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에서 늘어나는 쓰레기집
·경제적 어려움으로 집 안에 쓰레기 방치… 저장강박증 앓는 경우도
집안 곳곳에 다양한 잡동사니가 쌓였다. 집주인 ㄱ씨(70)의 눈에는 어디엔가 쓸 데가 있어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특히 더운 여름철을 지내면서 더욱 심해진 악취 때문에 주변 이웃들에게까지 민폐가 커졌다. 여러 차례 구청과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쓰레기를 치우자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장강박 증상을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설득이 먹혔다. 6년이 넘게 모여 무게만 해도 5톤이 넘는 쓰레기들은 8월에야 말끔히 치워졌다. 관내 유관기관이 협조해 도배와 소독도 실시됐다. 깨끗해진 집을 앞으로도 관리할 수 있게 정리 및 수납 방안을 알려주고 ㄱ씨와 식구들의 심리치료도 도울 계획이다. 이 ‘쓰레기집’의 주거환경 개선에 나선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관계자는 “구청 통합사례관리사가 헌신적으로 노력한 덕분에 겨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악취와 해충 등으로 이웃에도 피해 늘어나는 ‘쓰레기집’이 이웃 주민들과 일선 복지·행정 공무원들의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고양시에서의 경우처럼 집주인 당사자의 동의를 이끌어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여러 해 동안 쓰레기를 모으다 못해 집 바깥에서도 쌓인 쓰레기의 규모를 알아챌 정도가 돼야 주변 가구 주민들이 뒤늦게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미 주변에 적잖은 민폐를 끼친 이후에도 톤 단위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쉽지 않다. 타인이 보기에는 아무리 쓰레기로 보여도 사유지 안의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거주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장강박이나 정신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쓰레기집 거주자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상당수의 쓰레기집이 뒤늦게 발견되기까지 이들 가구가 복지나 사회적 지원의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방치된다는 점이다. 지난 9월 12일 경기 수원시의 한 쓰레기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발견된 8살과 9살 남매는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남매의 어머니인 ㄴ씨는 남편과 이혼한 뒤 별다른 직업을 잡지 못하고 자녀들을 홀로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약 5개월 전부터 술을 자주 입에 대기 시작하면서 ㄴ씨는 점차 집안을 치우는 데 소홀해졌다. 60㎡(18평)가량의 집 안에 쌓인 술병과 컵라면 용기 등의 생활쓰레기들이 5톤 가까이 됐다.
악취가 진동하는 집에서 살아온 두 남매는 ㄴ씨가 집을 비운 사이에 학교에 갔다 돌아와서 집 문을 열 수 없자 외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간 딸인 ㄴ씨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 집안 사정을 알지 못한 외할아버지는 뒤늦게 온 집이 쓰레기로 뒤덮인 것을 알고 경찰과 주민센터 등에 신고했다. ㄴ씨는 아버지로부터 신고 소식을 듣자 보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가 9월 27일에야 집 주변을 서성거리다 경찰에 발견됐다. 경찰은 ㄴ씨가 남매를 때리는 등의 학대를 저지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ㄴ씨가 쓰레기장과 다름없는 환경에서 자녀를 방치한 데 대해 아동복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수원 남부서 관계자는 “조사보다는 우선 치료에 주력할 방침”이라며 “ㄴ씨에게 병원 치료와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안내했다”고 밝혔다.
집안을 가득 채운 쓰레기가 쏟아져 목숨까지 잃은 경우도 있다. 5월 28일 서울 노원구의 한 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강모씨(46)는 파지와 고철 등을 모으는 어머니가 쌓아둔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다 쓰레기 더미에 깔려 숨을 거뒀다. 강씨는 주중에는 근무하는 공장에서 일하며 기거하다 주말에 본가에 들러 집안일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강씨와 함께 쓰레기 더미를 치우다 강씨의 대꾸가 없자 사고가 난 것을 알아챈 어머니는 곧바로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하지만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겨우 진입한 구조대원들이 널부러진 쓰레기들 가운데 깔린 강씨를 발견했을 때는 강씨가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다.
■사유 재산이라 관청서 손쓰기도 어려워 쓰레기집 현장을 자주 접하게 되는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특수청소업체 관계자들의 현장 경험을 종합하면 쓰레기집을 만드는 집주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파지나 고철 등을 모아 팔아서 생활비를 버는 노인들이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노년층 가운데 일부는 신체적 기력이 떨어져 한동안 쌓인 쓰레기들을 치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부류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데, 저장강박 등의 정신질환이 의심되고, 이웃이나 친인척들과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돼 있을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두드러진 문제점을 보이지는 않지만 집안에 쌓인 쓰레기를 치울 생각을 하지 않다가 결국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돼서야 업체를 부르거나 혹은 주변 이웃의 민원으로 쓰레기집이 알려진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눈에 띄는 추세는 노년층이 아닌 연령대에서도 쓰레기집을 만드는 일이 자주 발견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쓰레기집과 함께 사육능력을 넘어서서 지나치게 많은 수의 동물을 키우는 ‘애니멀 호딩’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늘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는 전언이다. 특수청소업체인 하드웍스의 김완 대표는 최근 청소를 하기 위해 방문한 경기도의 한 쓰레기집이 특히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집안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은 김 대표에겐 더 이상 낯설 것도 없는 풍경이었지만, 십수 마리에 이르는 고양이들의 소재를 집주인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쓰레기집 청소 의뢰가 갈수록 늘어나는 중에 특히 최근 들어 굉장히 자주 발견되는 모습이 이런 ‘애니멀 호딩’인데, 쓰레기집 문제까지 얽히면서 쓰레기 더미 속에서 죽은 동물들이 나오는 모습도 봤다”고 말했다.
특수청소업체까지 부를 정도로 심각하게 쓰레기집이 돼버린 경우, 세입자가 치우지 않고 떠난 집을 임대인인 집주인이 청소 의뢰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보다는 그 집에 살고 있는 거주자 본인이 의뢰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 거주자 본인이 생활하면서 쌓인 생활쓰레기가 몇 년에 걸쳐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 전문업체의 손을 빌리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의뢰하는 분들이 자기가 만든 쓰레기집이 아니라 세입자나 아는 사람이 한 짓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집을 치우다 보면 창피하니까 괜히 다른 사람 핑계를 댔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며 “젊은 층에서는 1인가구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집에 들어와서도 집안을 치울 여력이 없는 사람들,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가 끊겨 있는 사람들이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쓰레기집이 점차 늘어나는 현상이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독거노인들이 쓰레기를 치우지 못해 쓰레기집이 되고 마는 현상이 이미 사회적으로 주목을 끈 바 있다. ‘고미야시키’라 불리는 일본의 쓰레기집 현상은 10여년 전부터 일본 사회에서 부각됐다. 고령화로 지방의 인구가 줄어들고 빈집들도 늘어나면서 함께 나타난 쓰레기집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독거노인 집의 쓰레기를 대신 치워주는 등의 정책까지 나왔다. 고독사 문제와도 연관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혼자 사는 노인들의 집을 방문하며 안부를 묻고 민원을 들어주는 일까지 병행하는 것이다.
■정서적 차원의 복지체계 마련해야 정신보건상의 문제로 저장강박에 시달리며 쓰레기집을 만드는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쓰레기집과 저장강박 현상에 대해 다룬 <잡동사니의 역습>이라는 책은 20여년 전만 해도 관련 연구논문조차 찾기 힘들던 저장강박 증상이 지금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 확산됐다고 지적한다. 강박·충동장애 심리전문가인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체 인구의 5%가 저장강박을 앓는다”는 점과 함께 “저장강박을 앓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발견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부모의 무관심이나 거절당한 기억, 성폭력 등의 트라우마를 비롯해 완벽을 요구받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생긴 저장강박 등이 쓰레기를 모으는 현상과 결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쓰레기집 현상은 이미 진행된 뒤에야 밝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규모와 분포 등에 관해 정부나 지자체가 체계적으로 집계한 내역은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2014년 전국의 임대아파트를 전수조사한 결과 292가구가 쓰레기집 문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한 내역으로 미뤄 전국의 쓰레기집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현재로서는 정부 차원의 쓰레기집 대책은 없지만 일선 행정현장에서 관내 지역 쓰레기집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쓰레기집을 찾고 예방하는 대책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 노원구와 성동구, 경기 성남시 중원구, 고양시 일산동구, 광명시 등 지자체별로 자체적인 ‘저장강박 가정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물론 문을 꼭 닫고 이웃과 소통 없이 살면서 저장강박과 쓰레기집 문제를 안고 사는 분들이야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한편으론 주변 주민들의 민원에만 좀 더 귀를 기울여도 문제가 되는 집들을 더 빨리 파악할 수는 있다”면서 “단순히 한 번 쓰레기를 치우고 집을 깨끗이 해준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데, 지원과 여력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한편, 당장 발견된 저장강박 가구의 쓰레기집 재발 방지에만 나서도 예방적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명찬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저장강박증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의 일종이지만, 멀쩡하던 사람도 여러 이유로 소외를 겪으면 발병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병으로도 볼 수 있다”며 “일시적으로 물건을 치워도 치료가 없으면 대부분 쓰레기를 다시 모으게 되기 때문에 상담사나 이웃과 소통하며 유대감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정서적 차원의 복지체계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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