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복의근원이 되려면 창 12:1~5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욕심과 탐욕이 내제 되여 있어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더 높아지고 싶고, 더 잘난 척 하고픈 것들을 마음 깊은 곳에 깔아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이런 잠재되어 있는 욕심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둘 현실로 나타나서
그것들로 해서 자신을 꼼짝할 수 없이 얽매이게 하는 올무가 되기도 하고, 길지 않은 나그네 여정의 길에
돌부리가 되어 넘어지게도 하고, 넘어져 피가 나고 피부가 상하고, 뼈가 다치고 망신창이가 되기도
하는가 하면 가시로 박혀 와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게도 하고, 지금까지 공 드려 쌓아올린 공든 탑들이
와르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버리고 다시는 재개도할 수 없는 경우를 맞기도 합니다.
1.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버리자.
오늘 본문 12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지만, 아낌없이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5절에서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떠났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미완의 인간이기에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욕심들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가솔과 재산들을 가지고 떠났던 것입니다.
아낌없이 버리지 못하는 소유욕으로 아내 사라가 아브라함을 꽁꽁 묶는 올무가 되는 것을
10~20절>>>>> 에서봅니다.
자신의 시변이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느껴지자 아내를 동생으로 속여 진상하고 자신의 살길만을
찾고자하는 인간의 내제 되여 있는 그릇된 탐욕이 거리낌 없이 표출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도 더 이상의 가시가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아브라함이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고향땅을 떠나는 순종의 믿음을 보셨고 인정하셨기에 아내를 영영 잃어버리는 일은 막으신 것입니다.
17절~20절>>>
아낌없이 버려야 할 것들이 우리에겐 너무 많이 있는데, 특히 믿음 안에서 살아야하는 우리들에게 입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얘기하면서 실제 생활은 그에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선택된 믿음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에 걸 맞는 행위가 뒤따라야하는데 우리의 말과 행위가 믿음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진다면 우리의 삶의 질이 변화될 것이고 불신자들이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야하고, 그리하면 나 자신이 미움을 받지 않을 것이고, 남을 원망하는 마음을
버릴 때 나 자신이 원망을 받지 않을 것이고, 시기 질투하지 않을 때 나또한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고, 혈기와 분함을 버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릇된 고정관염과 사고방식, 아집과 교만, 탐욕과 욕심, 거짓과 술수, 방종과 무관심등 >>>>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찾아내서 과감히 버려야 할 것 들이 없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라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과감히 버림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쓰신 성경의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를 보면 사십여 년 동안 다져놓은 왕궁의 왕자의 자리를 버림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허나, 모세 역시 가시가 없었던게 아닙니다. 모세에게 혈기가 가시가 되어 하나님은 그를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외롭게 살게 하시고 훈련시켜서 80고령의 노구에 혈기가 꺽기자 그를 들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크고 작은 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님께서 원치 않는 것을 각자 마음 판에 자신도 모르게 깊이깊이 쌓아놓고 마치 그것이 옳은 것 인양
착각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믿음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님이 원치 않는 것은 과감히 버릴 줄 아는
믿음위에 바로 서도록 노력 해야겠습니다.
2.복의 근원이 되려면 하나님만 보고 따르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의 많은 것들이 바라보기를 원하고 만져보기를 원하고 가져보기를
원하면서 유혹의 손길을 내밉니다.
허나 수렁에 잘못 발을 디뎌 빠지면 나오려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깊이 빠져듭니다.
수렁이 보이면 돌아가는 것이 지혜이고, 상책입니다.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것들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탐욕의 굴레들은 맛을 보면 더 먹고 싶고,
더 갖고 싶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이들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나와 여러분은 좌우 곁눈질 하지 말고, 내 삶의 길의 참 인도자이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욕된 것들은 멀리 피하고 돌아보지 않는 삶이 요구됩니다.
13장 5~9절에서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아브라함의 지혜를 봅니다.
정해진 목초지에 아브라함과 조카 롯과 가나안사람 브리스사람 등이 모여서 살게 되니까 자연히
분쟁과 시기, 질투가 가시로 또는 올무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이러한 분쟁이 생기기전에 분쟁을 피하고 서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길로
가야겠다는 과감한 행동을 봅니다. 같은 사물 이라고 할지라도 바라보는 눈에 따라서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13:10-13절>>>>
롯의 눈에 비친 요단의 들은 넓고 푸른 평지이며 물이 넉넉하니 유목민인 그들의 생활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듯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눈이라고 어찌 넓은 요단평야가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허나 바로눈앞의 탐스러움보다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는 있었습니다.
롯은 그곳을 택하고 소돔까지 지경을 넓혀 갔지만 소돔사람은 큰 죄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요?,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아십니까?...>>>>>
유혹과 타락이 편만하고 쾌락의 길만을 추구하는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하나님의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진노함에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에덴동산의 실과는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축복 이였습니다.
그러나 탐욕의 눈으로 보았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실과였습니다.
탐욕의 눈으로 본 결과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최고의 걸 작품인 우리 인간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르는 삶이 결코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배금 만능주의 사상이 가득한 이 시대는 너나없이 돈이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고 해치기도하고 때론 생명까지도 우습게 알고 위해를 가하며
돈을 움켜쥐려는 욕심으로 사고와 범죄의소리가 매일같이 우리의 귀를 따갑게 하고 있습니다...>>>
한탕주의의 욕심은 복권을 사기위해 밤12시가 넘도록 줄을 서서 기다리는가하면 직장도 그만두고
3천만원의 빛을 얻어 전국을 돌며 복권을사 맞춰 보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지만 결과는 뜬구름만 잡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배당금과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피라미드와 유사한 떳다방 사업장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돈방석에 앉을 것만 같던 꿈은 꿈으로 끝나고 엄청난 빛만 않고 통한의 눈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해일 수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본분은 믿음의 동역자 들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의 길을 걸을 때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한 축복의 약속을 우리 모두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귀여운펜더 김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