM-104A 패트리어트는 원래 육군의 지대공 미사일인 호크를 대체하기 위해 1983년부터 일선 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즉 A형은 애초부터 적군의 항공기를 잡기 위해 등장한 대공 미사일이었다.
그런데 패트리어트는 발사 후 12초 내에 마하5의 속력에 이를 만큼 우수한 성능을 자랑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소프트웨어만 바꿔도 이 패트리어트로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개발한 것이 MIM-104B PAC-1이었다.
PAC-1에서 PAC은 PATRIOT Anti-tactical Missile Capability(패트리어트 전술탄도탄 대응능력)를 뜻했다. PAC-1은 SS-12M, SS-21, 또는 SS-23 등 유럽에 전진 배치된 소련의 전술탄도탄에 대항하는 것을 목표로, 하드웨어 자체의 개량 없이 기존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소프트웨어만 변경하여 개발되었다. PAC-1은 1986년 9월 랜스 전술미사일의 요격에 성공하면서 능력을 입증했다. 미군은 1988년부터 PAC-1을 유럽 전선에 배치했다.
한편 1987년부터 하드웨어도 개량한 MIM-104C PAC-2가 등장했다. PAC-2부터는 PATRIOT Advanced Capability(패트리어트 능력 향상)-2로 불렸다. 이 버전에서는 탄두설계를 바꾸고, 레이더 해상도를 높였으며, GPS 기술을 내장하고, 빠른 표적을 처리하기 위해 근접신관1)을 개량했다. PAC-2는 개발되자마자 사막의 방패 작전에 투입된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1990년 8월 중동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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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C-2는 발사대 하나당 4발이 탑재된다. <출처: (cc) Darkone at Wikimedia.org>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할 당시에는 PAC-2가 전 미군을 통틀어 3발뿐이었지만 신속한 생산이 이뤄져, 스커드 미사일을 최초로 요격한 1991년 1월에 이르러서는 480여 발의 PAC-2를 보유할 수 있었다. 걸프전 당시 미군은 90여 개의 포대에서 159발의 PAC-2를 발사했다. 이라크군이 발사한 스커드와 알후세인 미사일은 모두 80여 발로 PAC-2는 그중 44발에 대한 요격에 나섰다. 지역별로는 이스라엘에서 16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8회의 요격이 이뤄졌다.
PAC-2의 명중률 논란
1991년 패트리어트 PAC-2 미사일의 활약은 CNN 등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미사일 잡는 미사일인 패트리어트의 능력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 1991년 3월 미군은 발사된 스커드와 알후세인 47발 가운데 45발을 PAC-2가 명중시켰다면서 96%의 요격률을 자랑했고 이 수치는 그대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1991년 5월 미군이 각각의 요격을 면밀히 확인한 끝에 요격률이 69%로 정정되었고, 1992년 4월에 엄격한 분석의 틀을 적용한 결과 다시 59%로 정정되었다. 정확한 요격 형태와 대수는 비밀로 분류되어 있지만, 여러 정부 보고서를 종합해 보면 미 육군은 44발 가운데 26발을 요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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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있다. <출처: (cc) http://www.flickr.com/people/69061470@N05 at Wikimedia.org>
그러나 미 정부회계국(GAO)은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GAO는 보고서(NSIAD-92-340)를 통해 PAC-2가 날아오는 미사일을 명백히 자기 힘으로 파괴한 것은 44발 중 4발에 불과해 요격률이 9%에 불과하며, 16%인 7발은 PAC-2에 의해 파괴된 것이 맞는지 뒷받침할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GAO의 보고서는 PAC-2가 부정확하다기보다 명백한 데이터로 요격률을 입증하라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이는 명중률과 요격률의 차이에 기인한 문제로 볼 수 있다. 미 육군은 PAC-2가 목표물을 맞힌 명중률만을 계산했지만, 실제로는 명중하고도 미사일이 계속 날아와 피해를 입힌 사례가 있었다. 따라서 명중하여 탄도탄을 무력화시킨 요격률을 계산했어야 한다는 것이 GAO의 주장이었다.
PAC-2가 여타의 이라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한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PAC-2가 요격은커녕 명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이라크의 미사일들이 상당수 패트리어트의 요격 범위에 들어오기도 전에 스스로 공중분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패트리어트는 그 분해된 파편들을 명중시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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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프전 당시 패트리어트에 요격된 스커드 미사일의 잔해 <출처: (cc) Darkone at Wikimedia.org>
파괴하지 못했다고 해서 방어의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미사일들은 PAC-2에 맞아 비행 방향이 꺾이면서 엉뚱한 곳에 떨어졌고, 일부는 패트리어트와 충돌하는 바람에 기폭장치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터지지 않았다. 실제로 PAC-2가 명중시키고 인명피해를 끼치지 않은 미사일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발로 약 70%, 이스라엘에서 6발로 약 40%의 명중률을 보인 셈이다.
그러나 PAC-2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PAC-2는 애초에 미사일 요격을 위해 만들어진 미사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PAC-2는 직격파괴(Hit-to-Kill) 방식이 아니라 천여 개의 파편을 뿌려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식이므로 탄도탄 전용 요격 미사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힛-투-킬, 맞춰서 잡는다
사실 미사일 방어를 위한 본격적인 노력은 PAC-1/2 말고도 별도의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바로 ERINT(Extended Range Interceptor Technology) 사업이다. ERINT는 미국이 1983년에 시작한 전략방위구상의 일환으로 진행된 사업이다. ERINT가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의 미사일 방어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미국이 1970년대까지 추진해온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세이프가드에서는 스파르탄과 스프린트 미사일을 핵폭발시켜 적의 핵미사일을 막는다는 무시무시한 개념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배척고도에서 폭발하더라도 EMP2) 등 핵이 몰고올 피해를 감안하면 핵에 의한 요격은 정답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세이프가드 시스템은 1976년 중단되었다.
미국은 1976년부터 핵탄두를 사용하지 않는 요격 미사일의 개발에 집중했다. 과거 핵폭발을 이용한 요격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그리하여 1980년 초에 이르러서는 미사일을 직접 미사일에 충돌시켜 요격할 수 있는 센서와 유도기술이 모두 확보되었다.
- ▲ 최초의 직격파괴 요격에 성공한 HOE 발사체 <출처: 록히드마틴
이에 따라 최초의 힛-투-킬(Hit-to-Kill, HTK), 즉 직격파괴 방식의 요격을 하는 호밍오버레이 실험(Homing Overlay Experiment, HOE)이 1983년부터 실시되었다. 미니트맨 미사일을 HOE 발사체가 요격한 이 실험은 3차례 실패한 이후 1984년 6월 10일 마지막 시험 발사에서 드디어 성공했다.
직격파괴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연구로는 1983년부터 시작된 FLAGE(Flexible Lightweight Agile Guided Experiment) 사업이 있었다. 1987년 5월 21일 7번째 시험 비행에서 FLAGE 발사체가 표적인 랜스 미사일을 4.8km 상공에서 요격함으로써 FLAGE 시험은 성공리에 종료되었다. 저고도/단거리에서도 총알로 총알을 잡는 기술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보다 실전적인 발사체 개발이 시작되었다. 바로 ERINT 사업이다.
▲ ERINT의 모체인 FLAGE 발사체의 시험 발사 장면 <출처: 미 육군>
ERINT에는 조정날개와 고도 제어 로켓모터들이 장착되어, 고도와 사거리가 증대되었다. FLAGE 발사체에는 기동을 위한 자세 제어용 추력기(Attitude Control Motor)로 초소형 로켓모터가 무려 216개나 장착되었지만 ERINT에서는 180개로 줄었다. 또한 유도를 위해 밀리미터파를 사용하는 Ka밴드의 펄스도플러 레이더 시커(Seeker)가 장착되었다.
ERINT 미사일은 1992년 첫 시험비행을 시작해 1993년 11월 30일 스톰 재돌입체 표적을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ERINT는 1994년 2월 반복된 실험에서 또 다시 미사일 표적을 명중시켰으며, 6월에는 항공기 표적을 격추시킴으로써 가능성을 입증하고 개념 실증을 끝냈다.
ERINT에서 PAC-3로
ERINT가 개발되자 미 육군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ERINT 외에도 탄도 미사일 요격임무를 위한 PAC-2 개량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PAC-2 미사일은 마틴마리에타3)를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 중이었고, ERINT는 FLAGE 사업을 추진하던 LTV 로랄시스템(록히드마틴이 인수)이 개발하고 있었다.
냉전시절 같으면야 둘 다 개발했겠지만, 이제 둘 중 하나를 PAC-3로 선정하여 탄도탄 요격시스템으로 채용해야만 했다. 미 육군 획득검토위원회(Army Systems Acquisition Review Council)는 HTK 방식의 탄도탄 요격능력이 더 확실하다고 판단해, 1994년 2월 ERINT를 MIM-104F PAC-3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패트리어트 개발국과 ERINT 개발국도 하나로 통합되었다.
ERINT를 PAC-3로 선정했다 해서 개발이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ERINT를 패트리어트의 시스템과 통합해 실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이에 따라 미국 국방획득위원회(Defense Authorization Board)는 PAC-3의 기술 및 제작개발(EMD) 단계를 실행하도록 승인하고 미사일 90발을 생산하도록 결정했다. 그리하여 PAC-3 미사일의 개발은 로랄시스템이, PAC-3를 패트리어트 체계로 통합하는 작업은 원래 주 계약자인 레이시온이 담당하게 되었다.
PAC-3는 PAC-2에 비해 미사일이 절반 크기이기 때문에 PAC-2 발사기 1개에 PAC-3 미사일 4발이 들어갈 수 있었다. 핵심은 PAC-3 미사일을 어떻게 기존의 PAC-2 포대에 통합시키느냐였다. 이를 위해 패트리어트는 PAC-2 시스템에서 PAC-3로 한 단계 진화했다. 우선 1995년 12월 등장한 것이 PAC-3/Conf.1(Configuration 1)이었다.
PAC-3/Conf.1은 MIN-104D PAC-2/GEM(Guidance Enhanced Missile, 유도 성능 개량탄)을 운용하는 PAC-3 시스템이다. 1998년에는 PAC-3/Conf.2가 등장했는데, 레이더와 통신장비 등 대부분의 장비들이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PAC-3/Conf.3부터는 드디어 MIM-104F PAC-3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AN/MPQ-65 레이더와 통합되었다.
PAC-3/Conf.3는 이후 일련의 시험평가를 거친 뒤 2000년 3월 제108방공포병여단에 배치되었으며, 양산형 PAC-3 시스템으로서 2001년 9월부터 배치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차 저율생산으로 32발, 2차로 40발, 3차로 72발이 발주되었다.
PAC-3, 실전에 투입되다
PAC-3의 시험평가는 1997년 9월 29일부터 시작되었다. 첫 2번의 시험발사는 시커(Seeker) 없이 이루어진 비행특성의 평가였다. 1999년 3월 15일 세 번째 시험발사에서 PAC-3는 헤라 탄도탄 재돌입체 표적을 명중시키면서 직격파괴 능력을 입증했다. 네 번째 발사에서는 PAC-3와 PAC-2를 동시에 발사하여 교전하는 데 성공했고, 2002년의 다섯 번째 발사에서는 원격에 위치한 패트리어트 발사대로 요격 지령을 내려 MBRV-2 표적을 파괴했다.
이렇듯 일련의 검증 과정을 마친 PAC-3는 2002년 8월에 실전에 투입되도록 허락받았다. PAC-3 포대는 2002년 11월 쿠웨이트에 배치되면서 최초로 해외파병을 기록했다. PAC-3는 배치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실전에 투입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이 시작되자 이라크군은 개전 당일부터 미군에 대한 탄도탄 공격을 감행했다. 2003년 3월 20일 9시 24분 첫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목표는 제101공수사단이 전개한 지역이었다.
이라크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인 DDG-76 히긴스(USS Higgins)함이 제일 먼저 탐지했고, 곧바로 해당 지역의 PAC-3 포대로 정보가 전송되었다. PAC-3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했다. 10시 30분에는 이라크군이 두 번째 탄도미사일을 쿠웨이트의 미군기지인 캠프 도하를 향해 날렸다. 방어를 담당한 PAC-3는 교범에 따라 2발을 발사하여 목표지점 약 5km 전방에서 요격에 성공했다.
한편 저녁이 되자 이라크군은 알바스라 서부에서 아바빌-100 탄도미사일로 공격을 시작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발사에서 미사일들은 목표지점에 닿지 못하고 사막에 추락했다. 다섯 번째 발사에서 아바빌이 미군의 캠프 우다리로 날아들자, GEM과 PAC-2가 각각 1발씩 발사되어 요격에 성공했다.
3월 21일과 25일에는 쿠웨이트군의 PAC-2 GEM이 또 다시 아바빌-100의 요격에 성공했다. 3월 24일에는 캠프 버지니아를 향해 발사된 아바빌-100을 미군의 GEM+ 3발이 성공적으로 요격했다.
3월 27일 08시 31분에는 이라크군의 알사무드 미사일이 발사되어 연합군 사령부를 명중시킬 뻔했으나, 미군과 쿠웨이트군의 PAC-2 GEM 포대에서 동시에 2발씩 사격하여 무력화시켰다. 4월 1일이 되자 이라크군은 이제 이라크 내부로 진격하는 미군을 향해 탄도미사일 공격을 시작했다. 물론 이런 상황을 대비해 PAC-3 포대가 같이 이동하고 있었다. 새벽 06시에 이라크군이 알사무드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미군은 PAC-3 2발로 이를 요격했다.
이라크군은 전쟁 기간을 통틀어 모두 11발을 발사했으나 실제 위협이 된 것은 8번이었으며 모두 패트리어트 포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PAC-2는 GEM 개량을 통해 1991년 걸프전의 오명을 깨끗이 씻었고, PAC-3는 실전 배치와 거의 동시에 전투에 투입되어 우수한 성능을 입증했다.
PAC-3에서 MSE로의 진화
PAC-3의 진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 2004년에는 PAC-3 CRI(Cost Reduction Initiative 비용절감형)가 등장했다. CRI는 신뢰성은 향상시키면서 생산가는 낮추어 안정적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든 모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PAC-3만으로는 탄도미사일의 위협을 충분히 막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유럽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이란의 미사일 위협, 근본적으로는 러시아의 미사일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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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트리어트 성능개량형 MSE 시험 발사 영상(화이트 샌즈 미사일 시험장)
이에 따라 독일은 자국의 패트리어트 PAC-2 포대를, 이탈리아는 낡은 나이키-허큘리스 포대를 교체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미국-독일-이탈리아가 합작으로 중거리 방공 시스템인 MEADS(Medium Extended Air Defense System) 사업을 시작했다. 이 MEADS에서 요격 임무를 수행하는 미사일이 바로 PAC-3가 되는데, MEADS에서는 기존의 것보다 더 긴 사거리의 미사일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PAC-3 MSE(Missile Segment Enhancement, 미사일 성능개량형)가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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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항공자위대의PAC-3 <출처: (cc) Hunini at Wikimedia.org>
PAC-3 MSE 사업의 핵심은 미사일의 사거리와 고도를 늘리는 것이었다. 비행성능 향상을 위해 MSE에서는 PAC-3 CRI를 개량하여 새로운 디자인의 날개와 함께 이중 추진이 가능한 신형 에어로젯 로켓모터가 장착되었다. 이에 따라 사거리와 고도가 50% 이상 증가되었다.
PAC-3가 약 20여 km의 고도로 요격이 가능했다면 MSE는 최대 40km 가까운 고도까지 요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다. MSE는 2008년 6월에 첫 시험발사를 한 뒤 2013년에는 2차례의 시험발사를 통해 실전능력을 입증했다. MSE는 2014년부터 양산되어 2015년부터 미 육군에 배치되고 있다.
한반도와 패트리어트
한국에 최초로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것은 1994년 주한미군이 PAC-2 1개 포대를 도입하면서부터였다. 2004년에는 제35방공포병여단이 한국으로 전진 배치될 때 PAC-3가 함께 오면서 2개의 패트리어트 포대를 통제하고 있다. 한편 북한이 4차 핵실험과 무수단 발사 등으로 긴장을 조성하자, 주한미군은 올해 2월 PAC-3 포대를 증강시켰으며, 7월에는 일본에 배치된 PAC-3 포대를 한국으로 증원시키는 훈련까지 실시했다.
이에 더하여 주한미군은 2017년부터 PAC-3 MSE도 도입할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7년에 40~150km의 고도를 요격할 수 있는 사드(THAAD)까지 배치되면, 주한미군은 사드→PAC-3 MSE→패트리어트 PAC-3로 이어지는 3단계의 미사일 방어망을 갖추게 된다.
우리 군도 패트리어트를 보유하고 있다. 원래는 SAM-X 사업4)을 통해 1990년대 중반부터 PAC-3 도입을 준비했으나 IMF로 인해 계획이 좌절되었다. 이후 미사일 방어는 주한미군의 패트리어트 이외에 마땅한 전력이 없이 2006년 KAMD5) 계획을 준비하는 동시에 패트리어트 도입을 추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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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MPQ-53 레이더 <출처: (cc) Tokoro_ten at Wikimedia.org>
이에 따라 2010년 독일연방군으로부터 패트리어트 PAC-2 2개 대대분을 도입했다. 그러나 수입한 기종으로는 충분한 탄도탄 요격 능력을 보장할 수 없어 2012년에 기존의 포대를 PAC-3/Conf.2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했고, 또 다시 PAC-3/Conf.3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할 전망이다. 이렇게 Conf.3 사양이 되려면 MPQ-53 레이더를 MPQ-65 레이더로 교체하게 되며, PAC-3 ERINT 미사일만 구매하면 기존의 포대를 그대로 PAC-3 포대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근접신관식보다는 직격파괴의 HTK 방식이어야 확실한 탄도미사일 방어가 가능하며, 따라서 2014년에 우리 정부는 PAC-3 포대를 정식으로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의 PAC-3 포대는 다른 나라들처럼 PAC-3 CRI와 MSE가 혼합된 형식으로 운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PAC-3가 도입되고 PAC-2가 개량되면 우리의 미사일 방어능력은 과거보다 충분히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미사일 방어능력은 단순히 방패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군은 북한이 감히 도발을 못하도록 미사일 방어 외에도 정밀타격능력과 적 지휘부 제거능력 등 다양한 공세능력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주석
1) 포탄·유도탄 등의 탄두에 결합하여 일정한 거리에 접근하면 자동으로 폭발하는 신관
2) 핵폭발로 생기는 전자기 충격파
3) 1995년 록히드와 마틴마리에타의 합병으로 현재의 록히드마틴이 탄생함
4) 한국의 차세대 지대공미사일(SAM) 도입 사업
5)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