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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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의 등잔
초기 청동기 시대의 등잔은 아무 토기 조각에 동물성 지방을 이용하여 태우는 원시적인 것들이었고, 중기 청동기Ⅰ시대(서기전2250-2000)부터 본격적인 별도의 용기로서의 등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등잔은 심지가 나오는 아구리가 사방으로 네 개인 사각 등잔의 모습을 띄고 있으며 중기 청동기Ⅱ시대(서기전2000-1550)부터는 납작한 접시형 토기에 가장자리를 약간 구부려 놓음으로써 심지를 꽂게 하였다.
구약 시대의 등잔류는 아구리의 찌그러진 정도에 따라 그 시대가 판명된다. 즉 후시대로 내려올수록 아구리 부분이 점점 깊이 패이게 되어 전체적으로 마치 조개 같은 모습을 띄게된다. 특히 서기전 700년경부터는 등잔 바닥이 더 이상 둥그렇지 않고 받침대가 첨가되어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는데 바로 이 시점부터 등잔의 원료가 고체의 동물성 기름에서부터 올리브유 같은 액체의 식물성 기름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페르시아 시대(서기전539-332)부터 납작한 접시 모양에 뚜껑이 있는 원통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청동제 등잔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마카비 시대(Maccabian 서기전165년 이후)의 등잔은 그 크기가 매우 작고 심지 아구리가 그 이전시대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신약 시대에는 등잔이 많이 필요하게 되면서 더 이상 하나씩 손으로 빚어 만들지 않고 돌판을 파서 만든 두 개의 틀(mold)에다 진흙을 눌러서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따로 만든 다음 둘을 이어서 뚜껑이 있는 등잔들을 만들었다. 이 때 여러 종류의 무늬와 문자의 기록들도 틀에 새겨서 등잔 표면에 나타나도록 하였다.
로마-비잔틴 시대의 등잔들은 모두가 석재 틀에 의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들로 다양한 무늬와 글귀가 자주 나타난다. 글씨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되어 있고 성경 구절과 성인들의 이름이 주로 나타난다. 무늬들은 대부분 등잔 주위에 돌아가면서 간단한 물결 모양, 빗금 모양 등이 나타나고, 특히 비잔틴 시대에는 십자가 표시가 찍혀 있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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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신석기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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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및 기후의 변화와 농경의 시작과 관계가 중요한 문제인데 그것은 노아홍수 이후의 기후 변화와 노아의 농경시작과의 관계에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해주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 이후에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케 해주는 증거는 인간의 수명이 홍수 후 현저히 단축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홍수 전에는 900세 전후의 수명이 홍수 후에는 급격히 단축됨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오늘날 창조 과학회에서는 홍수 이후의 환경변화가 인간의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도시화에 관한 가설
니므롯 帝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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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왕들은 어디에 묻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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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과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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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 끌려 간 다니엘은 '다니엘서'를 기록하는데, 그의 예언대로 바벨론의 멸망 다음에는 메디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등의 나라가 나타났습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이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다니엘서'가 그 사건들이 다 이루어진 후에 기록된 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후대에 기록하고 이름만 '다니엘서'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대해서 성경의 신빙성이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서에는 헬라어(그리이스어) 단어가 세 개 들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다니엘서가 바벨론 시대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알렉산더가 지배하던 '헬라' 즉, 그리이스 시대에 쓰여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보면 그리이스와 바벨로니아는 느부갓네살 시대 이전부터 이미 광범위한 무역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말(言)도 서로 오고 갔다는 것이 밝혀져 있고, 세 개의 단어가 무엇인가 조사해 보았더니, 그 단어들은 모두 그리이스의 악기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최소한 한 개의 악기는 다니엘 시대 이전부터 바벨로니아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악기였습니다. 예전부터 써 오던 악기이므로 그리이스 말 그대로 바벨로니아에서 쓰인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니엘서에 수메르 단어가 8개나 들어 있습니다. '수메르'라는 나라가 언제 부터입니까? 아브라함보다 이전 아닙니까? 다니엘서가 기원전 500년경이라면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전이므로 1500년도 더 된 단어가 8개나 남아 있다는 말이지요. 느부갓네살 통치 시대 이후에는 수메르 언어가 전혀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다니엘서에 수메르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느부갓네살 시대, 혹은 그 이전에 다니엘서가 쓰여졌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의 저작시기가 느부갓네살의 통치 시기로부터 먼 훗날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수메르 단어로 확정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조차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니엘서에 히브리어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도 포로로 잡혀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기록된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내용에 있어서 허무맹랑한 사실이 너무 많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는데요, 한 예를 들면 다니엘서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외국의 포로중의 일부를 잘 먹이고 갈대아 학문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는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너무나 악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포로를 잘 먹이고 가르쳤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바벨로니아의 정책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고대 바벨로니아 지역을 발굴하다가 특별한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건물의 비석에 그 건물의 용도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비석에는 포로로 잡혀 온 왕족과 귀족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된 건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잘 먹이고 가르쳤다는 성경의 기록이 실제로 증명된 것입니다.
그리고 금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고 다니엘의 세 친구를 용광로 불 속에 집어넣었다는 기록이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불 속에 던져 넣으려던 바벨로니아 군인들은 방화복을 입고 했었는데도 오히려 불에 타 죽을 정도로 불길이 강했으나, 세 사람은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용광로가 발굴되었는데, 그 용광로의 용도에 대해 쓰여진 비석에 보면 바벨로니아의 신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화형 시키는데 사용되는 용광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타는 용광로 속의 세 명의 히브리인의 이야기는 적어도 사실에 근거하였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또 많은 비난을 받았던 부분은, 다니엘이 왕의 칙령을 따르지 않아서 사자 굴에 떨어졌는데, 사자들이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가만히 있다가, 다니엘을 고발했던 사람을 잡아넣었더니, 뼈까지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계깊은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고대 바벨론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웅덩이가 발견되었는데, 이 웅덩이는 왕의 칙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사나운 짐승의 먹이로 떠밀어 넣는데 사용된 웅덩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잡아먹힌 사람들 이름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는데,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이 사건은 적어도 사실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갑자기 느부갓네살왕이 미쳐서 이슬을 묻혀가면서 풀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제정신을 차려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을 차려 돌아온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던 것 같습니다. 바벨로니아의 고고학적 발견 가운데 느부갓네살 왕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명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명각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는 왕이 미친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느부갓네살왕의 명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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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회당과 제의 용품들
(Synagogue and Judaica)
유대교 회당의 기원은 서기전 586년 예루살렘의 성전이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파괴된 사건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 성전은 서기전 515년에 스룹바벨에 의헤 재건되었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왕국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은 외지에서도 야훼께 기도함으로써 야훼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지 섬길 수 있는 분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이 예루살렘의 성전 외에서 야훼께 예배드리는 모임이 회당의 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회당은 히브리어로는 "베잇트 크네셋트(Beith Knesset)", 즉 "함께 모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가장 최초의 회당터들은 대부분 서기 1세기에 건설된 것들로서 헤로디움(Herodium), 가믈라(Gamla), 그리고 맛사다(Masada) 등지의 것들이다. 오늘날 전세계에 흩어진 1600만의 유태인들은 매주 토요일 안식일마다 근처의 회당에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이스라엘 종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유대교의 제의와 관련된 여러 리물들을 유다이카(Judaica)라고 부르며 은으로 만든 제품을 최고의 것으로 선호하고 있다. "메노라(menorah)라고 불리는 일곱 촛대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중요한 등잔이었으며, 촛불을 밝히게 된다. 안식일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는 산양의 뿔로 만든 것을 선호하고 있다. 해마다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열리는 하누카 축제가 8일간 지속되며 이 때는 아홉 촛대인 하누키야(hanukia)로 집집마다 창문을 밝히기도 한다. 모든 유대인들의 집 입구에는 문의 오른쪽 기둥에 "메주자(mezuza)"라 불리는 성경말씀이 기록된 양피지가 담긴 길쭉한 상자를 부착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쉰(shen), 달레드(Daled), 요드(Yod)의 세 글자가 곁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쇼레르 델렛트 이스라엘(Shoer Delet Israel)" 즉 "이스라엘 문의 문지기"라는 문구의 약자 표시이다. 안식일 각 가정에서는 향기로운 향품을 넣은 향상자(spice box)를 상위에 놓아서 안식일의 향기가 온 집안에 퍼지도록 하고 있다. 유대인 남자들은 기도할 때 신명기의 말씀이 기록된 양피지들이 들어 있는 조그만 가죽 성구 상자, 즉 트필린(Tefilin)을 왼쪽 팔뚝과 이마에 끈으로 묶어 부착하게 된다. 카쯔린(Qazrin) 회당 초막절(Succoth) 축제 토라 지시봉(Torah Pointer) 향상자(Spice Box) 메노라(Menorah) 트필린(Tefill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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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 [Garden of Eden]
에덴동산 [Garden of Eden] 많은 사람들이 신화처럼 생각하고 있는, 인류의 시조(始祖)가 처음에 살았던 에덴동산의 위치를 지금 정확히 알 수 있을까? 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화윌라 온 땅에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땅에 둘렸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세기 2장 10절~14절]
라는 말씀을 보아 이 두 강은 곧 현재 시리아 동쪽에 흐르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틀림없다. 두 강은 현재 이라크에 있다. 역사가들도 4대 인류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을 꼽고 있다. [유프라테스 강] > [티크리스 강]
1986. 3.20일자 스포츠 서울에 “현대판 에덴의 동산을 만든다”라는 제하에 이하와 같은 기사가 실렸었다.
“터키 정부는 세계 4대 문명발상지의 하나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우르 지역을 중점 개발 현대판 에덴의 동쪽으로 만들 대규모 개발계획을 발표. 터키 정부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 오는 2000년 까지 모두 13개의 다목적 댐을 건설하고 관개시설을 확충, 세계 문명의 발상지이며 중심지였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킬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한편 외국의 고고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를 무분별하게 개발함으로써 이 지역 내에 묻혀 있는 세계 문명발상사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귀중한 유적들을 모두 침수시킬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터키 정부의 개발계획을 반대했다.” 에덴동산에서 흐르던 네 강 중에 두 강은 아마 이스라엘 남쪽으로 흘렀으리라 생각한다.
1982년 11월 28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소개한다. “콜롬비아호 고대 강 발견”이란 제하에 “미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에서 발사된 레이더가 아프리카 북부의 사하라 사막 깊숙이 묻힌 고대 강 줄기를 찾아내 고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작년(81년) 11월 두 번째 우주여행 때 콜롬비아호가 찍은 레이더 사진을 분석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 8명이 공동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진이 수만년 동안 사하라 사막 땅 속에 숨겨져 있던 큰 강과 계곡, 홍수가 났던 들판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 월간과학 뉴턴 ’93.12월호 # 중앙일보 ’93.8.12 # 경향신문 ’87.6.20 > # 세계일보 ’91.2.10 현재 중동 지역은 거의가 불모지이며 사막이다. 그런데 세계 석유의 70% 이상이 그곳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석유가 나오려면 그 옛날 그곳에 많은 동식물 유기물질이 갑작스런 천재지변에 의해 땅 속에 매장된 일이 있어야만 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썩지 않고 뜨거운 지열 등의 화학적 변화를 받아 에너지를 자체에 갖고 있어야 한다.
옛날 에덴동산에는 특별한 기후 관계로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울창하고 엄청나게 큰 수목이 자라고 있었으며 온갖 거대한 짐승들이 활동했을 것이라는 증거가 많이 있다. 그것들이 대홍수 및 그에 따른 지각변동에 의해 다 땅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그러한 내용을 지적한 성경 말씀이 있다.
“너의 영화와 광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에스겔 31:18). 에덴의 광대한 나무와 모든 것들이 지하에 묻혀 버림으로 그것이 훗날 석유가 되어 나오게 된 것이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중동 지방에서 기름이 흘러나왔다는 성경 기록도 있다. 이 지역에 세계70%이상의 석유가 나오고있다. 현재 황무지인 이곳 지하에서 이런 석유들이 나오는 것은 과거에 이곳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식물과동물이 왕성했던 곳이였다는 증거이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tar pits)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창세기 14:10).
정유공장에서 좋은 기름을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가 역청인데, 도로 포장(pave)할 때에 쓰이는 아스팔트가 그것이다. 그 옛날 중동지방에는 땅 속에서 기름이 솟아나온 곳이 있었는데, 휘발성이 강한 것은 다 기체화하고 남은 것이 여기저기 역청 구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소돔 고모라 왕들이 전쟁할 때 그 역청 구덩이에 군사가 빠져 죽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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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나무와 생명나무는 무엇일가?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선악나무와 선악과는 무엇일가? 또 먹으면 영생한다는 생명나무와 생명실과는 무엇일가?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동산에 있는 다른 나무의 실과는 마음대로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뱀의 꼬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악과를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서 먹게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생명실과도 따먹고 영생 할 가하여 생명실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그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동산에서 ?아 내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선악과는 무엇일까요? 또 생명실과와 생명나무는 무엇일가요? 세상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성경에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뱀이 하와를 미혹해서 선악과를 따 먹게 했는데 뱀이 하와와 대화를 한 것을 보면 그 때의 뱀은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과연 뱀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과연 창세기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신앙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말씀을 서로 거론해봐야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또 어디에서도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으니까 하나의 흥밋거리로만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 말씀가운데 오늘날 우리에게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창세기는 옛날이야기도 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신앙인들이 별로 많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의 계시록에 보면 선악나무와 선악과는 보이지 않고 생명실과와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생명실과를 주어서 먹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나무 열두 가지에서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가 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좌가 있고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고 합니다. 성경의 첫머리의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왜 성경의 마지막인 계시록에 와서는 선악나무와 선악과는 보이지 않고 생명나무와 생명실과만 등장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가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진대 신앙인들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도 될까요, 몰라도 될까요? 몰라도 천국 가는데 하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해답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십니까?"편 참조하시고 더 자세한 것을 아시려면 jd620@hanmail.net 으로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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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 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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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인이 살던 '우르' 라는 지역이 있었다." 이런 말이 성경에는 기원전 1400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 11장 31절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하여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갈대아인의 땅 우르라는 곳에 살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성경의 이 말씀을 한낱 전설과 같이 우습게 알고 수천년을 지나 왔습니다. 근대까지만해도 아무도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800년대 후반에 와서야 지금의 이라크 땅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짐으로써 정말 갈대아 우르지방이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위에 지도가 나와 있는데요.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고, 티그리스 강이 그 위로 흐르고 있는 그 사이에 비옥한 땅이 주욱 유지되고, 지중해 까지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비옥한 초생달 같은 모양이 유지가 되지요. 메소(사이) 포타미아(강)는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시날 평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끝 부분, 바로 이 곳이 우르지역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고고학자들이 1800년대 중반부터 많은 고생을 하며 연구를 하였습니다. 왼쪽 그림은 갈대아 우르 지역을 발굴하고 있는 실제모습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발견되었는데, 아주 정밀한 수로를 만들어서 그 지역의 농사를 위해 물관리를 철저히 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점토판에 완벽한 지도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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