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그리스도인의 삶/골 3:1-4 

골로새서 3:1-4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오늘 읽어 드린 골로새서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라고 하였습니다.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해야 할 이유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통 해 우리도 부활하였음을 뜻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우리의 부활은 이 다음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루어진 일임을 이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적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 때로 미루어지고, 단지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된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부활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로 살던 상태에서, 이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부활을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있던 때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된 후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체험으로 이루어야 할 부활

우리의 부활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 부활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아무 것도 변화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죽지 않았고, 따라서 실제로 다시 살지도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오늘 우리가 부활하였다는 것을 잘 믿지 않고 이 다음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부활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너기 전과 건넌 후의 삶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의 삶과 그 이후 의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선 막혀 있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아무 공로도 없는 우리를 무조건 받아 주시고 무조건 그의 자녀로 삼아 주 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편에서도 부활에 따른 변화를 이룩해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지난날에 대하여 죽어야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신 부활의 은총을 나의 삶으로 경험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선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은혜로 주셨지만,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계시며,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 생활 40년을 지낸 것은 이집트에서 몸에 밴 노예 근성을 죽여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따라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를 믿고 이 땅에 사는 남은 날들은 바로 광야 40년과 같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부활의 생명 에 합당한 변화를 이룩해야할 기간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우리의 육체적 죽음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이 다음에 악한 부활로 나타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회개하면서 나의 모든 죄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육체의 죽음 후 에 선한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오늘 내가 죽고 오늘 내가 다시 사는 경험이 중요한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오늘 말씀에 보면 위엣 것과 땅엣 것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목표를 과거와 달리 '위엣 것'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엣 것은 곧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를 뜻합니다. 그 법, 그 질서, 거기에 따른 평화와 기쁨, 사랑과 섬김을 뜻하는 것입니다. 3장 12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이 바로 위엣 것을 추구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2,14)

이 외에도 평화와 감사와 찬양이 부활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있어야 할 것이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위에 있는 것들을 계속 생각하고 찾아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 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 리는 땅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땅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 이런 위에 있 는 이상들은 너무 멀고 너무 이상적이며 너무 힘든 것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습니 다.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을 때, 그 율법이 요구하는 생활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그들이 지키기에 는 너무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율법을 따라 살도록 몰아 부치셨던 것입니다.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은 진실해야 하며, 거룩해야 하며, 성결해야 하며, 섬길 줄 알아야 하며, 자기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들이 비록 우리가 도달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인 것들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그것들을 생각하며 거기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은총으로 주어진 부활의 삶을 충실하게 채워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포기해서도 안되 며,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다시 현실 즉 땅엣 것으로 돌아가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생각한 일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려 하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철저하게 금하신 사항이었습니다. 아무리 부활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죽음의 지배 밑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직 앞으로 나갈 길만이 허락된 것입니다. 되든지 안 되든지 부지런히 위에 있는 영적인 덕목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길만이 우리가 갈 길인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어라

우리가 진정으로 부활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변화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죄에 서 자유함을 얻었지만, 그러나 실제로 우리 속에는 아직 죄의 잔재(殘在)들이 그대 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 때문에 우리가 형벌을 받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청소해 내야 할 더러운 것들입니다. 골로새서 3장에는 이런 것들을 다음 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3:8)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고 부끄러운 말을 버리는 일이 바로 우리가 죽음을 경 험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은 거의 본능적인 것으로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버리는 일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 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0-11)

바울은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은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더불어 우리의 죄가 소멸되었고, 그의 부활과 함께 우리가 살아났지만, 이제 실제로 자기의 삶 속에서 그 죽음을 체험하고 그 부활에 이르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활의 생명에 실제로 일치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죽기 이전에 가졌던 탐욕과 온갖 거짓들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청 소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한옥에 살던 사람이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갈 때 대부분 옛날 것은 다 버리고 새 것들을 모두 장만합니다. 장도 책상도 바꾸고 응접 세트도 바꿉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은 새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과 같아서 옛 것들을 다시 끌고 새집으로 가서는 안 되고 그것들은 다 버리고 새 집에 맞는 새로운 것들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특히 우리가 버려야 할 옛것은 바로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만 족과 욕심을 위해서 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자기를 위한 삶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결국 그 사람은 마침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인 삶이 결국은 자기를 파멸에 빠지게 만들고 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음을 받아서 함께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피조세계와 함께, 그리고 모든 사람과 함께 살도록 지음을 받았는데,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 삶에 빠져 버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피조세계와 단절되며,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인간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기심은 큰 죄악입니다. 분열을 조장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이념을 내세워 민족을 분열시키는 일들은 모두 죄 악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주책없이 나다니며, 지역 감정이나 부추기고 있는 것은 규탄 받아 마땅한 죄악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삶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삶, 즉 공동체 중심의 생각과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3절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죽었다는 말은 이런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말은 우리의 생명이 신비스럽게 하나님의 생명줄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의 충만함에서 우리의 생명을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건강한 삶을 이루게 되며, 동시에 공동체적인 삶의 행복을 맛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 (마 16:25)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중심의 삶, 공동체 중심의 삶으로 변화될 때 우리는 진정한 부활을 체험하는 것이며, 마지막 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3: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곧 하나님과 만물이 통일이 되어 완전히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때를 뜻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살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제거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 나님 중심적인 삶, 공동체 중심의 삶으로 부활한 사람들만이 그 영광스러운 나라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땅엣 것 즉 자기 중심적인 탐욕을 버리고, 위엣 것 즉 하나님 중심의 삶을 찾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민족과 사회를 볼 때, 우리는 아직도 너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삶에 묻혀 살고 있습니다. 지역 갈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교회들은 교파 분쟁을 극복하고 일치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 각 계층간에 조화와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게 되면, 우리는 영광스럽게 오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나타나지 못하고 오히려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 앞에 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부활의 복음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 정치인, 경제인, 학자, 종교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저들 속에 자리 잡았던 이기적인 탐욕이 죽어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공동체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도록 이 부활 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말이 아닌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이 땅에 부활 의 푸는 계절이 오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은총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욕심과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위에 있는 영적인 덕목들로 여러분의 생명을 풍성하게 채우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마침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속에 있던 자기 중심적 욕심들을 다 버리고 이 제는 섬김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중심의 삶,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나가시 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부활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여러분의 가정이 아름다운 공동체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 교회 전체 그리고 세계 교회와의 연대를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이끌어 내며, 피조세계 전 체와의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제 부활한 그리스도인으로 그 부활의 삶에 합당한 생각과 삶을 위해 노력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목회정보

 


부활절 달걀장식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막 16:1-6)

   

그리스도 교회에는 삼대 절기가 있습니다. 성탄절, 부활절,성령 강림절입니다. 만약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의 탄생이나 십자가의 죽으심이 공자나 석가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다른 성인들보다 더 나을 것이무엇이겠습니까? 

저들은 아무리 훌륭한 성자라 할지라도 다 죽어 백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이 부활이라는 큰 사실에 기초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주 만물의 최대 사건이며 전 인류에 대한 최대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와 우주 간의 만물들이다[할렐루야]로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들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죄인을 구속하는 사죄의 은총을 베풀심이고 3일만에 부활하심은 인생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이 없었다면 그 구속사업은 허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생에게 신령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의 역사적인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심령에 신생을 주십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이 그 보혈로 씻음을 받고 그 생명으로 다시 새 생명을 받게된 것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의 부활은 인생에게 새 출발의 힘을 주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연구 세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구습의 때가 끼고 심령의 해타함과 부패의 동록이 쓸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써 새 출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엄동에 마른 가지에서 새싹이 나듯이 예수님의 부활은 온 인류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
갈보리 산으로 끌려 올라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님은 여지없는 실패자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사한 지 3일만에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 셨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사망의 종된 인생이여, 사망의 폭군에 의해 떨면서 무덤을 향해 끌려 가고 있는 인생이여, 부활하신 예수님께로 나오세요 믿고 앙망하세요 그에게는 자유가 있을 것이요 평화가 있을 것이요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영생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생은 두가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사람은 해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해돋는 동천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해를 따라가는 인생은 지는 해와 함께 죽음으로 끝장을 맺는 사람이니 땅의 영화와 향락, 안일과 만족을 추구하다가 서산의 해와 같이지고 맙니다.

그러나 동천의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사는 인생은 날마다 새 아침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생명력이 넘치는 인생입니까? 물론 이러한 사람에게도 한밤의 어둠과 온갖 위험, 슬픔과 고통과 고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동천에 솟는 아침해의 힘찬 빛이 점점 닥아오고 있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한밤을 지나면서도 동녁의 새아침의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바라보는 생활이며 새 생명이 넘치는 은총의 생활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6)


결론적으로, "그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막 16:6)

그가 살아 나셨다! 이 한마디로 인류 역사의 신 기원이 시작되었고 새 생명은 흘렀고 하늘의 영광은 넘쳤으며 영생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환자심방설교 자료 모음

 

 

1.병이 생기는 원인

하나님의 징계로 부터(신 28:56)
마귀에게로 부터(욥 2:6-7)
죄로 말미암아(요 5:14)
하나니의 영광을 위하여(요 11:4)
불경건한 생활로부터(고전 11:30)
과로로 인하여(빌 2:25-30)

2.보 통 환 자

각종 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마 4:23-25)
병을 짊어지신 예수(마 8:16-17)
병자에게 필요한 의사 예수(마 9:12)
병고치는 권능을 부여하심(마 10:1)
죄값으로 나는 병(요 5:14)
병들면 예수를 찾을 것(요 11:2-3)
병들면 근심하게 됨(빌 2:25-27)
병치료에 노력할 것(딤전 5:23)
주의 종을 모시고 기도할 것(약 5:14)
천국에는 질병의 고통이 없음(계 21:4)

3.자녀들의 병

부모의 죄로 앓는 아이(삼하 12:15-16)
심한 병으로 위중한 아들(왕상 17:17-24)
아합의 아들 요람의 병(왕하 8:29)
죽지 않고 잠자는 아이(마 9:23-26)
어머니의 믿음으로 나음(마 15:21-28)
아들의 간질병(마 17:14-21)
자녀들에게 축복을 간구(마 19:13-15)
야이로의 딸의 병(막 5:21-25)
야이로의 딸의 병(막 5:35-43)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할 부인들(눅 23:28-29)

부인,노인,중 환자?

1.부 인 환 자

출산치 못하는 사래(창 16:1)
해산고가 심한 라헬(창 35:16-18)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막 1:29-31)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막 5:25-34)
노경에 해산한 엘리사벳(눅 1:57)
7사귀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눅 8:2-3)
병 고침을 받은 여자들(눅 8:2-3)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다비다(행 9:36-43)

2.노 인 환 자

노년에 술취하여 수치를 보임(창 9:20-21)
험악한 세월을 보냄(창 47:8-9)
연로하여 눈이 어두어진 엘리(삼상 4:15)
다윗도 늙고 연약해짐(왕상 1:1)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서 희생함(왕하 20:1-8)
근심 없이 예수를 믿음(요 14:1-2)
속사람이 새로와짐(고후 4:16)
영원한 집을 사모함(고후 5:1-2)
세상 떠날 기약이 가까와 옴(딤후 4:6)
남은 때를 하나님 뜻대로 살 것(벧전 4:2)

3.중 환 자

난간에서 떨어져 병듦(왕하 1:2)
죽을 병에 걸린 엘리사(왕하 13:14)
죽을 병에 걸렸던 히스기야 왕(왕하 20:1-11)
심히 중한 발병(대하 16:11-14)
능히 고치지 못할 심한병(대하 21:18-20)
악한 병(전 6:2)
28년 된 병(요 5:1-9)
8년 된 중풍병(행 9:32-35)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마 21:12-17)


월요일은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마21:12-13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책망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논쟁과 강론의 날입니다.

마21:23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질 때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냐 하시며 효과적으로 그들을 제압하셨습니다.


수요일에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날입니다.

마26:6-7에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리고 이 날 가룟유다가 예수를 은 30에 팝니다.


목요일에는 성만찬의 날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하루 앞당겨 하셨는데 유월절이 아니라 성만찬으로 바꾸어 하셨습니다. 눅 22:19-20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 중 하나가 자기를 팔 것이라 말씀하시고 식후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찬송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앞세운 칼과 몽치를 든 군인들에게 체포되었고 그 날 밤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신성모독죄로 정죄하고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사건도 목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금요일은 빌라도에 의해 사형이 언도되고 집행된 날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재판석에 서셨으나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선동에 의해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면서 사형을 언도하게 했고, 군병들에게 온갖 조롱을 다 당하신 후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못 박히시면서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한 강도를 구원하시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외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장사하고 군병들이 무덤을 지킵니다.


토요일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던 때입니다.

토요일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주일 이른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자 악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소식과 함께 거짓된 소식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님의 고난의 사랑을 묵상할 뿐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님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기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절 계란장식

   


 




 

{장례설교}나그네 인생 (히 11:13-16)


출처/한성진목사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시간에 “인생은 나그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라 하니까 옛날 한 동안 유행했던 노래가 생각이 나지요? 최희준의 나그네라는 노래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이란 두지 말라.” 잘 아시는 노래죠? 이 노래는 유행가이면서도 찬송가 같은 유행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도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즉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고, 대단히 중요한 것을 지적해 주는데요. 그것은 사람들이 나그네 인생이면서도 나그네로 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나그네 인생이니까 나그네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나그네와 같이 삽니까? 아브라함처럼 사는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은 땅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13절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나그네로 살았다는 것은 그 땅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묘지로 쓸 막벨라 굴 말고는 사놓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하지 말란 말이 아니라 세상에 너무 미련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2:11에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욕심, 세상 집착, 세상을 너무 사랑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기 힘들어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믿음도 이 땅, 소망도 이 땅, 사랑도 이 땅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크게 실망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늘 본향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16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의 고향은 어디였을까요? 유프라테스 강 건너 갈데아 우르, 그러나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를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본향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갈데아 우르 역시 나그네길의 한 부분이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참된 본향, 더 나은 본향 하나님 나라를 항상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고 말씀합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능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여우는 죽을 때 꼬리를 자기 굴로 향하게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연어는 알에서 깨어 강에 놓으면 바다로 가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연어가 필사적으로 폭포를 타고 올라가듯 그런 천국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3. 아브라함은 천국에 보물을 쌓았습니다.


16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구절 속에 천국에 쌓았다는 말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성을 예비하셨다는 말씀에서 그가 천국에 쌓았다는 힌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얼마나 부자입니까? 이것이 신기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천국에다 쌓으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물론 이 땅에서 백 배 천 배로 거두게 하신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살면서 너무 쥐지만 말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늘 투자하세요. 그것이 땅에서도 잘 되는 것입니다.


마6:19-20에 예수님께서도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나그네로 사는 것이 인생을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세상에 집착하지 마시고 항상 천국의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투자해서 아브라함처럼 하늘의 부자도 되시고 땅의 부자도 되시기 바랍니다.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고난 예표 (눅 24:44-48)


분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일을 영으로만 생각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가지고 기록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설명하시고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이처럼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보내신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알고 믿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무나 그리스도라고 믿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예표는 성경에 수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면

1. 아담의 증거가 있습니다.
엿새째인 금요일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해서 여자를 만드신 것이나,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힌 사건이나, 창3:15에 뱀에게 한 저주처럼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신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신 예표를 봅니다.

2. 아브라함의 증거가 있습니다.
창22:2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기 이삭은 그리스도의 예표였고, 모리아 땅은 바로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곳입니다.

3. 모세의 증거가 있습니다.
양을 잡는 구약의 제사제도, 절기, 안식일, 성막 기타 수많은 것들이 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민 21장을 보면 백성들이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만들어 장대에 세운 놋 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민21:9) 그래서 요3:14-15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4. 다윗의 증거가 있습니다.
다윗의 증거는 주로 시편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제자가 배반할 것(시69:21~29, 109:8, 41:9), 십자가에 달리실 때 조롱할 것과(시22:7~8), 옷이 제비 뽑혀 나눠가질 것(시22;18), 옆구리에 창이 찔리실 것(시22:16), 뼈가 꺾이지 않을 것(시22:17), 몸이 썩지 않을 것(시16:8~11)을 비롯해서 아주 구체적인 예언들이 많습니다.

5. 이사야의 증거가 있습니다.
사53:3-5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는 동정녀 탄생 뿐 아니라 예수님의 성장 과정과 모습),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 창에 찔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자의 묘실에 들어갈 것(사53:9), 얼굴이 가시로 상할 것(사52:14)까지도 자세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 다 증거할 수 없습니다. 구약 최후의 선지자 세례요한은 요1:29에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만세 전에 예정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예언한 나의 구주로 믿고 영원토록 변함없이 사랑하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이사가는 집에서의 예배시 설교

- 설교 # 1 (이사 가는 집)
제목 : 벧엘의 하나님. (창28:15절, 찬송: 434.460.421.427장 중에서 선택)

본문은 야곱의 이사에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나타나셔서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이 가정에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야곱처럼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의 삶을 살며 복된 삶을 사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벧엘의 하나님은 임마누엘 되신다는 것입니다.
2.벧엘의 하나님은 어디로 가든지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3.벧엘의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벧엘의 하나님은 이 약속이 이를 때 까지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이사하여 주안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여 놓은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아 성도의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2 (이사오는 집)
제목 : 복된 이사. (창26:12-15절, 찬송: 434장. 460장)

이곳으로 이사오신 ㅇㅇㅇ ㅇㅇ의 이사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이삭같은 복된 이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보니 이삭이 이방 땅 블레셋 지경으로 갔는데 그 해에 농사를 지어 백배의 수확을 얻었으니 그 비결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1.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떠나면 불행이 오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우물파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기도의 우물, 말씀의 우물을 팠다는 뜻입니다.
4.축단의 생활을 잘 했기 때문입니다...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며 교회 생활을 하실 때 하나님께서 예비 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아 간증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3
제목 : 이사하는 인생. (벧전2:11-12절, 찬송: 421.427장)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은 이사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1.어디에서 온 나그네입니까?...하나님으로붙어 온 인생입니다.
2.무엇하며 살아야 할 인생입니까?..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3.어디로 가는 나그네 인생입니까?...인간은 왔으니 가야하는 존재입니다. 세월이라는 열차를 타고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가는 인생입니다.

모든 인생은 가고 있는데 어디로 가는 인생입니까? 어떤 자는 지옥으로 열심히 가고 어떤 자들은 천국으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1)어느 길이 정로입니까?...지옥 길은 인간이 가야할 정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왜 정로를 벗어났습니까?...죄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을 지옥으로 몰고갑니다. 이 죄 해결은 인간이 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정로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없이 하고 인간을 본향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 외에는 천국으로 갈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4.영원한 이사 준비를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사하신 ㅇㅇㅇ ㅇㅇ님은 많은 이사를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 모든 이사는 연습에 불과하고 진짜 이사가 있으니 영원한 이사 즉 죽음의 이사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천국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길은 오직 한 길 십자가의 길, 예수님 길 밖에 없습니다.

요14: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 받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생활 일람표

   
         

예수님)

1. 고난주간에 예수의 생활 일람(1)

    일요일

    • 예수가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마 21 : 1 - 11, 막 11 : 1 - 11).

    월요일

    •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마 21. 18 - 19, 막 11 : 12 - 14).
    • (세금의 질문에 설명) 성전 청결케 함(마 21 : 12 - 13, 막 11 : 15 - 19).

    화요일

    • 무화과나무 마름(마 21 : 19 - 22, 막 11 : 20 - 25).
    • 제사장 바리새인의 질문(막 11 : 27 - 33, 눅 20 : 1 - 8).
  • 경고의 세 가지 비유, 포도원 비유(마 21 : 28 - 22 : 14, 막 12 : 1 - 12).
    • 바리새인과 헤롯 왕이 예수께 질문(마 22 : 15 - 40).
    • 메시야에 대한 예수의 질문(눅 20 : 41 - 44).
    •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 책망(막 12 : 38 - 40).
    • 과부연보에 대하여 칭찬함(막 12 : 41 - 44, 눅 21 : 1 - 4)
    •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 예루살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눅 21 : 5 - 38, 요 12 : 37 - 50).

    수요일

    • 예수가 밤마다 베다니에 나가시니 이 날은 거기서 기도했을 것임.(성경에 수요일은 기록이 없음.)

    목요일

    • 최후 성만찬,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사(마 26 : 31 - 35, 막 14 : 12 - 26, 눅 22 : 31 - 38).

    금요일

    •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반역과 예수의 포박(마 26 : 36 - 47, 막 14 : 32 - 52).
    • 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막 14 : 53 - 72, 요 18 : 13 - 27).
    • 빌라도의 심문(마 27 : 2 - 11, 31, 요 18 : 13 - 29).
    • 십자가의 고난(마 27 : 32 - 56, 눅 23 : 26 - 45).
    •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함(마27 : 57 - 61, 막 15 : 43-47).

    토요일

    • 무덤을 파수군이 굳게 지킴(마 27 : 62 - 66).

    일요일

    • 부활의 새벽(마 28 : 1 - 10, 막 16 : 1 - 17).
    • 파수군이 부활의 사건을 제사장에게 보고(마 28 : 11 - 15, 눅 24 : 13 - 35).
    • 엠마오 도상의 예수(눅 24 : 13 - 35).
    • 도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 나타남(막 16 : 14, 요 20 : 19 - 25).

2. 고난주간에 예수의 생활 일람(2)

일자

요일

일명

사건명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첫째날

개선의날

예수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

21:1-11

11:1-11

14:27-44

12:12-19

둘째날

권위의날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성전을 청결케 하심.

21:18-19
21:12-17 

11:12-14
11:15-19 

19:45-48

 

셋째날

논쟁의날

무화과 나무가 마름

21:20:22

11:20-25

 

 

예수의 권위에 대한 질문. 경고의 세가지 비유(두아들, 악한농부.혼인잔치)

21:23-27
21:28-
22:14 

11:19-33
12:1-12 

20:1-8
12:1-12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예수께 질문, 메시야에 대한 예수의 질문

22:15-40
22:41-46 

12:13-39
12:35-39 

20:26-40
20:41-44 

 

바리새인을 책망하심 과부의 연보에 대하여 칭찬하심

23:

12:38-40
12:41-44 

20:45-49
21:1-4 

 

헬라인이 예수잡을 것과 죽일 것을 예언함 (밀알의 비유)

 

 

 

12:20-36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
예루살렘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

24:1-14

13:

21:5-38

12:39-50

막 14:1-11은 화요일 설도 있고 수요일이라고
하는 이도 있어 잘 알 수 없다. 수요일은 예수께서
조용히 하루를 보낸 날인가도 하고 막 14:1-11 이라고도 한다.

넷째날

A은퇴일
B 기도일

가롯유다의 반역(문둥이 시몬집 초대)26:17 화요일
예수 죽이기로 함으로 은퇴일이라 함.
예수가 밤마다 베다니에 나가시니 이 날은
거기서 조용히 겟세마네서 기도했을 것임

다섯째 날

최후 성찬의 날

최후의 성만찬. 예수그리스도의 고별사. 중보의 기도(요 17:1-23)

26:17-30
26:31-35

14:12-26
14:27-31 

22:7-30
22:31-38 

13:1-30
13:31-
16:33
17 

여섯째 날

고난의 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반여과 예수의 포박

26:30-40
26:47-50 

14:26-32 -43
14:43-52 

22:39-46
22:47-53 

18:1-
18:1-11 

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

26:50
27:10 

14:53-72
15:1- 

23:54-71

18:12-27

빌라도의 심문

27:2,11- 31

15:1-20

23:

18:28-29

십자가의 고난

27:32-56

15:21-41

23:26-45

19:16-37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함

27:52-62

15:34-47

23:50-56

19:38-42

일곱째 날

무덤의 날

무덤을 파수군이 굳게 지킴

27:62-66

 

 

 

여덟재 날

부활의 날

부활의 새벽

28:1-10

16:1-17

24:12
29:56 

 

파수군이 부활의 사건을 제사장께 보고, 엠마오 도상의 예수

28:11-15

16:12-13

24:13-35

 

도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 나타남

 

16:14

24:36-43

20:19-25

3. 십자가의 사실로 이루어진 구약의 예언

    (1) 제자에게 배척 당하심(시 41 : 9, 눅 22 : 48).
    (2) 은 삼십에 팔리심(슥 11 : 12, 마 26 : 15).
    (3) 심문 당하실 때 잠잠하심(사 53: 7, 마 26 : 63).
    (4) 강도와 함께 못 박히심(시 22. 16,사 53 : 12,눅 23 : 39-43).
    (5) 옆구리 창 맞음(요 19: 34-39, 슥 12 : 10).
    (6) 신 포도주를 드림(시 69; 21, 요 19; .29).
    (7) 의복을 제비 뽑음(시 22 : 18, 요 19 : 24).
    (8) 다리뼈를 꺾지 않음(시 34 : 20, 요 19 : 31-37).
    (9) 부자의 무덤에 장사됨(사 53; 9, 마 27 : 57-60)

4. 십자가 사후에 일어 난 사실들

    (1) 지진으로 성전 휘장이 찢어짐(마 27 : 51).
    (2) 무덤이 열림(마 27 : 52).
    (3) 백부장의 증거(마 27; 54).
    (4) 무리들의 확신(눅 23; 48).
    (5) 도적의 다리를 꺾음(요 19 : 31-32).
    (6) 옆구리 찌름(요 19 : 34).
    (7) 장사 지냄(요 19 : 38-42).
    (8) 무덤 봉하고 파수꾼 세움(마 27 : 66).

 

5. 고난에 관한 금언 ·격언 ·속담

    (1) "고난은 축복을 갖다 주는 지름길이다. " -M. 루터-
    (2)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살려고 하는 이는 고통을 보석으로 삼는다. " -하천풍언-
    (3) "고난은 성공의 축대를 쌓는 것과 같다. " -M.NL. 영안-
    (4) "고생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 -지스레지-
    (5) "고난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다. " -도미트 아쓰 -
    (6)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영광도 크다. " -M. T시세로
    (7) 초년 고생은 말년 낙의 근본이라. 네가 자라면 오복이 구비하고 남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리라." -이광수 -
    (8) "대부분의 생의 고난은 우리 자신이 햇빛에 서 있기 때문에 생긴다" -에머슨-
    (9) "고난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어려움이 우리에게 찾아 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로써 하나님의 신임의 증거 라고 간주해야 한다. " -비쳐(H.W. Beecher)-

    (10) 고난이란? 좋은 것이다.

    • 고난은 좋은 훈련이다.
    • 고난은 사람이 살기에 귀찮을 정도다.
    • 고난은 여행하는 것과 같다.
    • 고난은 자신이 깨뜨려지는 것이다.
    • 고난은 나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다.
    • 고난은 한 성도가 받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고통을 겪게 된다.
    • 고난은 하나의 체험이다.
    • 고문을 받는 것도 심한 고난이다.

 

6. 참혹한 십자가


십자가(Cross)는 라틴어 '크룩스(crux)'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고문대(拷問臺)'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형벌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고대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이미 통용되어 왔던 사형법 이었습니다. 알렉산더 왕도 그가 점령한 지역에서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즐겨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드로 사람 일 천명을 십자가에 처형했다고 합니다. 에스라 6 : 11에는 파사의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리는데 자기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십자가에 달아 매어 죽이라고 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에 와서는 노예만을 십자가에 죽였으나 때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도 중죄(로류)를 범한 경우 이를 적용시켰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참혹했기 때문에 로마 본국 내에서는 가급적 십자가 형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틴 황제가 십자가 형벌 금지령을 내렸고, 그 후 이 사형법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예표로 알려진 것과 같이,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은 죽지 않으리라는 그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구원이란 신학적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 : 6-7)

7.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예수님의 일곱마디 말씀 (가상칠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것이 오전 9시이고, 운명한 것이 오후3시니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 생명이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빨리 죽지 않고 모든 고통을 겪으며 서서히 죽기 때문에 십자가 처형은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인 것입니다.
    이 6시간 동안에 예수는 일곱 마디 밖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4복음서에 나타난 것을 종합해서 순서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말-"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 34). 이것은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 둘째말-"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 : 43). 이 것은 파라다이스(낙원)의 약속이었습니다.
    • 셋째말-"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 "보라, 네 어머니다"(요 19 : 26-27). 이것은 아들로서의 효도였습니다.
    • 넷째말-"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 27 . 46). 이것은 영적인 고민이 었습니다.
    • 다섯째말-"목 마르다"(요 19 : 28). 이것은 육신적인 고통이었습니다.
    • 여섯째말-"다 이루었다"(요 19 : 30). 이것은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 일곱째말-"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 23 : 46), 이것은 최후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상 일곱 마디 중 처음 세 마디는 9시부터 12시 사이에 말씀하셨고, 12시부터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갑자기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세 시간 동안 예수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고 오후 3시에 예수께서는 나머지 네 마디 말씀을 연거푸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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