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꽃꽂이-2               

 

 

 

 

 

 

 

 

 

 

 

 

 

 

 

 

 

 


 


부활절 꽃꽂이-1               

 

 

 

 

 

 

 

 

 

 

 

 

 

 

 

 

 

 


 



부활절의 주님을 더 가까이서 보자

                                     

사순절 첫째주일

가시 면류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쓰셨던 가시면류관으로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장식을 한다. 가시면류관의 형상을 그림으로 만들어서 투시물 투영기에 의하여, 스크린에 쏘아 예배실에 들어오는 모든 아이들이 보도록 한다.
우리는 가시 나무 줄기를 사용하여 가시면류관의 형상을 이미지화할 수도 있다. 원예 시장에서 가시 나무 줄기를 구입하여 면류관의 형상을 만든다. 이것을 이중 테이프, 또는 스치로폼 접착제를 이용해서, 설교가 진행되는 강대상의 전면에 부착한다. 또는 가시면류관을 예배실의 한쪽 벽에 매달고, 조명기구로 빛을 비추어서, 아이들의 시선을 끌도록 한다.
어린이 주보의 앞면을 이용한 장식을 해볼 수 도 있다. 주보를 꾸미는 도안의 소재로 가시면류관을 사용하여 사순절의 십자가를 생각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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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둘째주일
종이 액자 설치

해마다 4월에 간행되는 기독교 잡지나 기독교에 관련된 신문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림을 개재한다. 지난 해의 잡지나 신문 등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관령된 그림들을 수집하여 소품의 장식물을 만든다. 이들 그림을 액자 형태의 종이로 만든 패널에 붙여서 예배실의 벽면을 꾸민다.
이들 종이 액자 패널은 아주 다양하게 설치할 수 있다. 엽서 크기로부터 B4 크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종이 패널은 검정색의 캔트지를 기본 소재로 하는 것이 좋다. 검정색이 주는 시각적인 무거움에 예수님의 수난을 표현할 수 있어서, 사순절의 경건함을 자아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주님께서 주신 노래-코너 만들기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이 성도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에 대한 묵상을 돕는 코너 장식을 꾸며 보자. 어린이 예배실의 한켠 벽면의 공간에 종이 패널을 소재로 장식한다. 그리고 건축구조상 예배실의 기둥 따위의 돌출된 부분을 이용하여 장식물을 설치하는 것도 코너 장식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이 장식의 소재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그의 십자가에 달리심에서 무덤에 장사지내심, 이어서 부활하심에 이르는 사건을 그림으로 형상화 한다. 또한 이들 사건을 찬송으로 나타낸 찬송가의 노랫말로 그림을 꾸민다. 그러니까 장식을 감상하는 아이들은 그림으로 드러낸 이미지를 노랫말을 통하여 묵상한다.

- 제 1 장면/ 잠에 떨어진 제자들: 깨어있지 못한 제자들 때문에 근심하시는 예수
“감람산 깊은 밤중에 별빛은 희미하여라
주 예수 고민하시며 외로이 기도하시네
주 홀로 깊은 밤중에 고민에 싸여 계시나
그 사랑받던 제자도 스승의 괴롬모르네”
(윌리엄 빙함 타판 요, ‘감람산 깊은 밤중에’ 1,2절)

- 제 2 장면/ 닭의 울음 소리를 듣고 우는 베드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후, 괴로워 하는 베드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나무 위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흑인 영가,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1,2절)

- 제 3 장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외치는 어리석은 군중들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 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 )

-제 4 장면/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 밖으로 가시는 예수님
“매맞아 그 몸에는 붉은 핏방울
고생해서 여위신 파리한 몸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넘어지며 쓰러지며 올라가셔요”
(이태선 요, ‘고생하신 예수님’ 2절)

- 제 5 장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예수님
“예수님 가시면류관 쓰실 때에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얼마나
예수님 십자가 위의 그 아픔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얼마나”
(이태선 요, ‘남 위해 살겠어요’ 1절)

- 제 6 장면/ 무덤을 찾은 여인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신 예수님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네
세상 사람 찬양하니 천사 화답하도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사망 권세 이겼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사망 권세 이겼네”
(필립 폴 브리스 요, ‘할렐루야 우리 예수’ 1절)

- 제 7 장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가져다 준 선물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로버트 로우리 요, ‘무덤에 머물러’ 3절)      

종려주일- 고난주간
십자가에서의 일곱 말씀-모빌 만들기

모빌을 이용한 공간 장식을 해보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셨던 말씀들을 모아서 모빌을 만든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주님의 말씀은 모두 일곱 마디나 된다. 우리는 이를 ‘가상칠언’이라고 한다.

1) 용서의 말씀-누가복음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2) 구원의 말씀-누가복음 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3) 애정의 말씀-요한복음 19: 26-27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보라 네 어머니라.”
4) 고통의 말씀-마태복음 27: 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5) 절규의 말씀-요한복음 19:28
“내가 목마르다.”
6) 승리의 말씀-요한복음 19:30
“다 이루었다.”
7) 부탁의 말씀-누가복음 23: 46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모빌의 소재는 투시물 투영기에 사용되는 필름과 노란색의 색지로 한다. 필름과 색지를 똑같은 크기의 십자가 모형으로 오려서 모빌의 주 재료가 되게 한다. 각각의 십자가 모형으로 오려낸 필름에 ‘가상칠언’을 한 마디씩 쓰고 색지를 붙이면, 모빌은 완성된다.
이것을 펀치로 구멍을 뚫던지, 셀로로이드 테이프를 사용하여 줄로 이어 공간에 매달면 된다.

거룩한 주간 파노라마

예수님께서 사셨던 지상에서의 마지막 주간을 묵상하는 장식을 꾸며보자.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면서 시작된 그의 거룩한 주간을 더듬으면서 주님이 누구이셨는가를 생각하도록 한다. 이 장식은 예수님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도움을 주는 말씀과 성화로 만든다.
이 장식은 캔트지를 패널의 소재로 삼아 꾸민다. 여기에는 시간의 순서로 주제를 선택하여 성화와 이에 대한 말씀으로 만든다. 여기에 사용되는 본문은 개역성경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린이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오늘날의 문체로 작성된 번역본들을 이용한다. 그리고 각각의 패널에는 주제의 제목, 성화 성경 본문의 수록으로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에서 기록을 발췌할 수 있다.

1) 예루살렘 입성

- 마태복음 21: 7-11, 누가복음 19: 28-44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2)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

- 마태복음 21: 12-17, 누가복음 19: 45-48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3) 다락방에서의 마지막 식사

- 마태복음 26: 17-30, 누가복음 22: 7-30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 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저물매 그 열 둘을 데리시고 와서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
이르시되 열 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막 14: 12-26).

4) 겟네마네 동산의 기도


- 마태복음 26: 30-36, 누가복음 22: 39-46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세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막 14: 32-42).

5) 유다의 배신: 예수님을 팔다

- 마태복음 26: 47-56, 누가복음 22: 47-53
“말씀하실 때에 곧 열 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 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곁에 섰는 자 중에 한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 14: 43-52).

6) 대제사장에게 재판을 받으심

- 마태복음 26: 57-27: 1-10, 누가복음 22: 57-71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 14: 53-65).

7)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베드로

- 마태복음 26: 69-75, 누가복음 22: 54-62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막 14: 66-72).

8)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심

- 마태복음 27: 11-31, 누가복음 23: 1-25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
명절을 당하면 백성의 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저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 15: 1-20).

9)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 마태복음 27:32-56, 누가복음 23: 26-49
“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 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막 15: 21-42).

10)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다


- 마태복음 27: 51, 누가복음 23: 45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막 15: 38).

11) 빈 무덤

- 마태복음 28: 2-6, 누가복음 24: 1-7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막 16: 2-7).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영광중에 다시 오시네!!-


 

 

 

막16:1-16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아멘.

 

 

1. 부활절은 우리 예수님이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날을 기념하며 축하하며 감사하며 찬송과 경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 오늘은 우리 예수님이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날을 기념하며 축하하며 감사하며 찬송과 경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사도신경의 내용대로 하나님께서 온 우주 천지를 만ㄷ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롬4:25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구약에 말씀하신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시고 영원히 우리를 죄사해주시는 영원한 우리에게 부활 생명을 주시는 이 은혜의 놀라운 일을 주님이 하셨습니다.

. 주님이 살아나심으로 주님의 연약함이나 범죄함으로 죽어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 때문에 죽어주심이 확증되셨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 죄때문인데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용서해주시려고 그뿐만 아니라 우리로 영생 얻을 하나님의 아들 딸 삼아주시려고 우리 위해서 주어주셨음이 부활로 확증되셨습니다.

. 그래서 어둠의 세력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부활은 사복음서에 다 나오는데 부활을 막아보려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고 부활하지 않았다고 하고 경비병들이 단단히 지키는데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대제사장에게 보고합니다.

. 그러면 정말 사실이구나 하고 회개해야 하는데 오히려 돈을 주면서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을 하라고 하는데 사단이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려고 인간에게 소망을 얻지 못하게 하고 죄가운데 살다가 영원히 지옥보내려고 죄사함 받는 길을 막으려고 부활에 대한 신학적인 공격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 별별 이론이 많은데 도적설, 기절설, 환상설등 심리학적으로 여러 가지로 반박했지만 다 패배했는데 실질적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생명바쳐 증거하셨는데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시는데 그 전에는 인간인지라 죽으면 죽으리라 주님을 부인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부인하게 됩니다.

. 예수님의 부활을 원래 믿지 않는 제자들인데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겁많은 제자들이 부활의 복음을 위해 생명 바쳐 거의 순교하면서 부활을 증거하는 사실을 교회 역사적으로 압니다.

.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선 사람인데 그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데 이는 주님의 증인으로 쓰시려는 특별한 섭리이고 창세전에 택한 그릇이라고 예수님을 그렇게 반대한 그를 만나주심으로 그가 완전히 돌변해서 오히려 열두 사도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충성스럽게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면 겁쟁이들이 증거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에게도 여러 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려고 했지만 어떤 학설도 권위 있게 하지 못하고 패배합니다.

.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성령으로 오셔서 증명하시고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 얻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 증인입니다.

. 그리고 그 박해속에서도 오직 이 부활의 소망으로 인내하고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부활의 소망으로 인내해온 승리의 열매들, 그리고 오늘도 부활의 소망으로 세상유혹을 거부하게 하며 성도들이 구별되게 거룩하게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힘이 부활의 성령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하신 성령을 받고 있는데 제자들도 두루 나가 전파할 때도 사도행전의 오순절 때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으면서 부활의 주님을 전합니다.

. 사도행전을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죽였으나 하나님이 살리셨다 우리가 그의 증인이다 하며 위협하고 채찍에 때려도 부인하지 않는데 이는 너무너무 놀라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 지구상에서 들려있는 어떤 황금이 발견되었다거나 국제적인 운동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승리했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바로 자기를 위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된다는 이런 하나님의 확증적인 약속이기 때문에 이 모든 복음의 진리가 사실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 자기만 기쁜 것이 아니고 이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해야겠다는 사명감 대문에 확신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영혼에 대한 사명감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부활로 주님이 나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확증되셨는데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됩니다.

. 주님이 부활하지 않으셨고 시체를 훔쳐갔다고 하는데 이는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어떤 이유도 타당성이 없는데 특히 이런 말들은 믿을까 말까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부활의 주님을 삶가운데 경험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 말이 옛날 말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 주님의 부활로 주님이 나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확증되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못박히시며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셨는데 누구든지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나를 천국에 보내주시려고 대신 죽어 주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입니다.

 

4. 영화로운 몸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주님이 영광중에 오실 때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나타납니다.

. 날로 새롭게 부활의 생명으로 자라나고 있는데 이 생명이 죄짓기 전의 아담과 하와의 차원보다 높은 수준인데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없는 몸인데 모든 면에서 그들보다 훨씬 영화롭습니다.

. 그 생명이 지금 자라고 있습니다. 야이로 딸도 살아났으나 이 몸은 소생이고 또 그 몸은 죽어야 하는데 부활의 몸과 다릅니다.

.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영원히 죄로 죽을 수밖에 없고 영원히 고통의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주님께서 건져주시고 빼내주셔서 주님이 내 대신 벌을 받아 주셨기에 그런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 주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인데 그 생명이 우리안에 들어오심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 주님이 육신으로 오셨을 때는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채찍에 때리시니 피도 나고 피곤하시니 주무시기도 하셨는데 주님이 부활하신 몸은 영화로운 몸이고 제자들이 문을 닫았는데도 벽을 뚫고 오시는 초자연적인 몸으로 죽지 않는 몸입니다.

. 전에는 죽을 몸이었기에 죽었지만 이제는 그 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께 받은 새 생명은 이전의 생명이 아닙니다.

. 이전의 몸은 이미 죽은 몸이고 아담과 하와가 죄짓기 전의 몸인데 그 몸도 아니고 그보다 더 영화로운 몸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이 몸이 주님이 영광중에 오실 때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나타납니다.

. 살전 4;16 이하와 고전 15장에 부활의 장인데 강한 몸으로 썩지 않을 몸으로 나타나는데 그때 이 몸이 부활의 몸이구나 실감이 납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부활하고 내 자신이 부활하고 신분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신적인 존재가 됩니다.

 

5. 우리가 하나님의 왕자인데 이를 믿고 얼마나 보답하고 내 삶이 얼마나 성령으로 변화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 이런 복음을 우리가 받고도 아직은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실감이 잘 안나고 은혜 안에서 성령안에서 분별이 없고 깨어있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습니다.

. 자신이 왕자이지만 누가 알려주기 전에는 알지 못하듯이 그래서 무가치한 일을 평범한 일에 종사하고 있듯이 그러나 당신은 왕자라고 하면 그때부터 그 일을 하지 않습니다.

.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왕자인데 이를 믿고 얼마나 보답하고 내 삶이 얼마나 성령으로 변화되었느냐입니다.

. 왕자되었다고 자동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경건의 훈련을 하고 힘쓰고 주의 뜻대로 살고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 하나님의 자녀인데 더 영광스런 자녀로 성장해 그날에 주님 앞에 칭찬과 영광을 얻는 자녀도 있고 그렇지 않고 세례까지 받고도 그때 뿐이고 여전히 세상 사람처럼 살면 천국에 오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 왕자의 품위를 너무 손상시키고 하늘나라 영광을 너무 가리운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위선속에서 그런줄 모르지만 죄인에게 주신 이 엄청난 영광스런 생명을 무시하고 소홀히 여기고 더 영광스런 생명이 되는 기회를 주셨는데 오히려 마귀에게 뺏겨버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특히 물질 만능이 팽배해진 때는 더합니다.

 

6. 부활생명 받은 자녀답게 살아야 하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더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러야 합니다.

. 수십년 동안 부활주일을 맞이했을텐데 과연 그들의 생명이 영광의 생명으로 변화되었을까! 생각해볼 때 여전히 세상에 소망두고 땅의 가치관을 최고로 여기고 목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나 위해 죽어주시고 천국의 부활의 소망을 주시고 그 때문에 십자가 고통받으신 주님께 기쁨이 아니라 슬픔과 근심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 부활생명 받은 자녀답게 살아야 하고 더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러야 하는데 자기의 정체성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 초대교회 때부터 기독교가 이천년 동안 전파되어 왔는데 초대교회가 원본인데 이렇게 살지 못하고 복스런 소망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신앙으로 살지 않고 현실적으로 삽니다.

. 이것을 주님이 예언하셨는데 경건의 모양만 있고 실지고 부활의 소망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변화의 몸을 입어야 완성인데 사도바울의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는 말이 이 말입니다.

. 벗고자 함이 아니라 덧입고자 했는데 이 몸이 그리스도와 같은 몸입니다. 빌3:21.

. 천국과 면류관 쓰고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변화의 몸을 입게 해주시려고 우리 죄 때문에 죽어주시고 다시 살아나시고 우리를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시려고 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시려고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7. 부활절의 메시지는 우리 죄 때문에 죽어주시고 성령으로 더 큰 영광을 목표로 또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사는 것이 삶의 목적임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 롬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더 영광된 부활의 천국으로 옮겨주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더 변화되고 영화롭게 되게 되는 것이 주님의 뜻이고 우리도 영광이 됩니다.

. 부활절의 메시지를 많이들 전합니다. 부활절 메시지!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영원히 부활의 몸으로 함께 누릴 영광의 소망으로, 그 앞의 즐거움으로, 주님이 부활하셨고 지금 부활의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가운데 계셔서 그 영광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고 계십니다.

. 잠깐 사는 세상에서 부활의 소망은 참된 최고의 의미가 되고 목적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저리로서 산자를 심판하러 오시는데 오실 주님을 더 영광된 모습으로 더 영광의 부활의 몸을 입고 만날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하고 열심을 품고 기쁘시게 섬기고 이 세상에서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고 세속에 물들지 말고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케 합니다.

. 핍박지역 성도들은 고난에 비할 수 없는 영광이 있으니 참고 주 오심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날에 큰 영광을 얻도록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 교회가 이런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사도신경에 나오는 핵심입니다. 우리가 다시 살고 영원히 사는 것을 믿기 때문에 더 영광중에 주님을 뵈옵기 위해서는 이런 깨어 있는 믿음으로 이 시기를 알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 우리 힘으로 안되니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매일매일 주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람이고 소망의 삶이고 승리의 삶이고 이렇게 뿌리고 행했기에 주님이 오실 때 믿음대로 행위대로 갚아 주십니다.

.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삶의 변화도 있어야 하지만 이는 부활의 한 부분이고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도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핵심은 이것입니다.

. 주님이 나 위해 죽어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시는데 우리고 그날에 해와 같이 빛나는데 영광도 해와 달과 별같이 다릅니다.

. 지옥의 고통도 행한대로 다릅니다. 천국도 행한대로 갚으시듯이 지옥도 행한대로 갚으십니다. 심판 날에 소돔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셨고 가버나움과 벳세다는 이적도 많이 보고 했는데 회개도 안하니 알고도 행치 않는 자는 벌이 더 많은데 알고도 행치 않으면 벌이 더 많습니다.

. 우리가 이 시대 주님을 사모하는데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부활시키실 것을 기대하시고 기다리시는데 우리 아버지시고 신랑이시니 우리보다 더 기다리십니다.

 

8. 부활 주일에 우리 신앙을 점검해야 하는데 주님이 부활하셨다 찬양하고 여전히 삶에서는 세상소망으로 산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위선입니다.

. 부활 주일에 우리 신앙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 찬양하고 여전히 삶에서는 부활의 소망으로 살지 않고 세상소망으로 산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위선입니다.

. 주님이 이 때문에 죽으셨는데 내가 정말 영광 중에 주님을 만날 목적으로 산다면 오늘 부활절 예배를 아주 기쁘시게 받으실 것입니다.

. 주 오실 때 영광 중에 주를 뵈어야 되겠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렇게 해주시기를 원하시고 이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누리시는 생명이 영생인데 자녀인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 부활신앙은 때로는 우리 신앙이 침체되고 형식적인 신앙에서 더 영광스런 신앙이 되는데 이는 부활하신 영이 우리로 더 영광스런 부활신앙이 되게 하시는데 부활신앙은 이 땅에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9.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주어짐을 믿는데 고난을 통해서 우리 신앙이 훨씬 빨리 성장하는데 그래서 고난은 내게 유익이 됩니다.

. 부활의 소망으로 고난 받는 사람들이 참고 견딥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주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기쁜 뜻 없이는 주어지지 않는데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 성경에 보면 고난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고난을 통해서 우리 신앙이 훨씬 빨리 성장하는데 그래서 고난은 내게 유익이라

. 고난 때 이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나는데 고난이 자기의 잘못함으로 징계로 올 수도 이는데 환경을 바꿔주실 수도 있고 환경은 그대로 두고 내 믿음을 일으켜 환경을 이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 부활의 주님은 고난에 처한 성도들도 그렇게 해주십니다. 많은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이 낮은데서 높이셨다고 하고 승리했다고 하기도 하고 고난은 그대로 있는데 내가 변화되면 이기는 것입니다.

. 배를 타고 가는 길에 곳곳에 암초가 있듯이 상황을 초월한 기쁨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니 환경은 아무것도 아니고 능히 환경을 이깁니다.

. 환경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이전과 다른 신앙이 되게 하십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힘으로도 우리 삶에서 적용됩니다.

. 우리 신앙을 올려주시려는 것이니 환경이 자동적으로 없어질 수도 있고 환경은 그대로 두시면서 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결정인데 우리의 체질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적절하게 하십니다.

 

10. 무서운 해산의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엄청난 생명을 받았으니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 생명의 삶을 보았더니 고난에 대한 예를 많이 실어놓았는데 물론 믿지 않는 사람도 인생은 고난의 삶입니다.

. 이 땅 자체가 유배지이고 악한 영이 난무하고 세상은 눈물골짜기이니 천국을 사모케하고 또한 이런 것으로 우리를 연단시키고 테스트하시려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목적으로 허락하십니다.

. 특히 지금은 마지막 때이니 더합니다. 청소년들이 예전보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더 있지만 더 우울증도 많고 폭력도 많아졌습니다.

.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사는 것은 더 좋아졌는데 자살은 더 많이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고통하는 때이고 여러 가지 유혹도 많고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복잡합니다.

. 예전에 우리는 하루 종을 노는데 흙에서 아이들과 어울리고 자연과 어울리는데 지금은 자연과 어울리는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 외국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이 부활절날 아이들에게 좋은 설교를 하려고 물어보았습니다. 부활절날달걀 속에서 전혀 다른 병아리가 나오는 그런 의미에서 달걀을 나눠주는데 이분도 부활의 의미를 알려주려고 달걀을 나눠주면서 ‘애들아 달걀은 어디에서 나오니?’하고 물어보았습니다. 당연히 닭이요! 할줄 알았는데 열두명의 아이들이 똑같은 음성으로 ‘토끼요’ 하더랍니다. 놀래버렸는데 그만큼 아이들이 자연에서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토끼니!’ 하니 ‘tv에서 나와요!’ 하더랍니다. 광고하면서 나온 모양인데 이렇게 미디어 메체가 영향이 있습니다. 이를 알려주려고 닭이 알을 품는 것을 알려주려고 보여주었더니 ‘닭이 알 위에 앉았네’ 하더랍니다.

. 사람은 누가 만들었냐 하면 원숭이요! 진화론자들이 그랬어요 원숭이가 어느날 갑자기 변했데요...

.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사람은 누가 지었니?’ 물으면 ‘하나님이요!’ 가 정답입니다.

. 만물을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모든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시고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 죄를 지어 영원히 벌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은 어디에서 오지? 누가 주었지?’물으면‘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셨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 영원히 사는 부활 생명은 주님이 주셨습니다. 무서운 해산의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엄청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 신앙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11. 천국의 소망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 서울대 방사선과 박재형 교수로 목회자 자녀인데 이분이 선교사님을 돌보고 의료선교 단체도 짓고 노년이면 서울을 떠나 부인과 경치 좋은데 건물을 지어 은퇴하신 선교사님들을 섬길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뇌종양에 걸려버리셨습니다. 치료 후유증 때문에 왔는데 십여년을 식물인간처럼 눈을 맞춰도 반응이 없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꿈을 포기하고 예비한 땅을 호스피스 기관에 기증하고 이 땅의 삶은 잠깐이니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리고 사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이분은 지극한 정성으로 아내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돌보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고난이 오면 죄로 말미암아 온 것도 있고 연단으로 온 것도 있는데 머지않아 천국에서 건강한 몸으로 기쁨을 재회할 것을 기대하며 이 소망을 간직하고 어려운 삶을 견디며 산다는 간증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죄사함과 영생을 통한 소망을 가진 자가 아니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소망으로 견디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 잠시 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산다는 것 때문에 견디는데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 그렇지 않으면 원망불평하며 살수가 없습니다. 이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고 헌신적인데 이런 고난이 오는데 이런 고난속에서도 부활의 소망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 어떤 분은 이분은 환경이 아주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나 스무살에 서울에 올라와 변두리 판자집에서 월세방을 얻어 직장생활을 했는데 화재가 나서 판자가다 타버렸습니다. 그것도 힘든데 애매하게 자기가 방화범으로 몰려가지가 불을 질렀다고 해서 감옥살이까지 했습니다. 나와서도 다시 재기해보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안되니 한국이 싫어 떠나고 싶어집니다. 떠나는 방법이 외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니 미국사람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납니다. 결혼 전에는 몰랐던 남편의 증세가 나타나는데 알콜중독입니다. 날마다 술마시고 가족 행패를 부리는데 이분이 영어를 잘 못하는데 한국 사람같으면 말로라도 시원스럽게 풀 수 있는데 영어가 잘 안되니 더 답답합니다. 남편이 술 중독에 직장까지 실직당해 자기가 벌어야 합니다. 영어도 서투른 자기가 일자리를 찾아보는데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하듯이 그런 고통스런 삶을 이십여년을 사는데 심한 우울증이 왔습니다. 이분에게 부활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납니다. 이 때 이분이 하나님을 다시 만납니다. 바람 속에서 주를 만났네! 눈물 속에서 주를 만났네!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평안할 때는 모르다가 사랑하는 남편이 자녀가 떠날 때 건강이 나빠질 때 주님을 다시 만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고난들이 저주받은 인생으로 생각했는데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고 자기를 사랑해서 아버지께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섭리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전에 알지 못한 주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의 사랑이 채워지면 다른 것이 어려워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남편이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없는데 주의 사랑을 맛보았기에 그런 상황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 고난이 큰 유익이 되었는데 그전에는 구원의 확신도 별로 없고 주님도 별로 안찾았는데 그런 고난은 영적유익을 주려는 것인데 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로 깨달으니 상처도 안받고 유익이 되는데 자기를 높이 세우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았습니다.

. 고난 때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섭리를 알게 되는데 그렇지 않고 원망하며 더 망가집니다.

. 평안할 때도 부활의 신앙을 가지지 아니하며 세상에 빠져 살다가 덫과 같이 그날이 올 때 큰일납니다.

. 고난 때 우리는 무수한 너무 많은 것을 얻음을 알게 됩니다. 지난날 어려움이 지금 어떤 유익이 되었는지 압니다.

. 고난자체가 유익 주는 것은 물론 아니고 고난통해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주님의 은혜로 고난이 상상을 초월한 유익이었음을 압니다.

. 고난 통해 낮추시고 기도해서 오늘 이런 은혜를 받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찌 내가 이런 주님과 친밀한 관계로 들어오고 이런 신앙이 되겠는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입니다.

 

12.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막달라마리아의 기쁨과 감격! 부활의 소식은 연인들이나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소식입니다.

.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과 주님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받지 못한 인격적인 사랑과 대우를 받았던 여인들, 특히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들이 자기를 외면하고 정죄하는 자신을 주님은 얼마나 사랑해 주셨습니까! 그에게는 주님의 죽으심이 너무나 큰 슬픔입니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친밀했느냐에 따라서 따릅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다른 사람의 죽음의 슬픔이 다르듯이 다릅니다.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들이 아니면 모릅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슬퍼 우는 것입니다.

. 이 여인들이 새벽미명에 사랑하는 주님이 계신 무덤을 향해 가는데 누가 우리를 위해 돌을 굴려주겠는가! 돌도 무거워 굴리지 못할뿐더러 더구나 군병들이 지키고 있는데 돌이 굴러져 있습니다. 천사가 ‘너희가 찾는 예수 그분이 살아나셨다! 갈릴리에 먼저 가신다고 제자들에게 만나자고 전하라고 합니다. 시체가 없어졌으니 놀랬겠죠!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충격이었을까요!

.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그 마리아의 표정! 마리아야! 하고 부르는 음성에 동산지기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감정을 영화배우가 어떻게 다 표현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알려주려고 웅장한 음악이 깔리면서 마리아가 달려가는데 막달라 마리아만 경험할 특권이 있는데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이고 그렇게 주님 때문에 슬퍼했는데 슬픔이 변하여 완전히 큰 기쁨으로 변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8.15 해방도 어마어마한 기쁨인데 주님이 살아나셨다고 전하러 가는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오는 아름다운 발이여 하듯이 그런데 제자들이 믿습니까! 안믿고 허탄한듯이 봅니다. 자기를 비정상적으로 보고 안믿으니 마리아의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 주님께서 본자들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을 보시고 꾸짖으셨는데 본자들이 경험한 자들이 증언을 듣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 나를 위해 죽어주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데 제자들도 믿고 부활의 주님을 전하러 자기 전 생명을 바쳐서 살았고 거의 다 순교하셨습니다.

. 무엇 때문에? 부활 소망으로! 부활의 기쁨으로 이 진리 때문에, 생명의 진리 때문에, 부활의 진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 부활의 소식은 연인들이나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소식입니다.

 

13. 사망에서 생명으로, 사단에서 하나님께로 옮겼는데 대역전도 이런 역전은 없으며 최고의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 야곱도 죽었다고 생각한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안믿었다고 했는데 정말 허탄하게 들린 것입니다. 요셉의 옷이 찢긴 것을 보았고 22년이 지났는데 더구나 총리가 되었다고 하니 더 안믿는데 물품을 보여주니 그때서야 믿고 죽은줄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합니다. 요셉이 살아 있고 또한 애굽의 왕 다음인 총리가 되어있다는 소식은 자기 생애에 최고의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야곱의 소망은 죽기 전에 요셉을 만나는 것이고 만났을 때는 내가 죽어도 가하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내게 이런 기쁨을 주시는구나 했는데 이 기쁨을 야곱이 아니고서는 누가 알겠습니까!

. 고통 많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활의 주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셨다는 사실이 깨달아지고 삶이 이 땅이 다는 아니고 영원한 삶이 있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고 내가 주님을 섬기는 삶이 하늘이 기업을 얻는 삶이고 그리고 부활하신 성령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고 더 총애받은 사실을 알고 이 총애가 마치 영광을 얻은 확증임을 알았을 때 이 기쁨은 야곱에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보다 더 놀라운 소식입니다.

. 우리는 완전히 새 생명을 얻어 지옥갈 우리가 천국가게 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사단에서 하나님께로 옮겼습니다.

. 이제는 영원한 생명과 소망으로 살게 되는데 목적이 행복관이 가치가 달라져버리고 인생 대역전도 이런 역전은 없습니다.

. 거지가 왕자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골처녀가 왕비 되고 에스더가 페르시아노예인데 노예소녀가 황후가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보다 비교가 안됩니다.

. 영원히 사단의 노예로 지옥갈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가고 있으니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는데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 마지막 단계로 우리 몸이 변화되는데 그래서 이런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로운 부활 생명, 천국 생명으로 바꿔주셨는데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고 가장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14. 최종하일라이트 소식은 영광중에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 영광의 부활에 푯대를 맞추시고 삶을 살아가시면 부활의 주일에 최고의 의미가 있고 하나님께서도 기뻐 받으실줄 압니다.

.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주님이 부활하심은 나를 위해 죽어주심이 확증되고 주님의 부활은 나도 부활한다는 첫 열매이고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시는데 최종하일라이트 소식은 결론은 영광중에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

. 나팔불 때 나의 이름을 불러주실 때 영원한 잔치에 참여합니다. 주 앞에서 영원토록 크게 기쁘고 즐겁게 될 첫날 그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도 영광중에 만날 날이 우리의 마지막 남은 최고의 기쁜 소식입니다.

. 아버지 앞에서 수고했다고 상받을 때 그것도 너무너무 영화로운 내 생애 영화로운 날이 됩니다.

.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안왔다고 하듯이 모든 것이 가장 좋은 것인데 영원히 가장 좋은 것을 누리게 됩니다.

. 나 위해 죽어주시고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부활 주일의 의미가 경배하는 이유이고 감사 찬양 기뻐하는 목적입니다.

. 오늘 부활주일에 이런 믿음, 이런 은혜, 이런 소망으로 살아가고 계신 분들은 부활하신 주님 다시오실 주님이 너무너무 감격스럽고 기쁠 것입니다.

. 그러나 세상소망 두신 분들은 별로 안기쁠 것입니다. 그럴찌라도 우리는 곧 이 땅을 떠나서 가야 하니 여기에 영원히 머물 수도 없고 머물고 싶지도 않고 영원히 살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곳에서 더 영광스런 삶을 마련한 시간을 주신 것에 감사드리면서 오늘 부활주일 이후로 우리 개개인의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나 극히 짧을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남은 얼마의 시간 최소한도로 천국 가실 수 있도록 회개하고 그리고 더 영광중에 뵈올 수 있도록 이 영원한 최고의 즐거움, 행복, 기쁨, 영광의 부활에 푯대를 맞추시고 삶을 살아가시면 부활의 주일에 초고의 의미가 있고 하나님께서도 기뻐 받으실줄 압니다. 아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한 주 보냅시다


26∼31일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열려
조용기·이영훈 목사 ‘제자의 길’ 주제로 설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이 바로 고난주간이다. 우리 교회는 4월 1일 부활절을 앞두고 26일부터 31일까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갖는다. ‘제자의 길’을 주제로 오전 5시 대성전(지·직할성전은 위성중계)에서 열리는 특별새벽기도회는 조용기 목사와 이영훈 목사가 설교한다. 이영훈 목사는 고난주간의 예수님 행적에 대해 전할 예정이다.
 고난주간은 사순절 마지막 한 주로 인류 대속을 위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종려주일부터 부활 주일 하루 전인 토요일까지다. 고난주간은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신앙을 점검하고 훈련하기 좋은 때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교회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특별 새벽기도회 또는 개인기도 시간을 보낸다. 금식을 선포하는 것은 나와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개인의 유익과 쾌락 대신 기도에 힘쓴다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고백한다는 의미다.
 성경이 기록하는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금식기도를 선포했다. 또 특별한 예배와 관련해 금식하기도 했다. 부활절을 앞두고 하는 고난주간의 금식기도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다. 또 특별새벽기도회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의 마음을 고백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배가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한 영광을 경험하게 해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한 주간은 기도에 동참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새벽 오히려 미명,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던 주를 기억하며 우리도 새벽기도회에 동참해 감사기도를 드려보자.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주일) - 주님이 고난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월) - 예수님이 거룩한 성전이 시장화된 것을 보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청소하신 날입니다. 성전인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도록 마음을 청결히 해야 합니다.
(화) -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무리를 가르치시고 유대인들과 치열하게 논쟁하신 날입니다. 우리 신앙의  첫 계명인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신 날입니다.
(수) - 예수님이 성 밖 베다니에서 제자들과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신 날입니다. 이날 마리아는 주님께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었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할 음모를 꾸몄습니다.
(목) -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이어 열 한 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당하셨습니다.
(금)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6시간 동안 고통당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날은 ‘성금요일’이라고 말합니다. 나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만 했던 주님의 깊은 사랑을 묵상해야 합니다.
(토) - 우리의 죄와 허물을 속량하시기 위해 무덤에 갇혀 죽음과 저주, 심판을 홀로 견디신 날입니다. 사망과 죽음을 이기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신 부활의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날입니다.


십자가의 고난2


십자가의 고난

 

 

 

 

 

   

   

부활하신 예수님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드리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부활이란 무엇일까요?

부활의 의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다시 죽지 않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다시 죽었기 때문에 부활이 아닙니다.

나사로가 부활했다고 설교하는 분들이 있는 데 그분들은 부활의 의미를

모르는 분들입니다.

또한 부활절때 달걀(계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교회가 많이 있는 데

그것도 잘못입니다. 계란은 움직이지 않아서 죽어있는 것 같지만 생명체입니다.

계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활의 의미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잠시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것이 아닙니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로마군병들이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보고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했고

유대장례법에 따라 동굴무덤에 장례지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도적질해가고 난다음에 부활했다고 할까봐 로마정부에서는 로마군병들로 하여금

무덤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실때 지진이 일어나고

소란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군인들은 도망가고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2.예수님께서 왜 부활하셨습니까?

(1)절망에 빠진사람들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절망했고 사명감을 잃어버렸다.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희망을 갖게 되었고 오순절날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다.

(적용)하십시오

(2)첫 열매가 되기 위해서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는 데 부활의 모습은 영만 부활한 것이 아니고

몸도 부활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모습으로 부활했다.

(적용)우리도 장차 예수님처럼 부할하게 될것입니다.

약한몸은 강한몸으로, 추한몸은 영화로운 몸으로, 병든몸은 건강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3)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부활하셨다.

이세상 종교창시자의 무덤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석가의 무덤이나 마호메트의 무덤이나 공자의 무덤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종교는 생명없는 종교입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만 구원이 있습니다. 기독교만 생명이 있습니다.

 

3.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는 가?

(1)성경

(2)교회

(3)예수님의 무덤

(4)세계백과사전

                           

주님의 수난은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온몸에 채찍질을 당하고 머리에는
가시관이 눌려 씌여져 이미 기력이 쇠진해진 상태에서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느라고 연거푸 쓰러지셨고
십자가에 매달려 극심한 고통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의 고통,
이러한 고통 중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무엇일까요?

채찍에 맞아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
살갗을 파고드는 가시의 고통?
십자가에 매달려 숨통을 조여오는 죽음의 고통?

주님의 가장 커다란 고통은 이런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버림받거나 배신당하는
소외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가까운 제자로부터
돈 때문에 배반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은 스승을 버리고
저 살기 바쁘게 도망쳐 버렸습니다.

가장 믿었던 제자에게,
3년 동안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잔,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잘 따랐으며
가장 잘 믿었던 제자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받은 재판은 불의와 거짓투성이였습니다.
재판은 너무나 일방적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변론조차 하지 못하고 심문은 끝나버렸고
형이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다 깔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이스라엘의 임금님, 높은 곳에 호산나!”
하고 열렬히 환호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렇듯 예수님을 가장 힘들게 했던 고통은
가장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버림받은 고통이요,
진리를 저버리고 불의와 부정이 만연한 세상에 대한 한탄이요,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사순절에 대하여

  
1) 사순절의 의미

사순절은 교회력에 있어서 성탄절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에게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이다. 사순절은 앵그로 색슨의 [봄]이란

의미의 Lenen에서 왔다. 이 절기는 부활절을 위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의 시기이며,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촛점이 맞추어지는 때이다. 이 절기는 특별한 회개일인

속죄일(Ash Wednesday)에서 시작되어 성 금요일(Good Friday)의

슬픔과 비극 가운데 끝난다. 이 기간에는 금식하며

자기회개의 기회로 삼아지기도 한다.

사순절은 부활주일로 부터 주일을 뺀 40일 전부터 시작되므로

이 기간동안 자신을 돌아 보며 지내는 좋은 교육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정하는 시기 기준 - 부활절은 매년 봄 춘분이 지난 후 처음으로

보름달이 뜨고서 그 후에 오는 첫 주일로 정합니다. 춘분이란 아시다시피

겨울에는 짧던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져서 밤의 길이와 똑같아지는

날이지요. 이 날을 봄의 첫날로 꼽는 것입니다.

40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광야의 40일 간의 예수의 금식,

시내산에서의 40일 간의 모세의 사건, 무덤 속에 40시간 동안 계신 예수,

부활에서 승천까지의 40일을 의미한다.

사순절의 근원은 초대교인들이 성찬식을 지켰던 일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준비를 위해서 금식했던 것처럼

기독교인도 성찬식 전에 금식했었다.

"사순절"의 역사적 출현을 살펴보면, A.D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정한 교회의 규칙에 40일 간의 사순절이 언급되어 있고, 중세기에는

주로 사순절을 회개의 시기로 지켰는데 종교개혁자들도 이 사상을

받아 들여서 공동기도문 중의 사순절 기도문의 주제를 "회개"로 삼았다.

사순절 기간에 주일들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사순절이 부활절 이전 사십일째 되는 날부터 시작되지 않고 그보다

이전에 시작되기 때문에 사순절이 사십일이라는 것에 대해

종종 혼란을 느낀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순절에는

주일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일은 축제의 날이지

금식의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일날 예배 드리는 이유부터

상기해야 한다. 유대 그리스도인 전통에서 원래 예배 드리는 날은

안식일 즉 토요일이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고 체칠일에 안식하신 일에서 유래된 것이다. 안식 후 첫날

즉 일주일의 첫날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초대교회는 이 가장

중요한 사건을 예배시에 축하하고 기념하기로 결정하고 관례화 하였다.

일요일 즉, 매 주일의 첫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된

것이고 그래서 즐거운 날이고 경축일이며 축제일이고 "작은 부활절"인

셈이다. 즉 주일은 사순절보다 우월한 날이기 때문에

사순절의 사십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1) 속죄일(Ash Wednesday)

올해(2012년)의 사순절의 시작은 2월 22일이다. 사순절은 언제나

수요일에 시작되는데 [재의 수요일 성회]라고도 한다. 성서에서

재는 슬픔과 죄에 대한 회개의 상징으로 나타나는데 재는 전년도

종려주일에 사용 되었던 종려 가지의 숯을 사용해 신자들의 이마에

십자가상징을 그리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2) 고난주간

부활주일 전 한 주간을 고난주간 또는 수난주간이라 하며, 이 주간은

수난절의 절정기로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주간임을 뜻한다.

종려주일로 부터 시작되며 고난주간에 일어난 일들은

"예수님의 발자취"에서 다룬다.

 

●종려주일(Palm Sunday)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마 21:1-11, 막11:1-10, 눅 19:28-40, 요12:12-19)이며,

고난주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 주간에는 그동안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시행해온 모든 프로그램을 더욱 뜻있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한다.

종려주일은 사순절의 여섯번째 주일이 됩니다. 한때 이 주일은

"호산나 주일"(Dominica Hosanna)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종려주일이란

이름은 1928년 이후에야 영국국교 의식에서 나왔다. 팔마룸(Palmarum)

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뜻은 '종려의'라는 뜻이며 종려가지에 대한

축도가 있은 후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분배해준 다음에 성직자와

성도들이 두줄로 행진을 하였다. 이 행진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신 것을 모방한 것이다.

이 주일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공적으로 알려 주는 절기로서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

Maundy는 라티어의 율법이란 의미를 나타는 mandatum으로 부터

나온말로 이날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목요일날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13:34)라는 가르침을

주심을 기념한다. 이날은 또한 성 목요일이라 불리우며 보통 교회에서

이날 성찬에 참여하거나 세족식을 통해 기념하기도 한다.

 

●성 금요일(Good Friday)

성 금요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신 놀라운 사랑이 나타난

날로 성 금요일(Good Friday)이라고도 한다.

부활전 금요일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슬픈 날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하여 인간을 위한 그의 사역을

성취하셨기에, 바로 이 부활 사건의 전체를 good으로 받으셨기에,

Good Friday라고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God's Friday에서

Good Friday가 되지 않았는가? 하고 보기도 한다.
 


2) 사순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1) 예전

구약때 부터 교회의 의식에는 언제나 특유한 빛깔을 사용하여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별히 레위기에 제시된 하나님을 위한

제단 앞에서 여러 빛깔이 명령대로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빛깔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우리의 마음가짐을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교회력에 따라 설교대(pulpit), 교독대(lectern), 제단(altar),

목사의 가운 드림천(stole)을 드리우며 그 의미를 지키는 것이 좋다.

사순절에는 인내, 겸손, 고난을 나타내는 보라색을 예전 색깔로 쓰나

좀더 구분하여 속죄일에는 자신이 먼저 죄에 대한 죽음을 의미하는

검정색, 세족 목요일에는 성결을 뜻하는 흰색, 성금요일에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희생과 수난의 표이며 승리의 색인 빨간색을 사용한다.


(2) 참 회

사순절은 자기 근신과 금식의 기간 즉, 영적 훈련의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와 함께 고난과 죽음으로 향해가는 순례로 이것에는

자기 부인이 포함된다. 사순절에는 자신이 죽는 것을 배워야 한다.

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성경을 읽는다.

② 매일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③ 특별기간 금식을 할 수도 있고, 기호식품을 절제해 봄으로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할 수도 있다. 예)커피, 쵸콜렛, etc.
 


(3) 교 육

원래 사순절은 부활절에 세례받을 자원자들을 준비시키는 기간이다.

고난주간 중에 성례를 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저녁 기도회는

교육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 세례준비반, 그룹 성경 공부
 


(4) 전 도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었으므로 사순절 동안에 우리는

십자가와 그 구속적 의미를 증거하는 지역사회의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아가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사순절은 전통적으로

복음전도의 시간으로 전도 프로그램을 통해 새 신자를 받아들이도록 하자
 


(5) 가 정

사순절 기간동안 의미있는 교육을 위하여는 가정과 연관하여 온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와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을 더욱 구체화하여

경험할 수 있는 신앙의 성숙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된다.

① 가정예배를 통해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

② 사순절 달력을 만들고 그것에 기초하여 의미있는
    활동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

③ 가족 단위 세족식을 할 수 있다.

④ 유월절 식사를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다.

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나 외로운 이웃을 찾아
    함께 식사에 초청하여 음식을 나눈다.


3) 부활절의 의미

부활절(Easter)은 기독교 축일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이며 교회력에서

다른 축일의 근원이 된다. 이 주간의 첫날에 예수가 죽은 자 중에서

다시 살아 나셨기 때문에 이 절기는 기독교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부활절이 교회력의 시작이 된다.

부활절의 옛이름은 유월절을 뜻하는

파스컬(Paschal)이라는 히브리말이었다.

즉 부활절은 오늘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유월절,

즉 죽음의 노예상태로 부터의 해방을 이루었다는 뜻을 부여 받은 것이다.

또한 부활절이란 명칭(Easter)은 앵글로색슨 사람의 봄의 여신

이오스터(Eoster)에서 온 것이다. 이오스터 축제는 해마다 춘분에 왔다.

부활절의 기쁨과 승리는 현대 크리스챤들이 알거나 되찾기 어려우리

만큼 초대 교회의 정신을 지배하였다. 부활은 초기 설교자들의 전도활동의

원동력이었으며 설교의 핵심이기도 하였다. 승리와 기쁨,

그리고 소망과 새로운 생명으로의 소생, 바로 이

부활절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 시기에 교회는 세례를 베푸는 일을 비롯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로서의 자아를 깨닫도록 유도하며, 죽음의 어두운 그늘에서

부활의 경험을 갖도록 하는 프로그램의 개발을 요청받게 된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비교될 수 없는 측면은 예수의 부활과 그로 인해

생겨난 믿는자의 부활에 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믿고 소유할 수

있도록 교회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여야 한다.

 

부활절 달걀의 유래...

고대문명에서 달걀을 새로운 생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인도나 이집트에서는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달걀이 갈라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데, 그 달걀의 반쪽이 하늘이 되었고

나머지 반쪽이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달걀에 대한 이교도적인 생각을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사용했다.

달걀은 아직도 새 생명의 비밀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발견되는 영적인 새 생명을 의미한다.
 


부활절에 새 옷 또는 흰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 유래..

교회가 성장하여 전통과 관습을 발전시켜 가게 됨에 따라,

사순절은 새 신자들을 신앙 안에서 훈련시키고 세례를 주는 절기로 되었다.

새 흰 무명옷은 죄사함과 믿음으로 인한

새 생명을 상징한다는 뜻으로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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