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주 삼촌네 만두집                             

                 

음식점에 갔더니 “한효주 삼촌이 하는 만두집”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아마도 한효주라는 배우가 왔었는지 사진과 싸인이 벽에 떡 하고 걸려 있었습니다. 만두와 한효주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유명 배우의 이름을 이용하여 시선을 끌어볼 속셈으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집은 한효주 삼촌 만두집이래.” 그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만약 만두가 맛있으면 한효주도 덩달아 좋은 이미지를 얻게 되겠지만, 맛이 없으면 한효주만 욕을 얻어먹겠죠?


유대인들은 ‘the works of God’(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좌우지간 목회, 봉사, 성가대, 전도 둥둥둥둥 교회 안에서 하는 일만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 하나님의 일인지 아주 명쾌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him whom he hath sent)를 믿는 것(ye believe on)이 하나님의 일(the work of God)이다.”(요한복음6:29)


하나님의 일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believe in’이 아닙니다. 그 사람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냥 ‘believe on’입니다. 한효주 삼촌이 만두가게를 하든 짬뽕집을 하든 아무 상관없이 ‘한효주 삼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목회를 하든 장사를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무슨 일을 해도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지금 하나님을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이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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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은혜란 무엇인가? 상대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저 선한 마음으로 주는 것이 은혜다. 은혜의 이야기는 복된 소식이다. 우리가 오기만 하면 그분이 은혜를 주신다는 소식, 은혜는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힘으로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맥스 루케이도의 ‘맥스 루케이도 묵상집’ 중에서-

구원의 기쁨을 처음 누렸을 때 주님의 은혜는 나의 삶 속에서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값진 보물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은혜는 나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 그 소중한 가치를 세상의 가치와 저울질 할 때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버리기까지 날 사랑해주신 하나님,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는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신 하나님,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새벽종소리

▣ 은혜를 아는 사람

미국 보스턴 시에 스트로사라고 하는 청년이 바턴이라고 하는 거상(巨商)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워싱턴가에 소매상을 하나 차려 놓을 생각인데 2천 불을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에게는 담보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턴은 담보물이 없이는 돈을 빌려 줄 수 없다고 하자 그 청년은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턴은 후에 그 청년에게 관심이 생겨 동료 사업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돈을 은행에 두기보다는 유망한 젊은이의 앞길을 돕는 것이 훨씬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 무담보로 2천 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고 세계에 일대 공황이 와서 바턴의 사업도 모두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트로사였습니다. 찾아와서는 바턴의 부채를 갚아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바턴은 놀라며 "아니, 그때 그 돈은 벌써 다 받았는데 뭘 또 준다는 것이요?" 그러자 스트로사는 "아닙니다. 빌렸던 돈은 모두 드렸지만 도와주신 은덕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당하고 계신 불운의 얼마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의무입니다."고 하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바다 속의 고기들


필리핀에 있는 시부 한인 교회를 방문했을 때 박지덕 선교사님이 바다 중에 산호가 있는 곳을 안내하여 바다 밑의 신비한 세계를 잠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사실 바다가 세계의 2/3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내가 본 것은 극히 작은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답고 신비한 바다 밑의 세계는 처음 경험하였다. 각양 색을 지닌 산호와 그 사이로 다니는 형형색색의 고기를 보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진실로 신묘막측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시편 104:25에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생물이 무수하니이다."라는 말씀 그대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랍고 오묘한 것이 많다. 그에 비해 인간이 가진 지혜와 지식이란 것이 아무것도 아닌 데도 얼마나 많이 아는 척 하며 사는지 모른다. 눈을 들어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면 "주의 부요하심이 온 땅에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무수한 고기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 따라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앞에 겸손하게 된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제자로 삼으실 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넓은 세계와 깊은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신 말씀이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운지!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주의 역사를 이루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나다나엘을 향하여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것”이 영광스럽고 존귀하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할 때 항상 “넓고 깊고 위대한 것”과 연관 지어 말씀하셨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위대하고 영광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불러 이 사역을 행하게 하셨다.


10월 17일은 “이웃 초청 주일”이다. 마음과 뜻과 힘을 집중하여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 한다. 이는 대단히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 앞에 크고 넓은 바다가 있다.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면 수많은 형형색색의 고기들이 있다. 멀리서 보는 자는 경험할 수 없는 놀랍고 신비한 세계다. 다가서는 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천하보다 귀한 보화를 얻는다.

 


놀라운 그 은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찬송가 405)의 작사자는 존 뉴튼(John Newton(1725-1807)입니다.

그는 한 때 이교도였으며 탕자였고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하여 자신이 그토록 오래 동안 부인하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43년간 목사로 헌신하였습니다.

뉴턴이 여섯 살 때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뱃사람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 다음해에 재혼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뉴튼의 삶은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따라 항해를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그의 친구와 같이 군함을 승선하기로 약속했는데 그가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배는 이미 출항하고 없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선하여 그의 친구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리새인과 같은 엄한 신앙생활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자주 금식하며, 채식을 하고 많은 시간을 성경읽기와 묵상 그리고 기도에 드렸지만 얼마 후에는 다시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창기들과 어울렸습니다.

전쟁으로 뉴튼은 군인이 되었고 군함에 자주 타면서 나쁜 행동과 거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고 탈영하다 잡혀 중범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더욱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포로로 잡혀 15개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노예무역의 일꾼으로 일하게 되었고 드디어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노예를 사고파는 일을 지휘하였습니다.

어느 날 노예무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큰 폭풍우를 만나 배가 파선하였습니다. 그는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이라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었던지 배가 파선한지 4주 만에 기적적으로 뉴튼과 선원들은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노예무역을 그만 두었고 자신에게 베픈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기 위해 목사가 되어 43년을 섬겼습니다. 팔십의 나이를 넘기자 그의 시력과 청력 그리고 기억력이 현저히 쇠퇴해졌음으로 한 친구가 그에게 이제는 설교를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하자 그는 음성을 높이며 말하였습니다. "나는 잠시도 멈출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옛 아프리카의 신성모독자가 말을 할 수 있는 데도 입을 다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는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며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격해 하며 찬송가 405장의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라는 찬송가를 작시했습니다.

뉴튼은 운명하면서 자신의 묘비에 다음의 글귀를 적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한 때 이교도였으며 탕자였고 아프리카 노예상이었던 존 뉴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긍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크게 변화되어 마침내 성직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부인했던 바로 그 믿음을 전파하며 버킹검에서 16년간, 올니교회에서 27년 간을 섬겼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중국의 어느 버스 안에서 일어난 실화

 


(감동이라기보다 충격)

 

중국의 어느 시골마을 버스안에서의 일입니다.

예쁘게 생긴 여자를 험악하게 생긴 두 건달이 희롱합니다.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모른체합니다.

급기야 두 건달은 운전사에게 정지할 것을 명하고 말을 듣지않자 운전사를 테러합니다.

그리고 두 건달은 버스에서 여자를 강제로 끌어내려 버스 옆 풀밭으로 데려가 돌아가며 강간합니다.
버스안에는 건장한 남자도 수십명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도 정의롭게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냥 차창너머로 슬금슬금 눈치보며 그 광경을 구경만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일에 참견했다가 칼이라도 맞을까봐 두려웠겠죠..

그때, 보다 못한 한 청년이 나서서 건달과 싸웁니다.

건달들은 청년을 칼로 무참히 찌르고 달아납니다.
여자가 울면서 옷을 차려입습니다.

여자가 버스에 오르자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창피한건 아는지 여자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모두가 무관심한척 창밖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운전사는 테러당해서 운전할 수 없고 여자가 헝클어진 상태로 운전석에 앉습니다.
그때, 피를 흘리며 청년이 차에 타려하자 여자가 소리칩니다.
“왜 남의 일에 참견하시는 겁니까?”

라며 그 여자는 청년에게 화를 내고 버스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 여자가 운전하는 버스는 출발합니다.

청년은 아픈 몸을 이끌고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 자동차 사고현장을 목격합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말하길 버스가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고합니다.
멀리 낭떠러지를 바라보니 방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버스였습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죄를 짓지 않았지만 다시 보면 모두 죽어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던 그 청년을 버스에 타지 못하게 하고 그 여자는 승객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 글을 읽고있는 우리 모두는 그 버스안의 승객은 아닌지 곰곰히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전도에관한 예화

참는것은 곧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라고 말했다.

여러나라 금언에서 볼 수 있듯이 인내는 사랑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이다.
"한 줌의 인내는 한 부쉘의 뇌보다 더 값지다"-네델란드-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프랑스-
"인내는 악을 쳐 이긴다"-독일-
"인내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전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다"-이탈리아-
"인내는 천국에의 열쇠이다"-터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참고 견디는 자에게 생명이 있다.

언제나 참고 견디는 정신을 배워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산을 준비하고 비오기를 준비하자
한 작은 농촌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모든 농작물은 메말라 가고 가축들이 죽어가고,

모든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어느날 오후, 마을 주민들은 비를오게 하도록 교회에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다. 그들은 계속 모여 기도했다.

마침 그때 하늘이 번쩍이고 침침한 구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계속 기도했다.
그들도 모르게 바람이 거세어지고 하늘은 구름으로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천둥이 치고 대문이 흔들거렸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서로들 껴안고 춤을 추고 기쁨의 환성을 올렸다.

갑자기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8살쯤 먹은 한 소녀가 온통 함박 웃음을 짓고 우산을 쓰고 비를 바라다 보는 모습을 돌아 본 것이다.

모든 주민들이 비오기를 기도했으나 소녀처럼 비올 것을 믿고 우산을 준비하는 신앙이 부족했던 것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한대로

 

소련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철도국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냉장고가 달린 화차 속에 들어간 후에 실수로 인하여 문이 밖에서 잠겨버렸습니다. 아무리 빠져나갈려고 해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힘껏 두들겨보아도 냉장고 안에일어난 일을 아무도 알리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누가 지나가다 문을 열어보기 전에는 구원받을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기운이 빠지고 모든 희망을 버리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얼어죽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몸이 져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닥아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그는 냉장고의 벽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몸이 차가와진다.. 그래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나는 점차로 몸이 얼어옴을 느낀다...나는 이제 몽롱해진다..아마도 이것이 나의 마지막일는지도 모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직원들이 그 냉장고 화차의 문을 열었을 때 이미 그는 시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냉장고는 오래 전부터 고장이 나있었던 것이고 그 안에는 공기도 충분했고 실내 온도가 섭씨 13도 정도의 쌀쌀한 온도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를 죽게한 것은 공기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온도가 낮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그를 죽게한 것입니다
 

파스칼은 일찌기 말하기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하는대로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달나라에 인간이 착륙할 수 있는 것도 일찌기 그 누군가 그러한 것을 꿈꾸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잠언23장7절 말씀에 보면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위인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즉 그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의 생각여하에 달려있다는 말씀입니다. 인류역사에 기여를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긍정적인 것을 생각하고 창조적인 것을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60만명 중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생각은 씨앗과 같습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이 좋은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징기스칸의 맹세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위대한 왕 징기스칸((1155~1227)은 매를 이용한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사냥을 위해 숲길을 달렸습니다. 많은 신하들이 그의 뒤를 따랐고, 왕의 팔목에는 사냥하는 매가 앉아있었습니다.  

 그날 왕은 종일토록 짐승을 찾아 다녔으나 몇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일행은 궁전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왕은 그 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름길을 택해 혼자 말을 달렸습니다. 그러다 심한 갈증을 느낀 그는 샘물을 찾았지만 오랜 가뭄으로 샘은 말라 있었습니다.  

 

왕이 너무나도 빨리 달린 탓에 한 명의 신하도 보이지 않았고 아끼던 매도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머리 위의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왕은 물 잔을 꺼내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겨우 잔에 물을 찼습니다. 이를 마시려는 순간 보이지 않았던 매가 날아와서 주둥이로 그 물잔을 치고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땅바닥에 떨어진 잔을 주워들고 다시 물방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잔에 물이 반쯤 차자 왕은 물을 마시려 잔을 들어올렸습니다. 그 순간 매가 또 다시 날아와서 잔을 엎었습니다.   

화를 억지로 참으며 왕은 또 다시 물을 잔에 받아 물을 마시 먹으려는 순간 매가 또 날라 와 물을 엎질렀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왕은 칼을 꺼내어 매를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왕은 물줄기를 따라 바위를 기어 올라갔습니다. 거기에 고여 있던 물이 바위틈을 따라 한 방울 씩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왕이 물을 마시려 엎드리다 커다란 독사 한 마리가 물에 빠져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제 서야 왕은 자신이 아끼던 매가 왜 물을 마지지 못하게 방해한 이유를 알고는 자신이 화를 내서 매를 죽인 것에 대해 크게 후회했습니다.“오늘 나는 매우 쓰라린 교훈을 배웠다. 앞으로는 어떤 경우라도 홧김에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예화- 그릇대로 담는다. -

 

어떤 노인이 소일거리를 겸해 벌을 쳐서 꿀을 땄습니다.

꿀이 아주 좋기에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빈 그릇을

가져와서 꿀을 받아가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그마한 병을 가져 와서 꿀을 받아갔고.

어떤 사람은 바가지를 갖고 와서 받아갔고,

어떤 사람은 커다란 기름통에 받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불평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꿀을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가져 온 그릇대로

가득 가득 채워 주었을 뿐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성품,

즉 그릇의 크기입니다.

내가 어떤 그릇이 되느냐에 따라 담기는 축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릇을 이야기 할 때 큰 그릇과 작은 그릇,

깨끗한 그릇과 더러운 그릇으로 구분 짓는데?

큰 그릇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태연하게 잘 대처할있습니다.

작은 그릇은 작은 일에도 잘 흥분해 일을 망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큰 그릇은 범사가 형통케 되지만 작은 그릇은 빈()하게 된다.

더러운 그릇도 그렇습니다.

깨끗한 그릇은 악한 일에 이익이 있다 해도 손을 잡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러운 그릇은 잘못을 알면서도

손을 잡다가 결국 버림을 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그릇에 독이 담긴 줄도

모르고 꿀이 쓰다고 불평까지 합니다.

매사에 불평하지 말고 먼저

내 그릇부터 점검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에스키모인의 늑대사냥 
  
에스키모인들에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늑대 사냥법이 있습니다.
얼음바닥에 가축의 피를 적신 날카로운 칼을 꽂아 놓으면

냄새를 맡은 늑대가 다가와 그 칼을 핥기 시작합니다.
칼날 위에 얼어붙어 있던 피를 모두 핥아 내고,

결국 날카로운 칼날을 핥게 됩니다.
그러면 칼날에 혀가 베입니다.
  
그러나 피맛에 취한 늑대는 그 피가 자신의 피인 줄

모르고 계속 핥고 또 핥아 댑니다.
자꾸만 어지러워 지는데도 계속..
그렇게 자신의 피를 다 흘리며 서서히 죽어 갑니다
  
유혹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유혹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가는

어리석은 늑대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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