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번째 예화-둘 다 옳은거야

 

나무는 언제나 바람으로부터 세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나무마다 온갖 열매가 열리고 사람들은 풍성한 곡식을 거둘 수가 있어서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지.” 그 때 북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이야기를 가로 막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세상은 매우 춥고 온통 얼음으로 뒤덮힌 삭막한 곳이야.” 남풍과 북풍은 서로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투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무가 이야기 했습니다. “너흰 둘 다 옳은거야, 너흰 서로의 고향 외에는 가보지 않아서 상대방의 말을 믿지 않을 뿐이지.”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디모데후서 2:15)

 

진리란 무엇일까요?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걸리버는 소인국에도, 거인국에도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걸리버는 자신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소인국에서는 너무 크다고, 또 거인국에서는 너무 작다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린 가끔 자기의 주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다투곤 합니다.

이 세상에 절대 진리란 성경 말씀 외에는 없습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의견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한 의견 교환은 우리의 사고를 한단계 성숙시킬 것입니다.

 

                                           

열 네번째 예화-게으른 수탉

 

새벽마다 수탉은 지붕 높은 곳에 올라 목청 높여 우는 것으로 아침이 오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괜히 심술이 났습니다.

“도데체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는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저 소나 돼지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여 주면서,

난 스스로 먹이를 구하도록 내버려 두겠어?

좋아!

내일부터는 아침이 와도 알려 주지 않을거야.

그러면 나의 소중함을 알겠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다 되었는데도 수탉은 닭장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늦게 일어난 농부는 닭장에 있는 수탉을 보고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이 닭도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저녁에 돌아와서 잡아 먹어야겠다.”

부지런한 사람의 손은 남을 다스리지만, 게으른 사람은 남의 부림을 받는다.(잠언 12:24)

 

우린 가끔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또 나 아니고는 아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지만물중 가장 귀하게 만드셨지만

게으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수탉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주인에게 잡혀 먹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키워가야 되겠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칭찬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열 세번째 예화-감사할 조건

 

진수는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주일학교실에 들어가면서 신발장에 벗어둔 신발이 어느 새 없어진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찬양을 배우는 시간 내내 화가 풀리지 않아 찬양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때 앞에 앉아서 찬양을 드리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친구는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찬양을 드리는 그 친구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신발이 아니라 두 다리 모두 잃어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그 친구를 보며 진수는 무척 부끄러워 졌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8)

 

진수는 신을 잃어 버렸을 때 화가 났지만,

그 친구는 한쪽 다리를 잃고도 기쁨으로 찬양 드릴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 일들의 대부분이

우리의 감정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될 수도, 낙심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들에 핀 꽃 한송이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범사에 감사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으로 돌려 드리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으실 겁니다.

 



열 두번째 예화- 초대 받지 못한 예수님

 

은주는 자기 생일을 맞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제각기 값진 선물을 들고 와서 생일 잔치에 참가했는데 우성이는 빈 손으로 와서 문밖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습니다.

은주는 우성이의 남루한 옷차림과 선물이 없는 걸 보고는 “난 널 초대 한적이 없어, 미안하지만 나가주겠니?”라고 말하며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우성이는 무척 슬퍼졌습니다.

그런데 문 밖에는 남루한 옷차림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울고 있는 친구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한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그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서 2:8-9)

 

우리는 가끔 외모나 옷차림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속이 지저분한 금그릇이나 은그릇보다는 투박하지만 속이 깨끗한 질그릇을 더욱 귀히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속 마음을 보고 하늘 나라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외모를 보고 이웃을 쫓아 내면 예수님을 쫓아 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쫓아낼 수야 없지 않습니까?

 

열 한번째 예화-샛별과 혜성

 

샛별과 혜성 둘이서 세상 구경을 다니다가 어느 산 속에 소녀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샛별은 그 소녀의 길을 안내해 주기 위해 땅 가까이내려와서

소녀를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고 혜성은 못본 척 하늘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 하나님은 샛별과 혜성을 불러 샛별에게는 밝은 빛을 선물로 주셔서 세상

많은 사람들의 좋은 길동무가 되게 하셨고, 혜성에게는 길 잃은 소녀를 외면한 벌로

평생동안 밤 하늘을 떠돌아 다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를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여러분이 쓸 것을 언제나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8)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외면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 하실겁니다.

착한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바로 나의 일인 것처럼 여기고 나서서 도와 주는 것입니다.

머리가 둘 달린 아기는 한쪽 머리가 아플때 다른쪽 머리도 아파하면 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고 웃고 있으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할 수 있는 한 몸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린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한 자매니까요.

 


열번째 예화- 특별히 준비된 자리

잔치집 대문을 열고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은 고급차를 타고 왔고 옷도 근사했는데, 또 한 사람은 반대로 남루한

모습이었습니다. 첫번째 손님은 상석에 앉아 거드럼을 피웠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와 사귀려 했지만 두번째 손님은 끝자리에 앉아 조용히

잔치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잠시후 주인이 나와서는 첫번째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 이 자리는 저기 계신 손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자리이니 비켜

주시겠습니까?”

주인이 가리킨 곳에는 남루한 차림의 두번째 손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누가복음 14:11)

 

우리는 누구나 높아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자라 할지라도 높은 것처럼 보이려고 치장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 높아진다는 것은 가장 낮아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도 씻으셨습니다.

그 누가 그런 예수님을 낮은 자라 말하겠습니까?

권세있는 자의 높은 위치가, 가진 자들의 보화가 그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팔을 걷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찾아 묵묵히 행하십시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그 길만이 진정 하나님 안에서 높아지는 길입니다.

 

 

                                                

아홉번째 예화- 돼지와 암소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기가 얼마나 인기가 없는가 하고 한탄 하였습니다.

“너는 우유와 크림을 준다. 그러나 나는 더욱 많이 준다. 나는 베이컨과 햄을

주고 털을 주고 그들은 심지어 내 발을 소금에 절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돼지일뿐이다.

왜 사람들은 너만 좋아하고 나는 좋아하지 않는걸까?” 암소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글쎄, 아마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주기

때문일꺼야.”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  (잠언 11:25)

 

우리 주변에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 거리를 걷다가 부랑아나 구걸하는 걸인들을 본 적은 없습니까?

내 형제, 내 친구만 도울 줄 알고 그들을 못본 척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는답니다. 또 내가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다음에 많이 가질때

그들에게 나누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서 조금씩

나눕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가 됩시다.

여덟번째 예화- 눈사람의 희망

 

겨울이 끝날 즈음 고드름은 무척 슬퍼졌습니다.

곧 따뜻한 봄이 되면 녹아 버릴 테니까요. 그런데 곁에 있는 눈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만 있었습니다. 고드름은 이상하다는 듯이

“넌 녹아서 네 몸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지 않니?” 눈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난 녹아서 물이 되어 산과 들에 생기를 불어 넣고 꽃들을 잠에서 깨울테야.

그리고 계속 노력해서 바다로 가려고 해, 바다는 우리의 고향이거든,

그것이 뭐가 두렵겠니?” 그 이후로도 겨울만 되면 고드름은 걱정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지내서 몸이 야위었고, 눈사람은 희망으로 늘 웃고 지내는 덕택에

살진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가운데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6-17)

 

고드름과 눈사람은 똑 같은 상황인데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 기쁨과

슬픔이 갈렸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도록

소망이라는 걸 주셨습니다. 소망이 있는 삶은 늘 기쁘고 아름다울 수 있지만

소망이 없는 삶은 어두운 밤길을 등불도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십자가의 고난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소망을 가집시다. 우리의 소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 줄 수 있는

소망이어야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일곱번째 예화- 어미 독수리, 아들 독수리

아들 독수리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맛있는 먹이를 발견했습니다.

며칠 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했던 까닭에 배가 고팠던 아들 독수리는 먹이를

먹으려다 집에 계시는 어미 독수리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와 나눠먹을까?

아냐, 혼자 먹기도 부족하니 엄마는 엄마가 직접 잡아 먹으라고 하지 뭐.”

먹이를 다 먹은 아들 독수리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갔습니다.

“얘야, 엄마가 먹이를 잡았는데 너와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단다.

어서 먹자꾸나.” 아들 독수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자녀가 되신 여러분, 모든 일에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골로세서 3:20)

 

사랑은 흔히 내리 사랑이라고들 합니다. 우리들은 부모님께 늘 받기만을

원할 뿐 무언가를 해 드린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은 좋은 것이 있으면 우선 자식들 생각을 하지만 자식들은 자기의

욕심만 채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꽃 한송이 달아 드릴 때면 조금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부모님께선 늘 우리에게 주실 것만을 생각하십니다.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부모님께선 우리의 그러한 모습에 무척 기뻐하실겁니다.

 

여섯번째예화- 어리석은 호랑이

깊은 숲 속에 무서운 호랑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는 발톱이 날카롭고 포악하여 숲 속 동물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 동물들이 모여 어떡하면 호랑이를 쫓아 낼 수 있을까

궁리를 하던 중 여우가 꾀를 냈습니다.

다음날부터 동물들은 호랑이굴 앞에 하루에 한 번씩 먹을 것을 갖다 놓았습니다.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생긴 호랑이는 매일 굴 앞에 놓이는 먹이만

기다리며 흐뭇해 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난 후 놀고 먹기만하던 호랑이가 발톱도 무뎌지고 빨리 달릴 수도

 없게 되자 숲 속의 동물들은 힘을 모아 호랑이를 쫓아 내 버렸습니다.

'손이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사람은 부유하게 된다.'

(잠언 10:4)

 

호랑이가 제 힘으로 사냥을 다닐 때는 다른 동물들이 그 모습만 봐도 도망가기에 바빴지만,

사냥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이 가져다 주는 먹이에 만족하며 게으름을 피울 때에는

무서워 하기는 커녕 힘을 모아 쫓아 내어 버렸습니다.

일하지 않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일하는 손, 땀 흘리는 모습을 가장 이뻐하십니다.

일하는 사람이 부유하게 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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