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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마 21:12-17)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마 21:12-17)
월요일은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마21:12-13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책망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논쟁과 강론의 날입니다.
마21:23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질 때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냐 하시며 효과적으로 그들을 제압하셨습니다.
수요일에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날입니다.
마26:6-7에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리고 이 날 가룟유다가 예수를 은 30에 팝니다.
목요일에는 성만찬의 날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하루 앞당겨 하셨는데 유월절이 아니라 성만찬으로 바꾸어 하셨습니다. 눅 22:19-20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 중 하나가 자기를 팔 것이라 말씀하시고 식후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찬송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앞세운 칼과 몽치를 든 군인들에게 체포되었고 그 날 밤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신성모독죄로 정죄하고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사건도 목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금요일은 빌라도에 의해 사형이 언도되고 집행된 날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재판석에 서셨으나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선동에 의해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면서 사형을 언도하게 했고, 군병들에게 온갖 조롱을 다 당하신 후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못 박히시면서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한 강도를 구원하시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외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장사하고 군병들이 무덤을 지킵니다.
토요일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던 때입니다.
토요일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주일 이른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자 악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소식과 함께 거짓된 소식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님의 고난의 사랑을 묵상할 뿐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님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기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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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유다)
가롯유다가 받은 은 30의 값은?
은30세겔 이면 1세겔 당 11.4그램이고,총 342그램이며 3.75그램이 1돈 이므로 총91돈 입니다. 1키로그램이 약100만원으로 볼때 대략 34만원 정도입니다. 당시 재정을 맡고 있는 유다가 얼마나 돈이 궁하면 이 유혹에 빠질수 있나, 그러나 이 모든것은 스가랴서 11장에 기록된 은30에 팔리는 대목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어쩔도리 없는 상황 전개이고 여기에 꼼짝없이 유다가 걸려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흠없는 어린양의 십자가 보혈의 제물도 예언된 그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올무에 빠진 자를 수없이 봅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도 걸려들고 솔로몬도 이방 여인으로 인해 우상을 섬기고 타락한 모습으로 걸려들고 유다도 은 삼십 세겔 이란 물질에 그 올가미에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당시 노예 한명 값 이라니 얼마나 사람이 노예로 살아간 그 운명의 처절함과 비참함까지 생각나게 합니다. 우린 신앙생활 하면서 정말 조심합시다. 사단의 올가미에 걸려들지 맙시다. 특히 재물,권세,여자,세상일,세상자랑, 올가미에 걸려든 자가 불쌍한 것입니다. 이 토록 하나님 백성인 아담, 솔로몬, 다윗,삼손,유다,등등 사단의 거짓과 유혹, 사단의 유혹 도구인 돈과 이웃여자의 올무에 걸려든 인생이 되지 맙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이 가르침에 준행하는 진리의 사람, 예수의 사람으로 항상 청빈 생활과 돕는 생활을 즐기다가 예수님을 뵈오시길 소망합니다. 지금 유다와 같은 목사와 성직자들과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보이는지 모릅니다. 영적으로 뚫어보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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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 순서
지금으로부터 고 000님의 00주기 추도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다 같 이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음은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찬 송 ----- 230 장(저 뵈는 본향집) ---------- 다 같 이
기 도 -------------------------------------- 인 도 자
성경봉독 -------- 히브리서11:13-16 -------- 다 같 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말 씀 ------------ 우리의 본향은 -------------- 인 도 자
인간은 이 땅 위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피 있다. 하지만 나그네라도
앞으로 돌아갈 본항이 있을 때 고 나그네는 미미 나그네가 아닌 것이다.
1 . 나그네 인생 .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의 삶을 실아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아무 미련없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갔다. 우리 역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도 신앙의 선진들과
같이 예비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께서 부르실 때 거리낌없이 갈 수 있어야 겠다.
2, 본향을 사모하는 이 .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들의 돌아갈 고창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더 나은 본향을 향괘 나아갔다. 성도들의 본향은 어디인가?
그곳은 하나님께서 우리를위하여 예비하시고 축복하시고 약속하신 신령한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이다. 그곳은 이 땅에서 간절히 사모하는 이에게 주어진다.
3,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곳
믿음의 조상들은 바로 이 성을 사모했기 때문에 비록 그들 앞에 고난이라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을지라도 그것을 과감히 감내하고 전진해 나갔던 것이다.
우리가 사모하는 그곳은 하늘 나라이다. 그곳은 눈물, 사망. 고통이 없는 사랑과
회락과 화평이 언제나 넘치는 곳이다.하나님의 백성은 약속된 천국이 있으므로
그곳을 사모하여 충실된 삶을 살아야 한다.
찬 송 -------- 293 장 (천국에서 만나보자) -------- 다 같 이
주기도문 ----------------------------------------- 다 같 이
주기도문을 드리므로 추도식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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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나 그곳을 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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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고난에서 존귀함으로(부흥)
성 경 : 역대상 4장 9절 -10절 (2020.2. 23.주일오전예배)
설 교 : 전 원 준 목사
< 찬송 = 148갈보리동상. 59오놀라운. 63 나의갈길 >
(역대상 4:9-10)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
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경치는 최고이고, 좋은 분위기의 장소였다.
문제는 종종 기차가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기차 소리 때문에 강의 분위기를 망치게 되었다.
당장 기차소리를 없앨 수는 없다. 당장 방음 장치도 힘들다.
방해하는 소리를 돕는 소리로 만드는 길은 없을까?
강사가 이렇게 제안했다.
“이제부터 기차 소리가 날 때마다 박수를 치고,
환호를 지르며, 옆 사람에게 축하하고 칭찬합시다.”
그러자 기차가 지나가면 오히려 가라앉은 분위기가 살아났다. 기차 소리가 날 때마다 분위기가 좋아졌다.
탈무드에도 =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우리들의 마음이 무겁고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서로를 격려하며 감사하는 신앙으로 사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인물이 바로 야베스라는 사람입니다.
역대상 1장-9잘까지 이스라엘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600명 정도. 그중에 존귀한 사람,
특별히 하나님이 지적한 사람은 야베스 한사람입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들 중에서 존귀한 자라는 명칭을 얻게된 것입니다.
원래 야베스란 이름은-고통, 수고, 눈물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자기의 인생을 존귀한 자로 바꾸었습니다.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흥입니다.
야베스의 부흥이 오늘 우리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야베스는 기도를 통하여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기도는 무엇이였습니까 ?
1. 야베스는 복에 복을 더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
1) 야베스는 유다 지파 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복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재의 삶에는 고통의 연속이였습니다.
2)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이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3)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 복에 복을 더하사,” 신앙입니다.
## 다시 한번 안수 하신 주님 =
(막 8:23-25) 『[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 솔로몬의 기도 = 지혜를 구함.
(왕상 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왕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더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껏이 바로 “지혜” 였 던 것입니다.
## 야곱의 기도 =
(창 28:21-22) 『[21] 나로 하여금 평안히 내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오게 하시면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더라.』
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많은 일, 더 큰 일을 하기 위하여 쓰임 받는 존귀한 신앙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야베스는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원하건대 주께서 ...
내 지경(地境)을 넓히시고 ...』
# 유람선과 전투함 =
교회의 존재를 유람선과 전투함으로 구분한 것을 보았습니다.
유람선 유형이란 교회가 존립하는 것에 만족하는 유형입니다. 유람선을 탄 관광객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승무원들의 섬김과 돌봄을 받고, 바깥에 펼쳐지는 경치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전투함 유형의 교회는 교회가 지향해야 할 사명의 완수를 위해 모든 성도들이 뜻을 같이하고,
사명이 완수됐을 때 함께 기뻐하는 유형입니다.
전투함 내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섬기고 어떤 사람들은 서비스를 받는 상황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사명을 위해 각자 받은 임무가 있습니다.
사명 완수를 위해 각자 맡은 역할 속에서 땀 흘리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 “지금 우리 교회는 유람선일까? 전투함일까?.
나는 과연 우리 교회의 관광객일까, 전투요원일까”를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1) 내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는, 지금 내가 하는 사역에서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2) 우리 교회 사역이 =
명장동에서, 동래구로, 부신시에서 전국으로,아시아에서 전 세게로... 나아가자는 뜻입니다.
3) 내가 섬기는 사역의 버위를 점점 더 넓히자는 것입니다.지금 내가 섬기는 사역이 무엇입니까 ?
그것보다 하나씩 둘씩 점점 더 넓혀나가야 합니다.좁아지지 말아야 합니다.
(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시 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땅에서 지경을 넓혀서 앞으로 나아가는 복된 신앙됩시다.
3. 야베스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손이 나와 함께하사
나를 악에서 지켜 주시고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
0 주님의 손길이 순간 순간 필요합니다 =
(시 119:173) 『내가 주의 훈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나를 돕게 하소서』
0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 140:4)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강포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저희는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
0 근심이 없이 즐겁게 주님을 섬기는 신앙이여야 합니다..
(전 9:7) 『네 길로 가서 기쁨으로 네 빵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즙을 마시라,
하나님께서 이제 네가 행하는 일들을 받으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찬 송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평안하고 복된 신앙생활 되시기를 야베스처럼 기도하며 살아갑시다. 아멘 !
4.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1) 기도는 성도의 축복입니다.
(렘 29:12-13) 『[12] 그때에는 너희가 나를 부르고 가서 내게 기도하리니 내가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 [13]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날 것이라.』
(사 41:10)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니라. 너는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기 때문이니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기도가 야베스 기도처럼,
축복으로 응답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이 야베스처럼 존귀한 신앙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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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자취를 따라 (벧전 2:18-21)
고난의 자취를 따라
베드로전서 2:18-21
서구의 오래된 풍습 가운데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선물하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주는 이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릅니다. 그 진주가 딸이 시집가서 흘려야 할 많은 눈물을 상징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낯선 환경으로 시집을 간 딸이 속상할 때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텐데, 그 때 이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진주는 땅에서 캐나는 것이 아니라 바닷속의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어쩌다가 모래 하나가 조개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까끌까끌한 모래가 보드라운 조갯살 속에 박히게 됩니다. 그러면 조개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몸에 박힌 모래를 무시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개는 자신의 몸에 박힌 모래알 때문에 병들어 살이 썩기 시작하고, 얼마 가지 않아서 그 모래알 때문에 조개는 죽고 맙니다. 또 하나의 선택은 조개가 자신의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주층(nacre)이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 자기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계속해서 덮어 싸고 또 덮어 쌉니다.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감내하면서 생명의 즙으로 모래알을 감싸고 감싸다 보면 그것이 영롱한 진주가 됩니다.
엄마가 결혼하는 딸에게 진주를 선물한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결혼생활이 언제나 행복하고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살다보면 수없이 많은 시련과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한 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도 병들고 썩고 맙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찾아온 그 시련과 고통을 받아들여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진주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엄마는 선물하는 ‘얼어붙은 눈물’이라는 진주는 사랑하는 딸에게 인생에 찾아온 쓰라린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진주와 같은 사람이 되어가라는 삶의 교훈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 앞에 큰 시련이 닥치길 원하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시련과 고통의 순간에 부딪치며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진주조개의 이야기에서 교훈해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닥친 시련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더 크고 값진 진주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고통 속에서 흘리는 눈물의 양만큼 우리의 인격과 신앙은 더욱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앞에 당한 시련이나 고통을 문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통은 문제가 아니라 숙제일 뿐입니다. 여러분, 문제와 숙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문제는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 원인을 밝히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숙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해결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당한 시련이나 고통을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숙제로 봐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내가 당한 시련이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때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당하는 시련이나 고난은 대부분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이 시련과 고난이 내게 닥쳤는지를 알려 하는데 우리의 영적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깨닫고 그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 가야합니다. 그것이 고난이 우리에게 준 숙제입니다.
시련이나 고난을 문제로 해결하려 한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그 해답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찾는다면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우리에게 시련이나 고난이 오는 이유는 우리의 실수나 잘못, 또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것을 흔히 ‘신명기적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신명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징벌이라는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도 그런 연유로 고통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불순종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나 고난, 시련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2. 우리에게 시련이나 고난이 오는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려 하다가 받는 사명적 고난입니다.
바울이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평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증언한 것처럼 때로는 돌에 맞아 죽을 고비도 넘겼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아야 했고, 일주일 동안 깊은 바다의 위험 속에서 지내는 등 수없이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런 시련이나 고난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사도행전 20:24)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복음을 전하다가 그런 시련과 고난을 겪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길을 가려할 때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시련이 있습니다. 그것을 견디어내며 갈 때 우리의 사명을 완수해낼 수 있습니다. 꼭 사명의 길을 가는 데에만 그런 시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려할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그런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사는 것은 세상의 가치나 삶의 방법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사는 삶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0:30)
3. 우리가 시련이나 고난을 받는 세 번째 이유는 훈련을 위한 고난입니다.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서 오는 고난과 시련입니다. 그 고난이 시작될 때에는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지만, 고난을 인내로 이겨나가면서 깨닫는 것은 그 고난이 나를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연단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한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강한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통해 연단되지 않으면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4:12-13절에서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에게 때로 이유 없이 고난이 찾아오거든 ‘나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연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학교에 입학했구나!’라고 생각하시고 그 연단을 통해 성숙해지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할 수도 없고, 그 이유를 알 수도 없는 고난이 때로 우리의 삶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욥입니다. 욥기에서는 욥이 고난을 당한 것이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시험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 욥을 고난 속으로 밀어넣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 표현입니다만, 실제로 우리 인간의 사고를 가지고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도록 사탄에게 허락하셨는지, 왜 욥의 자녀들이 한 순간에 죽임을 당하고, 평생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 그런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을 되돌아봐도 무엇 때문에 내가 이 시련과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으리라는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재해석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왜 내가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하느냐?’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를 시련의 풀무불에 밀어 넣으신 이유가 분명 있긴 있을텐데 우리의 머리와 지성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시련과 고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머리와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신 하나님만의 계획과 섭리가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위탁하는 믿음이라면 말입니다.
4.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또 하나의 고난과 시련의 이유가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가 당하는 것과 다른 의미의 고난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오늘 우리시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말씀을 주신 대상이 오늘 본문 18절 첫 단어에 나온 것처럼 ‘사환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환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종’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입니다. 종은 말 그대로 노예입니다. 전적으로 주인의 소유이고, 그들에게는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 한 자유가 없습니다. 종은 그 생명이 주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사환은 종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주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수하에서 일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종과 같이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권위 아래서 주인의 집안일을 돌보아주는 ‘하인’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사장 아래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나 가게 주인 아래서 일하는 점원이나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환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자신에게 자비롭고 너그럽게 대하는 마음씨 좋은 주인에게만 순종하고 주인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주인대우를 하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까다로운 자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인들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말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패역한 사람들’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사도행전 2:40, 빌립보서 2:15) 그들은 하인들을 불공정하게 대하기도 합니다. 자기들의 감정에 따라서 하인들을 대합니다. 패역한 세상을 닮아 자기들의 이익 앞에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것처럼 보이면 가차 없이 불법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은 그런 주인을 만나면 고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려고 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악한 사람’입니다. 저주하고 욕하고 싶을 정도로 패역한 마음에 사로잡혀 하인들을 배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일이나 불법적인 일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직하게 살려하는 하인들의 입장에서는 처세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주인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함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다는 말은 오늘 본문 바로 앞인 베드로전서 2:17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라는 말씀에 쓰인 그 단어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패역하고 불공정한 주인, 그래서 주인으로서 도저히 공경하거나 순종하고 싶지 않은 주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 주인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듯이 주인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의 사고를 가지고 생각한다면 그 말은 참 부당한 요구입니다. 어떻게 그런 주인을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두려워하여 순종할 수 있습니까? 나에게만 좀 까탈스럽게 대하는 주인이라면 그냥 참고 견딜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을 행합니다. 마음 자체가 패역한 주인입니다. 무엇 하나 존경할만한 것이 없는 주인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인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런 주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유 없이 고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항거하거나 그 집에서 도망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더구나 20절에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뭔가 잘못을 해서 주인에게 미움을 받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인에게 유익이 되도록 일을 했습니다. 누가 봐도 선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이 미워하고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19절과 20절 마지막에 표현된 ‘아름답다.’는 말은 신약성경 언어로 카리스(χαρις)입니다. 카리스라는 말을 우리가 잘 아는 표현으로 한다면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19절과 20절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은혜로운 것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운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 선물입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하나님의 신령한 것들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부당하게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회 공회원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말은 그들의 계획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가롯 유다를 은 30에 매수해서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늦은 밤에 불법 재판을 해서 사형을 언도합니다. 당시에 밤에 열리는 재판은 불법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권한으로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기에 군중들을 선동해서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을, 로마 총독도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누가복음 23:4)라고 말했는데도 그들이 억지를 써서 십자가에 못 박에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불의한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로 찌든 인간의 권력자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왕이신 주님께서 로마 군인들에 의해 손과 발에 못을 박히셨습니다. 가장 영광을 받으셔야 할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고난의 길을 따라오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받는 고난의 다섯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지으신 죄로 인해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욱 성숙한 믿음을 위해서, 연단과 훈련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애매한 고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한 우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로 그 고난의 자취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고난을 당할 정도로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누군가를 살리는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사환들아!’ 그러면서 이유 없이 주인에게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그것이 은혜로운 일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당한 그 고난을 통해서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미워하는 주인까지도 구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합니다. 참고 참으려 하지만 인내에 한계를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내가 왜 이런 불이익을 당해야 하느냐고 누군가에게 항변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억울한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군병들에게 채찍을 맞으시고 가시관이 그의 머리에 씌워질 때에도,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실 때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항변 한 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묵묵히 참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랬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예수님처럼 우리도 때로 참아 보십시다. 억울해도 참아 보십시다. 불이익을 당해도 손해를 감수하고 참아 보십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묵상하며 참아 보십시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에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분명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닭과 독수리는 위험한 순간을 당할 때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폭풍우가 몰려오면 닭은 몸을 날개에 묻은 채 숨을 곳을 찾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서 태풍에 몸을 싣고 유유히 날아 안전한 곳을 향해 갑니다. 인생의 폭풍우를 만날 때 우리 인간도 두 가지 유형으로 대처합니다. 너무너무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 일이 몰아칠 때, 닭과 같은 사람은 일단 몸을 숨기고 봅니다. 그 때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독수리 같은 사람은 고난 앞에 당당히 서서 그 고난을 통해서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갑니다. 누가 더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때론 힘든 문제 앞에서 자신을 숨겨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숨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당장 눈을 감는다고 내 앞에 불어닥친 폭풍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시련을 통과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선한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낮에도 하늘에 별은 떠 있습니다. 단지 별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푸른 창공에 떠있는 영롱한 별빛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안할 때에는 볼 수 없는 것을 고난의 때에 볼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고난과 시련의 때에는 들을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를 고통의 때에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우리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를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주님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 가십시다. 힘들더라도 기쁨으로 가십시다. 분명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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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마음의 연단. 잠17:1~7
우리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여러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변화무쌍하게 급변하는 예측치 못할 인간의 마음을 빗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이나 여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에 따라서 상대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시시각각 마음이 변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성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루에도 조석으로 심하면 매 순간마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천국과 지옥을 왕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3절에서 도가니와 풀무가 금과 은에 포함된 고르지 못한 불순물을 제거하듯이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고 그 연단을 통해서 우리의 얼굴이 제 각각이듯이
각자의 이기주의에 젖어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정금같이 깨끗하게 만들어 놓길 원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쓰임 받는 성도는 연단을 통해서 겸손과 순종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닌 곁길로 걸어가도 기다리기도 하시고 참으시기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여도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은 연단을 통해서 철저하게 부서뜨리고 스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게 하십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과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말씀으로 연단하신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이 영혼은 인간정신의 모든 기능과 아울러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이후 죄의 종으로 팔려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기능이
죽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벽으로 인해서 영원한 죄인으로 땀을 흘리며 살고 내세에서도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다행이도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고 거듭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선물로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였다 할지라도 마음속에는 죄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뜻을 알기보다는 죄를 짖고자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가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의 눈도 열린 상태가 되였기에 유혹을 받는 그때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훈련하시고 연단을 하십니다.
때문에 생활가운데서 때때로 마음의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전이라면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자그마한 일에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말씀으로 임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선과악의
대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분명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 입니다.
세상적인 경우 선이 악으로부터 점령을 당하는 경우가 잇지만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하고 있어서 선을 지원하기 때문에 선이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헌데도 악에 사로잡혀 죄를 무서워하지 않고 범하면서도 어진 양 인양 위장을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심장을 찌를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씀을 통해 자기의 마음을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6:7에서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 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라고 하는가하면 51:10 에서 하나님42-2
께서 자신의속에 정한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영을 새롭게 하여주시길 위해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써 마음속에서
죄를 잉태하고자하는 악을 이길 수 있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책망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2.환경과 인간을 통해 연단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방법은 말씀을 통한 훈계나 권고에 그치지 않고 환경과
인간을 통해서도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상치 못한 불행한 사건들을 자신과 가장 아끼는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주기도하고,
얽혀오는 삶의 시련들이나 가시와 같은 주변의 인물들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지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가시가 되여 나를 훼방하고 불평하는가 하면,
하는 일들마다 잘 될것 같은데 하고보면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첩첩산중이요 오리무중의
연단을 만나기도 합니다.
구약의 족장시대의 야곱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출생의 과정에서도 형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먼저 태여 나고자 했는가하면 그는 심한 경쟁의식의
소유자인 동시에 교활하고 간교하여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 권을 빼앗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험한 인생도피의 여정과 딸 디나의 강간사건, 장인 라반에게 이용당하며 속고속이는
삶의 여정 속에서 그는 결국 애굽의 바로 앞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 이니 이다 나의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조상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 나이다”하고 창47:9 에서 지나온 험한 노정의
한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택한 백성을 자신의 백성답게 성장시키기 위해 환경과 인간을 통해 깨뜨리고
고통을 주어 그의 마음을 연단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종국에는 하나님과 인간 앞에서
겸손한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다윗역시 사울을 통해 수많은 시련과 연단을 받았음에도 왕이 된 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와의간통
사실을 숨기려다 하나님의 호된 질책과, 아비의 죄로 해서 자식을 죽이고 자신의 처첩이 백주에
강간을 당하는 연단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에 의해 또는 환경과 인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의뜻을 잘 분별하는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롬 5: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연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대표적인인물 욥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고자하는 사단의 괴계에 의해 철저하게 깨여지는
연단을 받으면서도 인내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보신 하나님의 축복은 지난날보다 갑절로
큰 것으로 주시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대원 여러분!! 금을 연단할 때 그것이 순금이 되였다는 것을 아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은 금에 얼굴을 비춰서 가장 정확하게비취는 것이 순도가 높은 결정의 척도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엔 지금 어떤 모습이 비추이고 있습니까?
아무쪼록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그분의 모든 방법을 통해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축복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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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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