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의 기도/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야훼는 네게 복 주시고 지키시기 원하면”
제사장 선포통해 이스라엘에 복 주신 하나님
우리도 하나님이 은혜의 수여자이심 인정해야


 아론과 그의 자손들인 대제사장의 삼중 축복 기도가 민수기 6장 22∼27절에 언급되어 있다. 민수기는 시내광야에서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처한 삶의 자리는 광야로서 뱀과 전갈이 돌아다니고, 먹을 것과 마실 물도 없는 공포의 땅이다. 그러나 광야의 여행이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야훼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아론의 삼중 축복은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의 힘이요, 담대함의 기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은혜로 왕 같은 제사장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사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열어놓으신 지성소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이 된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예수 안에서 아론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서로에게 선포하며 힘과 용기와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대제사장 아론의 삼중축복은 첫째로 “야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는 기도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자녀와 재산, 땅, 건강, 그의 임재라는 복을 주신다(창 17:16; 22:17∼18; 레 26:3∼13; 신 28:2∼14). 나아가 이러한 좋은 선물뿐 아니라 모든 위험에서 그를 보호하게 하시고(욥 1:10), 각종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지켜주신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야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네게 비추신다는 비유는 ‘하나님은 빛이시다’는 말씀과 부합된다(시 31:16; 67:1). 그는 곤경에 빠진 백성들을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살피시며, 은혜를 베푸사 대적과 질병과 죄에서 건져 주신다(시 4:1; 6:2; 51:1). 어려운 사람을 보고 얼굴을 돌리는 것처럼 그에게 실망과 낙심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곤고한 인생을 감찰하시고 긍휼히 여기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의 얼굴을 돌리지 않도록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앙망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축복해주어야 한다.

 셋째로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한다.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든다는 말은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뜻이다(창 43:29; 시 4:6).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평강이다. 그것은 전쟁과 소요가 없는 평화의 상태뿐 아니라 풍요와 건강, 번영, 구원 등으로 가득한 상태이다. 하나님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총체적인 은혜의 수여자이시다.

 아론의 축복 기도는 모두 세 구절, 15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세 구절은 각각 3단어, 5단어, 7단어로 점층적으로 많아져서 축복이 강조되고 깊어지고 있다. 또한 구절마다 야훼 이름이 한 번씩 들어 있어서 모두 세 번 언급되고 있는데, 야훼 이름이 주어로서 한번만 언급되면 충분하지만 굳이 세 번을 반복한 것은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야훼 이름을 빼면 12단어가 남는다. 이는 복을 받는 사람이 12지파임을 상징한다. 복은 결코 사람인 제사장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 그러므로 제사장에게 매달려도 안 되고, 복 자체에 매달려서도 안 된다. 오직 복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야훼의 복주심이 아론과 그 아들들로 대표되는 제사장들을 통해 전해지게 된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선포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러한 축복은 아론의 머리에 있는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적시는 것과 같다(시 133:2). 오늘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인 그리스도인의 축복된 생각과 꿈과 믿음, 특히 축복의 말의 선포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나아가서 아론의 삼중적 축복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의 백성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론의 축복 기도는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의 마지막에 주어지는 축도와 연관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의 종의 축도가 선포될 때 온전히 예배가 마무리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복과 마음의 복과 물질적 복을 주시는 것이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영훈목사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세기 17장 1~7절)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었고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이었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1. 전능하신 하나님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분명히 75세 때 “너의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말씀을 주셨는데 24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99세니까 인간적으로는 아이를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마음 한 편으로는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전능한 하나님이라.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어떠한 문제도 인간이 해결하지 못함에도 나는 해결할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 한마디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절망이 떠나가고 희망이 넘쳐나며, 슬픔이 떠나가고 기쁨이 넘쳐나며,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과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갈 때 광야에서 40년을 그들이 지나면서 광야를 돌고 돌아 가나안 입구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것을 다 공급해주셨습니다. 낮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쬘 때 시원한 구름기둥으로 그 뜨거운 태양빛을 막아주시고 밤에 온도가 떨어지면 불기둥으로 저들을 덮어주셔서 저들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셨습니다. 목이 마를 때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만들어주시고, 굶주렸을 때 아침에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게 하시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바다에서 바람을 불어 수많은 메추라기 떼가 그 이스라엘 진영에 쏟아지게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문제가 많은 것 같고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때에 이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셔서 그곳에 모인 모든 군중이 굶주리고 배고팠습니다. 얼마나 말씀에 은혜가 되었던지 하루 종일 말씀 들으면서 배고픈 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말씀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쯤 돼서 “아이고 배고파.” 그들이 허기진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저들을 불쌍히 보셨습니다.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계산이 빠른 빌립이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6장 7절입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그러나 안드레는 여기 먹을 것 갖고 온 사람이 없냐고 물어보러 나갔을 때 한 소년으로부터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가져왔습니다. 이 소년이 바친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나눠주시니 떡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그래서 거기에 모인 남자 어른만 5천 명, 여자와 아이를 합치면 2만 명이 넘는 모든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고 기적을 행하시며 놀라운 은혜를 나타내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 때 이런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을 가지면 우리는 절대로 실수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된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니까.

 왜 도둑이 캄캄한 밤에 담을 넘습니까? 누가 안 볼 때 잠들었을 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CCTV는 다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안본다고 해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24시간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완전하게 행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행하기만 하면 절대로 이 나라는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디 있든지 간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영적인 지도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 길을 가는 야곱에게 이삭이 이와 같이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창세기 28장 3절, 4절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복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야곱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창세기 35장 11절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신약 학자인 제레마이어 존스톤 박사님의 간증입니다. 결혼을 했지만 5년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니까 “박사님 가정은 아이를 갖기 힘듭니다.” 라고 하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은 오지 않고 오히려 자기한테 기도 받은 불임증 부부는 아이를 갖고 낳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 낙심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뭘 잘못하였기에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까?”

 그때 묵상한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창세기 17장 아브라함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주신 깨달음을 그때 얻게 되었는데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징벌이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성경적이며, 신앙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사실 거의 25년간의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해야 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의 변화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동안에 일어났다. 그것은 그가 엘 샤다이,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뢰했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말씀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얼마 후 딸을 낳게 되었고, 3년 뒤에는 아들을 낳게 되었고, 4년 뒤에는 무려 세 쌍둥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다섯둥이의 아버지가 되었어요.

 전 저희 교회의 성도들이 다 다섯씩 낳았으면 좋겠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밖에 안 낳는데 우리는 다섯씩 낳아가지고 교회 부흥에도 기여하고, 민족 복음화에도 기여하고, 남북통일 될 때에도 남한의 절반은 예수를 믿고 있어야 되니까, 우리 순복음 교인들이 다섯씩만 낳으면 통일 시대에 큰 업적을 남길 줄 믿습니다.

이렇게 박사님은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아마 임신은 힘들 것 같네요.’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계속 믿음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계속 신뢰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릴 것이다!”


 2.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둘째로, 우리를 번성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창세기 17장 2절입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번성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성하고, 교육을 하는 사람은 그 가르치는 학생들이 번성하고,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우리 하시는 일을 통해서 번성케 하심을 말미암아 영광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6장 24절로 26절에 이와 같은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야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야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창세기 17장 6절입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그 족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 우리 필요한 것을 알고 채워주시기 때문에 다윗의 고백처럼 시편 23편 1절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될 때, 우리를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조건은 하나입니다. 말씀을 지켜 순종할 때 그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절로 6절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이 놀라운 복을 받아 누리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를 잘 믿는 가정에 그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당뇨병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 최수봉 장로님.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님이신데요. 6대째 믿음의 명문 가정입니다.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의사 집안입니다. 증조부, 조부, 다섯 형제, 부친, 장로님과 두 형제, 아들 내외가 다 의사고 일가친척이 대체로 의사 아니면 목사랍니다. 그런데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입니다. 증조부는 세브란스 의사이셨고, 조부는 전남에 ‘나산교회’를 세우고 그 유산을 전부 교회에 바쳤습니다. 장로님은 현재 충북 음성의 작은 개척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매주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부부와 세 아들이 있는데 첫째 내외가 서울의대 교수입니다. 어디 있든지 간에 그곳에서 같은 시간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절단하거나 죽는 환자를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이들을 살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당뇨병 환자를 위한 인슐린 펌프를 개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뇨병이 심한 그곳에 인슐린 펌프를 꽂고 있으면 수치가 떨어져서 다리를 절단하지도 않고 그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 전 세계 66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병원에서 치료할 때마다 꼭 환자를 위해서 기도를 한답니다. 한번은 스님이 입원했는데 기도를 안 해줬더니 왜 나는 기도를 안 해주냐고 그래서 기도를 해드렸더니 그분이 병 고침 받고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조부의 뜻을 따라서 교회를 여섯 개를 세웠는데요. 다문화가정, 결손가정을 돕고 의료선교 및 선교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고백합니다.
“제게 세상 어떤 것보다 값진 것은 집안 대대로 6대째 이어지고 있는 신앙의 유산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기쁘고, 하나님을 섬기니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록펠러가 4,928개의 교회를 지어 봉헌했다는데, 저는 5,000개를 짓겠다고 꿈을 크게 그리고 있습니다!”


 3.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우리를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이요, 셋째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7장 4절과 7절입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너는 이제부터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러한 믿음의 조상이 되어서 자자손손 복을 받을 것이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아직 자녀가 없었는데 하나님이 언약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시고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로마서 4장 20절, 21절은 설명합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창세기 17장 5절, 6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은 것입니다. 지금 99세로 아이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미 75세에 약속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을 보면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한번 믿음이 흔들렸어요, 85세 때. 나이는 늙어가고 자식을 안주시니 양자를 세우려고 했더니 그때 다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4절, 5절입니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장 6절은 말씀합니다.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늘을 보라! 저 많은 별들을 보라! 너의 자손이 저렇게 많은 별처럼 많아지리라.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굳게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1절, 1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축복은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28절, 29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길 원하십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의심치 아니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축복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병 고침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주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믿고 의지하고 나갈 때 반드시 우리에게 축복이 다가올 것입니다. 절대로 동요되지 말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17년 전에 용산에서 오빠와 같이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차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인해 타고 있던 차에 화재가 나고 그로 인해 전신 55%가 불에 탔던 이지선이라고 하는 자매가 있습니다. 이번에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동대학교 교수로 임용이 되게 됐는데 정말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너무나 몸도 아프고 마음도 괴롭고 슬퍼서 그 예쁘던 얼굴이 완전히 괴상한 인물처럼 바뀌어졌기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기도해주는 가운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지선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세상 가운데 세우리라! 아프고 병든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리라!”

 3년 동안 서른 번 이상의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 12월 달에 수술을 더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이와 같이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기대합니다. 지금은 상상치도 못할 일들이 앞으로도 펼쳐질 것입니다. 지금의 이 모습이 아니고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들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며, 이런 모습의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분명 제게 맡겨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살아 계십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지난 17년 동안 달려왔는데 이화대학을 졸업한 후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재활상담학 석사를 마치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를 마치고 UCLA 대학원에서 작년 6월 달에 사회복지학 박사를 받게 됩니다.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께 이렇게 간증합니다.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입니다. 들어가도 끝이 없고 더 어둡고 좁아지는 동굴이 아니라, 그 끝에서 환한 빛을 볼 수 있는 터널입니다. 주님 주신 선물 많이 받은 사람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잘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온몸의 55%가 불에 타서 살 가망이 없다고 하는 자매를 살려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이루어주시고 여러분의 삶을 번성케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잠시 어려워도 약속의 말씀 붙잡고 나아가면 반드시 모든 것을 다 바로 잡아주시고 우리 대한민국을 번성케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철저하게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러한 축복을 받을 자격도 없는데, 그냥 버림받아야 마땅한데 택하시고 구원해주셔서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한평생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심고 거두는 일/조용기목사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라기 38)

온전한 십일조 드리면 하늘 문 열고 복 부어주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

오늘 심고 거두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농부가 밭에 나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를 뿌려야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님이 열매를 맺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십일조를 인정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42절에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등한히 하지 말고, 공의로운 신앙생활을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는 구약에 했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안 해도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오히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을 할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6절로 7절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극진히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의 귀한 진리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으십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통해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417절로 20절에 보면 중동일대에는 작은 전쟁들이 늘 이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1000명 되어도 나라가 되었고, 2000, 3000명 국가에도 왕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곳에서 터를 닦고 사업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300여 명의 군인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조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났지만 그가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왕들이 전쟁을 해서 롯의 식구들이 다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사로잡히게 되니까 아브라함이 군대를 동원해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에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승승장구한 아브라함의 군대가 돌아오고 있는 중,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자신의 십일조를 준 것입니다. 전쟁에서 얻은 재물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의 조상이 가지고 있는 물질도 십일조는 하나님께 다 바쳤으니 우리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 내리시는 조건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신명기 1422절로 23절에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야훼 앞 곧 야훼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야훼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명기 1428절로 29절에도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 가지고 계신데 뭐 하러 십일조를 내라고 하시냐?” 그렇게 질문할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주고받는 관계가 십일조 관계가 뚜렷합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는 하늘 문을 열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 문을 연다면 어떻게 생각됩니까? 하늘에서 축복이 쏟아져 내려서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시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지금 사회가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일 천만에 가까운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하나님 문을 열고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무슨 종류의 축복을 주실지 그것은 하나님이 결정할 것인데 만나를 내려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신명기 2812절에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면, 하나님이 풍성한 축복과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복을 보면, 내가 너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메뚜기라고 황충이 하늘이 새카맣게 농토를 지나가면 푸른 농산물을 하나도 남는 것이 없어요. 다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뚜기 재앙이라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메뚜기 재앙을 없애버리면 곡식이 다 잘 자라서 크게 부요하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271절에 보면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워야 집이 세워지고, 지켜봐야 나라가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서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을 늘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또 잠언 39절로 10절에도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야훼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읽어보면 하나님 나라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것은 하나님이 원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헐벗고 굶주린 것 하나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흔들어서 눌러 넘치게 해서 안겨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은총과 복을 받고 그 은총과 복을 이웃에 나누어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신앙을 시험해 보는 것

  하나님은 십일조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시험해보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학개 28절에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야훼의 말이니라역대상 2912절에는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레위기 2730절에는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야훼의 것이니 야훼의 성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생명 자체가 하나님 것 아닙니까? 우리 생명이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능력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계신데 우리 자체가 하나님 소유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함으로 저주를 받는다고 주님께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것을 도적질함으로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37절로 9절에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십일조를 내지 아니하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을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복을 내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붓는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는데 따라서 그렇게 하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말라기 310절로 12절은 말씀합니다.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야훼의 말이니라

 우리가 신앙은 영적인 것으로 정신적인 것이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늘과 땅이 다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 눈에 안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서 눈에 보이는 만물이 만들어져 나왔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소리인 것입니다.

 

 3. 신앙의 진실함을 스스로 시험해 보라

 

 우리가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십일조를 드리면 축복을 주고, 안 드리면 축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싶으면 시험을 해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다른 것은 시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십일조에 대해서는 시험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자신의 물질을 드리는 것처럼 아깝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고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공로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는데, 금지옥엽으로 키웠습니다. “둥실둥실 내 아들, 어디에서 이렇게 왔냐?” 너무 아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여기서 사흘 길을 가는 모리아산에 가서 잡아서 각을 떠서 불로 태워서 내게 제물로 드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어지간한 아버지 같으면 몰라요, 나는 그런 거 몰라요. 나는 못하겠어요. 지옥 가더라도 못하겠어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엄청난 시련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 위한 자격이 있는가를 시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에게 말을 안했습니다. 아내는 이삭을 제물로 가져갈 것을 허락 안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보고 하나님이 제사를 드리라고 하니, 제사 지내러 가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장작을 어깨에 메고, 횃불을 들게 하고, 아버지하고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산까지 갑니다. 하룻길을 가서 그때는 여관이 없었겠지요. 나무 밑에서 혹은 바위 밑에서 자는데 이삭이 아버지에게 자기 웃옷을 벗어서 덮어주면서 아버지 춥지요?”라면서, 온 몸에 땀에 젖었으니까 그것을 벗어서 말려주고 팔 다리를 만져주고, 아버지가 그 사랑하는 아들을 쳐다보니 간담이 녹습니다. 삼일 동안 에잇 까짓 거 다 집어치워버리고 집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을 마귀가 주었을 것입니다. 사흘 동안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 결단 내렸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쇠하던지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고. 그래서 그 종들을 산 밑에 기다리게 하고 아들을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올라가면서 아버지, 번제 드려야 할 나무도 내가 가지고 있고, 횃불도 손에 들고 있고, 칼도 있는데 양이 어디 있습니까? 제물로 드릴 양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아들을 바라보면서 제물은 하나님이 직접 준비한단다라고 하며 같이 올라가서 제단을 열심히 쌓았습니다. 아들과 열심히 제단을 쌓고 난 다음에 아버지가 정색을 하면서 하나님이 너를 잡아 제물로 드리라고 그랬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아들이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결국 노망이 왔구나. 노망이 나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아버님 왜 이러세요? 아버님 오래 살았으니 아버님이 대신 제물이 되어 보세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도 엄청나게 신앙이 좋은 아들이었습니다. 신앙이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그 신앙이 몸에 배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명령을 했으면 그대로 해야 됩니다. 내가 제물이 되지요라며 장작 위에 드러누웠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번제로 드리기 전에 칼로 목을 따는 것입니다. 칼을 들어서 목을 내려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마라. 네가 네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나에게 내어 주는걸 보니 정말 날 사랑하는 줄 이제 알겠다

  

 여러분 이런 신앙을 가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칭찬을 안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포켓에 돈이 좀 있으면 예배 시간에 참석했다가, 하나님이 아끼지 말고 그거 다 내라라고 말씀을 하셔도, “아이고 조금만 내고요. 또 필요 있으니까 아버지, 참아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봐주시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 섬기는데 희생을 안 하고 섬기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하늘나라를 이 땅에 내려오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을 본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내 자신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한 것이 마음으로 나타남은 믿음으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십일조를 도둑질 하고 헌물을 하나님께 내지 않고 욕심과 탐심에 붙잡혀 있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마음에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결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께 심고 거둘 것을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만 하는 사람은 욕심으로 인해 결국 파멸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듣고 난 이후에 지금까지 아는 생각 내에서 십일조를 도둑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십일조를 충실하게 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를 100바퀴 이상 돌면서 복음을 증거할 때 물질의 부족함 없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직접 시험을 해보니까 하나님이 나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해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거짓이 없는 신앙생활, 하나님께서 네가 정말 날 사랑하는구나. 그렇게 인정해 주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올해에는 여러분 모두가 심고 거두는 법칙을 통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심고거두는 법칙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욕심내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주님께 영광 돌리 삶, 누리는 삶,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조용기목사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린도전서 2장 9∼13절)

 부모는 자녀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삶의 필요한 것들을 예비합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능력 있고 좋은 부모를 만나서 걱정 없이 사는 젊은이들을 보고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도 아닌 우리들의 삶은 누가 필요를 채워줄까요?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채워주셔야만 인간은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1. 죄인과 병든 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 보혈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용서와 의를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손발을 씻습니다. 손과 발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깨끗이 씻습니다. 영적인 생활도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만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고 낙심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발이 더러워지면 원망하지 않고 늘 씻는 것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죄를 지으면 여러번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병든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병든 자도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께로 나와야 됩니다. 예수님이 치료를 예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항상 용서와 치료를 온몸에 담고 다니시며 죄인을 구원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와 병을 고치기 위해서 당신 몸에 이 은혜를 담고 다니는 것처럼, 지금 이 자리에 우리를 용서하고 치료하시는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앓는 병은 마귀가 눌러서 생긴 것입니다. 마귀를 내어 쫓으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임하며 치료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잘못된 것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로 25절에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사흘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면 갈증을 견딜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에 들어와서 사흘길을 땀을 흘리며 걸으면서 물을 마시지 못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런데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에 있는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출 15:24∼25) 하나님께서는 쓴 연못가에 쓴물을 달게 하는 나무를 준비해 놓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것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한번 지난날들을 뒤돌아보십시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반드시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예비해놓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급하게 물질이 필요한데 그 물질이 어디서 나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하나님이 이 물질이 필요할 줄을 알고 계심으로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실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예비할 것을 믿고서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의 예비한 손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혼식에 손님이 많아서 주음식인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니까 예수님은 “어머니 왜 나에게 부탁을 합니까? 내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는 것도 시와 때에 따라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 있으니 예수님은 종을 불렀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요 2:7∼10) 이 일을 볼 때 주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예비해놓으신다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심지어 죽어서 저세상으로 건너가도 그 곳에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놓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절 24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준비하고 계시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응답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면 모든 것을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십니다. 시편 34편 9절로 10절에는 “너희 성도들아 야훼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젊은 사자가 굶주린다는 것은 굉장히 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늙은 사자는 기운이 없어 굶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자는 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다른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든 사자는 사냥을 못해서 굶을 수 있지만 젊은 사자는 사냥 실력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자는 굶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자가 굶주리는 일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굶주리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9절은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위기를 만날 때 대부분 사람을 찾아 도움을 청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시편 146편 3절로 5절을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서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기를 기다리면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믿고 알면 두려워 할 리가 없습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대가를 주고 우리를 샀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은 우연히 굴러 들어온 떡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아시고 원하셔서 우리를 당신의 소유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굉장히 비싸게 사셨기 때문에 굉장한 보물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일과 삶의 균형 부문에서 38개국 중에 36위로 사실상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주당 근무시간 50시간 이상인 노동자의 비율이 OECD의 평균보다도 10%나 높은 것입니다. 이 말은 허리가 휘청하도록 일을 많이 하고 먹고 사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일하면서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한국사람 각자 각자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은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하나님이 지키시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일본 식민지로 고생했고, 6.25사변을 통해서 고통을 당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많습니다. 이 세계 인류 중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많이 가진 이가 우리 한국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두려움에서 해방돼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3. 우리는 왜 평안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평안할 수 있습니까? 이사야 43장 2절은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여호수아 3장 13절을 보면 “온 땅의 주 야훼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 바닷물을 갈라놓아 이스라엘이 무사히 건너오게 하심과 동시에 요단강의 물도 갈라놓고 갈라진 강을 백성들이 건너가게 한 것입니다. 바다도 가르고, 강도 마르게 하고 당신의 계획한 뜻을 위해서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 곧 그들을 위해서 해야 되는 일이 생기면 엄청난 기적도 행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불 가운데를 지날 때에도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사르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세 청년이 우상숭배를 하지 않자 타는 불못 가운데 던져 넣어졌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이들이 우상에 절을 하지 않자 왕이 대노해서 그들을 불 연못에 던져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을 던져 넣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네 사람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왕이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세 사람이 불꽃 가운데 있어도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고 손과 손을 잡고 춤을 춥니다. 더구나 넷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같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타협하지 아니하고 목숨을 내놓고 불꽃 가운데 뛰어 들어가니까 하늘의 보좌에 앉아 있던 예수님이 뛰어 내려와서 그들과 함께 춤을 춘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 3장 26절로 27절은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물이 사람을 침몰하지 못하고 불이 인생을 태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위기에 처해 있어도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플로렌스 쉰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화가와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성공과 긍정적인 삶에 대한 책을 써서 지금까지 수천만이 넘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플로렌스 쉰은 평소 다음과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나는 주님의 딸이니 나의 부유한 아버지께서 부유함을 나에게 쏟아 부어 주신다. 나는 주님의 딸이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 9∼11)

 우리는 크고 작은 문제 속에 둘러싸이고 심신에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잘 살고 행복하게 살려면 고난을 메꿔줄 물건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많은 고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의 형편을 다 아시고 필요한 것들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생을 살면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것을 보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는 매일같이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 마음에 희망과 꿈을 심어 주시고, 희망과 꿈을 따라 기도하고 믿을 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살지 말고 우리 삶에 필요한 목표를 분명히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편리하게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대서양을 건너고 태평양을 내 집처럼 왔다갔다 건널 줄 몰랐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 비행기를 타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고 또 동부로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서 교회성장세미나를 하고 금요일 비행기를 타고 어제 5시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을 앉아 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 망망한 대서양을 비행기를 타고 건너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꿈을 꾼 사람들이 있었기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꿈을 꾸고 하나님 앞에 입을 벌리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 사람들과 비교해서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비행기가 있지요, 자동차가 있지요, 전화기가 있지요. 꿈꾸는 사람에 의해서 생활은 점점 발전되고 향상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고 향상되려면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고 마음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꿈을 꾸면, 그 꿈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성령으로 도와주시고 꿈을 믿고 나아가면 우리가 믿은 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생겨납니다.
 주님을 더 깊이 믿고 더 크게 믿어서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을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미리 예비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을 믿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예비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고 나누며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셨다./이영훈목사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야훼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세기 26장 12~15, 19~22절)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복 받은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가 많이 듣는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사람들은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복을 사람들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사람들이 만든 우상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인도에 가보니까 코끼리를 신으로 섬기는데 아마 무슨 코끼리 신을 섬기는 절기가 된 때였는지 모르는데 온 거리에 크고 작은 코끼리가 가득 쌓여져 있습니다. 코끼리가 복을 준다고 그래서 너도나도 코끼리를 사갑니다. 복을 크게 받을 사람은 큰 코끼리를 사가고 돈이 없는 사람은 조그만 것을 사갑니다. 그러나 코끼리가 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실 분은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지금도 복을 내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편 73편 28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야훼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그러므로 늘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창세기 26장 12절, 13절은 말씀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복을 주시므로 이삭이 농사를 지었는데 백배를 얻었습니다. 원래 이삭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목민입니다. 그런데 농사를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이삭이 농사를 지었는데, 평균적으로 그 당시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거두어들인 수확의 백배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이와 같은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내가 아무리 복을 얻으려고 복을 따라가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복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내가 어디를 가든지 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 잘 믿고 복이 따라다니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삭이 거부가 되었다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이렇게 큰 복을 받게 된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순종을 통하여, 헌신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자에게.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의 인도함을 지켜 따르는 자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백 세 때 낳은 너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가서 바쳐라.”
100세에 얻은 아들이니까 얼마나 귀합니까? 눈만 뜨면 “이삭아, 이삭아.” 하고 이삭을 찾았을 것입니다. 75세부터 25년을 기다려서 100세 때 얻은 아들인데, 그 아들을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가서 바치라는 것입니다. 번제로 바치라는 것은 팔과 다리를 다 잘라내어서 불살라드리라는 것입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어저께 밤에 이 설교를 한, 다른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니까 참 솔직하시더라구요. “저 같으면 못합니다. 설교는 해도 내 딸 하나 있는 것을 바치라고 하면 못 바칩니다.”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아아, 저 목사님이 참 솔직하시구나.’ 아마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내어놓으라고 할 때, “주님, 이것만은 안 됩니다.” 할 것을 우리들이 다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100세 때 낳은 아들을 바치라. 그것도 삼일 길을 가서 거기서 바쳐야 되니 그 마음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삭의 순종의 모습입니다. 성경 학자들은 그 당시 이삭의 나이가 한 스무 살 즈음 되었다고 보는데, 이삭도 하나님 말씀에 그냥 순종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9절로 10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의 가문을 타고 내려가면서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 그 1대는 고생을 많이 해요. 대대로 조상부터 미신을 섬겼고, 불신앙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강력한 영적인 도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1대는 고생해도 2대부터는 넘치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대대로 복을 받은 그 대표적인 예가 18세기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을 지낸 조나단 에드워드의 그 가족입니다. 그 가계를 보면, 자손 중에 13명이 대학총장이 되었고, 65명이 교수, 3명이 연방 상원의원, 3명이 주지사, 30명이 판사, 100명이 변호사, 56명이 의사, 75명이 군대장교, 100명이 선교사 목사 작가, 세 명이 큰 도시의 시장, 한 명의 부통령이 나왔습니다.

 비결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기만 하면 자손대대로 이와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에 처음으로 예수님 믿어서 고생하는 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손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이와 같은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단번에 자신을 드려 헌신함으로 말미암아 농사를 지었을 때에 백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가뭄이 다가와서 당시 곡창 지대인 애굽으로 가려고 할 때에 하나님 막으시고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26장 2절, 3절입니다. “야훼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순종하니까 백배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순종하니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면 복이 임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복 받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문제 안에서 약속의 말씀 딱 붙잡고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나가기만 하면 좋은 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7절로 8절입니다. “그러나 무릇 야훼를 의지하며 야훼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허쉬 초콜렛 창업자인 밀턴 스네이블리 허쉬를 소개합니다. 아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너무너무 가난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도 그만두고 생업 전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어머니는 늘 성경을 읽어주고 옆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과 기술을 배워서 처음에 제과점을 내었다가 실패하고, 그 다음에 캐러멜 만드는 그러한 가게를 열었다가 또 실패하고. 잘 되지가 않아요. 그러나 그때 기도하면서 말씀 묵상할 때에 주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얻은 수확의 십분의 일을 주는 말씀을 읽으면서, ‘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내가 사업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그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관대하게 기부할 때 우리는 축복을 받는다. 우리는 내 힘이 아닌 야훼의 힘으로 산다. 십일조를 드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십일조를 기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일을 야훼께서도 기뻐하신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밀크캐러멜을 개발해가지고 서른여섯 살에 크게 성공해서 거부가 된 후에, 그가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박람회에 갔다가 초콜릿 제조 기계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초콜릿 사업을 시작합니다. 당시에 초콜릿은 부유한 특권층만 먹던 식품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이것을 값싸게 먹게 하자.’ 그래서 초콜릿을 대량생산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초콜릿을 너도나도 구입함으로 말미암아 크게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이 벌은 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나누는 데에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공장 근로자들에게 주택을 다 제공하고, 사원 복지를 위해서 교통편을 마련해 주고, 그들 위해서 학교, 도서관, 놀이기구, 수영장, 교회, 병원, 백화점, 골프장, 야구장, 야외 음악당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허쉬파크를 만들었습니다. 파격적인 복지 타운을 만들었는데 당시 모든 근로자들의 꿈은 이 허쉬에 취직해서 이 허쉬파크에 사는 것이었습니다. 88세까지 살다가, 참 이분 대단한 분이에요. 전 재산을 다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아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의과대학도 건설했습니다. 평소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만큼 행복해진다.”
“젊은이여, 정직하라!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자신을 단련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2. 이방인들의 시기와 도전


 이삭이 형통하고 잘되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의 하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창세기 26장 14절로 16절은 설명합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큰 복을 받으니까 저들이 시기하고 질투해서 우물을 다 막아버리고 쫓아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이 잘될 때 기뻐해주지 않고 배 아파합니다. 그리고 옛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했습니다.
축하를 해줘야지 왜 배가 아픕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남들이 잘될 때 가서 같이 기뻐해주고 안될 때 같이 가서 울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삶의 터전이 되는 이 우물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물이 귀한 그 지역에서 우물을 막아버리니 이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게 된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이런 핍박이 다가옵니다. 도전이 다가옵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데 세상은 정직하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자꾸 거짓과 죄와 탐욕과 타협하게 만듭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아는데도 할 수 없이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때때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환란과 핍박을 당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그냥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그 길을 가는데, 믿는 사람은 그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아니면 그 길을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이 의약품 검사기관에서 약을 판매하는 것을 막아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약은 탈리도마이드라고 하는 임산부가 먹는 감기약인데 이미 캐나다와 유럽 쪽에서는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약 회사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 갖은 압력을 다 넣습니다. 위쪽에서도 계속 압력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밑에 있는 이 사람이 이 약을 먹고 그 후유증이 어떻게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이 분이 그것을 지켜낸 거예요.


 1년 후에 이 약을 먹은 사람들이 전 세계 약 5만 명 정도 기형아를 낳게 되었습니다. 팔, 다리가 없는 애가 태어나고 여러 가지로 몸에 기형이 된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임신부들이 그 감기약을 먹었다가, 부작용이 없다고 감기약을 먹었다가 이런 큰 피해를 입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제약 회사에서 뒷돈을 갖다 준 것을 받고, 위의 압력을 받고 허락해줬더라면 미국 내에도 큰 재앙이 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믿음을 지켰어요. 내가 여기서 타협하지 않겠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우리 미국의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려고 있는 것이지 절대 타협할 수 없다. 그 한 사람이 막아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을 바로 함으로 말미암아 미국 국민 중의 임신한 여인들이 그런 기형아를 낳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 총책임 위기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 바른 양심을 갖고 바르게 갔더라면 이런 일이 안 생겨나는데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절대로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로마서 8장 17절은 말씀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나 어떠한 고난을 당해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에서 넉넉히 이깁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3. 함께하시는 하나님


 환란 가운데 문제와 어려움을 당한 때에 믿음을 지키면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주십니다. 이삭은 우물이 다 메워져버렸기 때문에 이제 삶의 터전에 필요한 것을 다 잃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제 옮겨가서 우물을 팝니다.

창세기 26장 19절 20절입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그 당시 물을 얻기에 얼마나 힘든지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입니다. 그러니까 약 4천 년 전에 물이 귀한 때에 땅을 파고 또 파서, 지금처럼 땅을 뚫는 기계도 없는데 아마 곡괭이 같은 걸로 땅을 파가지고 겨우 물을 얻으면 저들이 와서 그것을 빼앗습니다. 우리 물이니까 물을 먹지 말라고. 그런데 이삭은 그들과 싸움을 원치 않았습니다.
물질 문제로 인해서 사람과 싸우면 안 됩니다. 다툼은 원망과 불평을 만들어내고, 미움을 만들어내고, 분열을 가져오고,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삭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애들아 싸우지 마라. 우리가 가서 또 파면되지.” 또 옮겨와서 다른 곳에서 물을 팝니다.

 창세기 26장 21절입니다.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는데 또 쫓아와서 “우물을 내놓으라. 우리 것이라.” 그럽니다. 또 양보합니다. 세 번째 또 옮겨와서 팝니다.
창세기 26장 22절입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야훼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믿음의 사람은 물줄기도 따라다녀요. 가는 곳마다 땅을 파면 물이 터져 나왔으니까요. 요즘도 아프리카 케냐에 가서 그 우물을 파는 걸 보면요, 한 이십 미터 이상 파 내려가는데, 한번 파는데 만 불을 줘야 되는데, 요즘은 또 이만 불로 올랐대요. 물줄기를 얻기 힘들어요. 그런데 4천 년 전에 그 물을 긷는데서 땅을 파서 물이 터져 나오니까 참 하나님이 얼마나 그들을 복 주셨는지. 파기만하면 물이 터져 나오고. 또 파기만하면 터져 나오고. 그런데 파면 와서 뺏어가고 또 뺏어가고. 세 번째 또 터지는걸 보고 “아이고, 안 되겠다. 열 번 팠어도 또 물이 터질 것 같으니 이제 우리가 포기하자. 저들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 밤에 축복의 말씀이 임합니다. 창세기 26장 24절, 25절입니다. “그 밤에 야훼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줄 때에 감사의 제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서도 땅을 파니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야, 저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구나.”


 창세기 26장 29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야훼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방 사람들이 이삭과 이삭의 종들을 보고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거 봤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야 되고,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의 향기가 나타나야 됩니다. 사람들의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루살렘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 모두가 칭찬받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천이백만 크리스천들이 칭찬받는 주님의 백성들이 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가능케 되고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과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충남 산골에 큰 교회를 이룬 당진동일교회 간증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주일날이 되면 좁은 일차선 농로를 따라 차량이 수백 미터씩 꼬리를 물고 이 교회 산골에 오천 명 성도가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 학교가 천 명입니다. 이수훈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충남 당진 비닐하우스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그다음 산골짜기 고추밭을 사가지고 예배를 드리는데, 이단 교회가 들어온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온 동네가 반대합니다. 관공서에 민원을 내고, 주일 아침이면 경운기로 길을 가로막고, 마을 스피커로 유행가를 크게 틀고, 시간 맞춰서 시비를 걸고, 공사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게 좁은 농로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초상집이 나면 찾아가서 저들을 위로하고, 또 저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래서 한 사람, 두 사람 성도가 늘어났는데 암, 우울증, 공황장애, 알콜 중독, 불임 등 성도님들이 문제를 하나 둘 씩 해결하고, 치료함 받고, 기적을 체험하게 되니까 좋은 소문이 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골이라 아이들 교육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는데 방과 후 학교를 만들어가지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꿈의 학교를 통하여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결손 가정을 위한 지역 아동센터, 어린이집, 중고등 대안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또 12년 동안 출산 장려 운동을 해서 이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자체에서 길을 만들어줬습니다, 교회 들어가는 길을요. 이십년 만에 오천 명이 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천 명이 교회학교고요, 그리고 성도 78퍼센트가 초신자, 정착률이 95퍼센트. 대단합니다. 주여,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교회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손을 펴주셨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문득 돌아보니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삶에 지친 사람들, 방황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회복을 돕는 교회를 꿈꿉니다. 또한 정직하고 바른 신앙관을 가진 차세대를 기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평범한 이들을 비범하게 만드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젊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 어린 아이들이 몰려오는 교회,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이삭의 복을 받아서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자손 대대로 주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이삭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망,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나가지 못해서 이 복을 누리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주님 주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드립니다. 아멘.


감사와 찬양/이영훈목사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야훼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시편 107편 19∼22절)

 그리스도인의 일생은 감사와 찬양의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나쁠 때는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욱 큰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1. 고난 중에 구원해 주심에 감사


 우리가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끊임없이 다가오지만, 주님이 항상 함께하셔서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은혜 가운데로 이끌어주십니다. 시편 107편 19절은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고 심판을 받았어도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인생 중에 고난을 계속해서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듣고 응답해주십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더라도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 나아가면 우리도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의 때에 주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보다 하나님께서 더 좋고 선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시편 40편 1절부터 2절은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진정한 회개의 부르짖음, 감사와 찬송의 부르짖음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어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지은 죄는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하고 섭섭해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의 목소리가 아니라, 기도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실라의 감사와 찬양을 들으시고 기적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6절은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말씀합니다. 고난 중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첫 번째 추수감사절은 풍성함 속에 드려진 추수감사절이 아니었습니다. 1620년 102명의 영국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65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북동부지역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부터 건축하고 주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렸지만, 첫해 겨울에 심한 식량난과 추위, 질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102명 가운데 44명이 죽고 나머지도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주를 섬기고 일해서, 1년 후 비로소 첫 수확을 얻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첫 추수 곡식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농사하는 법을 가르쳐준 친절한 원주민들도 초대해 3일간 함께 축제의 시간을 가진 것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풍성한 수확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이후 여러 주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다가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재임 당시,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에, 매년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공휴일로 지정하였고, 나중에 루즈벨트 대통령 때 11월 넷째 주로 변경되어서 오늘날까지 이릅니다. 링컨의 선언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뼈아픈 남북 갈등에서 비롯된 미망인, 고아, 가까운 이를 잃어 슬퍼하는 자, 전쟁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과 상처 난 미국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합니다”

 한국에서 드려진 추수감사절에 대해서 1907년 평양대부흥의 주역이었던 길선주 목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조선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조선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가 세워진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은, 비록 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있었지만, 기독교의 전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수확한 곡식과 열매로 인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하는 날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감사절은 어두운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복음을 보내어주신 것을 감사하는 날이다!”


 2. 말씀을 보내사 치료하심에 감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시편 107편 20절은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붙드는 사람들에게 약속을 이루어주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에 생명을 공급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어두움이 사라지고 빛이 임하였고, 모든 혼돈이 물러가고 질서가 임했습니다.

 모세가 죽고 난 뒤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빈자리는 너무 컸고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임무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7절부터 8절은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가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셔서 우리의 험난한 인생길을 동행해주시며,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3편 4절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고 위로하고 치료해주십니다.

 우리 교회 김수영 성도(마포2대교구)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2005년 어느 날 갑자기 팔을 들기도, 목을 돌리기도,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병원에서 검사해보니 류마티스관절염이었습니다.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다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발병 1년 후엔 걸을 수조차 없어서 휠체어를 타게 됐고, 2009년부터는 아예 직장을 잃고 침대에서만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며 말씀을 들었는데 간병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그 말씀을 의지하여 선포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의심이 들 땐 제가 항상 선포하는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를 떠올리며, “저는 이미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며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어서 부축을 받으면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성령대망회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하루는 제가 금요성령대망회에서 신유기도를 할 때 무릎이 시원해지면서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더니, 그날 평소 어렵게 오르던 계단을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병이 낫자, 바로 성경대학에 등록해서 계속 봉사를 하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이 간증합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통증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걸을 수 있게 된 나는 제일 먼저 아파서 중단했던 성경대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내가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교회를 다닐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봉사도 하고 더욱 확신을 갖고 기도하니, 졸업이 다가와서는 아프기 전과 다름없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누가 이분의 병을 고쳤습니까? 약속의 말씀이, 우리 주님이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기적은 일어나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행하신 일에 감사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07편 21절부터 22절은 “야훼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07편에서는 8, 15, 21, 31절에서 네 번이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행하신 기적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범죄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죄를 사랑하고, 말씀보다 자신의 욕심과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감사의 제사입니다. 한평생 감사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시편 50편 14절부터 15절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환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절대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옳게 행하는 신앙의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사할수록 우리의 신앙이 깊어져서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이길 수 있습니다. 시편 100편 4절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친해지는 방법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문은 감사할 때 열리기 때문입니다. 시편 136편 1절은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고난 중에도 슬픔 중에도 우리는 감사, 또 감사, 또 감사해야 합니다.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 전역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병력과 화기 면에서 우세한 인민군에게 수도인 서울이 3일 만에 점령을 당했으며 연합군은 개전 후 2달도 안 된 8월 4일 새벽에 낙동강전선 이남지역까지 철수해야 했습니다. 이미 남한 영토의 90%가 인민군의 수중에 넘어갔습니다. 이때 부산에 있는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전쟁 발발 후 7일째, 성도들이 초량교회에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할 때,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UN안전보장이사회에 한국 지원군 파병을 요청했습니다. UN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대만, 소련) 5개국 중에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의안은 무산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소련 대표가 불참하면서 나머지 국가들의 동의하에 한국 파병이 극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세는 여전히 북한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가운데 연합군은 다른 작전을 시행하기보다 우선 낙동강전선을 사수해야 했습니다. 미군의 폭격기를 통한 폭격을 계속해야 하는데, 시기가 장마철에 접어들어서 미군의 폭격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또 교회들이 모여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자, 맑은 날이 20일 동안 계속되어서 인민군을 폭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9월 6일, 낙동강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영천 지역이 인민군에게 그만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영천 지역을 빼앗기면 낙동강전선이 붕괴되면서 부산으로의 통로가 열리게 됩니다. 당시 상황의 심각성은 미군의 워커 장군의 말에 잘 나타납니다. “영천을 탈환하지 못할 경우, 미 제8군은 일본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다. 국군 2∼3개 사단을 포함, 약 10만 명의 요인을 괌이나 하와이로 철수할 것이다!” 이때도 부산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 목사들, 장로들,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구덕운동장에 모여 함께 구국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온 성도가 회개의 기도와 구국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틀 뒤인 9월 8일에 극적으로 영천을 다시 탈환합니다. 눈물의 회개 기도가 한국의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교회가 분열되고 주님 뜻에 따르지 못한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낙동강전선이 무너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지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뒤에도 초량교회에서 모인 2주간의 구국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상륙작전을 감행하기에 적합한 지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구국기도회가 끝나고 3일 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시 기도회에 참여했던 한 목사님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전국에서 교단을 초월한 목사님 수백 명이 부산 초량교회 마룻바닥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목사님들이 과거 신사참배한 죄부터 개인의 죄, 민족의 죄를 있는 대로 털어놓으니 예배당 마룻바닥이 목사님들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찬미하고 나서 사흘 후에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진 겁니다! 역사적으로 나타난 것은 인천상륙작전이지만 영적인 발동은 기도하고 찬미하는 초량교회 마룻바닥에서 먼저 시작된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고 찬미할 때에 예상 못 했던 엄청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이 땅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구원해주시기에 감사하고, 말씀으로 치료해주시니 감사하고,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고 동행하시며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한평생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감사하지 못해서 모든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가슴을 치고 통회 자복하며 감사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하게 하시옵소서. 탐욕과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한 죄를 회개하게 하셔서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응답 받는 기도/조용기목사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누가복음 18장 1절)

 

 오늘 저는 ‘응답 받는 기도’를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을 아시고 그 문제의 해답도 다 알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9~10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놀라운 것을 예비하여 필요할 때 도와주려고 기다리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린 이런 사실을 분명히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1. 꿈을 품은 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시며,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어떻게 오느냐? 응답을 내 손에 받기 전에 내 마음에 꿈으로 받아야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들어가면 꿈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통해서 일을 하시니까요.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지심을 먼저 꿈 꾸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년 동안 꿈 없는 기도를 했어요. 창세기 15장 2절로 3절에 “아브람이 이르되 주 야훼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아브라함이 말하자 하나님께서 꾸짖었습니다. 창세기 15장 4~5절에 보니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안 봤으니깐 자손이 없다고 그러지. 너 이렇게 많은 자손을 보았으면 불평하지 않았을 거 아니냐?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서 네가 얻을 것을 미리 바라 보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꿈은 응답을 받는 그릇입니다. 예전에 제가 일본 일 천만 구령을 대회를 하고 열심히 일본에서 전도할 때입니다. 하루는 일본에서 집회하는데 일본 교역자들 잔뜩 모아놓고 열심히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증거 하기 전에 피로를 잠으로 때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잠을 좀 잤어요. 그런데 꿈을 꾸었는데 한 가지 꿈만 꿨습니다. 제가 꿈에도 몇 천 명의 일본 목사들이 모여 있는데 앞에 칠판이 있었어요. 칠판에 제가 일본 교역자들에게 글자를 쓰는데, 내가 쓰면서 내가 보니깐 내내 “꿈은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그릇이다” 그리고 지워버리고, “꿈은 마음의 뜻을 이루는 그릇이다” 또 지우고, 또 그걸 쓰고. 잠에서 깨어나니깐 마음에 “꿈은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그릇이다”라는 하나님이 주신 이 계시가 뚜렷했습니다. 여러분 한 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꿈은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그릇이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꿈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단비가 쏟아져도 그릇이 있어야 물을 모을 수가 있습니다. 그릇을 준비하지 않고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비는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 열왕기하를 보면, 엘리사의 제자 하나가 죽었는데 빚을 잔뜩 지고 죽어서 빚쟁이들이 그 과부에게 애들을 종으로 잡아가겠다고 말했어요. 그에 놀란 과부는 그 스승인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선생님, 선생님 따라다니던 제자인 우리 남편이 죽었는데, 빚을 너무 많이 지어서 빚쟁이들이 자식들을 전부 데려다가 종으로 팔아먹으려고 하는데 선생님 좀 살려 주십시오” 그러니깐 엘리사가 기도를 한 후 “너 집에 가서 그릇을 준비해라. 이웃집에 다니면서 그릇이란 그릇은 크고 작은 것 구별할 것 없이 준비하라. 너희 부엌에 뭐가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과부는 “병에 기름 반 쯤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엘리사는 “아이들과 함께 그릇에 그 기름을 부어라”라고 명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와서 애들을 시켜서 이웃의 그릇을 잔뜩 그릇을 모아가지고서 그 병에 있는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저 부으면 또 나오고, 부으면 또 나오고, 아주 그릇마다 기름이 가득했습니다. 어머니가 “얘들아, 그릇 더 가지고 오너라”라고 하자, 아이들이 “어머니, 이제 그릇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기름도 뚝 그쳤습니다.

 스승 엘리사가 기름을 팔아서 빚을 다 청산하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라고 말을 해준 사실이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그릇이 준비되어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릇 없이 하나님 계속 따라다니면 고생만 한다는 것입니다.


 2. 인내와 응답


 기도할 때 응답 받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설명했는데, 누가복음 18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라고 말씀하셨고, 누가복음 18장 2절로 5절에는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 재판장이 앙천대소합니다. “뭐 이런 게 와서 나에게 야단이야.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이 내게 와서 부탁해도 해줄까 말까인데, 이 과부가 와서 말하는데 내가 응답할 의무가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소에 출근할 때마다 입구에 앉아 기다렸다가 큰 소리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나갈 때, 퇴임할 때도 또 그렇게 하지요. 집에서 나올 때, 들어갈 때, 사업하는 데 사무실에 나올 때, 들어갈 때, 끊임없이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라고하니 이 재판관이 말하기를 “내가 귀찮아서 더 이상 못 견디겠다. 내 자비심이 있어서 이 여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귀찮아 견딜 수가 없어서 이 원수를 갚아 주어야 내가 편안하게 살겠다”라며 원한을 갚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이 말씀을 읽을 때 ‘그렇게 억지소리를 해서도 응답 받았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예가 다른데 또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5절로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이스라엘 지도를 펼쳐놓으면 북쪽으로 두로와 시돈에 좀 쉬러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터가 없습니다. 인산인해로 또 모여 왔지요. 그런데 한 여인이 고함을 치고 땅을 두드리면서 “주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내가 딸이 있는데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딸인데, 귀신이 들려가지고서 완전히 버렸습니다. 귀신을 좀 쫓아내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꾸짖으면서 “시끄럽다. 놔라.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도와주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방인들은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다. 그러니 놔라”고 해도 안 놔주고 오히려 더 떼를 쓰고 야단입니다.
 “자손들 유대민족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데 왜 우리는 안 줍니까?”라고 묻자 “네 이방인들은 때가 안 되었는데 왜 자꾸 고집을 부리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 개들이 밥상 밑에 있는데 주인이 아들들에게 떡을 줄 때 떨어진 부스러기는 상 밑에서도 주워 얻어먹는데, 저는 그릇에 담아서 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떨어진 부스러기를 좀 주워 먹겠습니다.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예수님이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인을 보고 말하기를 “너 말 참 잘했다. 네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하나님도 감동했고, 귀신 쫓겨 나갔다. 집에 가봐라. 괜찮다”라고 한것입니다. 말 잘해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을 때는 인내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3. 당신의 기도와 응답하시는 하나님


 여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내력이 필요하냐고 말씀하는데 보면,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눅18:5~6) 말을 비교해보자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이 여인의 호소를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7) 불의한 재판관도 아무것도 모르는 이 여인이 호소를 하고 고집을 부리니깐 응답을 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응답 안 해주겠느냐. 굉장히 강조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자기의 의무와 아무 상관도 없는 과부의 청을 귀찮아서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공의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오늘 여러분 “주님이시여. 불의한 재판관이 호소도 들어주시는데, 내 호소도 들어주십시오”, “아무렴! 하물며 재판관이 호소도, 죄인의 호소도 재판관이 들었는데 내 너의 호소는 들어주지 아니하겠느냐? 들어주시리라.” 모두 다 여러분 마음의 호소가 가득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배로 응답을 해 주시는데, 우리가 오래 참지 못하고 뒤로 물러가고 마는 때가 많습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8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굉장히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시편 145편 18절로 19절에 “야훼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 다섯 마리도 하나님께서 그 중 하나도 잊어버린 것이 없다고 말하셨습니다.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면, 한 마리는 700원 정도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돈 액수를 말하니깐 무슨 액수인지 저는 미안하지만은 설명을 못 하겠습니다. 요사이 달러를 한국 돈하고 바꾸는 것도 자꾸 바꾸어지니까 못 하니깐 미안합니다 여러분.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면 한 마리는 700원에 팔린다고 해설에 그렇게 해 놓으니깐 우리도 그렇게 깨달아서 700원에 팔리는 줄 믿으십시다. 누가복음 12장 7절에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좌우간 참새와 별 가치가 없는 것도 하나님이 기억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너희 머리의 머리털도 기억하는 하나님이 모른 체 하겠느냐. 여러분, 여러분 앞에서 큰 기적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머리를 이발하는 우리 장로님이 몇 년, 오랫동안 이발을 했는데, 요사이 이발을 하려고 하면 자기가 자꾸 놀라는 것이 제가 머리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거울에 뒷머리 비춰보는데 잘 보여야 말을 하지요. 하나님께서 하시려면 못할 리가 없겠는데, 여러분이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셔서 젊은이가 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기도로써 교제를 할 때는 인내를 가지고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물러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아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가뭄에 죽게 되었는데, 그가 비가 오도록 기도를 하는데 한 번 기도하고 난 다음에 종을 보고 “산 위에 올라가서 비가 오는지 살펴보라”고, 처음에 올라가서 기도해서 기다려도 비가 오지 않습니다.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올라가서 기도해도 기도가 응답이 안 됩니다. 종을 보고 “비구름이 모일 때까지 산에 오르락내리락 하라” 엘리야가 오랫동안 인내하면서 기도한 결과에 구름이 일어나고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기도를 막는 마귀가 꼭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가 응답 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인데,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의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이 마귀가 막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귀와 싸워서 마귀를 물리쳐 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우는데, 여호수아가 와서 젊은이들 모아가지고서 아말렉과 싸우는데, 모세는 산 위에 올라가서 그 들판에서 싸우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냥 내려다보고 이야기하면 여호수아가 집니다. 여호수아가 싸우는 데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를 해주면 전쟁에 이기고, 팔이 아파서 팔을 내려놓으면 전쟁에 지고. 그러니깐 모세가 아론과 그 제자를 불러서 돌을 가지고 와서 돌 위에 올라 앉히고, 양 사방에서 팔을 잡아서 끝까지 들고 있으니깐 전쟁에 이겼습니다. 우리도 혼자서 전쟁할 때, 혼자서 기도할 때, 응답이 안 온다고 하지 말고, 두 세 사람이 모여서 끝까지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마귀가 막았다가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엠 바운즈(E.M. Bounds)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말하기를 ‘오직 주님만이 산을 옮길 수 있으나 우리는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다니엘 10장에 보면,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운명이 말세에 어떻게 될지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20일 동안 기도 응답이 안 옵니다. 계속해서 엎드려 기도하니깐 천사가 와서 “다니엘아, 하나님께 크게 귀히 여김을 받는 이스라엘의 선지자.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오는데 공중의 권세 잡은 원수마귀가 나를 막았다. 20일 동안 밀고 당기고 내가 못 오는데, 하나님께서 군장 미카엘을 보내매, 미카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어서 응답을 가지고 왔다”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한  두 번 기도한다고 해서 응답이 안 온다고 낙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님이 90이 넘으셨을 때, 신장이 약해서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신장이 나쁘면 피를 맑게 해야 되는 것인데, 어머님이 그건 안 하겠다고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합니다. 어머니하고 나하고 둘이서 기도를 하는데, 어머니는 아주 목숨을 내놓고 기도하고, 나는 ‘아휴 90을 이상 살았으니 그냥 갔으면 좋겠다’ 비밀로 그렇게 생각하고, 아주 나쁜 자식이지요. 그런데 한 번은 둘이서 기도하고 있는데, “이것 봐 이것 봐, 이거 안 나가려고 그런다, 안 나가려고 그런다”, “그게 뭐냐?” 그러니깐 이 잔디풀이 있지 않습니까? 잔디풀이 흙에 뿌리를 박고 있을 때 잡고 당기면 찍찍찍찍 소리를 내면서 잘 안 뽑히다가 나중에 어느 정도 가면 탁 뒤로 넘어지면서 손에 잡고 있으면 그 잔디가 뽑히지 않습니까? 어머님께서 보니깐 마귀가 어머니 신장을 잡고 계시는데, 있는데, 계시지 않고 잡고 있는데, 나하고 어머니하고 기도하니깐 이게 찍찍찍~ 하면서 안 놓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계속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니깐 탁 어머니 넘어지면서 그게 뿌리가 뽑혔어요. 그게 뽑혔는데, 병원에 조사를 하러 가보니깐 병원에서는 “아휴 신장이 나았군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를 할 때에 유창한 기도를 해야 될 줄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도를 똑같은 말로 반복해도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픈데 안마를 해주면 안마를 기술을 부려서 여럿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안마만 하더라도 부지런히 하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병이 낫기를 원하면 “하나님 위장병이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장병이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장병이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장병이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장병은 물러가라! 위장병이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같은 말을 수천 번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한 첫날부터 이미 응답을 받았지만, 방해하는 세력 때문에 21일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전쟁 할 때에는 도중에 뒤로 물러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마귀와 대적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마귀의 권세를 이길 능력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10:19)

 여러분은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그 권세를 사용해서 기도하면 굉장한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여러분 따라다니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대결해서 싸워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면 마귀가 응원하고 있는 병을 이기게 되고, 사업상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원수들 배경을 여러분께서 물리쳐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원수마귀가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뒤에 뒷배경이 되어가지고서 여러분을 괴롭게하고, 두렵게하고, 힘이 없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다하면, 배경이 무너지고 실제 세력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크고 비밀한 일들을 예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하늘을 바라보고 꿈을 가지고 기도하며 주님의 응답을 낙심치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용서와 사랑, 정죄와 심판/조용기목사

“요나가 야훼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중략)…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요나 3장 3∼10절 )

 우리는 속사람과 겉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대개 속사람을 정의롭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겉사람을 죄짓고 방종하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속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겉사람은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미워하고 책임을 전가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사람을 따라 살며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1.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성경을 보면 요나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앗시리아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를 다 궤멸시키고 그 나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자기 수도로 끌고 가서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앗시리아 사람을 매우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유대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40일 후 무너질 것이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니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이내에 수도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좋았습니다. 국가도 막지 못한 앗시리아를 하나님이 직접 치겠다고 하는데 그 재앙을 말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듣자마자 욥바에 내려가서 니느웨와 반대쪽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입니다. 그것도 배 제일 밑창에 내려가서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구부리고 하나님 말씀에도 안 깨어나려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선원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자마자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엄청난 바람이 불어서 배가 박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 배 선원들이 배를 바로 잡으려고 무수히 애를 써도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털어버리고 멀리 도망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뱃사공이 “이러다가는 안되겠다”면서 “틀림없이 이 배에 불순한 사람이 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전부 모아서 “우리 배가 이 지중해 일대에는 안 갔다 온 곳 없이 가도 이런 일은 안 당했는데, 오늘은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이 항로에 이런 험한 파도가 생기는 것은 틀림없이 하늘의 벌을 받은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 벌이 내리는지 우리 고백하자. 혼자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여기 배 탄 사람들을 다 물에 빠져 죽도록 할 수 없지는 않느냐?”고 말한 후 제비를 뽑으니까 요나가 제비를 뽑은 것입니다. 선장은 요나를 붙잡고 “당신의 무엇 때문에 이 폭풍우가 몰려오느냐?”고 물으니 “하나님이 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40일 이내에 회개시키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원수이기 때문에 멸망당하는 것을 원해서 다시스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이런 것이니 나를 처치하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옛말에 ‘파도가 바다에 일면 돛대부터 찢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사람의 지혜와 총명으로는 배를 바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큰 환난을 만나면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벗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나를 바다로 던지십시오.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앗수르에게 좋은 일은 안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너희 하나님이 너를 심판한 것이니 우리는 어찌할 수 없다”면서 요나 를 잡아 바다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아주 집채만한 물고기가 한 마리가 공중에 얼른 떠가지고서 요나를 받아 먹어버렸습니다. 요나는 도망치면 하나님이 못 따라올 줄 알았지만, 물고기를 통해서 따라오니 요나가 감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요나는 물고기 배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주 널찍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 기도원 기도굴 보다 큰 물고기 배 속 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심장 소리가 벌컥벌컥 나고 숨소리도 들렸습니다. 소화가 안 되는 물고기는 배 안에 요동을 치니까 소화시키려고 물을 계속 마십니다. 배 속 의 요나는 물에 빠져 죽을 지경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살리기 위해 큰 물고기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어려운 문제를 당했을 때 도저히 인간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하나님은 이미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격 중에 제일 좋은 것이 예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예비하여 주셔서 우리가 큰 상처 입지 않도록 멸망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예비해서,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버렸지만 하루가 지나도 소화가 안 되고, 이틀이 지나도 소화가 안 되고, 사흘이 지나버렸습니다. 물고기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물고기는 결국 요나를 토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나는 그 길로 니느웨 성을 가로질러 가면서 외쳤습니다. “40일 이내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니느웨는 멸망 받는다” 생각해보십시오. 물고기 배 속에서 나와서 온몸에 비린내가 나는 사람이 회개하라고 고함치는데 우습지 않습니까? 하늘나라의 능력은 성령께 있습니다. 성령이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굉장한 것이 가슴에 부딪히고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60세가 넘으면 외로워지고 고독해집니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롭고 고독해집니다. 그리고 우울증도 생깁니다. 우울증이 생기면 매우 괴롭습니다. 우울증이 뭐가 그렇게 괴롭냐고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마음속에 슬픔과 좌절과 절망감이 다가오고 불안과 공포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성령님을 모셔드리면 성령은 산골짜기 목동의 집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사르르’ 깔아지면서 아주 달큼하고 조용한 은혜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서 운행한다는 것은 체험을 해보지 않고는 이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마음을 점령해주면 마음이 완전히 새로워지고, 쾌활해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꼭 성령충만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면, 일어서거나 앉아도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님이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요나가 사흘 길을 걸으면서 회개하라고 고함을 칩니다. 요나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성령이 말을 옷 입고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왕이 듣자 마음에 충격을 받고, 당장 베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올라앉아 회개하는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될 것은 구제활동도 하고 사회봉사도 하지만 먼저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불어나가서 안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이 깨어지듯이 교회도 깨어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날 때도 온 도시가 깨어졌습니다. 우리 한국도 평양의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자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깨어졌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나타나시면 또다시 80만 성도가 될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요나 1장 1절로 2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순종하여 니느웨의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타고 출발했지만, 동시에 보기 드문 태풍이 불어 닥친 사실은 성경에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요나는 분노해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망하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다 벌을 받아 전쟁에 짓밟히고 찢겨서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과 함께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요나는 원할지라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보고 “왜 조용기 목사는 주의 종이면서 오랜 세월동안에 짓밟히고, 욕을 얻어먹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가해자들을 저주 안하느냐? 성경을 보니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리라고 했으니, 목사님도 강단에서 성도들 앞에서 저주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대답을 합니다. “나는 주의 종으로 부름 받았을 때, 다른 이들을 축복하라고 부름 받았지 저주하라고 부름 받지 않았다”

 제가 평신도 같으면 마음대로 저주도 해보고, 저주도 받아보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과 자비를 전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때문에 저주를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어쩔 때는 저주하고 싶은 생각이 여기까지 올라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이 마음에 슬픔을 느끼시는 일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게 되기를 그렇게 원했으나,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요나가 회개하라고 외치고 40일이 지난 다음, 요나는 성 밖에 나가가지고서 높은 데 올라가서 움막을 하나 지어놓고, 움막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혹시 실수로 벌을 안 내리다가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라고 깨닫고 니느웨에 벌을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좀 돌이켜서 니느웨를 치십시오!라고 생각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깐 호박넝쿨이 칡넝쿨하고 초막을 덮어서 하루 만에 푸른 풀밭을 이루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박넝쿨 같은 칡넝쿨을 초막에다가 덮어 씌워주셔서  “아 좋다. 그거 참 좋다. 햇빛이 가려져 시원하고, 상쾌하고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깐 벌레가 와서 다 깎아 먹어서 풀이 다 말라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깐 “아니 하루저녁에 벌레가 와서 깎아 먹을 바에야 뭐 하려고 이걸 내게 주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아침에 해가 떠오르자 동풍을 불게 하여 날이 얼마나 더운지 요나가 정신을 차리려해도 혼미한 상태에서 “차라리 날 죽여주소!”라고 말할 지경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야훼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욘 4:1∼3)

 박넝쿨, 벌레, 뜨거운 동풍, 태양이 뜨거워 요나가 정신이 혼미하게 되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메시지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박넝쿨도 쓰시고, 벌레도 쓰시고, 뜨거운 동풍도 쓰시고, 태양도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 써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시고 설득시키는 것입니다. 무슨 큰 사건만 일어나야 하나님이 계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집에 있는 귀뚜라미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를 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필요하면 벌레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야훼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욘 4:5∼8)

 하나님은 요나를 꾸짖으시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욘 4:9) 요나가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나님에게 대들어서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0∼11)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박넝쿨이 시드는 것과 햇빛이 비추는 것에 대해 불평을 말하면서 네가 이 성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데, 내가 왜 성을 못 무너지게 하는지 아느냐?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십이만 명이다. 심판을 내리면 십이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데, 얼마나 비참한 일이냐? 그러니깐 네가 필요한 박넝쿨 보다 내가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 더욱 중요하다. 네가 말씀을 전해 온 도시를 바꾸는 것은 잘 했지만, 그렇게 자꾸 뾰로통하고 화를 내면서 내 앞에서 달라지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2.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와 하나님의 용서


 대속기도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따라 나온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일가족을 잃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윤리와 도덕적으로 무너진 너무나도 부패하고 파탄에 이른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를 보내어 시찰을 하신 후, 여리고 성을 멸망한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 성도 멸망시키려고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착실한 종이었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중보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 성에 50명의 의인이 있으면 용서해주시겠습니까?”라고 아브라함이 묻자, 하나님은 “50명 있으면 용서해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그러면 5명이 덜 해서 45명만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래도 살려주겠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 건방진 저를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은 “40명만 있으면?”이라고 묻자 “4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30명만 있으면?”이라고 물으니 “30명이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20명만 있어도?”라고 하자 “2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어지간히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도 롯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안했던지 20명도 전도를 못해 놨습니다. 나중에는 “10명의 의인이 있어도 심판하시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10명만 있어도 심판 안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명의 의인만 있어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결국 10명의 의인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큰 지진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흔들려서 무너져 내려 박살이 나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과 큰 재앙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경주에 일어나는 지진을 보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이 돌보아 달라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성령 충만을 주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그 일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면서 일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이 목적 달성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가 언제 어떻게 갈는지 모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음 저 건너편에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해서 40일 동안이나 제자들 가운데 나타내 보이시고, 사람이 죽어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리면, 손으로 짓지 않은 낙원과 낙원보다 더 높은 천국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낙원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원에 들어가는 것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그 믿음으로 낙원에 들어가면,  그곳에 준비된 삶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던지 사도바울 선생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한 사람,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은 음부로 내려갑니다. 음부는 지옥에 내려가기 전에 대합실입니다. 낙원과 천국처럼 음부는 지옥의 대합실로써 음부에서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의 번뇌와 고통이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안 태어났으면 좋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서 순교를 당하면 천국에서 제일 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많은 사람을 의롭게 돌아오게 한 전도자가 큰 상을 받습니다. 그러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들도 천국 시민으로서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주님을 감사하고,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도록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세상적인 겉사람을 따라 살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속사람을 따라 살며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영향력을 미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이영훈목사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야훼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명기 33장 27~29절)

 

믿는 순간부터 예수님은 우리를 책임져 주셔
주의 사랑안에 거할 때 참 행복 느낄 수 있어
하나님 영광 위한 삶,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셔 

 이 세상 살면서 가장 큰 기쁨은, 축복은, 은혜는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귀한 분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신명기 33장 27절로 29절의 말씀을 가지고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계속 잘 팔리는 책이 행복, 성공, 이런 것과 관계된 주제를 다룬 책들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사서 읽는다고 행복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그 책을 사서 읽는다고 성공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행복이 무엇이고, 행복이 어디로부터 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것을 많이 얻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하지만 가지면 가질수록 염려와 근심이 쌓이는 것이 세상의 물질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신경 쓸 일이 많고, 편안하게 잠을 자지 못할 날이 많은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세상 권력이, 물질이 우리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마음으로부터 행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이 생각이 내 마음을 점령할 때, 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하고 행복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디서도 참된 행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이름만이 온 인류의 절대 희망이 되시고, 행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120년 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말씀을 가지고 오늘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첫째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라고 그들을 말씀합니다. 신명기 33장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야훼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잘나서, 그들의 숫자가 많아서, 그들이 남들보다 뭔가 뛰어났기 때문에 택함받아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무엇 하나 내놓을 것 없고, 적은 숫자의 무리였지만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저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셔서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7장 6절과 7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너는 야훼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야훼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야훼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수도 적고, 힘도 없고, 그리고 저들이 지금 애굽에서 430년을 거하면서 노예생활을 합니다. 절망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을 하나님이 그 절망에 대해서 구원해내신 것입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구원받고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앉아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내 스스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을 따라서 우리가 택함받고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 4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야훼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에베소서 1장 3절로 5절은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할렐루야!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하신 뜻을 따라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 지명하여 부르시고 택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늘 감사하며 감격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 모세를 보내시사 저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저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들 앞에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에 홍해를 가르사 육지처럼 지나게 하셨습니다.

시편 106편 9절로 11절은 설명합니다.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그의 대적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주시고 위대한 승리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중국이,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뭐라고 하더라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 어쩐다 하더라도 일천이백만 하나님을 섬기는 크리스천이 있는 대한민국을 그 어느 나라도 흔들지 못합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는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북한이 우리를 쳐들어오는 날은 그날로 북한이 망하는 날입니다.  시편 40편 2절은 말씀합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편 18편 16절 17절입니다.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에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눈물로 베개를 적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기가 막힐 절망의 자리에 있는 우리를 주님이 건져주시고,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요한1서 4장 10절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내 모든 것 다 바쳐 헌신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시편 18편 1절에,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의 생명이 되시고 나의 희망이 되시고 나의 능력이 되시고 나의 구원이 되시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시편 18편 3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찬송 받으실 야훼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3장 18절에,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저희 교회에 종로중구대교구 6교구에 장점옥 집사님. 유방암 3기 말에서 깨끗이 고침을 받았어요. 2002년도, 남편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나왔지만 10여 년 동안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2016년 4월 15일, 작년에요 건강검진을 받는데 유방암 3기 말의 판정을 받고 임파선까지 전이가 되었습니다. 암 덩어리가 7.5 센치. 너무 커서 8번 항암 치료를 받아서 좀 줄인 다음에, 그 다음에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질병도 우리를 절망에 빠뜨릴 수 없습니다. 왜? 생명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고 1차 항암 치료받은 처음으로 금요철야, 5월 13일에 와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의 죄가 너무 많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저의 모든 죄를 회개할 수 있도록 방언을 주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주세요!”
 그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데 혀가 탁 돌아가면서 방언을 선물로 주시고 그다음부터 몸의 통증이 사라지고, 그다음 주일 2부 예배에 신유기도 시간에 “암에 걸린 사람이 나았습니다” 할 때에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2차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보니 암 크기가 무려 5 센치 이상 줄어들었어요. 그다음 6월 5일 2부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오른쪽 가슴이 아픈 사람이 있는데 오늘 나았습니다.”라고 선포했을 때 “아멘!” 하고 만져보니까 돌처럼 딱딱했던 그 암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할렐루야!

 3차 항암 치료를 받기 전 금식을 하고 갔는데 의사가 말합니다. “선생님께서 무슨 특별한 약을 먹었어요? 몸 상태가 너무 좋아서 믿을 수가 없네요!”
3차, 4차 항암 치료를 마치고 CT 촬영을 했는데 7.5 센치였던 암이 깨끗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컸던 암이 깨끗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 후로 온 교구를 다니며 병 나은 간증을 하고 전도를 합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백혈구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암이 전이된 부분도 깨끗해져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지금은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암이 발생하기 전보다 더욱 건강합니다. 암으로 인해 저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믿음도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어제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오늘도 병을 고치시고 내일도 병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의 믿음은 변함이 있어요. 글쎄 고쳐질까? 그런 생각이 있는 한은 절대 고침받지 못합니다. 나는 고침받았습니다. 믿습니다. 그러면 암도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모든 병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고침받았습니다. 하루는 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바디매오가 나왔을 때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사람 눈이 떠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은혜를 입은 주님의 자녀들로서 늘 감사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함께하시느냐? 33장 29절은 설명합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마귀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해오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모든 마귀의 공격을 막아주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칼이 되셔서 우리가 마귀를 쳐서 부수고 승리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우리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칼이 되셔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게 해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입구에서 40일 동안 가나안을 돌아보고 온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긍정적인 고백을 합니다. 열 명은 부정적인 고백을 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민수기 14장 9절입니다.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거기에 거인 족속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를 메뚜기 같다고 저들이 고백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의 눈으로 바라볼 때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들어가서 점령하자!” 할렐루야. 모세가 죽고 난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주신 여호수아서 1장 5절, 6절의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갈렙이 85세가 되었을 때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여호수아서 14장 12절입니다.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성읍이 크고 기골이 장대한 거인들이 있는 그 성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들을 정복하고 쫓아낼 수 있음을 믿습니다. 내게 그 산지를 주옵소서. 갈렙과 같은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8편 2절의 고백입니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에 그 위대한 승리가 그 후에 예수님을 믿을 모든 사람에게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가까스로 간신히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는 이 승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예수의 유산이라는 책을 내셨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소개되어있습니다. 2007년부터 14년까지 미국에 천개 넘는 교회를 조사해 봤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교인 11퍼센트만 신앙의 황금기를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 축복받은 삶, 승리의 삶, 행복한 삶을 살아야하는데 11퍼센트만 그것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미 우리가 승리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러한 설명입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라는 성경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툭하면 시험이나 약점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 상처가 한 무리의 불량배처럼 달려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검을 뽑아 적들을 쫓아낼 수 있다. 수치야, 죄책감아, 지난날에 대한 후회야, 썩 물러가라! 과거에 질질 끌려다니는 삶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패배보다 승리가 많은 삶,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삶, 절망보다 소망이 많은 삶,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해 핏 값으로 취하신 것들이며, 당신에게 주신 유산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자입니다. 신명기 33장 29절 하반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너의 모든 대적이 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네가 그들을 정복할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백전백승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힘으로 하면 넘어지고 상처입고 좌절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함께하시면 백전백승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까지, 그 죽음의 고난의 자리까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뜻을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2절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순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죄를 짊어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을 극적으로 이기게 하시고 우리를 높은 곳에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3장 19절에 고백합니다.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사람이 누구나 다 높아지길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높여주셔야만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낮추시면 높일 사람이 없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래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그를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노예로 팔았습니다. 또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당해서 죄수의 신분으로 또 그는 신분이 완전히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끌어내린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 9절에서 10절에 그 고백을 들어보세요.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려서 죄수의 신분에 있던 요셉이 당시 최대 강대국인 애굽의 국무총리로 높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끌어내려도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는 것입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하만이라는 아주 교만한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모르드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을 죽이려고 자기 집에 높은 장대를 세워놨는데 그 장대에 자기가 달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대적들이 굴복할 것입니다.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믿음으로 고백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야고보서 4장10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파나마 가난한 어촌에서 자랐던 한 소년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 분이 있습니다. 마리아노 리베라라고 하는 분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그의 자서전에서 그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어릴 때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자라나서 늘 몸에 생선 비린내가 났대요. 그래서 친구들이 밤낮 생선 비린내 난다고 놀리니까 친구들과 싸우다가 그만 고등학교 때 중퇴를 하게 됩니다. 학교를 퇴학당하고 그다음 밤낮 술 먹고 방탕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평소처럼 야구 게임을 하고 있는데 마침 뉴욕 양키즈의 스카우트하러 온 분의 눈에 띄어가지고 1990년 2월, 이천 달러의 계약금으로 마이너리그에 그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당시 환율로 160만원 받고 미국에 계약을 하고 들어가는데요, 시즌을 마치고 잠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그때에 예배드리다가 성령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아직 자신의 구원자로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오랫동안 교회를 왔다 갔다 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없었어요. 그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1, 2분 지났을까, 내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 말씀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성령께서 다정하게 나를 휘감고, 내 마음을 어루만짐을 알 수 있었다. ‘아들아, 내게 오너라.‘”
이 같은 체험을 한 후 그의 삶이 달라집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비행기타고 다른 도시로 시합하러 갈 동안에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버스타고 일곱, 여덟 시간씩을 장거리로 다녀야 되는데 예전에는 늘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감사하고 오히려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으니 감사하다 그러고 92년 시즌에 팔꿈치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는데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아내의 아이가 수두에 전염되서 임신중절을 해야 되는데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됐고. 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데요,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주셔서 95년에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때부터 19년 동안 얼마나 그가 공을 잘 던졌는지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되는데, 연봉 2천 달러에서 마지막에 1500만 달러. 잘 개념이 안 들어오시죠? 180억! 이제 조금 놀라시는 것 같으네. 그렇게 물질이 다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높여주셨어요. 19년 동안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모두 열세 번 걸쳐 올스타 선수로 뽑혔고, 다섯 차례 월드시리즈를 제패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 구원 652세이브. 652게임을 승리하게 만든 거죠. 최다 경기 마무리 952경기, 포스트시즌 최소 경기 당 평균 자책점 최하의 기록 0.7, 최다세이브 기록을 보유함. 그 뉴욕 양키즈 팀은 그의 등번호 42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이렇게 위대한 선수들은 그 번호를 다시는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쓰지 않는 결번식을 하게 되는데, 이 스타디움에 뉴욕의 사람, 팬들이 모여서 그를 격려하고 환호하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은퇴 후에는 마리아노 리베라제단을 통해 무너져가는 교회들을 다시 세우는 일과 아동 교육 사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열아홉 시즌 동안 하나님께서는 내가 뉴욕 양키스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이제 나는 소명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찬송하며, 그분을 간구하고 그 은혜로움과 평화, 자비를 경험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게 바로 그것이다. 팀을 구원하는 마무리 투수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난한 어촌에 생선 비린내 나는 그러한 한 소년이 하나님이 택하시니까 미국 야구 역사 가운데 위대한 인물로 남아서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칭찬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우리에게 위대한 승리를 지금도 선물로 허락하여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와 믿음으로 무장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의 일생이 다 가도록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늘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번 뿐인 인생, 짧게 지나가는 인생 예수 잘 믿고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 살아가는 저희 모두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조용기목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크리스천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의 기도와 감사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누리도록 힘을 써주시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는데, 부부 싸움할 때 나오는 입김을 비닐봉투에 모아서 검사를 했더니 코브라의 독보다 더 강한 독성 물질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또 이와 반대로 즐겁게 웃고 난 사람의 뇌를 조사해보니 독성을 중화시키는 암세포를 죽이는 좋은 호르몬이 다량으로 분비되었다는 것입니다.
 웃음은 독을 없애주는 좋은 약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 마음에 매일같이 독이 쌓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독, 근심과 걱정의 독, 온갖 스트레스의 독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 쌓여서 여러 가지 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웃으면 독이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된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연구해서 입증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최근 과학기술이 발달로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서 엄마가 기분 좋아하면 방실방실 웃고, 엄마가 화를 내면 뱃속에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은 하루에 400번 내지 500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그 웃음이 건강하게 해 주는 것인데, 어른이 되면 하루에 15번 아니면 20번 밖에 웃는데요. 그러면 살아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웃으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1. 항상 기뻐하라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영향력을 줍니다. 기뻐하는 사람이 기뻐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 영향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기쁨을 전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우리에게 향기처럼 생명 있는 파장이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웃을 때 그냥 웃지 말고 ‘꺄르르~’ 소리 내어서 웃는다면 효과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와 근심을 왜 하나님께 맡겨버려야 하냐면, 소나무는 요즘 같은 한겨울에도 푸른 잎이 소나무를 생명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소나무는 한겨울의 혹한과 강풍을 이겨 내고, 벼락을 쳐도 죽지 않습니다. 하지마 수백 년을 버틴 소나무라도 재선충이라는 작은 벌레에게 갉아 먹히면 1년 이내에 말라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재선충 같은 벌레가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염려와 근심이 바로 우리 마음을 갉아 먹는 재선충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마음을 갉아 먹도록 내버려두면 삶은 피폐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염려를 맡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늘 기도를 통해 염려를 주님께 맡겨놔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욥기 1장 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야훼시요 거두신 이도 야훼시오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욥이 고백합니다. 사탄은 고난당하면 욥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욥은 찬송을 통해서 원망과 불평을 이긴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마귀의 전략입니다. 마귀는 불평과 원망을 통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습관이 되면 우리의 삶을 파멸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제일 확실하게 죽이는 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어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려고 하거든 감사와 찬송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떠나가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음은 웃는 자도 웃음을 듣는 자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16편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는 큰 기쁨이 있고 오른편에는 즐거움이 있다고 하니깐, 주님께 더 가면, 근처에만 가도 기쁨이 넘치고 행복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웃는 자는 웃음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찬송과 더불어서 박자를 맞추면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빌립보 감옥에 바울과 실라는 박자 있는 기도를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 찬송을 부르고 박자를 맞춰가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니 예배 효과가 굉장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 지진이 나니까 우연히 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풀리고, 수갑이 풀려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어날 수 없습니다.

 튼튼하게 쇠고랑에 묶여서 수갑을 차고 감옥에 있는데, 거기 한사람 한사람에게 매였던 것이 찰칵찰칵하며 다 풀어진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소리에 기적인 일어난 것입니다.

 E.M 바운즈라는 세계적인 기도 전문가는 “기도는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의 과수원으로 들어가 거기에 있는 가장 잘 익은 풍성한 열매를 손과 마음으로 따서 먹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약속들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낼 때 힘차게 노래를 하면 귀신들이 갈팡질팡 합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었을때, 하나님은 범죄한 사울을 마귀가 괴롭히는 것을 내버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릴 때부터 찬송 부르면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사울 왕이 사람을 보내서 다윗을 궁으로 오게 했습니다. 시울에게 귀신이 이르러 막 고함을 치고 몸부림을 치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야단할 때, 다윗이 기타를 타고 이스라엘의 노래를 부르면 귀신이 떠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의 기분이 가라 앉았습니다. 사무엘상 16정 23절에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신을 기도로 명령으로 쫓아내다가 너무 지치면 찬송을 불러야 됩니다. 저는 귀신을 많이 쫓았는데 귀신 나가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더럽고 악한 귀신아 물러가라! 이 나쁜 놈아 물러가라! 내 근처에 있지 말고 멀리 가라!” 그러는게 매우 힘이 듭니다. 그러면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귀신이 “안 물러간다. 못 물러간다. 안 물러갈거야”라며 반항하다가도 찬송을 부르면 이상하게 귀신들린 놈이 숨을 몰아쉬고 난 다음에, 찬송 소리를 견지지 못하고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34절에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며 예수님을 대단히 무서워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귀신은 쫓아내야 우리가 훼방을 받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불안한 것은 다 귀신의 일인 것입니다. 시편 28편 6절로 7절에 “야훼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야훼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일반적인 기도를 할 뿐 아니라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이 크게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뜻인데,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 선지자는 모든 것이 다 없을지라도, 자기는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면 그는 만족한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다면 오늘 일도 걱정하고 내일 일도 걱정하니 도무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주님은 기도로 인생을 살도록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로 17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심리학자 데이빗 시맨스는 마귀는 인간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서 유혹을 한다고 합니다. 첫째로, “나는 무능하다”라는 생각을 집어넣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듭니다. 거기에 넘어진 신자를 마귀는, 둘째 “이제 다 끝났다” 이와 같은 생각을 집어넣어 주어서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셋째 단계는,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버림받은 자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모든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절망의 근원은 마귀에게 있습니다. 마귀가 절망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잠언서 18장 20절 21절에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절망을 말하면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마귀는 절망적인 생각을 통해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합니다. 그러므로 절망의 근원은 마귀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사람은 이미 마귀의 공격에 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계략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절망이 들어오면 사망이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통해 모든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희망을 꿈꾸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꿈꾸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일인 것인데, 사람들은 대개 큰 시련을 당할 때 “이제 다 끝났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 끝났다”가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아직 기도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끝나야 만사가 끝난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으면 아직 늦지 않은 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말이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시고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늦지 않았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프타임에 전략을 짭니다. 운동이 진 것이 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프타임 시간을 내어서 다시 재정비해서 후반전을 싸우는 것입니다. 운동에는 꼭 후반전이 있습니다. 인생도 후반전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우리의 생애 속에 비참한 고난이 다가와서 “이제 다 끝났다”라고하며 손을 털고 일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생의 운동에 반 밖에 아직 안했습니다. 후반전이 아직 남았습니다. 후반전을 잘 처리하면 운동을 재기시킬 수가 있고, 큰 실패를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금년도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꾸어 보는 것입니다. 꿈을 꿀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절단이지요. 꿈을 꿀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어야 돼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긍정적인 시인을 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죽는 것을 산다고 말하고, 불행한 것을 행복하다고 말하고,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합니다. 주위에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도울 수 있는 길을 열기만 하면 성령이 여러분과 더불어 상상을 초월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후반전 인생을 살아가는데 인간의 힘으로 살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능으로 살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의 힘을 보혜사로 의지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여러분은 버림받은 인생이 아닙니다. 할 수 없지 않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꿈이 있습니다. 큰 꿈도 있고, 적은 꿈도 있습니다. 꿈이 없으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너는 무슨 꿈이 있느냐?”고 여러분 종종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큰 꿈 아니라도 적은 꿈이 있으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은 데로 될지어다.” 굉장한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생기찬 믿음의 선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일이 잘 된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입술로 고백하는 이런 것이 있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이 되지 않고,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까지 늦지 않았으니까 좋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끝났다”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끝났다”고 말하지 말고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한 번 따라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하나님이 오늘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목마르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마귀는 절망적인 생각을 통해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승리하신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감사드립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아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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