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어느 젊은이가 꿈에 하나님을 만나 하늘 나라로 올라갔습니다.

하늘 나라를 구경하던 중 각 사람의 살아온 발자취를 그려 놓은 모래밭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생겨 살펴 보았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모래밭에는 발자욱이 두개가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발자욱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이가 하나님께 따지듯이 여쭈었습니다.“하나님, 왜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혼자 내버려 두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아들아,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었단다.

너와 동행하다가 네게 고난이 닥쳤을 때는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이사야 41:13)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까?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나 혼자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시지도 버리시지도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깊은 산 속에 홀로 있어도, 낯선 사람들 무리에 버려져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만의 증거입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쉽게 좌절하고 포기해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실망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고난속에서 더욱 강하게 단려되기를 원하시니까요.

이 세상에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니까요.

 


                           

스물 네번째 이야기- 세상을 넓게 보는 눈

제자 두 명이 스승을 찾아 왔습니다.오랫동안 함께 공부를 한 두 제자는 이젠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스승의 곁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스승은 두 제자 앞에 하얀 종이를 꺼내어 그 가운데 점을 하나 찍고서 제자들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명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했고, 또 다른 한 명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떠나도록 허락했지만 점이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공부를 더 할 것을 명령하며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공부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갖게하는 훈련인거야.”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전도서 3:11)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일까요?우린 가끔 세상을 자신만의 테두리 속에 가두어

놓고 그것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기도 합니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달나라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 속에서 세상을 바꿔온 위인들은 한결같이 세상을 넓게 본 인물들이었습니다.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발전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편견이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은 없어야 되겠습니다.



           

 

스물 세번째 이야기-티끌과 들보

어느 날 태웅이가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선생님, 아름이가 선생님께 혼날 일을

한 걸 제가 보고 왔어요. 뭐냐면요...,”“태웅아!”선생님은 태웅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막으시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넌 지금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등을 볼 수 있지? 하지만 네 등을 한번 보렴.

”태웅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선생님 어떻게 자기가 자기 등을 볼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태웅이를 끌어 안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우리들은 남의 허물은 쉽게 보면서 자신의 허물은 잘 보지 못한단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우린 누구나 한두 번 씩은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잘못하면 그것은 어쩌다가 일어나는 실수가 되고, 남이 잘못하면

그것은 큰 잘못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고, 책망을 하기전에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사소한 일로 남을 헐뜯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불의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라는 이야기로 받아 들여 진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불의를 보고도 못본 척 하는 것은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죄악된

길로 밀어넣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고자질과 비겁을 구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스물 두번째 이야기-살아남은 이유

추운 겨울날 두 사람이 눈보라치는 벌판을 가다가 신음하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우리 이 사람을 데려갑시다. 그냥 두면 죽고 말거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며 “무슨 이야기입니까?

저 사람을 데려가다가는 우리마저 죽게 될거요.

”라고 말하고는 먼저 가버렸습니다.

첫번째 사람은 노인을 업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들어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더운 기운이 끼쳐서인지 노인은 점차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이들은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한 남자가 꽁꽁 언 채 쓰러져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로마서 12:15-16)

 

노인을 업고 그 눈오는 산길을 걸을 때는 무척 힘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살아 남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그 사람은 얼어 죽었지만 노인의 생명을 구하려고

업고 간 사람은 그 노인 덕분에 자신의 생명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이웃과 동행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은 함께 부축하며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모범이 되어야 겠습니다.



                   

 

 토끼가 구해온 것은?

토끼와 여우와 원숭이는 평소 자신들을 보살펴 주던 주인 아저씨가 다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셋이서 먹을 것을 구해 오기로 했습니다.

먼저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가 머루랑 사과를 따왔고 여우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왔습니다.하지만 토끼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금방 먹을 것을 구해 올테니 솥을 걸고 불을 피워 두렴.”

토끼는 이 말을 하곤 숲 속으로 들어가서는 물이 끓을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손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무얼 가지고 온거니? 어서 내 놓아 봐.”

바로 그 때 토끼가 솥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주려고 한 토끼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소나기를 내려 불을 꺼 주셨습니다.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창세기 22:12)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에게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를

보여줍니다.

토끼가 주인 아저씨에게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아니하듯이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바치듯이 우리는 우리의 주인된 하나님을 위해 충성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진정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돈을 섬기는 사람, 명예를 섬기는 사람,

우상을 섬기는 사람....,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진정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목숨을 바쳐 섬기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진 일일 것입니다.

 


                           

 

스무번째 예화-민들레

 

햇볕이 잘 드는 앞마당 화단에 장미가 피었습니다.

보람이는 장미가 너무 좋아 자주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수줍게 핀 민들레는 장미에 가려 보람이의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물을 조금 밖에 얻어 먹을 수 없었고, 벌레의 괴롭힘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학을 맞아 보람이가 시골 외갓댁에 내려가는 바람에 아무도

화단에 물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도 내리질 않아 꽃들은 목이 탔습니다.

방학이 끝날 때 쯤 보람이가 집에 돌아와보니 장미는 이미 시들어 버렸지만,

민들레는 참고 이기어 끝끝내 홀씨를 틔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는 나의 환난을 보고,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환난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에베소서 3:13)

 

만일 보람이가 민들레에게도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 주어 민들레가 아무런 수고도 없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면 방학 기간동안 민들레가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요?

아닐겁니다. 우리가 고난이라고 여기는 것 중 대부분은 이처럼 우리를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고난으로 단련된 사람만이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 그 일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가 있는 겁니다.

어른이 다 되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엄마’하며 숨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온실 속에서 자란 꽃이 오래가지 못하듯이 고난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열 아홉번째 예화-동업자

가구를 만들어 파는 가게에 한 손님이 들어 왔습니다.

그 가게의 가구들은 모두가 튼튼하고 멋지게 보였습니다.

손님은 가게 한 켠에서 열심히 대패질을 하고 있는 목수에게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모두 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둘이요”라고 목수가 대답했습니다.

손님은 다른 사람이 또 있나 둘러 보았습니다.

목수는 웃으며 “하나님과 내가 여기서 일하지요.

하나님은 나무를 만드시고, 나는 침대를 만들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주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잠언 16:3)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상을 받고, 공부를 하는 것들이 오직 우리가

잘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관여해 주시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주위에서 나를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하나 잘했다고 해서 너무 자랑하거나 잘못된 일이

있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이루어 주실 겁니다.

 



                   

 

열 여덟번째 예화-소녀와 호랑이

산골 마을 소녀가 산나물을 광주리에 하나 가득 담아서 산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큰 바위를 막 넘으려는데 바위 틈새에 아기호랑이 몇 마리가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아기호랑이가 너무 이뻐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안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저 앞에서 어미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소녀는 나물 바구니도

버려둔 채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집에까지 따라왔습니다.

소녀는 너무 겁이 나서 그만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입에 물고 온 나물 바구니만 내려 놓고 가만히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이사야 49:15)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귀여워 해 주는 사람은 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록 하찮은 동물이라 할지라도 모성애라는 것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가끔 혼을 낼 때에도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혼을 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말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우릴 잊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릴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아프실 겁니다.

 



열 일곱번째 예화 - 바다, 그 생명력

호수와 바다는 작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여 살았습니다.

바다는 매일 바위에 몸을 부딪히고 쉬지 않고 소금을 자신의 몸에 뿌렸습니다.

호수는 그런 바다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호수는 바람과 이야기하고 나무와 놀기만을 즐겼습니다.

수 년이 지난 후 호수는 제 몸 어느 구석부터 물이 썩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픔을 느끼면서도 바위에 내 몸을 부딪히는 것은 잠들지 않기 위함이고

소금을 뿌리는 수고를 하는 것 역시 내 몸을 썩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어.”

슬픔에 빠진 호수를 향해 바다가 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그분의 영원한 영광으로

불러들이신 분께서, 잠시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10)

 

우리 주위에는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데도 늘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한 남의 것을 탐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면서도 잘 사는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린 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잠시입니다.

그 고난과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릴 더욱 온전하게 해주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 만큼 우리게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 여섯번째 예화-친구

효상이가 서울로 이사온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낯선 집, 낯선 학교 이 모든 것에 적응하기가 힘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힘이 든 것은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오늘부터 친구를 찾아 나서야겠어. 이 곳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 친구가 되어 줄 사람도 많을거야.” 효상이는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효상이는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민혁아, 내일부터는 친구를 찾아다니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주려고 노력해 보려무나. 그러면 네가 가는 곳

어디서나 친구를 만날 수 있을거다.”

너의 친구나 너의 아버지의 친구를 저버리지 말아라. 네가 어렵다고 친척의 집을

찾아 다니지 말아라.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잠언 27:10)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따라 친구도 될 수 있고 원수도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우리가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희생과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까? 누구에게나 스스로 친구가 되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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