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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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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받침대
등잔 받침대
출처 : http://kcm.kr/dic_view.php?성서유물박물관 |
에덴동산 [Garden of Eden]
많은 사람들이 신화처럼 생각하고 있는, 인류의 시조(始祖)가 처음에 살았던 에덴동산의 위치를 지금 정확히 알 수 있을까? 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화윌라 온 땅에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땅에 둘렸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세기 2장 10절~14절]
라는 말씀을 보아 이 두 강은 곧 현재 시리아 동쪽에 흐르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틀림없다. 두 강은 현재 이라크에 있다. 역사가들도 4대 인류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을 꼽고 있다. [유프라테스 강] > [티크리스 강]
1986. 3.20일자 스포츠 서울에 “현대판 에덴의 동산을 만든다”라는 제하에 이하와 같은 기사가 실렸었다.
“터키 정부는 세계 4대 문명발상지의 하나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우르 지역을 중점 개발 현대판 에덴의 동쪽으로 만들 대규모 개발계획을 발표. 터키 정부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 오는 2000년 까지 모두 13개의 다목적 댐을 건설하고 관개시설을 확충, 세계 문명의 발상지이며 중심지였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킬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한편 외국의 고고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를 무분별하게 개발함으로써 이 지역 내에 묻혀 있는 세계 문명발상사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귀중한 유적들을 모두 침수시킬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터키 정부의 개발계획을 반대했다.” 에덴동산에서 흐르던 네 강 중에 두 강은 아마 이스라엘 남쪽으로 흘렀으리라 생각한다.
1982년 11월 28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소개한다. “콜롬비아호 고대 강 발견”이란 제하에 “미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에서 발사된 레이더가 아프리카 북부의 사하라 사막 깊숙이 묻힌 고대 강 줄기를 찾아내 고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작년(81년) 11월 두 번째 우주여행 때 콜롬비아호가 찍은 레이더 사진을 분석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 8명이 공동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진이 수만년 동안 사하라 사막 땅 속에 숨겨져 있던 큰 강과 계곡, 홍수가 났던 들판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 월간과학 뉴턴 ’93.12월호 # 중앙일보 ’93.8.12 # 경향신문 ’87.6.20 > # 세계일보 ’91.2.10 현재 중동 지역은 거의가 불모지이며 사막이다. 그런데 세계 석유의 70% 이상이 그곳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석유가 나오려면 그 옛날 그곳에 많은 동식물 유기물질이 갑작스런 천재지변에 의해 땅 속에 매장된 일이 있어야만 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썩지 않고 뜨거운 지열 등의 화학적 변화를 받아 에너지를 자체에 갖고 있어야 한다.
옛날 에덴동산에는 특별한 기후 관계로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울창하고 엄청나게 큰 수목이 자라고 있었으며 온갖 거대한 짐승들이 활동했을 것이라는 증거가 많이 있다. 그것들이 대홍수 및 그에 따른 지각변동에 의해 다 땅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그러한 내용을 지적한 성경 말씀이 있다.
“너의 영화와 광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에스겔 31:18). 에덴의 광대한 나무와 모든 것들이 지하에 묻혀 버림으로 그것이 훗날 석유가 되어 나오게 된 것이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중동 지방에서 기름이 흘러나왔다는 성경 기록도 있다. 이 지역에 세계70%이상의 석유가 나오고있다. 현재 황무지인 이곳 지하에서 이런 석유들이 나오는 것은 과거에 이곳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식물과동물이 왕성했던 곳이였다는 증거이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tar pits)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창세기 14:10).
정유공장에서 좋은 기름을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가 역청인데, 도로 포장(pave)할 때에 쓰이는 아스팔트가 그것이다. 그 옛날 중동지방에는 땅 속에서 기름이 솟아나온 곳이 있었는데, 휘발성이 강한 것은 다 기체화하고 남은 것이 여기저기 역청 구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소돔 고모라 왕들이 전쟁할 때 그 역청 구덩이에 군사가 빠져 죽게 된 것이다.
많은사람이 신화처럼 여기던 성경에기록된 에덴동산은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하였던것이다 |
바벨론과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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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 끌려 간 다니엘은 '다니엘서'를 기록하는데, 그의 예언대로 바벨론의 멸망 다음에는 메디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등의 나라가 나타났습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이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다니엘서'가 그 사건들이 다 이루어진 후에 기록된 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후대에 기록하고 이름만 '다니엘서'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대해서 성경의 신빙성이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서에는 헬라어(그리이스어) 단어가 세 개 들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다니엘서가 바벨론 시대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알렉산더가 지배하던 '헬라' 즉, 그리이스 시대에 쓰여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보면 그리이스와 바벨로니아는 느부갓네살 시대 이전부터 이미 광범위한 무역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말(言)도 서로 오고 갔다는 것이 밝혀져 있고, 세 개의 단어가 무엇인가 조사해 보았더니, 그 단어들은 모두 그리이스의 악기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최소한 한 개의 악기는 다니엘 시대 이전부터 바벨로니아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악기였습니다. 예전부터 써 오던 악기이므로 그리이스 말 그대로 바벨로니아에서 쓰인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니엘서에 수메르 단어가 8개나 들어 있습니다. '수메르'라는 나라가 언제 부터입니까? 아브라함보다 이전 아닙니까? 다니엘서가 기원전 500년경이라면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전이므로 1500년도 더 된 단어가 8개나 남아 있다는 말이지요. 느부갓네살 통치 시대 이후에는 수메르 언어가 전혀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다니엘서에 수메르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느부갓네살 시대, 혹은 그 이전에 다니엘서가 쓰여졌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의 저작시기가 느부갓네살의 통치 시기로부터 먼 훗날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수메르 단어로 확정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조차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니엘서에 히브리어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도 포로로 잡혀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기록된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내용에 있어서 허무맹랑한 사실이 너무 많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는데요, 한 예를 들면 다니엘서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외국의 포로중의 일부를 잘 먹이고 갈대아 학문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는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너무나 악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포로를 잘 먹이고 가르쳤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바벨로니아의 정책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고대 바벨로니아 지역을 발굴하다가 특별한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건물의 비석에 그 건물의 용도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비석에는 포로로 잡혀 온 왕족과 귀족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된 건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잘 먹이고 가르쳤다는 성경의 기록이 실제로 증명된 것입니다. 그리고 금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고 다니엘의 세 친구를 용광로 불 속에 집어넣었다는 기록이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불 속에 던져 넣으려던 바벨로니아 군인들은 방화복을 입고 했었는데도 오히려 불에 타 죽을 정도로 불길이 강했으나, 세 사람은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용광로가 발굴되었는데, 그 용광로의 용도에 대해 쓰여진 비석에 보면 바벨로니아의 신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화형 시키는데 사용되는 용광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타는 용광로 속의 세 명의 히브리인의 이야기는 적어도 사실에 근거하였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또 많은 비난을 받았던 부분은, 다니엘이 왕의 칙령을 따르지 않아서 사자 굴에 떨어졌는데, 사자들이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가만히 있다가, 다니엘을 고발했던 사람을 잡아넣었더니, 뼈까지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계깊은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고대 바벨론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웅덩이가 발견되었는데, 이 웅덩이는 왕의 칙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사나운 짐승의 먹이로 떠밀어 넣는데 사용된 웅덩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잡아먹힌 사람들 이름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는데,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이 사건은 적어도 사실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갑자기 느부갓네살왕이 미쳐서 이슬을 묻혀가면서 풀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제정신을 차려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을 차려 돌아온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던 것 같습니다. 바벨로니아의 고고학적 발견 가운데 느부갓네살 왕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명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명각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는 왕이 미친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느부갓네살왕의 명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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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란 |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만 순종을 하여, 하란까지만 가서 살다가 늙어서, 거기서 죽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하란에 머물러 있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가지고,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고 하셨지요.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해서(우르를 떠날때는 60세 가량) 그 하란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75세 때에 가나안으로 출발합니다.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간 것이지요. 그래서 갈대아 우르도 중요하지만 이 하란이라는 지역도 대단히 중요한 지역 중의 하나입니다. 근래에 와서 이 하란 지역의 고고학적 발견이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란 지역은 지금의 시리아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란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결과 과거에 매우 발달된 문명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수메르보다 몇 백년 앞선 문명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나온 기록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그 문명을 세웠던 나라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에블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에블라 문명'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발굴된 점토판에 새겨진 기록을 분석한 결과 에블라 문명을 세운 왕의 이름이 '에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이 믿던 신의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그 이름은 '야'였습니다. 아마도 '야훼'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왼쪽 그림은 현재의 하란의 모습입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보시면 하란에 있었던 에블라의 대문명을 암시하는 족보가 있습니다. 여기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인'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요? 어떤 잘못된 견해로 이집트에서 나온 문자를 토대로 '하비루'라는 노예에서 왔다고 하는데요, 사실은 이 '에벨'이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 '히브리'입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결국 노아의 아들 셈, 셈의 아들 아르박삿, 그 아들 셀라의 아들인 '에벨'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이 에벨이 큰 문명국가를 이루었고, 에블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정통 셈족의 국가인데, 어떤 원인에 의해 수메르인에게 멸망당합니다. 강 아래쪽의 더 강성한 국가 수메르의 사르곤 왕이 에블라를 멸망시킨 뒤 아브라함의 조상들도 끌고 갔는데, 이들이 그곳에서 우상이나 만들면서 비참하게 살다가 하나님이 영적 분별력을 주셔서 새로운 땅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데라는 가다 말고 자기 조상 에벨이 세웠던 찬란했던 나라 '에블라'의 고토 하란 땅에 머무르다가 안주하고 말았습니다. 그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침내 가나안까지 들어갔습니다. 에벨 시절에 번성하던 에블라는 수메르인들이 강해지면서 망하게 되었고, 니므롯의 제국 때 바벨탑을 세우다가 세상이 나누이게 되었는데, 그때가 벨렉의 시대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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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QUMRAN)
사해의 서북쪽에 자리잡은, 와디와 그 근처의 고대 유적지. 사실 쿰란은 그 곳의 동굴에 감추어져 있던 '사해 사본'이 발견된 1947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쿰란 근처에 있는 유적지의 발굴을 통해, 그 곳을 점령한 시기가 유대 왕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이 밝혀졌다.
그러나 쿰란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기간은 BC 2세기에서 AD 1세기 까지였다.
이 기간에 지어진 복합 건물은 사해 사본이 속해 있었던 유대 종교적 공동체의 중심지를 이루었고, BC 3l년에 있었던 지진으로 손상되었으여 BC 4년 이후에 복원될 때까지 방치된 채로 있었다
이 주거지는 AD 60년경에 로마의 소탕 작전으로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말았던 것 같다.
사해 사본; 에센을 보라.1947년 봄 한 베드윈(Bedouin) 소년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나섰다가 사해의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의 항아리에 보관되어 있던 양피지에 기록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Scroll) 사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서기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사본이었는데 이 사해 사본은 그보다 무려 1100여년이나 앞선 서기 전 100년을 전후하여 기록된 것이어서 성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51∼6년에 걸쳐 프랑스의 성서 고고학자 드보(R. De Vaux)는 쿰란 언덕에 위치한 유적지를 발굴하여 이곳이 요세프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엣세네(Essene) 집단의 수도원임을 밝히게 되었다.
수도원은 원래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이 보다 높은 지점의 계곡에 댐을 건설하여 겨울철의 우기에 흘러내려 오는 빗물이 수로를 따라 수도원의 물탱크에 자동적으로 저장되었다.
한 주간 중 평일에는 근처의 수많은 동굴 속에서 기거하던 엣세네 수도자들이 안식일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물로 씻는 정결 예식과 성서 연구를 하였고 공동의 식사를 위한 대형 식당과 주방, 성서를 베끼는 필사실 등일 이곳에 갖추어져 있었다.
유대 광야에서 선교하던 세례요한이나 근처의 요단 강에서 그로 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 했던 예수도 이 공동체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는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뿐이며 나머지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은 구약 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서, 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등으로써,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이 두루마리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발굴된 것들 중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들이었다. 2000년이나 지났음에도 그것들은 잘 보존이 되어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여러 구약성서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서를 해석한 사람들이 후기에 사용한 사본들은 상당히 정확한 것들이었다.
이 사본들은 보수적인 입장의 사람들에게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전달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쿰란 동굴에서 발굴된 문서들이 전부 다 책으로 발간되지는 않았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마카비시대에 새로운 종교를 형성하고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밝혀졌다. 쿰란에서 쿰란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에세네파사람들은 율법과 예언서를 필사해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공동체생활을 했으며,스스로 참 이스라엘인이라 부르며 하나님의 통치가 지상에서 이루어지길 기다렸다.
쿰란공동체는 49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
고고학자들은 제1동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집터를 발견했다.복잡한 방들과 책상 의자가 놓여있는 방,양피지,잉크가 발굴됐다.
그리고 주거지와 연결해 물을 저장했던 물탱크,주방,연구실,기도실,도기가마,하수도 등이 잇따라 발굴됐다.쿰란공동체는 서기 68년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다.
그들은 로마군이 쳐들어오자 두루마리 구약성서와 문헌들을 항아리에 담아 동굴에 숨겨 놓았다.
사해사본이 2천년 가까운 세월을 넘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은 매우 건조한 이 지역의 기후 탓이다.
사해사본은 가장 오래된 구약필사본이며 현재 예루살렘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쿰란공동체를 순례한 취재진은 사해사본의 발견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금세기 최고의 발견이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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