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밉지 사람이 밉나?

 

831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동식이라는 사진작가가 사귀어 오던 미모의 면도사 김경희양을 인적이 드문 서울 근교 시홍 호암산 근처로 유인했다. 그는 누두 사진을 찍으려면 미리 감기약을 먹어야 한다고 속여서 극약이 든 캡슐2개를 감기약과 함께 마시게 했다. 이동식은 나체인 채 극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21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사건은 29일 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김양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수사에 착수하여 범죄사냥꾼으로 통하는 서형사의 집요한 추적 끝에 범인 이동식이 잡혔고 그 끔찍스러운 엽기적 살인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범인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866월 교수형으로 일생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고통은 사형받은 이동식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범인의 아내와 철없는 어린 두 아들에게 덮쳤다. 이들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살인마의 집안이라고 단란하게 살던 가락동 아파트에서 일주일만에 쫓겨났다.

부인은 산동네로 옮겨 판자촌에서 살면서 두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키기로 결심하고 알선 기관에 맡겼다. 아이들이 입양되어 해외로 떠나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철없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자식을 저버릴 수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고통 가운데 있는 김여인을 찾아온 사람은 자기 남편을 붙잡아 교수대로 보낸 서형사였다. 서형사는 자신에 대해 증오심으로 붙타고 있는 김여인을 눈물을 쏟으면서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그는 결국 김여인을 전자회사 공원으로 취직시키고 아이들도 데려오게 하여 다시 가정을 이루게 했다.

사람이 미워 죄를 짓는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서형사의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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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지 않는 이유

 

높은 직책에 있던 한 소녀의 아버지는 반란군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그들에게 끌려가 온갖 협박에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마침내 마을의 새벽종소리가 울리는 시각에 처형당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음을 맞게 되자 소녀는 생각끝에 종지기 노인에게 찾아갔다.

"새벽종소리가 울리면 저희 아버지가 처형을 당하게 돼요. 할아버지 제발 내일 새벽에는 종을 치지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내가 그렇게 해서 아버지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단다. 하지만 나 역시 반란군의 감시를 받고 있으니 내가 종을 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고, 또 그렇게 되더라도 아마 그들이 종을 칠거다."

다음날 새벽, 종지기 노인이 종을 치려고 줄을 힘차게 여러 차례 잡아 당겼지만 종은 울리지 않았다. 반란군 대장은 새벽종소리를 기다려도 울리자 않자 종지기 노인을 찾아가 소리쳤다.

"왜 종을 치지 않는 거요?"

"아무리 종을 쳐도 종이 울리지 않습니다."

반란군 대장 역시 여러 차례 중릉 당겼지만 종이 울리지 않자 종루 꼭대기로 올라가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한 소녀가 종의 충에 몸을 묶고서 피투성이가 된 채 매달려 있었다.

놀란 대장은 "저기 저 소년가 누구요?"

"오늘 새벽에 처형 당하게 될 사람의 딸입니다."

종지기 노인은 슬피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반란군 대장은 아버지에 대한 딸의 사랑에 감탄하여 소녀의 아버지를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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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

 

스페인의 시민전쟁이 전국에 걸쳐 맹렬하게 번지고 있었을 때 가슴에 심하게

총상을 입은 적군병사 하나가 안타깝게 소리쳤다.

"제발 죽기 전에 신부님을, 모셔다 주세요. 제발." 너무나 간절한 적군의

부탁을 들어 주어 신부님을 모셔왔다.

"고해할 것이 있소?"

", 그런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곳 성당의

주임신부님이십니까?"

"그렇소이다."

적군병사는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놓았다.

고해성사를 마친 신부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땀을 몹시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부는 침착하게 군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제들이여, 이 부상병을 집안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적군병사는 신부의 말을 듣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저 신부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나를..."

"당연하지 않소? 신부인데." 군인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자 병사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나는 내손으로 32명의 신부를 살해했습니다. 마을을 침략할 때마다 사제관을

뒤져서 총, , 몽둥이로 죽였습니다.

이 마을에서도 사제관을 뒤졌으나 신부는 없고 그래서 그의 부모와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분이 이 죄많은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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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이 또다른 생명

 

새끼를 밴 무거운 몸으로 산기를 걸어가던 어미토끼가 깊은 산 속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토끼는 무거운 몸으로 도망을 쳐봤자 곧 잡히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호랑이 앞에 엎드려 사정했다.

"제발 한 달 뒤에 나를 잡으세요. 지금 내 뱃 속에 있는 새끼가 너무 불쌍합니다. 보름 후에 출산을 하게 되니, 그 후에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순간 호랑이는 지금 자기 뱃 속에 있는 새끼를 생각하고 도저히 토끼를 죽일 수 없어 그냥 살려보냈다.

며칠 뒤, 그 호랑이는 산 속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는데 마침 포수가 그곳을 지나치다 함정 속의 호랑이를 발견했다. 포수는 곧 호랑이를 향해 총을 꺼내 겨누었다. 그런데 호랑이를 노려보던 포수는 문득 호랑이의 애절한 눈빛에서 뱃 속에 새끼가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바로 그날 아침 출산을 위해 섬마을 친정으로 떠난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얼른 총을 거두고 함정에서 호랑이를 끌어내 풀어주었다.

한편, 친정으로 가기 위해 여객선을 타고 있던 포수의 아내는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바람에 점점 물 속으로 가라앉아가는 배 위에서 두려움이 떨고 있었다.

겨우 구조선이 한 척 도착했지만 너무 작아 아이들 밖에 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모두 태우고 난 구조선에 요행히도 자리가 하나 남게 되자 사람들은 기꺼이 임신을 한 포수의 아내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었다. 임산부를 태우면 두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어미토끼는 귀여운 새끼토끼를 낳았고, 그 어미토끼를 살려주었던 호랑이 역시 튼튼한 새끼를 낳았다. 그리고 포수의 아내도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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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

 

제가 다른 나라에서 케직설교를 할 때의 일입니다.

한번은 집회가 끝난 후 어떤 부인이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 부인은 아프리카에서 첫 선교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선교사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응답받은 많은 기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에서 너무 고독해서 자신이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낙심해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래서 다시는 선교지에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요한일서1:9에 있는 약속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의 일부분을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권면했지만 그 선교사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선교사와 여러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선교지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편지를 보면 언제나 우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영국에서 열린 케직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집회기간에 외국에서 온 방문객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참 재미있는 시간입니다.

어떤 때에는 6070개의 국가에서 온 손님들을 소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부인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절 기억하시겠읍니까?”

저는 기억력이 없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물으면 좀 당황합니다.

그래서 저는 흔히 하는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 이름이 뭐지요.” 그녀가 자기 이름을 말했을 때 저는

아 물론 기억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분은 제가 오래 전에 만났던 그 여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그런 죄도 용서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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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스물 다섯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았으나

결국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학년 때에 그는 어떤 교수님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런지 몇달 후 그는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 자네는 내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솜처럼 빨아들여. 게다가 어떤 답변에도 만족하지 않는 지성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질문을 할줄 아는 사람이야." 그로부터 일 년 후 그 교수님은 또 밥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가르쳤네. 솔직히 말해서 자네는 나보다 능력이 많아. 자네에게 새로운 도전을 줄 수 있는 다른 학교로 옮겼으면 좋겠네..."

그 교수는 밥을 사랑했고 학생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와 같이 관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약사가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서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대학에 다니고 싶으나 형편이 되지 않는 재능 많은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까닭에 그는 맏아들로서 두 남동생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많이 하고 나서, 약사는 그의 두 동생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련해 주어 형이 그들을 부양하지 않아도 되게끔 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는 대학 과정을 마치는데 필요한 전 비용을 빌려 주었다.

5년 후, 그 젊은이는 석사 학위를 받고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았다. 이제 돈을 갚을 준비가 된 그는 자기 은인을 찾아가서 말을 꺼냈다.

"계산해 보니까 매달 얼마씩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약사는 고개를 저었다.

"난 젊은이에게 돈을 빌려 주긴 했지만 되돌려 받고 싶지는 않소. 과거의 당신처럼, 도움을 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내가 했던 것처럼 해주기를 바라오."

그 교수와 약사는 관대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와 같은 지도자가 되려면 그런 자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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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승자

 

한 어머니가 5살짜리 외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 아이는 동네에 나와서 개구장이 친구들에게 얻어 맞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아들이 얻어 맞고 울면서 집으로 오면 그 집에서는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골목 밖으로 흘러 나온다."이 녀석, 바보같이 매일 매만 맞고 다녀. 당장 나가. 나가서 때리고 들어 와. 다시는 매 맞고 들어 와서 울면 가만 놓아 두지 않을 테야. 얼른 나가서 때리고 와!"귀한 아들이 친구에게 얻어 맞고 우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생각할 어머니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참 중요하다. 이왕 친구와 싸워서 얻어 맞은 것도 속이 상하는데 엄마에게까지 얻어 맞으며 야단 맞을 때 어린 마음은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그럴 때에는 먼저 위로해 주어야 한다."어머나, 우리 똘이가 얼마나 아프겠니? 가엾어라"하면서 엄마는 일단 아들을 꼭 안아 주고 눈물을 씻어 주며 아픈 곳을 만져준다. 그런 다음 조용히 위로해 준다."똘이야, 그래도 넌 참 훌륭했어. 네가 끝까지 친구를 때리지 않고 참은 건 아주 훌륭한 행동이야. 남을 아프게 하는 일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란다. 우리 그 친구를 용서해 주자."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 복수심과 원망을 사랑으로 녹여 주고 오히려 용서해 줌으로써 진정한 승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아빠와 다투고 나면 끝까지 말을 안하면서 요리조리 골탕을 먹이며 복수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나 우리 집에 조금 손해를 끼친 이웃 사람을 향해 미움과 원망을 품고 적대시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인간의 모든 한계를 초월한 온유함이 드러날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할 만큼' 온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이며 이 세상도 바로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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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

 

죄라는 말이 두 가지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법을 어긴다는 뜻이고 또하나는 을 걸머진다는 뜻입니다. 나타니엘 호오손의 주홍글씨에는 양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비극적 최후를 마치는 젊고 유능한 딤즈데일 목사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 양심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당하지만. 이 양심이 없었든들 이 세상은 이미 망한지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죄는 양심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죄가 법을 어김으로써 생긴다는 말의 뜻은 대체로 알아듣는다 하지만. 범죄가 곧 빚을 걸머진 상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에는 자기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죄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살인 강도나 사기 횡령뿐 아니라. 시기와 분쟁. 악담과 분노 이러한 모든 죄도 다 이웃에 대하여 무서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일일이 빚으로 치부되는데. 도무지 갚을 길이 없으니 한심합니다. 인간의 과거. 인간의 역사라는 것은 동판에 아로새긴 기록같아서 지울래야 지울 수도 없고 고칠래야 고칠 수도 없읍지다. 과거는 과거이어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옥중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괴롭고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를 말소시켜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이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처럼 관대한 처분에는 오직 한가지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너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간단한 조건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우리 빚을 갚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안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만이 우리 자신의 모든 추악한 죄를 용서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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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용서

 

몇해 전에 영국교회가 뉴우질랜드에 헌신적인 선교사를 보냈다. 몇해 동안 힘써 일하고 성공한 후에 그는 어느 안식일에 야만인 생활로부터 개심한지 얼마 안되는 한 지방에서 성찬식을 베풀고 있었다. 그 선교사가 성찬식을 인도하고 있을 때 사람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막

무릎을 꿇려고 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교회의 반대편으로 황급히 갔다. 그러더니 곧 돌아와서 조용히 제자리에 갔다.

성찬식이 끝난 후 목사가 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그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를 물었다.“내가 막 무릎을 꿇으려고 할 때. 나의 아버지를 죽여서 그 피를 빨아먹은 이웃 종족의 추장이 바로 내 다음 사람임을 알아챘다.

나는 모든 신에게 그 사람을 처음 만날 때에 죽이기로 서약했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복수해야겠다는 충동이 거의 나를 압도하여. 당신이 보다시피 그 힘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돌진했다. 내가 그방 반대편

끝에 섰을 때 우리가 갖는 이 집회의 목적을 생각했다. 그리고 주님이 자기의 소유된 살인자를 위해서 .아버지여. 그들을 용서하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나이다. 라고 기도하시는 주님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나는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 옆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참된 용서가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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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잘못했어요.

 

빌리는 실수로 할머니가 사랑하는 애완용 오리를 죽였다. 잔뜩 겁이 난 그는 죽은 오리를 호숫가에 묻으면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몰래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의 누이인 루시가 이런 행동을 모두 보고 말았다.

"할머니, 오늘 저녁 설거지는 빌 리가 하겠대요." 저녁 식사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빌리를 쳐다보며 루시가 말했다. 할머니는 거실로 나가며 빌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빌리는 루시 누나에게 무척 화가 났지만 비밀이 누설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얌전히 굴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에 할머니는 아이들을 불러 각자 할 일을 알려 주었다.

", 루시야 너는 마당과 옥수수 밭에 솟은 잡초를 뽑아라. 그리고 빌리는 지난 장마 때 무너진 흙담을 쌓아라. 그 다음에 놀아도 늦지 않을 거야."

할머니가 현관문을 나설 때 루시가 할머니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할머니, 빌리는 잡초 뽑는 일도 하고 싶대요." 할머니는 빌리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없이 나가 버렸다. 빌리는 하루 종일 잡초를 뽑고 담을 쌓느라 무척 지쳐 있었다.

"할머니, 빌리에게 울타리 페인트칠을 식히는 것이 좋겠어요." 그날 오후 당장 할머니에게 하는 얘기를 들은 빌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빌리는 당장 할머니에게로 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때 할머니께서 온화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빌리야,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단다. 난 네가 한시라도 빨리 루시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어, 이제 울지 마라. 빌리는 할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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