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비애|

 


돼지가 길을 가다 암소를 만나 쌓인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죽어서 사람들에게 살코기와 베이컨을 제공하고 심지어 내 발까지도

맛있는 먹을거리로 그들에게 내주는데 사람들은 왜 나보다 너를 좋아하는 걸까?”

그러자 암소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유가 있지. 너는 죽어서야 유익한

것을 제공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우유를 나눠주거든.”

세상에는 움켜쥐는 데에만 급급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언젠가 여건이 좋아지면

다른 사람을 위해 큰일을 할 거라고 큰소리칩니다. 어떤 사람은 부족한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더 멋지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일까요?

경기침체로,태풍피해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속담에

“인간은 주는 가운데 풍요로워지나 탐욕은 쌓는 가운데 빈곤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행도 함께 나누면 보다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축복된 기회가 됩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가짜는 조금만 섞여도 가짜다


쌀밥에 약간의 보리가 섞여도 쌀밥이 아니라 보리밥이 된다. 보리의 비율이 얼마나 들어있느냐가 아니라 보리가 들어갔느냐 안 들어갔느냐가 중요하다.

 진짜 휘발유에 1%의 다른 것이 섞여도 유사휘발유가 된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식품에 약간의 곰팡이가 피거나 약간의 나쁜 물질이 들어가도 불량식품이 된다. 건전한 식품과 불량의 차이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진짜에 조금만 다른 것이 섞이면 가짜가 되고 만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온전히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이 세대를 본받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진짜가 될 수 없다. 옛 사람을 모두 버리고 심령이 온전히 새롭게 될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고 하셨다.

100%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하는 마음으로 다 버리지 않으면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아직도 버릴 것이 너무나 많은 나의 모습에는 유사휘발유와 같은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큰 나무는 깊은 숲에 있다


강원도에서 자라면서 “큰 나무를 구하려면 깊은 산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땔감으로 쓸 나무는 뒷동산에 가서도 구할 수 있지만 집을 지을 기둥으로

쓸 나무를 구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까운 산의 좋은 나무들은 이미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산에서는 크고 좋은 나무를 구할 수 없다. 나물도 좋은 것을 많이

뜯으려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재목과 귀한 나물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깊은 산은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들어가서 나무를 구해도 가지고 나오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때로 길도 만들며

가야 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고와 헌신을 감당한다면 좋은 집을 지을 나무는 분명히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을 구하고 사람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찾아보면

생각지 못한 좋은 사람을 찾게 되고 구하게 된다.



                           

서른번째 이야기 - 하늘가는 길은 열려 있지않니?


교회 주일학교에서 섬으로 단체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고 버려진 휴지도 주웠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배에서 일행은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겁이 나서 우는 아이도 있고 선생님께 꼭 매달려 떨고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목사님! 사방이 다 폭풍에 쌓여 도저히 더 갈 곳이 없습니다.

이젠 어떡하면 좋죠?”한 아이가 울면서 목사님을 쳐다 봤습니다.

“얘들아, 그래도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열려 있지 않니?

”아이들은 눈물을 그치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참 소망이 있기에 어려운 일에 부딪쳐서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되는 거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마태복음 8:26)

 

폭풍우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담대하게 견디어 낼 수 있을

겁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알 수

있습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갈 곳이 없다면 하늘을 보세요.하나님께서 우리의 갈길을

보여 주실테니까요.

 


                           

 

스물 아홉번째 이야기 -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현석이와 은혜는 각자 어머니께서 싸 주신 과일을 선생님께 드리려고 들고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

학교 앞 골목길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던 꼬마들이 과일을 보고는 아주 먹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섰습니다.

그래도 현석이는 못본 척 그냥 지나갔고 은혜는 선생님께 드려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꼬마들에게 다 나눠주었습니다.

현석이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전해 들은 선생님은 은혜의 손을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야, 하나님은 가득찬 손보다는 나누어 주는 손을 더 사랑하신단다.

선생님도 은혜의 그 고운 마음씨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단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재난이 닥칠 때에 주께서 그를 구해 주신다.(시편 41:1)

 

현석이의 행동은 잘못이고 은혜의 행동만 옳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석이도 나름대로 제 할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과일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면서도 은혜의 행동을 칭찬하신

것은 은혜의 고운 마음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고운 마음씨

말입니다.

선한 일은 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내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현석이가 갖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아름다운 마음인 것입니다.



                           

 

스물 여덟번째 이야기 -  여성 전사의 눈물

예전에는 여자들도 전쟁이 나면 창과 칼을 들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어느 전투에서 여성 전사 둘이서 서로 맞부딪쳤습니다.

날카로운 창과 칼이 몇번 오가는 동안 결국 한 명이 창에 찔려 쓰러지고 말았고

이긴 여성은 기쁨의 환호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곧 그 여성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몸을 관통한 창이 뒤에 있던 꽃마저 찔러 그 꽃이 꺾여 버린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네 혀로 악한 말을 하지 말며, 내 입술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악한 일은

피하고, 선한 일만 하여라.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시편 34:13-14)

 

사람을 죽이고는 기뻐하면서도 꺾여진 꽃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여성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둘 다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을 다스리고 선을 쌓아간다면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그 마음 속의 선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따르려 노력할 때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기뻐하실겁니다.




               

스물 일곱번째 이야기 - 피묻은 칼

에스키모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이 늑대 사냥을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날카로운 칼날에 피를 잔뜩 묻혀서 얼리더니 그 위에 또 피를 묻히기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

“아버지, 칼에 피를 묻혀서 얼리면 칼날이 뭉툭해져서 늑대를 잡기가 더 힘들어

지는 것 아닌가요?

아버지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늑대는 사나워서 그냥 잡기는 힘이 들지만 이렇게 피를 묻힌 칼을 늑대가 잘

다니는 길에 꽂아두면 늑대는 처음엔 칼에 묻은 피를 먹게 되지. 그러다 보면 혀가 얼어서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칼날에 자기 혀를 베어 결국엔 자기 피를 계속해서 먹다가 쓰러지는 거란다.”아들은 그 때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1.정의에 굳게 서는 사람은 생명에 이르지만, 악을 따르는 자는 죽음에 이른다.

(잠언 11:19)

 

이야기가 조금 으시시 합니까?

늑대가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피묻은 칼을 혀에 갖다 대듯이 우리도 죽음에

이른다는 경고를 잊고 악을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에 한 번 두 번 빠지게 되면 나중에는 자신의 행위가 죄라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마치 늑대가 감각을 잃어 자신의 혀가 갈라져 흐르는 피인지도 모르고 계속

먹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어떤일이든 시작이 어려운 것이지 한번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게 됩니다.

렇다면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약속되어진 정의의 길로 한발짝 내딛는

결단을 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어리석은 늑대는 되지 않아야 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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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성구

 

1. 무엇을 용서하는가?

(50:17) - 허물을 용서함. (6:14) - 사람의 과실을 용서함, (11:25) - 혐의를 용서함

(고후2:10) - 무슨 일에나 용서함 (고후12:13) - 공평치 못한 일을 용서함

2. 용서해야 할 이유

(22:39) - 하나님의 계명이므로

(6:37) - 너희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23:43) -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12:20) - 유익이 되기 때문에

(3:13) - 주께로부터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3. 우리도 용서할 것을 분부하심

(11:25) - 용서해야 용서를 받는다.

(17:4) -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를 하라.

(4:32) - 하나님이 용서하심 같이 용서하라.

(3:13) - 주께서 용서하심 같이 용서하라.

4.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12:31) - 성령을 훼방하는 죄

(12:32) - 성령을 거역하는 죄

(6:4-6) -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죄

(10:26-31) - 은혜의 성령을 모욕하는 죄

           

용서의 신비

 

코리텐 붐 여사는 화란 사람이었다.

2차 대전중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혔고, 혹독한 고문끝에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후 그녀는 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했다. 그녀가 용서의 메세지를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

독일에서 그를 청하여 특별 집회를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느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자기 손을 잡은 노신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하여 죽게하고, 자신의 꽃다운 처녀시절 옷을 벗기고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 아직 살아서 자신과 악수하고 있지 않은가?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노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힘입고 그 원수까지도 용서하였으며 그를 마음으로 용서하는 순간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했다.

용서는 하나님때문에 해야하고 용서 받아야 할 너를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나를 위해서도 용서하며 사는 생활이 절대 필요하다.



                           

스물 여섯번째 이야기 - 강아지와 바위

아버지는 야솔이가 성경 읽기를 꺼려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야솔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야솔아, 앞에 가는 저 강아지를 따라 한 번 걸어보렴.”야솔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강아지를 따라 걸었습니다.

잠시 후 뒤를 돌아보니 모래위에 발자욱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습니다.

“그럼 이 번에는 앞에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걸어보렴.”야솔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걸었습니다.“어때, 이번에는 발자욱이 곧게 나있지? 네가 즐겨보는 만화책이나

텔레비전이 강아지라면 성경은 바로 저 앞의 바위와 같은 거란다.”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디모데후서 3:15)

 

성경 읽기가 어렵습니까?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이 많고 너무 두꺼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려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거절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루에 한 구절씩이라도 읽는 습관을 들이세요.

어려운 구절이 나오면 목사님이나 부모님께 여쭈어 보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보세요.

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영적으로 커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

살아가면서 강아지를 따라다녀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이라는 믿을 수 있는 큰 바위를 바라보며 담대히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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